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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2019.08.18 2시

 

 

 

 

전동석 헤드윅, 제이민 이츠학. 동드윅 첫공. 열두 번째 시즌 헤드윅 자첫.

 

 

항상 헤드윅을 기다리는 헤드헤즈이긴 하지만, 이번 시즌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름 석자로 인해 한층 더 고대할 수밖에 없었다. 전동석 헤드윅이라니. 락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을 것 같은, 정석적인 성악 바리톤 음역대를 가진, 묵직하고 풍성한 소리를 주로 내는 이 배우가, 헤드윅이라니. 편향된 제작사 극 위주의 필모에서 벗어나려는 배우의 시도를 높이 평가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변화가 요구되는 도전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전동석 헤드윅이라는 이 여섯 글자가 너무나 생경하여 첫공날까지 시시때때로 내적 비명을 지르며 자체 적응기간을 가져야만 했다. 그렇게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헤드윅과의 재회이자 동드윅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혼돈과 혼란과 기대와 걱정에 잔뜩 휩싸인 채 성사되었다.

 

 

몹시 사랑하는 극과 많이 아끼는 배우의 생소한 조합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헤드윅을 워낙 사랑하기에 일말의 우려가 있었으나, 본인과 잘 맞는 해석을 본인과 잘 어울리게 풀어낸 동드윅은 자신만의 무대를 잘 구축해냈다. 직관적이고 확실한 성격과 디테일을 통해 헤드윅이라는 복잡한 인물을 표현했고, 어울리게 다듬어진 넘버들을 능숙하게 소화하면서 헤드윅이라는 락뮤에 목소리를 새겼다. 그동안 쌓아온 무대 연륜이 드러나는 능숙함과 천연덕스러움도 잘 녹아들었다. 앵그리인치 밴드와 이츠학이 내내 함께하지만,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헤드윅 홀로 두시간을 오롯이 이끌어나가야 한다. 이러한 극의 특성이 헤드윅의 가장 큰 매력인 동시에 가장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제다. 동드윅은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정직한 직구를 던짐으로써 스스로의 기량과 발전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줬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필연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이 극이 배우 본체에게 얼마나 커다란 경험치가 되어줄지 기대가 된다.

 

 

간단히 요약하고 시작하자면, 맑고 어리고 유약한 동드윅은 빼어난 미모와 시원시원한 가창력을 지닌 언니였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성악톤을 사용하고, 배우 본체의 이전 필모를 활용한 애드립을 여럿 가져왔으며, 극을 관통하는 노선을 정리해오는 등의 준비성이 돋보였다. 동드윅이기에 잘 어울리는 동토미도 여러 의미로 비범하여 흥미로웠다. 이처럼 텍스트를 이해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연기에 녹여내려고 하는 배우의 노력이 뚜렷하게 보였다. 물론 극 자체를 너무나 사랑하는 관객이기에 아쉽다거나 부족하게 느껴지는 요소들이 더러 있었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톤 정리의 필요성도 느껴졌다. 그러나 신선하고 새로운 이 언니 역시 헤드윅이기에 못내 어여뻤다.

 

 

 

 

※헤드헤즈의 친절한 첨언※ 홍아센은 어느 자리든 별로입니다. 데굴데굴 굴러도 다치지 않을 단차는 극악한 시야각을 선사하고, 음향은 늘 그러했듯 울림이 강하고 뭉개짐이 많으며 잡음도 심합니다. 락커들 이름과 노래를 줄줄줄 읊는 대사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 미리 감안하시길. 오피석, 1열, 중블 2열 양옆 통로 부근, 앞쪽 사블통과 통로 한 칸 안쪽 정도는 시방이 크지 않지만, 그 이외의 자리에서는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사블에서는 엔딩 장면 절대 안보입니다. 중블도 앞사람 운 안 좋으면 안보이긴 함. 어지간하면 1층 추천합니다. 아무리 할인이 커도 2층은 답 없는데 심지어 할인도 없으니까요. 헤드윅 첫 등장은 객석 오통이고, 왼통 쪽에 앉으면 카워시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카워시를 보통 남성 관객에게 해주는데, 동드윅은 여성 관객에게 해줌. 토미석이라고 노래도 불러주고 손수건도 던져주는 이벵석이 오피 중 하나로 고정되는 편인데, 동드윅는 토미를 특정하긴 했으나 노래할 때 특별히 바라보는 것 같지 않았고, 손수건도 오피 중앙 즈음에 휙 던져줌. 지정된 토미가 손수건을 받아갔는지는 잘 모르겠음. 앵콜 후 던져주는 티셔츠는 중블 1열에서 받은 듯. 이는 전적으로 첫공 기준이므로 회차 별로 상이할 수 있습니다. 비록 공연장은 거지 같지만, 컷콜에서 언니랑 같이 뛰어놀기 위해 일부 넘버의 가사 숙지를 해오신다면 한층 더 신나고 짜릿한 마지막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분위기 좋으면 티셔츠 던지기 전에 리앵 가능함!!!! ※TMI 끝※

