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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in 엘지아트센터, 2018.10.04 8시 공연



  

 

마틸다 영화를 보고 들으며 영어 회화를 공부하고, 마틸다 원서를 읽으며 원작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했던 아이. 그 아이는 그새 어른이 되어 마틸다 뮤지컬을 마주하고 When I Grow Up 넘버를 보고 들으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 동화 같지만 현실적이고, 현실 같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형형색색의 네모난 상자로 가득한 예쁜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이 극은, 모든 부당함에 맞서 "그건 옳지 않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약간의 똘끼" 와 "쬐끄만 용기" 를 건넨다.

 


 


이지나 마틸다, 문서윤 브루스. 구더기팀 김단비 앨리스, 김요나 라벤더, 오미선 아만다, 에릭 테일러 토미, 강희준 나이젤, 이우진 에릭. 최재림 트런치불, 방진의 허니, 강웅곤 미세스 웜우드, 문성혁 미스터 웜우드.

 

 

아역들의 춤동작과 눈빛이 매우 강렬하고, 앙상블의 군무와 노래가 무척 단단하다. 각이 딱딱 들어맞는 ABC송과, 너무 짧아서 아쉬울 정도로 마법 같은 그네씬과,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리볼팅과, 킥보드를 타고 나오는 커튼콜이 너무 좋아서 가슴이 설렜다. 극중극으로 구성한 각색을 통해 원작을 공연이라는 장르에 매끄럽게 녹여냈고,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감의 조명 연출이 장면마다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객석 통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배우들 동선과 객석까지 펼쳐지는 넓은 범위의 조명과 객석의 호응을 유도하는 몇몇 장면들을 통해 극장 안의 관객 모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안는다. 잘 정돈되고 정리된 극에 열정과 패기와 즐거움이 가득한 배우들이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공연이 되었다.

 

 

지나마틸다의 굳건하고 당찬 Naughty 와, 사서 펠프스 선생님 앞에 서서 웅변하듯 커다란 동작과 긴장감 넘치는 목소리로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이야기와,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아득한 절망을 뿜어내는 Quiet 와, 그럼에도 트런치불의 폭압 앞에 당당히 맞서는 강건함이 좋았다. 상대 배우 혹은 자신의 실수에 크게 당황하지 않고 무난하게 이어나가는 무대매너도 인상적이어서, 공연을 거듭할수록 더욱 발전하리란 걸 확신했다. 서윤브루스의 안정감 있는 연기와 리볼팅 도입도 좋았고, 구더기팀의 장면 합도 훌륭했다. 다들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이 다섯 개쯤 더 있었으면 했다. 오블 쪽에 많이 서던 미선아만다와 에릭토미에게 눈길이 자주 갔고, 깜찍하게 도롱뇽 장면을 살리는 요나라벤더의 표정과 연기가 일품이었다.

 



 

결말을 위해 삽입한 마지막 장면과 극 중 마틸다의 이야기가 지닌 비밀을 풀어내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불호였지만, 연출 상 의도는 이해한다. 가사 번역이나 영어의 잦은 사용은 살짝 아쉽긴 했지만, 비슷한 발음을 사용한 언어유희와 동일한 단어나 문장을 다른 캐릭터의 입으로 반복하는 등의 가사 및 대사들은 마음에 들었다. 마틸다가 자신의 일상에서 흡수한 타인의 언어를 활용하는 장면들도 좋았다. 너무 꽉 껴안아서 숨이 다 빠져나갈 것 같다는 허니 선생님의 말은 자신의 이야기 속에, 뇌가 자꾸 커져서 뇌가 귀에서 삐져나온다는 베프 라벤더의 말은 귀가 아니라 눈으로 바꿔서 허니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이용한다. 마틸다의 이야기에 있던 "깜깜하고 껌껌하고 깝깝한" (정확하지 않음) 이라는 표현을 트런치불이 똑같이 언급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웨스트엔드에 처음 올라온 이래 호평일색인 극이었기에 기대치가 꽤 높았는데,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고도 남는 멋지고 흥미롭고 훌륭한 뮤지컬이었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 있던 시기에 원작으로부터 건네받은 응원과 용기와 재미와 감동을 여전히 가득 지닌 채 살아가고 있기에, 연출도 넘버도 안무도 무대도 만족스러운 형태로 찾아와준 이 극이 몹시 고맙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과, 어른들과, 어른이들에게, 이 위대하고 놀라운 아이들과 이야기와 무대를 반드시 만나보기를 진심으로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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