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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로이드 웨버 기념 콘서트 - The Phantom of the Opera, the Concert
in 세종문화회관, 2018.05.05 6시 공연
라민 카림루 팬텀, 애나 오번 크리스틴, 마이클리 라울, 이안 존 버그 피르맹, 앤더스 솔먼 앙드레, 아멜리아 베리 칼롯타, 타비소 마세메네 피앙지, 정영주 마담 지리, 노지현 멕 지리. 라민팬텀, 애나크리스틴, 마라울.
반짝이는 푸른색 조명이 어두운 무대와 그 위에 세팅되어 있는 풀오케스트라를 넘어 객석까지 닿는 장면을 자리에 앉자마자 마주한 순간, 이 갈라콘의 의미가 막연함에서 생생함으로 급변했다. 항상 디비디나 영상으로만 만났던 '갈라콘' 이라는 형식의 공연을, 서울에서 두 눈과 귀로 직접 마주할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배우들이 무려 전곡을 불러주는 이 오페라의 유령 콘서트가, 새삼스럽게 차오르는 벅찬 기대감으로 다가왔다. 암전이 내릴 때까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경건한 마음과 자세로 아름다운 음악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고, 공연은 기대 그 이상으로 화려하고 눈부시고 황홀했다. 분장도, 무대도, 의상도, 소품도 없이 담백하게 진행되는 갈라콘이었음에도, 마치 얼굴을 가리는 하얀 가면이 있는 듯, 그 아래에 흉측한 분장이 있는 듯, 온 사방에 촛불이 켜져 있는 어두운 지하 속 흐르는 물줄기 소리까지 들리는 듯, 줄 하나에 힘겹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듯, 너무나도 흡입력 있는 감정선으로 노래하고 연기해준 배우들 덕분에 극 하나를 온전히 다 보고 나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특공' 회차가 왜 다섯 번 뿐이죠. 본공은 언제 올라오나요ㅠㅠ 오페라의 유령을, 갈라콘서트로,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옹 생일 기념으로, 무려 서울에서 하는데, 무대 위 배우들이 다채롭기까지 한, 이 놀랍고 경이로운 공연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디비디 내주면 두고두고 보면서, 내가 바로 여기 있었노라고 훗날 사람들에게 자랑이라도 할 텐데.... 영상이라도 풀어줄 생각 없나요ㅠㅠ?
※오페라의 유령 스포 있음※
실제로 만난 적이 없는 극이기에 더 설렜다. 일단 마라울 대사하는데 발음이랑 목소리가 가장 정석적이고 올곧은 귀족 어투여서 너무 좋았다. 다른 배우들과 함께 섰을 때 왜소함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자세와 흔들림 없는 눈빛, 단호한 발음 등을 통해 영향력 있는 고고한 상류층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크리스틴과 마주하는 장면들에서는 그토록 다정하고 스윗하면서도, 2막 초반 유령을 유인해야 한다며 크리스틴이 무대에 서도록 설득하는 고집 센 모습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정의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치기 어린 귀족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러한 라울의 행동을 대하는 애나크리의 연기를 보며 크리스틴이라는 캐릭터를 새롭게 해석하게 됐다. 크리스틴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얘기해준 동화 같은 '음악의 천사' 이야기를 믿으며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주인공이라는 막연한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애나크리는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며 성장하고 변화하며 마침내 스스로 제 인생을 선택하고 굳건하게 운명을 마주하는, 가장 인간적이고 성숙한 캐릭터였다.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죽음 끝까지 내몰린 마라울을 바라보는 눈빛과, 두려움과 공포, 절망을 넘어서 경악과 혐오, 종국에는 지독한 연민을 가득 담아 라민팬텀을 마주하는 표정이 엄청나게 설득력 있었다. 