 

 

 

 

※전부 스포임, 호불호 아주 많음※

 

 

동드윅에게 있어 가장 높고 거대한 장벽은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 유년기의 상처다. 마치 그림자처럼 내내 매달고 온 이 트라우마는, '엄마' 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울컥하며 말을 채 잇지 못하는 디테일로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펑키하고 발랄한 외면 너머의 여리고 약한 내면이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며 감정이 고조된다. 온갖 풍파에 닳고 닳아버린 언니가 아니라, 모진 세상에 스스로를 맞춰가며 견뎌온 언니다. 아등바등 이를 악물고 살아낸 삶이 아니어서, 문득 바스라져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은 인상마저 풍긴다. 울어야 할 때 제대로 눈물 흘리지 못하고 애써 가볍게 넘기려 든다. 루터에게 버림받고 혼자 남겨진 동드윅은, 우느니 웃었다는 대사를 하지 않았다. 그저 울었다고, 아슬한 미소를 걸며 푹 잠겨버린 목소리로 속삭인다. 따뜻한 유고슬라비아로 떠난 엄마를 부러워하고 그리워한다. 영원히 자라지 못하고 외로이 남겨진 아이. 소년이자 소녀인 동드윅은 투명한 유리병 안에 박제된 채 서서히 메말라간다.

 

 

연약하고 위태로운 이 언니는 건방지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이기적인 토미 때문에 더욱 망가져버린다. 극 초중반의 목소리 등장부터 독보적인 개성을 뽐내던 동토미는, 단순하고 직설적이며 생각이 너무 짧다. 심지어 노래도 어마어마하게 못한다. 이 컨셉을 정말 잘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나오지 않는 고음을 악을 쓰며 부르는 모습에서 멍청하고 고집 센 토미의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헤드윅에게 깊게 상처 내는 순간의 대응이나 Wicked Little Town Reprise 도입부까지도, 이 토미에게서는 진실된 사죄가 느껴지질 않았다. "나는 너보다" 하고서는 이를 앙다물고 눈을 치켜뜨며 "어린," 이라 강조하고서는 "아이였잖아" 하고 자기변명을 하는 토미라니.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그는 위킫맆의 끝에 실버크로스가 그려진 제 이마를 마이크에 가져다 댄다. 헤드윅이 안내해준 음악을 담은 마이크와 헤드윅이 부여해준 이름을 담은 실버크로스가 맞닿은 순간, 완전한 작별이 선고된다. 입모양으로 "고마워요, 헤드윅" 이라 마지막 인사를 건넨 토미의 뒷모습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

 

 

