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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2017.10.29 2시 공연
마이클리 헤드윅, 제이민 이츠학. 마욤드윅, 제츠학. 마제 페어막. 마언니 세미막이자 이번 시즌 9차 관극. 아마도 자막. 나는 회전극이어도 어지간하면 막공을 가지 않는 편이다. 가장 좋은 자리에서 제일 행복한 관극으로 자체막공을 하여 그 여운을 오래도록 남기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막공으로 강제자막 당하기보다는 스스로 결정하여 자막하고 싶다는, 조금은 오만하고 복에 겨운 생각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마언니 막공 앞쪽 사블을 잡아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미막으로 자막하려고 한다. 자리도 중블이었고, 무엇보다 이날 공연이 정말정말 좋았다. 심지어 리앵도 해줬고! 마언니를 만났던 9번의 공연 하나하나가 매번 훌륭했지만, 1029 공연은 첫공 이후로 이 극의 서사에 가장 몰입하며 130분 본공에 리앵까지의 모든 순간을 오롯이 즐긴 '레전공' 이었다.
※스포있음※
처음이자 마지막인 연공이어서 토일 양일을 다 갈까 고민을 하다가, 어차피 이번 시즌에는 다른 언니를 보기 힘들 것 같아서 마감 직전에 쇼놋 포인트로 예매를 했다. 토요일 공연도 좋았으나, 감정이 누적되고 이야기의 깊이가 더해진 일요일 공연은 완벽 그 자체였다. 시원시원한 Tear me down 에 환호가 쏟아지자 기뻐하며 "a warm hand," 하고선 "to my entrance" 할 때 마이크 안 든 손을 자기 엉덩이로 가져다 댔다. 앵밴 시초 설명하는 거나, "언니 진짜 미친년" 등의 애드립은 동일했고 어느 순간부터 대중탕, 때 애드립은 뺐더라. 대신 오피석에 피부 비결을 직접 물어보는데, 토니모리랑 설화수, 그리고 이날은 헤라라고 대답해서 빵 터졌다ㅋㅋ 브랜드를 잘 모른다는 듯 헤에라, 하면서 두 번 따라하고선 자기한테도 좀 나눠달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이츠학 소개하고 그만하라며 "save your applause for ME" 하며 제지한다. 보통 다른 언니들은 이챡 솔로 직후 등 그에게 박수가 쏟아질 때 매번 관객 고나리를 하는데, 마언니는 박수가 쏟아지는 객석을 마치 가면 같은 미소를 건 채 쓱 훑은 다음 이츠학을 노려보며 "I will KILL YOU" 라고 하고선 생긋 웃어보인다. 소심하게 뒤끝있는 이 디테일이 마언니 성향이랑 어울려서 좋아했다. "by some freak coincidence" 라며 토미의 'Tour of Atonement' 를 입에 올리는 헤드윅의 표정이 시니컬하지만, 실상은 본인이 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까지 그를 쫓아온 것이기에 되려 허망하다. "Both doors" 라고 신경질적으로 이츠학에게 말하고선 고개를 살짝 떨군 채 바닥을 바라보고는 헤드윅의 어깨선을 따라 쓸쓸함이 흘러내린다. 듣지 않는 척 토미의 말에 귀 기울이는데, 이날은 유난히 기대가 없어 보였다. 때때로 과장스럽게 혹은 일말의 설마를 담았던 지난 공연들과는 다르게, 그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리란 희망을 싹 내다버린 표정이다. 자첫 때부터 신기했는데, 이 극 안에서의 마이클리 배우 목소리가 아주 다양하다. 독일 악센트 강한 헤드윅의 영어, 위압적인 독일어, 매끄러운 미국 앵커의 억양과 발음, 과거 토미를 재연할 때 내리까는 톤, 그리고 무대 위 열광에 휩싸인 락스타 토미의 목소리까지. 잘 알던 배우의 목소리가 없고 짙은 헤드윅 화장이 더해지니 배우 본체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헤드윅이라는 인물에 보다 집중할 수 있었다. 아무튼 토미의 말에 왁왁거리며 열내다가 양 손바닥을 아래로 한 채 아래로 내리는 제스처를 하며 스스로 진정하고선 객석에 다정한 톤으로 사과하는데, "미쳤나바" 하는 눈에 눈물이 반짝이는 듯하서 안쓰러웠다.
