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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in 광림bbch홀, 2018.03.16 8시 공연
한지상 살리에리, 김재욱 아마데우스, 함연지 콘스탄체, 박영수 요제프. 이하 원캐. 핝살리 3차, 재욱아마데 2차 관극.
공연이라는 장르에서 '대본' 이라는 요소가 지닐 수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관극이었다. 대본의 텍스트 그 자체가 지닌 힘이 있고, 그 텍스트가 지닌 여러 가지 함의들을 취사선택하여 내보이는 연출의 능력이 있으며, 그 연출을 기반으로 텍스트를 분석하고 그 해석을 무대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도록 만드는 배우의 표현력이 있다. 연극은 뮤지컬보다 대본이 중요한 장르이기에 이 음악극을 세 번 정도 보니 허투루 넣은 대사들은 없다는 걸 새삼 느끼는 동시에, 원 텍스트가 아마 지니고 있었을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않은, 혹은 못한 연출에 대한 아쉬움도 짙게 느꼈다. 회전 도는 극이 있을 때면 매번 그러하듯, 웹 상에서 찾을 수 있는 리뷰들은 거진 찾아 읽고 있는데 희곡의 여러 판본들에 대한 글을 읽고 원 희곡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작가 피터 셰퍼가 하고 싶었던 말을 직접 마주해보면, 이 극에 대한 이해가 더 높아질 것 같다. 이건 다, 레퀴엠 장면 때문에 느끼는 욕망이다.
※스포있음※
공연을 '순간의 예술' 로 만드는 가장 결정적이고 영향력이 큰 요인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극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배우고, 회전문을 돌게 하는 주된 이유가 또다시 배우다. 이날 레퀴엠에서, 핝살리가 평소보다 강조한 대사 하나에 그 장면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살리에리에게 도움을 구하고 피아노 위에 선 아마데우스. 자둘 관극에서 뽀아마데가 손가락 틈새로 새어나가는 음표들을 붙잡으려 다급하고 열정적으로 머릿속의 음악을 쏟아내는 것과 다르게, 재욱아마데는 급작스러울 정도로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으로 자세를 꼿꼿이 세운 채 나지막하지만 단정적으로 음악을 그려낸다. 내리꽂히는 영감으로 인한 파르르 떨리는 진동에 색을 입히는 뽀아마데와 반듯하고 무채색의 느낌으로 침잠한 재욱아마데가 몹시 다르다. 잠시만 쉬자고 말하며 피아노 위에 드러누우며 아마데우스가 고백한다. 당신이 날 싫어하는 줄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용서해요, 안토니오." 존대였는지 반말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살리에리의 '이름' 을 부르는 이날 재욱아마데의 디테일에 레퀴엠 장면이 지닌 색감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아직 죄악으로 물들지 않은 감정들이 터져나온다. 그 순간 지난 관극들에선 인지하지 못했던, 방점과 어조를 달리한 핝살리의 대사 한 줄이 귀에 박혔다. "그래야 살 수 있잖아." 이 대사가 이날의 레퀴엠을 결정지었다. 남아 있는 일말의 영혼을 위하여, 제가 괴롭힌 아마데우스에게 용서를 구걸하는 살리에리. 자비를 한 톨도 베풀지 않았던 신과, 동정과 자비를 불러일으키는 말을 하는 아마데우스. 서로가 독에게 노출되었다 고해하며, 너무 약해진 그 역시 신에게 버림 받은 것이라 그를 설득하는 것인지 자기자신을 설득하는 것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내고, 결국 그가 상정했던 '영원한 적' 은 신이었지만, 그가 선택받았다 여기고 괴롭혀왔던 볼프강의 '영원한 적' 은 자신이었음을 인지하는 살리에리의 고백.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계속 그 뜻을 되물으며 발작하듯 살리에리에게서 벗어나려 하고 "가," 하며 밀어내다가 종국에는 비명을 지르는 뽀아마데와 다르게, 이날 재욱아마데는 "꺼져" 하면서 그를 밀어내는 등 좀 더 냉랭하고 날카롭게 반응하다가 마지막 순간, 갑자기 핝살리의 뺨에 제 손을 얹고 그와 눈을 정확히 마주하고는 정말이지 냉랭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만해, 안토니오." 그 순간 내려앉는 엄청난 적막. 아마데우스가 정신 나간 것마냥 흥얼대는 작은별과, 무릎을 꿇고 온몸을 끌어안듯 절망하는 살리에리의 웃음 같은 흐느낌 만이 새카맣게 공간을 채우는 정적을 흔들 뿐이다. 성이 아니라 '이름' 을 호명한 재욱아마데의 디테일이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그에 따른 핝살리의 감정 역시 보다 짙고 맹렬하여 두 캐릭터 각각이 지닌 생명력이 훨씬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살리에리는 '신' 을 자신의 적수로 상정하고 평생을 치열하게 반발하며 살아왔지만, 적어도 레퀴엠 그 장면 만큼은 신이 설정한 운명 속에서 인간과 인간이 온 영혼을 맞부딪히며 각자의 존재를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그래서 이날 레퀴엠이, 이해가 되더라. 온전히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왜 살리에리가 눈빛이 확 돌변하며 아마데우스에게 용서를 강요하는지, 그 맥락은 이해가 됐다.
