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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in 광림BBCH홀, 2018.04.27 8시 공연
한지상 살리에리, 김재욱 아마데우스, 이엘 콘스탄체, 박영수 요제프. 핝살리, 재욱아마데, 엘콘스, 슈제프. 핝재욱 페어막, 핝살리 세미막. 4차이자 자막.
프리뷰부터 챙겨보며 꽤 많이 관극하리란 예감을 했었는데, 현업으로 인해 좋은 자리를 두 개나 포기하고 결국 자넷으로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재관람을 하니 극의 아쉬운 점들이 새로이 보이긴 했으나, 몹시 말끔하게 정돈된 핝살리의 연기와 노선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리된 대사톤과 호흡,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레퀴엠 등 드라마틱하게 절정으로 치닫는 장면에서 또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디테일들이 몰입을 높였다. 재욱아마데도 이전 공연들에 비해 더욱 감정이 깊어져서 2막 초중반 절망의 깊이가 무척 짙고 아팠다. 엘콘스는 배우 자첫이었는데 일상적인 톤으로 매끄럽게 대사를 이어나가는 점이 좋았다. 이 극도 두 달 정도 진행되다보니, 앙상블 배우들의 디텔이 꽤나 많아져서 자꾸 시선이 무대 저 안쪽으로 향하게 되더라.
※스포있음※
전반적으로 살리에리라는 인물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며 관극했기 때문에, 2막 내내 그의 위선적인 언행을 똑바로 바라봤다. 신을 자신의 영원한 적으로 상정하고 일생 동안 바친 성심, 근면, 금욕을 내던지는 선택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였으나, '신의 목소리' 라 생각한 모차르트의 인생을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방식으로 자행한 복수는 이해는 되지만 공감이나 용서는 되지 않았다. 이전 공연들을 보면서는 '평범함' 을 대표한다고 자칭하는 살리에리의 절망이나 열등감에 깊이 공감이 됐다면, 이날은 신과 재능과 천재성과 운명에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도전하며 평생을 발버둥친 살리에리가 마지막 순간에서야 겸허히 자기 자신을 수용하는 체념에 가까운 자기긍정에 깊은 연민과 공감을 느꼈다. 2막 마지막 장면에서 "당신을, 용서합니다. 당신의, 평범함을," 하고 잠시 공백을 두더니 고개를 오른쪽 아래편으로 살짝 떨군 채 떨리는 목소리로 "용서합니다.." 라고 끝을 흐리며 마무리하는 핝살리 실루엣의 잔상이 무척이나 여운이 짙었다. 대중에게도, 신에게도 버림 받은, 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허망함과 황망함. 공연 내내 광기에 어린 채 광기에 어린 모습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살리에리였기에, 삶의 끝에서 그가 보여주는 고독과 절망, 고통의 깊이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레퀴엠은 아마데우스와 살리에리 배우들 간 합에 따라, 서있는 위치나 동작, 당시의 감정에 따라 무척 달라지는 장면이어서 매번 새로웠고 항상 충격적이었다.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한 천재였던 지난 3차 관극과는 다르게, 재욱아마데는 이날 조금 더 인간적이었고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핝살리의 고해와 용서 강요를 대하는 감정이 보다 날카로우면서도 공포에 가까웠다. 벗어나려 발버둥치다가 몸통 오른쪽을 바닥에 댄 채 드러누워버린 재욱아마데의 위에 올라타며 하늘을 향해 형형한 눈빛을 쏟아내는 핝살리. 그런 그의 몸짓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재욱아마데가 고통스럽게 내려앉은 정적을 뚫고 속삭이듯 입을 뗀다. "살리에리, 그만해. 그만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똑바로 세운 채 고개만 떨궈 바닥에 드러눕다시피 한 핝살리를 내려다보는 재욱아마데. 객석에서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그 표정을 유일하게 마주하고 있는 핝살리의 얼굴에 실린 경악과 공포, 절대적인 위압감을 그가 느끼는 그대로 고스란히 전달받았다. 그 순간, 핝살리는 그가 원망하고 저주했던 신을, 그 현신을 마주했으리라 확신한다. 이 장면은, 참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두 사람의 위치나 자세, 표정은 물론이고 숨쉬기조차 벅찰 만큼 짙고 무거운 공기가 여즉 생생하다.
"당신은 나에게, 음악으로 당신을 섬기라는 욕망을 주셨으면서 재능은 주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평생 당신만을 찬양하라는 욕구를 주셨으면서 저를 벙어리로 만드셨습니다."
1막 마지막 장면. 이를 악물며 짓씹듯 노여움과 원망과 분노를 내뱉는 살리에리. 이날 "재능은... 재능은, 재능은!!" 하며 단계적으로 여러 번 반복하며 감정을 더욱 누적시켰고, "아," 하고선 비웃듯 피식 웃고선 "그래도 한 가지는 주셨네요," 하고 다시 허망한 듯 어이 없는 듯 웃으며 "다른 사람의 재능을 정확히 알아만 볼 수 있는 유일한 재능을," 하고 비아냥대며 더욱 신에 대한 반발심을 강조했다. 이전 공연과 다르게 신에게 매달리듯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그의 위대한 의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진심으로 의아함을 담아 추궁하는 눈빛이 섬뜩하기까지 했다. 울먹이는 목소리에 제 부족한 재능에 대한 자괴감이 아니라, 재능을 부족하게 준 신의 의지와 뜻에 대한 의문이 더 많이 담겼다. 묵주를 던지기 직전 양 손으로 소중한 듯 끌어쥐는 동작에는 신에 대한 미련보다는 그의 뜻을 위하여 바쳐온 자신의 인생에 대한 미련이자 애틋함이 더 많이 담겼고,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것이라는 듯 묵주를 내던지는 동작에 실린 분노와 단호함이 더욱 부각되었다. 이 장면이 매번 너무나 좋아서, 아마데우스 인터미션은 좌석에서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항상 맹렬한 여운에 젖은 채 살리에리의 감정을 한참동안 곱씹었다.
좋은 캐스트들을 만나 꽤나 흥행한 극이어서 재연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나 공연장은 다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지상 배우의 새로운 면을 마주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신선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오페라나 클래식에 좀 더 현실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극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즐겁게 관극할 수 있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이제 여름에 블퀘에서 짱짱한 노래를 들으리란 기대로 벌써부터 행복하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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