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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스가이드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2018.11.16 8시 공연

 

 

김동완 몬티, 한지상 다이스퀴스, 이하 원캐. 임소하 시벨라, 김아선 피비, 김현진 미스 슁글, 윤지영, 장예원, 선우, 윤나리, 윤정열, 김승용, 황두현. 뎅몬티, 한스퀴스. 뎅한 페어첫공, 젠가 자첫.

 

헤드윅 표절 건에 대하여 여전히 피드백을 한 줄도 내놓지 않는 쇼노트의 극을 진심으로 팔아주고 싶지 않았지만, 배우가 인질이라서 일단 자첫을 했다. 본래 코미디라는 장르를 선호하지 않기에 이 극이 취향이 아니리라 생각했고, 역시나였다. 무대 위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나 라임을 딱딱 맞춰 위트있고 재기발랄한 가사들에 많이 웃으며 즐겁게 관극했지만, 마음에 쏙 드는 극은 아니었다. 태생부터 차별이 내재화 되어 있는 오만하고 경박하고 위선적인 20세기 초 런던 귀족의 언어들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듣기 불쾌한 혐오의 표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독창성을 위해 부여한 일부 특성들이 다소 거슬려서 마냥 웃을 수 없는 장면들도 있었다. 극 자체의 문제도 있겠지만,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지나치게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을 가볍게 웃어넘기지 못하는 성향에서 비롯된 불편함이 꽤 있었다. 이 극을 온전한 블랙코미디라 칭하기에는 통렬한 풍자가 부재했고, 가벼운 코미디라 규정 짓기에는 기괴하고 잔혹한 유머가 매력적이었다. 캐스팅이 좋아서 여러 페어를 챙겨볼 생각이었지만, 극이 취향도 아니고 쇼놋도 괘씸하여 뎅핝 페어만 두어번 더 보고 말아야겠다.

 

 

다이스퀴스 역의 배우 팬이라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극이다. 1인다역이어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연기와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뮤덕이 된 이후로 한지상 배우의 필모를 놓치지 않았고, 뮤페에 심지어 행사까지 한 번 가봤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들어보는 노래 톤과 목소리와 스타일이 있어서 정말 놀랐다. 모든 캐릭터를 전부 다르게 찰떡같이 소화하며 개그 포인트를 찰지게 살리는 핝스퀴스를 보며 극 내내 감탄했다. 코미디 극에서 즐겁게 날아다니는 배우를 보고 있자니 객석까지 덩달아 행복해졌다. 뎅몬티는 이전 뮤지컬 작품들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줘서 만족스러웠다. 발성이 단단하고 안정적이었으며, 강점인 정확하고 선명한 딕션과 섬세한 표정 연기도 더 풍성해졌다. 동작이나 목소리 톤, 음량 등의 차별점을 주면 훨씬 드라마틱해질 몇몇 장면이 밋밋하여 다소 아쉽긴했다. 일반적인 극이었다면 오히려 잘 살릴 수 있는 요소들을, 코미디 극이라는 부담 때문에 아직 뻣뻣하게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긴장감은 희미해진 듯했으니, 솔로곡에서의 강약조절과 상대배우와의 편하고 능숙한 합만 보완하면 훨씬 좋아지리라 믿는다. 뮤지컬 무대에서 안주하지 않고 매번 여러 도전을 통해 발전하는 오빠얌이, 팬으로서 매번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임소하 배우는 인형 같이 예쁜 외모와 큼직하고 적당히 과장스러운 몸짓과 표정과 톤으로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생동감 있게 색칠하며 반짝였다. 천연덕스럽고 생기발랄한 소하시벨라에게 계속 시선을 빼앗기며 감탄과 내적찬사를 거듭했다. 피비 역의 김아선 배우도 깔끔하고 우아하고 사랑스럽게 무대를 장악했다. 대부분의 극에서 답습해왔던,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분리된 여성 캐릭터들이 아니어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발랄하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내고 행동하는 인물들이 맛깔나게 표현되어 아주 만족스러웠다. 근래 올라오는 여러 공연들에 평면적이거나 뻔하지 않은 여성들이 많아서 기쁘다. 앙상블도 노래를 너무 잘해서 행복했다. 개개인의 목소리도 좋았고, 화음을 쌓아올리는 넘버들이 몹시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다들 깨알 같이 장면마다 극에 녹아들어 있어서 배우들이 많지 않은데도 무대가 전혀 비어보이지 않았다.

 

영상을 활용하는 무대 연출이 매끄러웠고, 무엇보다 극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펼쳐진 책 모양의 구조물 위에 적히는 몬티의 악필을 제외한다면, 전반적인 영상 연출과 조명이 만족스러웠다. 무대 위쪽에 있는 오케스트라가 정말 좋아서 관극 중간중간에 올려다보게 되더라. 산뜻하고 경쾌한 반주가 극과 잘 맞았고, 적재적소에 긴장감과 강조점을 부여하여 공연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언어유희로 가득한 가사들로 인해 기억에 바로 남는 넘버가 많지는 않았지만, 유쾌하고 통통 튀는 반주가 유려하고 매력적인 음악의 잔상을 남겼다. 이렇게까지 마음에 드는 오케가 오랜만이라서 생소하지만 반갑다.

 

 

적다보니 호평 일색이네. 극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취향이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심지어 그 홍아센이 시야도 음향도 나쁘지 않아서 더욱 놀랍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헤드윅이나 록호쇼는 대체 왜때문에 그따위 음향이었던 거죠? 극을 곱씹을수록 기억미화가 되고 있기에 일단 12월의 뎅한 페어 표 2장은 쥐고 있을 예정이다. 이건 다 핝스퀴스가 너무너무 잘하는데다가 소하시벨라가 지나치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탓이다. 프레스콜에 생각보다 박제가 별로 안 된 것 같아 아쉬운데, 오슷까지 기대하긴 힘들겠지. 자첫 후기인 만큼 스포일러 없이 이쯤에서 간략하게 마무리해야겠다. 쇼놋이 처신만 제대로 했다면 취향이 아닌 이 극도 기쁜 마음으로 배우들만 보며 회전을 돌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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