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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지바고

in 샤롯데씨어터, 2018.04.20 8시 공연

 


 


 

류정한 지바고, 조정은 라라, 최민철 코마로프스키, 강필석 파샤, 이정화 토냐. 류선녀미남 자둘, 류바고 자넷.

 

 

현업 때문에 정말 간만에 관극했다. 3주 전과 동일한 페어였는데,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 노선에 공연 내내 감탄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자셋 관극 때의 류바고 및 선녀라라의 노선이 더 취향에 가깝지만, 이날은 두 캐릭터 사이의 관계성이 강렬하고 명확하게 드러나서 그들의 감정선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극 안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앙상블 배우들도 장면 장면마다 디테일이 많이 생긴 덕분에, 더 빨리 몰입했고 더 깊게 감정을 공유했다. 오랜만의 관극이기도 했고, 유난히 배우들 감정들이 짙고 묵직하여 관극 내내 펑펑 울며 감정을 쏟아냈다. 막공까지 2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제 좀 재미있어졌다, 이 극이.

 


※스포있음※



이날 류바고는, 강했다. 라라와의 첫만남과 Who Is She? 넘버도 혼란보다는 궁금함이 앞서 있었다. 뿌리치고 나간 라라를 뒤쫒으려는 코마로프스키의 앞을 막아서며 성큼 한 걸음을 내딛을 때도, 제 연미복 윗깃을 만지작 거리는 미남코마롭의 손을 탁 쳐내고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탁, 하고 단호한 손짓으로 옷을 정리할 때도, 강단 있고 고집스러운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전쟁터에서 라라와 세 번째로 마주하며 비로소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이전 만남을 통해 라라에게서 보았던 열정을 입에 올리며 그를 향한 감정을 미처 인지하거나 숨길 새 없이 그 또한 열정적으로 마음을 내보이고 만다. 그리고 이날 선녀라라는 이전 공연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덜 강인했기에 이 장면에서 그 역시 흔들린다. 선녀라라는 폭력이라 인지하지도 못한 어린 시절부터, 부드러움이라 포장된 강압과 안락함이라 꾸며낸 억압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왔다. 공포, 무력감, 절망, 끔찍함, 그리고 자학. 굳게 굳게 마음을 닫아버린 라라에게 파샤는 좋은 친구이자 동료였고, 그와의 결혼은 '새로운 삶' 을 시작할 수 있는 기준이자 변화의 계기라고 믿었다. 그래서 파샤를 향한 감정이 연애라기 보다는 인간애이자 동료애였고,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전쟁터로 떠나버린 그를 향한 마음은 애모보다는 걱정과 애틋함이었다. 그런 라라의 앞에, 그를 위로해줬던 시를 쓴 시인이 나타났다. 시를 공유하고, 예술과 아름다움을 공감하는 사람. 그래서 선녀라라는 보다 빨리 지바고에게 마음을 열고, 보다 일찍 그에 대한 사랑을 인지했다. 라일락 넘버에서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며 박자를 맞추는 류바고의 환한 미소와 스르르 표정이 풀어지는 선녀라라의 얼굴. 그러다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마치 홀린 듯 서로의 눈만을 바라보며 라라의 오른손에 지바고의 왼손이 스치듯 걸리며 마주잡는다. 그대로 키스할 듯 가까이 다가가던 두 사람의 얼굴이, 미묘해진 공기에 주변 시선을 인지하고선 흠칫 하며 떨어진다. 황급히 나가버리는 라라와 그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지바고. 기차역에서의 대화. "드디어 가족을 만날 수 있겠네요." 라는 라라의 말에 비로소 제 위치를 인지하는 류바고. 지바고의 걱정에 "지금껏 혼자서도 잘 해왔어요" 라고 말하지만, 이전처럼 단호하고 날카롭게 선을 긋는 게 아닌 선녀라라. 그들을 향해 얀코가 피를 쏟으며 걸어오고, 허둥지둥 진료가방을 열기도 전에 축 늘어져버리는 소년. 그의 손에 쥔 편지를 읽는 넘버. Now. 도입 솔로 후 편지를 라라에게 건네주며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지바고. 왼블 쪽으로 가서 노래하는 선녀라라와 오블 쪽으로 와서 선 류바고. 라라 파트 중반 쯤에서, "라라," 하고 애절하게 그의 이름을 입술에 얹고서는 양 눈에서 눈물을 후드득 떨어뜨린 류바고는 그대로 눈을 감고선 마치 심장이 찢겨나가는 아픔이라는 듯 오른손으로 제 왼쪽 가슴 부근을 쥐어짜듯 붙들며 재차 눈물을 떨궜다. 두 사람의 감정이 너무나 애틋하여 마지막이라 여기며 서로를 꽉 끌어안는 마지막 포옹이 무척이나 절절했다. 