팬텀 곁에 남겠다는 애나크리의 결정은 단순히 고결함이나 자기희생이라고 명명할만한 차원의 행동이 아니었다. 팬텀을 향한 복합적인 감정들이 일순 하나로 모여 차분히 가라앉는 애나크리의 눈빛은 절망이나 체념으로 텅 비어 버린 것이 아니라, 굳건하고 생명력 넘쳤다. 이토록 주체적인 크리스틴이었기에, 반지를 돌려주러 온 그를 발견한 라민팬텀의 눈에 마지막 희망이 선명하게 스치는 게 너무나 당연했고, 그래서 그의 결말이 더 지독하게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라민팬텀은 훌륭하리란 짐작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했다. 위압적인 존재감과 카리스마 넘치는 장악력은 물론이고, 손가락과 눈빛, 입꼬리 등의 모든 비언어적 연기와, 멜로디와 가사와 강세 등을 통해 결을 살리며 넘버를 완벽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노래까지, 그저 팬텀 그 자체였다. 손가락 움직이는 디테일은 회전을 돌아야 넘버 별로 장면 별로 세세하게 적을 수 있을텐데, 왜 라민팬텀 공연 더 없는 거죠? The Phantom of the Opera 넘버에서 사람 홀리게 하는 손짓이랑 목소리에 이미 녹아내렸는데, The Music of the Night 넘버에서 극강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느끼며 펑펑 울었다. 약하고 부드럽게 시작하는 초반과 점차 힘을 얻는 중후반부의 흐름을 너무나 매끄럽게 만들어내는 라민팬텀의 목소리와 반짝이는 오케스트라 반주가 완전히 어우러지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별빛만 가득한 새카만 밤하늘을 홀로 유영하는 듯한 환상을 느꼈다. 이 배우는 호흡 개념 자체가 없는 듯 느껴졌다. 노래하는데 배우의 호흡이 인지가 안되더라. 그리고 2막. 좋았지만 다 뛰어 넘고 The Point of No Return 부터 라민팬텀에게 완전히 홀려 눈을 못 떼다가, 클라이막스에서 크리스틴의 말에 고개를 미세하게 왼쪽으로 까딱거리고, 한쪽 입꼬리만 미세하게 움직이고, 몇 개의 손가락만 파들거리는 디테일과 감정선 때문에 눈물이 터졌다. 희망도 자비도 없는 극악한 나날을 꾸역꾸역 살아내야 했던 비통스럽고 비참한 인생이지만, 팬텀의 행동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박하게 갈망하고 갈구하는 크리스틴이라는 존재가 그에게 있어 어떤 의미인지를 너무나도 절절하고 촘촘하게 표현하는 라민팬텀의 연기에 설득당했다. 광기가 섞인 분노와 원망과 강압과 강요, 눈부시고 신성하기까지 한 기적 같은 찰나, 허망함과 회한, 절망, 헛된 희망,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좌절까지, 하나의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을 이 짧은 순간에 온전히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좋은 배우는 자신이 표현하는 캐릭터의 감정을 고스란히 객석의 관객에게 전달하곤 하는데, 라민팬텀은 분장도 가면도 의상도 소품도 없이 완벽하게 그걸 해내더라.
라민 배우에게서 의외로 락발성이 간간히 느껴져서, 지크슈에서도 보고 싶어졌다. 지저스도 유다도 찰떡같이 잘 할 것 같은데, 마이클리 배우랑 JCS도 같이 하면 정말 좋겠다... 상상만 해도 막 짜릿한데. 오유 올라오면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리뷰 안 풀고 디테일 뽑아내며 열심히 회전 돌 텐데, 왜 오유 소식이 없는 걸까. 뮤지컬 팬텀이 4년 사이에 삼연까지 올라올 동안, 오페라의 유령이 감감무소식이라는 게 말이 되는 건가. 류배우님 오유 팬텀을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하는데 왜 오유 라센 소식이 없는 건가요ㅠㅠ 왜 고전이 고전이라 불리는지, 빌리에 이어 또다시 체감한 관극이었다. 꿈 같이 달콤하고 황홀한 경험이어서 돌이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이 배우들과 이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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