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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in 엘지아트센터, 2018.11.13 8시 공연

 

 

안소명 마틸다, 곽이안 브루스. 구더기팀 김단비 앨리스, 김요나 라벤더, 오미선 아만다, 에릭 테일러 토미, 강희준 나이젤, 이우진 에릭. 김우형 트런치불, 방진의 허니, 최정원 미세스 웜우드, 문성혁 미스터 웜우드. 마틸다 자둘.

 

김랑켄 이후 아주 오랜만에 관극했다. 이런저런 사건도 많았고, 여러모로 고민과 번뇌가 많은 시기여서 힘들었는데 이 관극으로 많이 치유 받았다. 자첫과는 또다른 시선으로 극을 바라볼 수 있어서 즐거웠고, 벅찼고, 애틋했고, 눈부셨다. "불공평하고 또 부당할 때" 분노와 속상함과 외로움에 지지 않고 "한숨 쉬며 견디는 건 답이 아냐" 하며 벌떡 일어서는 마틸다를 보면서 눈물을 꾹 참았지만, 결말 장면의 소명틸다 표정에 둑이 터진듯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지난 자첫 관극에서는 "옳지 않" 음에 맞서는 "쬐끄만 용기" 를 지닌 마틸다의 강인함에 집중했다면, 이번 자둘 관극에서는 "기적 같은 아이" 지만 아직은 어른의 "도움이 필요" 한 마틸다의 감정에 몰입했다. 범람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유독 특별한 이야기, 마틸다.

 

 

리볼팅 넘버가 끝나고 펠프스 선생님이 네모난 박스 위에 서서 이야기의 끝을 말하는 장면부터 울컥했다. 모든 이야기에는 마지막이 있지만, 삶이 계속되는 만큼 happily ever after 는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안다.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맞이한 행복한 결말보다,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바로 그 고통과 경험의 과정이 더 유의미하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아픔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마틸다와 허니 선생님이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메꿔주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굳건하고 찬란하다. 평생을 꽁꽁 묶여버린 채 무력감과 패배감으로 점철되어 있던 진의허니는, 도움을 건넬 어른이 자신 밖에 없음에 힘겨워하면서도 마틸다를 위해 용기를 내고, 마틸다를 통해 힘을 얻고, 마틸다와 함께 당당히 선다. 다른 아이들이 당연하게 받는 부모의 사랑을 텍스트로만 이해하던 소명마틸다는,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고독으로 인해 결코 완치되지 못할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당차고 용감한 태도로 모든 부당함에 꿋꿋이 맞선다.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에 애정이 아니라 학대를 받은 두 존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상황을 마주했고, 끝내 서로를 만나 온전해졌다. 짙고 깊었던 상처는 흉터로 남겠지만, 이해할 수 있고 공감 받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난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이어나갈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피아 보스 세르게이가 무릎을 꿇고 마틸다를 향해 "기적 같은 아이" 라고 노래를 하는 순간, 흔들리던 소명틸다의 눈빛. 당돌하고 담담하게 "그래도 아빠니까요, 저는 그 딸이고요" 라고 말하는 찰나에 일렁이던 그 눈빛. 학대하던 어른을 스스로의 의지로 떠나는 주체적인 아이임에도, 이해와 사랑을 바랄 수밖에 없었던 가족이라는 존재를 마주하는 감정은 복잡스러울 수밖에 없다. "설명이 잘 안되" 는 그 상처를 마지막까지 드러내는 소명마틸다의 눈빛이 너무도 애틋하고 미안하고 아파서, 이 기적 같은 아이 대신 펑펑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구더기팀을 또 만나서 기쁘고 반가웠다. 무대 위에서 오롯이 배우로서 서 있는 모습들이 너무나 멋지고 대단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모든 동작을 정확하고 절도 있게 열정적으로 선보이는 배우들을 한꺼번에 눈에 담을 수 없어 속상할 정도다. 공연을 거듭하며 발전하고 있는 대배우님들을 앞으로도 자주 만나고 싶어서 자셋, 자넷 관극이 이어질 예정이다. 못해도 전캐는 찍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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