돌아온 모스크바의 집이 강제로 공유되고 있는 상황을 마주한 류바고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질문하고 이의를 제기하려 들지만, 토냐는 그보다 더 절실하고 단호하게 그를 막아선다. "이게 훨씬," 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류바고에게 입모양으로 "공평해," 라고 단어를 말해주는 작정토냐의 디테일이 새로 생겼더라. 급변한 제 위치에 혼란과 당혹과 분노가 공존하는 얼굴로 인민재판에 선 류바고와, 그 혼돈 속에서도 또다시 세력을 잘 읽어내 좋은 위치에 선 기회주의자 코말롭. 고집과 자존심이 남아 이를 악문 채 대답을 회피하는 류바고에게, 위협을 통해 조언을 하는 미남코말롭. 류바고는 그 의도를 알아채고 부들거리며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내뱉는다. 가끔은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는 코말롭의 말에 "당신처럼?" 하고 묻는 류바고의 목소리에 노여움과 무력감이 섞여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와중에 "불타버린 도시 / 어찌된 걸까 / 소중한 것들이 / 농담처럼 갔구나" 라고 노래부르는 미남코말롭 목소리 너무 좋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혐오스럽고 한심하여 불쑥불쑥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는 류바고. 모스크바를 떠나자는 계획을 세우고 생기를 찾나 싶더니만, '유리아틴' 이라는 이름에 아득함을 느끼며 도망치려 든다. 이날 이 넘버, Yurii's Decision 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알고는 있지만 크게 인식하지 않았던 가사의 서사를 류바고가 정확하게 짚어냈기 때문이었다. 무대 안쪽 계단 위로 올라가 객석을 등진 채 양팔을 벌려 "이 커다란 세상에서 왜" 하며 혼란스런 감정으로 시작하고선 "세상 모든 사람들 중 너는 왜" 하며 약간의 원망을 섞는다. "이것은 우연인가 / 양심을 따르려" 하고 "애써!!" 라며 강세를 확 주며 그 동안 억눌러온 감정을 터뜨린 운명에 대한 노여움을 내보인다. 애틋했던 과거를 말하며 "어쩌면 숙명인가 / 그녀로 향하는 길은" 하며 마치 절절한 세기의 사랑이라는 듯 제 마음을 표현한다. "언젠가는 사라질까 / 날 태우는!!! / 이 불꽃이" 라는 부분도 끓어넘치는 라라를 향한 사랑을 드라마틱하게 강조했다. 그러나 "난 평생 내 명예를 지켰지 / 부끄러운 삶은 아니었어" 하며 찰나의 열망이 아닌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제 가정을 돌아본다. "어리석은 희망과 꿈에서 깨어나" 하며 마지막 음을 꾸욱 눌러 부르고선 "눈을 돌리리라 / 별과 마주쳐도 / 그 빛을 피해 가리라" 라고, "별빛을 피하듯 / 지나쳐가리라" 다짐한다. 그러고보니, 라라는 별이고 토냐는 달이네. 지바고는 나우에서 라라를 향해 "노래처럼 넌 내 안에 흘러 / 별빛처럼 찬란한 멜로디" 라고 노래하고, Watch the Moon 에서 "달빛 보며 서로를 생각하자" 라고 속삭인다. 음, 적다보니 '달' 은 토냐이자, 가족이자, 늘 지켜왔고 지켜야 한다고 믿는 보수적인 가치이자, 더 나아가 혁명 이전 러시아의 구시대적인 안정된 계급사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별' 은 라라이자, 열정이자, 사랑으로 통칭할 수 있는 인간의 감정이자, 새로이 추구하는 근대의 혁명을 은유하는 것이고. 물론 토냐와 라라는 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입체적이고 당위성 있는 캐릭터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이 극의 주인공인 유리의 입장에서는 저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Who Is She 에서 "달빛 걸린 자작나무들 사이로 / 작은 새처럼 숨어버린 소녀여" 라고 라라를 지칭하는 가사도 있었는데, 달이 계급과 권력을 상징하니까 '숨어버린' 것이라 표현한 듯하고. 가사도 대사도 뜯어보면 볼수록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연출만 괜찮았어도 몹시 즐겁게 회전을 돌았을 것 같아 이제와서 아쉽네. 언급하다 샛길로 샌 1막 엔딩곡도 연출을 보다 극적으로 만들 여지가 많아 보이는데, 무대가 너무나 텅 비어서 배우가 꾸역꾸역 서사를 극대화시켜 표현해야만 하는 게 화가 난다. 조명이 일을 안하는 수준 같아. 아무튼 1막 마무리. 마음을 다잡고 굳건히 결심한 류바고는 "운명을 향해서 가겠어" 라고, 운명을 똑바로 마주하며 유혹을 뿌리치겠노라 다짐한다. 