고↗희↘경↗극↘장↗장↘님↗을 부르며 꼭 노래로 불러야 한다며 넘나 긴 이름이라고 예쁘게 웃으며 말하고, 홍아센에 올라왔던 극을 나열한다. 꽃남 얘기할 때 졔착이 뒤에서 춤추는 거 귀여웠고, 록호쇼 소개 후 쏭의 이름을 부르던 초반 애드립과 다르게 요새는 그냥 눈썹을 찡긋거리며 "거기 메인싱어가 so sexy 하다고 들었는데~" 하고 말하고선, 황급하게 "Don't say his name!" 하고 배우 본체 이름이 나오는 걸 막는다ㅎㅎ 분노의 질주도 성.기. 발음 선명하게 하면서 마이크 끌어안고 뽀뽀하고 난리도 아니면서 섹드립 아닌 척 시치미 뚝 떼는 언니. 매니저 이름에 마이클, 성에 헌트를 넣고선 마이크 헌트!! 마잌!!! My cunt!!! 이렇게 쌓아가는 섹드립에 빵 터지다가도, Apparently not, 하면서 시무룩해지는 그의 표정에 마음이 쓰인다. 이번 시즌 시작하기 전 영화 gv 에서 배우가 언급했던, 헤드윅의 정체성 중 하나인 '트렌스젠더' 에 대한 고민이 마언니의 공연 전반에 녹아있다. 저 섹드립도 그렇고, 이날 윅인어박스 시작 전에 경악과 공포의 색감을 묻혀 내뱉듯 강조한 "Woman" 이라는 단어에서도 느꼈다. 루터 만나기 직전의 "never kissed a boy" 라는 대사를, 다른 언니들을 볼 때는 헤드윅이 지금 여자니까 혹은 한셀이 이미 성정체성을 여성으로 두고 있다는 전제 하에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마언니 몇 회차 관극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불현듯 boy? 라는 물음표가 띄워졌다. 너무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성폭력을 겪어내야 했고 애정보다는 외로움을 더 가까이두며 자란 한셀의 성정체성을, 지나치게 속단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되 크게 납득하지 못했던 gv에서의 마이클리 배우 말이 그제야 깨달음처럼 다가온 지점이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특별한 강조 없이 다른 라인들과 같은 톤으로 하는 대사임에도, 그 이후로는 유난히 귀에 콱 와서 박히더라. 비슷한 맥락에서 앵그리인치도 예전에는 자유를 위해 포기를 종용 받고 거세 당하는 텍스트 그대로에 집중했었다면, '스스로 고민해볼 여지 없이 / 떠밀려서 / 강제로' 행해진 또다른 폭력과 사건을 관통하는 감정, 그 전후의 변화 등등에 대해 매번 방점을 다르게 두며 수용하게 됐다. 마언니 앵인은 전혀 정제되지 않은, 소름 끼칠 정도의 적나라함을 실어 노래하고 온몸으로 발악하여 무척 강렬하다. 컨테이너 위에서 "6 inches forward and 5 inches back" 하며 무릎 꿇은 채 앞 뒤로 움직이는 모션이나 밴드에 맞춰 가발 쓴 머리를 붙들고 한쪽 발을 허공에 차면서 온몸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동작을 정말 좋아한다. 오피 중앙 쪽에 한쪽 다리를 높이 들어올려 객석으로 훅 가까이 다가오며 "Yeah long story short" 라고 시작하는 제 이야기와 "the hole closed up" 부터 멜로디를 넣으며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순간의 눈빛, 언니가 뒤로 돌아 양팔 만세를 하는 순간 앵밴과 이츠학이 "fucking Angry Inch!!!" 라고 부르는 부분까지 넘버의 위압감에 숨조차 쉬기 힘들다. 양손이 묶인 채 뒤쪽으로 질질 끌려간다거나 기차 레일 위에 옴짝달싹 못한 채 묶여있는 듯한 모션 또한 주체성을 잃은 혼란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 이런 넘버 직후에 루터를 따라 '자유' 의 국가 미국으로 향하는 언니의 모습이 극도로 해맑아서 그 괴리가 어마어마하다.
마언니 노래는 유난히 날선 느낌이 강한데, 가장 좋아하는 올진럽의 "looking through one eye-" 부분을 포함하여, 앵그리인치 전반이나 헤드윅의 wicked little town, lament 까지 날카롭고 선명하지만 섬세한 목소리가 마치 건조한 공기가 선으로 갈라지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특히 앵인 도입의 비명과 라멘트의 절규는, 듣는 사람까지 산산조각 낼 듯한 파괴력이 실려 있어서 청각의 자극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전율하곤 했다. 반면 윅인어박스 넘버에서는 초반의 깨질 듯한 떨림이 담긴 목소리에 점차 서사가 담기며 힘이 실리고, 싱어롱 이후는 따뜻하고 발랄한 음색으로 온 객석을 휘어잡는다. 믿나의 서사성은 또 얼마나 설득력이 높은지, 넘버 초반 살짝 울먹이다가 가발을 이츠학에게 건네고선 그를 설득하듯, 자기 자신을 설득하듯 풍성하지만 단단함을 실어 노래한다. 이날 이츠학 떠날 때 마언니가 살짝 타이밍 놓치고 앵밴은 연주를 계속해서 밴드 반주만 흐르는 참사가 있었는데, 밴드 공연에서 이런 류의 실수는 매우 너그럽게 아니 오히려 선호하는 관객이어서 큰 감정 방해 없이 몰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눈부신 이름들, 그리고 헤드윅. "You know you're doing alright" 하는 마언니의 애정이 흘러넘치는 목소리와 그 따스한 눈빛을 너무너무 사랑한다. "All the misfits and the losers" 하는 가사도 딱 마언니에게 어울리는 라인이어서, 이젠 루저를 자칭하는 제스쳐마저도 공감하며 끄덕이게 된다. 억지로 끼워맞춰진, 들어맞지 않는 misfits. 헤드윅의 인생에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양의 퍼즐이었으나 결국 그 누구도 그와 정확히 들어맞지 못했다. 반쪽이라 생각했던 자들이 그저 강제로 들러붙은 퍼즐이었음을 깨달을 때마다 헤드윅이 느꼈을 좌절과 고독, 공포감이 어떠했을지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아득하다.
