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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in 아트원씨어터 2관, 2018.10.12 8시 공연

 

 

 

 

유연 엠마, 고상호 스톤, 박지은 미아, 이상운 버나드. 유엠마, 고스톤.

 

 

2033년 영국 도버. 문을 두드려 확인해보지 않아도 모두가 혼자 살고 있는 싱글마을. 그곳에 집 밖을 절대 나서지 않는 노인 엠마가 있다. 커튼을 친 어두컴컴한 방에서 리모콘 하나만 꼭 붙들고 작은 티비에 시선을 고정한 엠마는, "이렇게 앉아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뿐" 이라며 세상을 등지고 고독을 자처하며 삶의 마지막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런 그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독거노인 도우미 로봇 스톤이 배달된다. 기억을 잊고 마음을 닫아 색이 다 날아가버린 회색빛 엠마의 공간에, 밝은 햇살과 따뜻한 조명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엠마는 너무 고통스러워 지워버렸던 자신의 이야기를 더듬더듬 찾아가게 되고, 마침내 똑바로 마주한다.



 

 

이야기를 찾아내고 끌어가는 주체가 여성이자 노인인, 보기 드문 여성서사극이다. 극 후반부의 버나드 대사 중에 늙는다는 건 나이를 먹어가며 계속계속 기억하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나이듦을 긍정하고 늙음이 지닌 가치를 유의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전반부의 장면들로 쌓아올린 대사와 가사와 행동들이 후반부의 클라이막스에서 실타래 풀리듯 이어진다. 스쳐 지나갔던 엠마와 스톤의 이야기가 지닌 근간을 찾아가는 극의 구성이 극적인 효과를 선사했다. 만화 같기도 레고 같기도 한 무대 삼면의 벽에서 소품을 꺼내고 영상을 비추고 동선을 만들어내는 무대 연출도 흥미로웠다. 반짝이는 악기 반주와 귀에 잘 익는 멜로디와 아기자기하고 예쁜 가사로 구성된 넘버들도 사랑스러웠다.

 

 

"잊혀지고 변하고 때론 사라지곤 하는" 기억을 가진 인간이지만, "여기(머리)가 아니라 여기(가슴)로 기억하는 감정이라는 것이 있" 기에, 우리의 이야기는 잠시 잊혀질 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라진 건 아니지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뿐 / 그 숨어버린 기억을 하나씩 찾아버리면 그뿐" 이라는 엠마의 말처럼, 마음에 새겨져 있지만 잊고 살던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들을 찾아내 소중히 끌어안고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삶의 형태를 제시하는 극이었다.

 



 

이 극 땡베리처럼, 이전에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새롭고 유의미한 이야기를 담은 창작뮤지컬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태만하지 않은 연출과 따뜻한 무대와 좋은 배우들 덕에 행복한 관극이었다.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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