2막. 파샤의 앞에 끌려온 류바고는 무력하긴 하나 유약하진 않다. 제 생각을 쏟아내다가 황급히 파샤에게서 떨어지며 사과하는 태도에서도, 주눅이 들었다기 보다는 제 처지를 인지하고 자존심을 끌어모아 꼿꼿이 서있는 듯했다. 설득하려는 듯 논리적으로 다가오는 강한 류바고의 노선에 맞춰, 요정파샤도 그를 지난 번보다 동등하게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적대적이고 비아냥대다가 위협하는 살기는 동일했지만, 인간 지바고에 대한 분노보다는 부르주아 개새끼들에 대한 증오가 더욱 명확했다. 파샤의 입에서 "라라 안티코바" 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류바고는 화색이 돌며 벅찬 감정을 실어 "라라," 라고 불러보고선 두근대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네," 하며 대답을 이어나간다. 그런 그를 보며 요정파샤는 터져나오는 분노를 쏟아 내며 총구를 류바고의 미간에 가져다댄다. 새카만 총구 앞에서 죽음이라는 공포에 천천히 뒷걸음질 치는 류바고지만, 몸을 파들거리지는 않는다. 천천히 의자에 앉은 자세로 남겨진 채 밖에서 벌어질 일을 상상하고 제 처지를 돌아보며, 류바고는 성호를 긋고선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한다. 자비는 없다. 넘버 너무 좋은데 박제 좀 해주시죠ㅠ 넘버 중간 리베리우스의 등장에 노래를 멈춘 요정파샤가 으르렁 거리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데, 제도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 그 자체였다.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고양이' 라기 보다는, 분노와 경계로 잔뜩 털을 세운 표범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리베리우스 은경균 배우도 기복 없이 늘 잘해주는데, 힘을 좀 빼서 나는 더 편했다. 2막에서 지바고랑 대립할 때 대사톤이 좀 정리된 느낌이라 귀가 아프지 않았는데, 자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 그리고 자셋 관극 때부터 유난히 눈에 들어오던 신재희 배우도 무척 좋았다. 벤허 때 인상 깊었던 배우인데, 이번 지바고 자셋 관극에서 인민재판의 엄하고 진지하고 강렬한 캐릭터와 혁명군 사병의 쩔쩔매는 캐릭터가 각 장면 속에 매끄럽게 녹아들어서 감탄했었다. 그리고 이날 관극에서 파샤의 사무실에 남겨진 류바고의 옆을 지키는 역할도 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기도하는 류바고의 모습을 보더니 살짝 놀라고선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선 총을 세운 채 옆에 서서 잠시 기도를 하고선 눈을 뜬다. 여전히 기도 중인 류바고의 모습에 재차 놀랍고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선 총을 매고 불안한 듯 서성인다. 혁명의 의의조차 명확히 이해하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순박하고 어린 청년을 완벽히 보여주고선, 2막 마지막 파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는 역할 또한 멋지게 한다. 장면 전환이 많은 극은 하나의 공연 안에서도 앙상블들이 여러 가지 역할을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포로로 잡혀오는 김기순 배우도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인데, 여러 장면에서 눈에 띄어서 좋았다. 하는 김에, 얀코 역의 조환지 배우 정말 너무 잘한다. 노래 안정적인 것도 좋고, 무엇보다 연기가 설득력 있어서 애정이 간다. 1막 전쟁터 씬에서 눈에 눈물 그렁그렁 달고 "내가 여기서 쓰러진다면 누가 내 죽음을 알까 / 봄이 올 때까지 들판에 묘비 없이 누워있겠지 / 주여 총알이 날아들 때에 용감히 맞서 싸우게 하옵시고 / 나 죽는다면 내 사랑에게 끝까지 싸웠다 전해주오" 부르는 솔로 부분이 매력적이어서 가사를 다 외워 버렸다. 이 넘버도 좋은데! 박제가 없네! 처음에는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오직 전진, 전진, 황제를," 하고서는 다들 속삭이듯 "위하여" 라고 부르고서는, 전쟁의 포화과 광기에 섞여 들어간 마지막 부분에서는 "위하여!" 하고 고함치듯 외치는 걸로 바꿔 부르는 게 킬링포인트다. 이 넘버 앙상블들 화음이 너무 좋아서 사랑하는 것도 있다. 1막 Two Worlds 도 그래서 좋아하고. 왜이렇게 좋아하는 넘버가 많아졌지. 미니 오슷 말고 풀 오슷 주세요ㅠㅠ