사실 이 장면을 제외하면 이날 공연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합이 딱딱 맞는 뽀아마데와 공연을 계속 같이 해서인지, 1막에서 다소 밋밋하고 차분하게 극을 풀어나가는 재욱아마데와 함께 한 핝살리의 노선이 다소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다. 콘스탄체 대사 날려먹은 것도 있었고, 전반적으로 산만한 느낌도 들었다. 웃음포인트를 더 찰지게 살리는 건 이해하지만, 자기 노선을 명확하게 잡고 묵직하고 일관성있게 쥐고 유머를 넣는 게 극을 더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객석의 '미래의 유령들' 에게 건네는 독백에서 '요,' 나 '다,' 같은 어미도 좀 일관성 있게 가면 좋을 것 같다. 자첫이자 핝살리 재욱아마데 프리뷰 첫공 때 보고 온 게 있는 만큼, 이 페어가 좀 더 서로의 노선을 이해하고 조절해나가야 할 시점인 듯하다. 물론 2막이 너무 좋아서 1막의 아쉬운 점은 다 증발되긴 했으나, 아직 남아 있는 표가 여전히 여럿인 만큼 다음 관극은 1막 2막 모두 만족스러웠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이날 핝살리 노선에서 '예술가' 라는 소명에 대한 욕망이 지난 번 관극들보다 강하게 드러났다. 자기애가 확연했고, 다소 치기가 있는 어린 이미지였다. 당대 궁에서 일하는 음악가들을 설명하며 "돈을 벌기 위해 재능을 팔았습니다," 라고 했다가 "아니지," 하며 손을 살짝 돌리며 표현을 정정하는 눈빛과, "인간을 조롱하지 마소서!" 라고 신에게 외치는 기도가 상당히 '인간적'이었다. 매번 감탄하며 좋아하는 핝살리 디테일이 하나 있다. 1막 마지막 장면이자 2막 첫 장면에서 "영원한 적!" 이라고 신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나선, 1막 내내 목에 걸고 있던 묵주를 천천히 벗고 잘 보이게 들어 보이고서는 왼손으로 감싸듯 십자가를 쥐고 오른손으로 마저 그 손을 덮는다. 그 시점까지 평생을 믿고 지켜온 신념이자 삶을 반추하듯 소중하게 쥐고 있던 십자가를, 흡사 찰나의 어리석은 욕망이었다는 듯 망설임 없이 구석을 향해 던져버린다. 무척 사소한 동작임에도, 그때까지 믿어온 것을 배반하고 변화하는 인간의 전환점을 그 무엇보다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살리에리의 환희와 기쁨, 놀라움, 절규, 절망, 찬사, 경이의 감정이 너무나도 좋다. 그가 느끼는, 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감정들이 마치 내가 겪고 있는 것마냥 강렬하게 표현된다. 모차르트의 세레나데를 듣는 장면의 연출 한계가 눈에 보이긴 하지만, 대사톤이나 방점을 조금만 다르게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막 마지막 장에서도 모차르트 지휘를 향해 선 채 객석에서 뒤돌아선 살리에리가 오른손을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고 왼손은 그의 악보를 꽉 쥐고 있다가 파들거리며 툭 떨구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 연출 조명이든 음악이든 그 타이밍에 딱 맞게 좀 더 극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매번 아쉽다. 다소 진부하다고 평가받을 지는 몰라도, 클리셰한 연출에는 그 나름의 역할과 의미가 존재하는 법이다. 아예 드라마틱하고 신선한 연출을 시도하지 못할 거라면, 뻔하더라도 적절한 충격을 선사할 수 있는 클리셰를 활용하는 것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데우스 1막 조명 연출 전반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는 얘기임. 이 장면에서 핝살리가 모차르트 음악에 맞춰 지휘하듯 주먹 꽉 쥔 채 빰바밤, 하며 강조하는 디테일은 몹시 사랑한다.
2막에서 아마데우스가 피가로의 결혼을 소재로 오페라를 만들겠다고 하며 보수적인 궁정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장면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 모아 신에게 바치는 것, 그것이 바로 음악이라고 웅변을 토한다. 비록 "헛소리를 너무 길게 했네" 하며 툭툭 털고 일어나지만, 아마데우스의 입에서 쏟아지는 이 말을 듣고 신을 '영원한 적' 으로 상정한 살리에리가 뭔가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신이 '선택' 한 사람이 만드는 음악이 그의 목소리라고 믿고, 제가 그 목소리가 되지 못함에 대한 절망과 재능의 부재에 대한 원망으로 휩싸여 신을 저주하고 '영원한 적' 이라 선포한다. 그러나 아마데우스는 음악에 대한 정의 자체가 살리에리와 다르다.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모이고 모인 것이 음악이라고 믿는다. 이미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감탄했던 살리에리가 아마데우스의 말에 흔들리거나 의문을 갖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털며 헛소리라 치부하는 이 장면의 연출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위대한 전설을 소재로 평범한 예술을 만드는 살리에리 자신과 다르게, 평범한 소재로 위대한 예술을 만드는 아마데우스에게 느끼는 질투의 감정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장면임에도 모차르트의 천재성만 부각된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관극을 할수록 새로이 하고픈 말이 생기는 공연이 오랜만이라 리뷰 쓰는 게 힘들다ㅠㅠ 핝살리 디테일이나, 조정석 배우와 김재욱 배우의 노선 차이, 작은 바람들의 센스 넘치는 연기들, 앙상블의 노래나 안무 등 하고싶은 말이 아직도 많지만, 자넷 관극이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게으르게 뒤로 미뤄본다. 대본집 따로 팔았으면 좋겠는데. 원 희곡도 틈날 때마다 좀 찾아서 공부해봐야겠다. 잘라낸 연출이나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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