마토미는 wicked little town 에서 화려하게 반짝이는 목소리로 담백하고 절제된 문장을 노래하다가, 점차 허망함과 망연함이 차올라 넘실대는 눈으로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는다. 토요일에는 위태로울 정도로 흔들리는 눈빛이 약간 와닿지 않았는데, 일욜 공연에서는 헤드윅을 위해 개사한 넘버를 부르면서 오히려 그 가사 하나하나가 토미 자신을 찔러옴을 점진적으로 인지하는 감정의 변화가 아주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넘버 중후반의 텀에서 길을 잃은 당혹감이 극대화 되다가, 마지막 헤드윅의 가사인 "길을 잃었을 떈 내 목소리를 따라와" 라는 부분을 부르며 그제야 뭔가 알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매번 했던 마토미의 위키드맆 마지막 미소가, 이날 가장 개연성이 높았다. 헤드윅을 위로하고 놓아주려고 부른 노래를 통해 되려 토미 스스로가 자유로워진 그 깨달음의 찰나가, 너무 눈부셔서 애틋하기까지 했다. 토미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고 느끼니, 텅 비어버린 공간 속 덩그러니 남은 듯한 헤드윅의 뒷모습이 되려 덜 쓸쓸해보였다. 아예 텅 비어버려서 다시 새로운 것을 채워넣을 수 있을 듯한 무한한 공백. 헤드윅의 이 무대는 이츠학에게 넘겨주고 홀로 퇴장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삶은 무대 밖에서도 계속된다. 그리고 마침표가 아닌 인생은, 결코 happily ever after 로 귀결되지 않는다. 이날 헤드윅의 뒷모습은, 여전히 험난하고 아프고 힘든 일 투성이일 삶이지만 그럼에도 그 답게 살아낼 굳건함을 지니고 있었다. 배우 본체가 최근 인터뷰에서 아마 헤드윅은 자신이 태어난 근원인 독일에 가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어떤 삶이든, 헤드윅의 인생에서 음악이 빠지지는 않으리라 단언할 수 있을 뿐이다. 닥터 에스프레소바 시작 전 "I had recently returned to my first love, music" 이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딱 토욜공연에서만 love 가 아니라 joy 라고 했었다. 의도한 단어 변경은 아니었을 테지만, 언니가 음악을 제 사랑이자 즐거움으로 생각한다는 게 새삼 사랑스럽고 또 다행으로 느껴져서 인상 깊게 남았다. 믿나 넘버 자체의 서사, 퇴장 전 마이크를 내려놓는 섬세함 모두 헤드윅의 인생이 곧 음악임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헤드헤즈로서 늘 인생극을 헤드윅으로 꼽는다. 동일한 텍스트와 가사를 마주하며 매번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여러 생각을 하며 실질적인 고민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이 경험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배우 또한 헤드윅이라는 인물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그 입장에서 고민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여 각자의 표현방식으로 풀어내며 극을 더욱 풍성하게 확장시켜 나간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며 교류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마음 속 심연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보다 완성형의 인간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선사하는 이 극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헤드윅의 모든 관극이 항상 소중했지만, 이번 시즌 총 13번의 공연 중 9번을 만난 마언니와의 만남은 정말이지 황홀하고 눈부시며 무엇보다도 무척 다채로운 경험이었다. 배우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표현한 모든 부분을 전부 발견하고 받아들이지는 못했겠지만, 새로운 시야와 밀도 있는 해석과 치열한 고뇌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서 아주 고맙고 행복한 관극이었다. 이토록 '영혼이 풍성해지는' 기분에 행복감이 넘실거리는 관극을 가능하게 해준, 자신의 dream 만이 아니라 내 꿈까지 함께 이뤄준 마이클리 배우에게 온 마음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마언니를 만난 이 강렬한 경험과 농도 짙은 기억은 앞으로도 계속 내 영혼의 일부로 존재하겠지. 마언니, 고마웠어요! Farewell, Hedwig!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어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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