자꾸 얘기가 옆으로 새는데 다시 2막 유리아틴의 도서관으로 돌아오자. "너도 그 사람 많이 보고 싶지?" 하는 질문에 선녀라라는 지바고의 책을 황급히 뒤로 숨기며 "누굴?" 하고 당황하며 되묻는 디테일이 있었는데, 이날은 "응?" 하고 되묻고는 남편 파샤의 이름이 나오자 담담하게 대꾸한 후에 소중한듯 지바고의 책을 손에 쥐고 노래를 시작하더라. 류바고는 1막 끝에서 다짐했던 대로 유리아틴에 온 뒤 라라와 접점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여지를 회피하다가 토냐의 권고에 떠밀리고 나서야 도서관으로 온다. 그는 라라와 눈이 마주친 순간 한 걸음, 그가 고개를 돌리자 조금 더 크게 한 걸음, 그가 입을 열자 다시 한 걸음을 뒤로 물러선다. 단호한 세 걸음이, 별빛을 피하듯 도망치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다시 돌아봤을 때 당신이 거기 없으면 어떡하죠," 하는 울음 섞인 라라의 말에, 꾹꾹 눌러둔 열정이 기폭제라도 맞은 듯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가버린다. 포옹, 그리고 키스. Love Finds You 에서 미남코말롭 노래할 때 무대 뒤쪽으로 가서 서 있는 두 사람은 보통 나란히 서서 지바고가 라라의 어깨를 껴안고 라라는 그의 어깨에 기댄 다정한 자세다. 그런데 이날은 류바고가 몸을 거의 선녀라라 쪽으로 다 틀어버려서 그의 품에 라라가 폭 안긴, 사랑과 애정이 흘러넘치는 연인 사이 그 자체였다. 그 실루엣이 너무 아름다워서, 토냐의 고통과 아픔이 더 크게 다가왔다. 지바고가 끌려간 뒤 그의 행방을 묻기 위해 도서관으로 찾아온 토냐와 그런 그를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피하던 라라의 듀엣 넘버가 이날 유독 강렬하게 다가왔다. 험난한 시대 속에서 지바고라는 접점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끝내 연대하고야 마는 두 여성의 강인한 인생이 시리게 아팠고, 고통스럽게 눈부셨다. 그 와중에 지바고는 리베리우스의 표현대로, 인생의 고민과 문제들로부터 도망치며 이리저리 휘둘리는 대로 끌려다닌다. "빨리 고통을 끝내달란 말이야!" 라며, 죽어가는 여인의 고통이 아니라 그 죽음을 바라보기만 해야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고통을 끝내달라 소리치는 류바고. 강한 노선 답게 눈물 없이 시작하되, 여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난 유리 안드레이비치 지바고" 하며 시작하는 애쉬즈. 꾸욱꾸욱 누르며 풍성하게 불러주셔서 무척 좋았다. 도망이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외로움과 고독과 공포와 추위가 섞여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다 극한까지 치닫는 과정이 아주 유려하게 진행되어 후반부의 비명 같은 고함과 절망스런 고통이 무척 설득력 있었다. 



지바고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라라. 토냐의 편지를 읽고선 가족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말하다가 막막한 상황 앞에 절망하며 책상 앞에 앉는 류바고와, 그를 진정시키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 선녀라라. 살아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도, 항상 떨어져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는 자신들의 운명을 믿고 기다렸다는 그의 말에 손에 쥔 편지를 책상 위에 떨어뜨리듯 내려놓으며 라라에게 집중하는 류바고. "당신 눈을 보고 있으면 모든 게 괜찮아져요, 이 미친 세상 속에서도" 라는 고백에서, 이날 선녀라라는 희망 없는 자신의 인생에서 류바고를 유일한 사랑이자 빛이라 여기고 그의 시를 구원 삼아 살아냈음을 깨달았다. On the Edge of Time 듀엣 넘버 후 미남코마롭을 보고 기겁하여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면서 류바고 뒤로 숨는 선녀라라의 공포가 고통스럽게 가슴을 찔렀다. 저 사람과 단둘이 가라고 하지 말라는 라라의 애원에도, 류바고는 라라가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를 떠나보낸다. "널 잃을 수 없어서 떠나보내는" 류바고와 "내일은 오지 않을지 몰라 /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야" 라며,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 류바고의 뜻을 따라주기로 하는 선녀라라의 마지막 이별. "견뎌내줘 / 어둠이 덮쳐도 / 넌 태양처럼 빛이 되어줘" 라며 라라를 떠나보내고 남겨지는 지바고. 시를 쓰고 마지막으로 부르는 그 이름, 라라. 





몇 번 공연을 보니 넘버들이 아름답다는 건 확실히 인지했다. 이번 재연이 끝나면 삼연은 돌아오더라도 텀이 꽤 길어질 것 같은데, 실황이라도 좀 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홈쇼핑에서 구매한 특전으로 받은 미니오슷 퀄은 좋긴 하지만, 류바고가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게다가 선녀라라 웬더뮤직 박제 없는 거 실화냐고. 엽서도 예쁘긴 한데 류바고가 없어서 슬프다ㅠ 홈쇼핑 사전구매자 중 100명 추첨으로 8종 포스터 주는 거 당첨된 게 무척 신기하고 기뻤는데, 포스터가 너무 크더라. 이걸 어디에 걸라는 거지... 아무튼 홈쇼핑으로 산 예매권 아직 사용을 못해서 막공 전에 한 번은 더 보러 갈 듯하다. 막공은 못 볼 거 같고. 아, 마지막으로! 이날 얀코 치료할 때 류바고가 "있잖아, 굉장히 아플 거야, 근데~" 라고 해주셔서 너무 좋았다. 왜 이렇게 사소한데 꽂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말투와 어조는 물론이고 눈빛이나 자세까지 죄다 매력적이어서 무척 인상 깊은 장면이다ㅎㅎ 2막에서 앞머리 헝클어뜨리는 것도 멋지고, 샤샤한테 아들, 하고 부르는 목소리도 꿀 떨어지고, 토냐 머리 쓰다듬고 이마 키스 해주는 것도 다정하고. 끄앙, 류바고 보고 싶어지네ㅠㅠ 이번주 일요일에 보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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