아득히 멀어지는 환호성 속에 또다시 홀로 남겨진 헤드윅은, 고요히 침잠한다. 정적. 동드윅은 반쪽이라 굳게 믿었던 자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질 때마다 휘몰아치는 고독과 절망을 속으로 꾹 밀어 넣는다. 침묵. 다른 언니들에 비해 욕도 적고 지랄 맞은 성격도 덜한 이 언니가 택한 방법은 감내다. 수용하고 나아가기 위해 말을 멈춘다.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노래한다. Midnight Radio. 너는 자유라며 이츠학을 놓아주며 내던지듯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온 영혼을 담아 "지지마라 포기마라" 라고 외치면서 그는 스스로에게, 나아가 모두에게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락앤롤러라고. 그대로 재키 앞에 무릎 꿇은 그의 얼굴이 비로소 후련해진다. 침묵 속에서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았던 동드윅은, 음악에 모든 걸 쏟아내며 다시 일어선다. 아름다운 가발과 드레스를 입고 화려하게 재등장한 이츠학을 환한 얼굴로 끌어안으며 그대로 제 이마를 그의 이마에 맞댄다. 토미가 자신에게 행한 작별처럼. 그대로 미련 없이 마이크를 내려놓은 동언니는 무대를 떠난다.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 헤드윅과 토미 덕분에 꽤나 흥미진진했으나, 동시에 서운하거나 아쉬운 점도 많았다. 일단 넘버. 주전공이 아닌 락을 부르는 전동석 배우는 기대 이상이었지만, 헤드윅의 넘버를 부르는 동언니는 약간의 섭섭함을 남겼다. 카랑카랑한 락이 아니라 다소 묵직하고 두툼한 락은, 동드윅의 노선과 어울리면서도 엇갈렸다. 비명처럼 내질러줘야 하는 절규 같은 고음을 많이 덜어낸 하드락은 밋밋했고, 스토리 상 아주 중요한 The Long Grift 넘버 후반부 백업코러스의 생략은 실망스러웠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언급 장면에서 "지저스↗" 를 부르지 않는다거나 음역대에 맞게 넘버를 편곡한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오븐에서 뛰쳐나와 "You light up my life" 하고 폭발하듯 노래할 때 성악 발성을 하는 장면은 한셀의 또 다른 이면 같아서 신선했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말하는 대사들이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 점도 아쉬웠다. 특히 극 후반부로 갈수록 헤드윅 목소리의 음정이 낮아지고 볼륨감이 줄어들어서 웅웅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입 안 가득 채워 넣은 물을 그대로 마이크에 뿜어내는 펑크락 제스쳐의 영향도 없진 않은 듯했다. 이야기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관객은 극의 주변부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는 침묵을 연기로써 활용한 동드윅의 디테일과도 연계된다. 배우 본체의 필모를 꾸준히 챙겨보고 있는데, 배우가 추구하는 노선과 배우의 실제 표현 사이의 크고 작은 간극을 자주 인지해왔다. 이는 헤드윅에서도 여전히 존재했다. 침묵을 이용하려는 의도는 이해하나, 호흡이 지나치게 길었다. 배우가 점층적으로 쌓아 올리는 감정의 농도를 객석에도 동일한 밀도로 전달해줘야 하는데, 흡입력이 정적의 끝까지 유지되지 못했다. 여백을 남기려 했으나 공백이 만들어졌고, 여지를 주려 했으나 공허가 파고들었다. 강강강으로 치닫는 강렬함에 치중하지 않고 여백의 미를 추구했다는 점은 높이 사나, 보다 치열하고 전략적인 고민이 필요할 듯싶다. 위에서 언급한 톤 정리가 필요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동언니의 애드립을 정리하며 후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섹드립을 안하지 않는데, 썩 야하지 않았다. 재회 후 리무진 안에서의 블로우잡이나, 욕실에서의 핸드잡 동작 등등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모양이어서 당혹스러웠다ㅋ 루터와의 첫만남에서는 "제께 좀 컸어요" 하고 능청스럽게 덧붙였으면서! 이 점은 공연을 거듭할수록 나아지리라 믿는다. 첫 넘버인 Tear Me Down 부터 fuck! 하는 탄성을 넣길래 욕이라도 많이 하려나 싶었는데, 이것도 얌전한 편이었다. 진행 속도가 다소 빨랐던 점이나 추가적인 애드립을 할 수 있을 만한 지점에서도 준비한 애드립 이상으로 시도하지 않았던 점, 똑같은 단어를 여러 차례 반복한 점 등을 보면, 첫공의 긴장감이 엿보였다. 가사와 상황에 맞는 제스쳐를 엄청나게 자주 많이 해서 약간 산만한 감이 없지 않았다. 언니 알겠으니까 손 좀 가만히 두시면 안될까요,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음ㅋㅋ

 

 

동드윅이 배우 본체의 필모들을 가져온 애드립들이 아주 재미있었다. 지앤하 대표 넘버 제목인 "지금 이 순간" 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했다. 여기 웃음이 안 터져서 내가 다 속상했는데, 차라리 저 말 직후에 "지-금 이 순간," 하고 한 소절을 불러버리면 훨씬 반응이 크게 올 것 같다. 루터가 젤리를 건네는 장면에서 "구미 베어" 라고 글자를 읽고서는 "곰," 하고 탄성처럼 강조하길래 이미 빵 터졌는데, 이어서 "곰 마시따" 하며 프랑켄 지뢰를 던졌다. 노래를 잘하고 싶다고 칭얼거리는 토미에게 "넌 입만 뻥긋거려. 내가 불러줄게." 라고 다정하게 말하고서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무대 뒤 껌껌한 곳에서" 라고 자조하듯 중얼거리는 그만의 대사가 팬텀을 연상시켰다.

 

 

이츠학을 놀려먹는 디테일들은 못됐지만 귀여웠다. 루터를 연기하는 졔츠학의 야릇한 표정이 이상하다며 NG를 내고서는 기회를 다시 줄 테니 제대로 해보라고 요구하는 것과, 모델이라는 그의 꿈을 비웃으며 자리에서 일으키고는 "이게 너와 나의 눈높이야" 라며 키로 찍어 누른 것 등이 재미있었다.

 

 

닥터 에스프레소 바에서 Wicked Little Town 을 소개하기 전에 부르는 노래가 언니마다 다른데, 너무나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와서 내적 환호를 질렀다. Westlife 의 My Love 라니. 학창 시절에 가장 사랑했던 이 노래를, 헤드윅의 감성을 담은 동드윅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졔츠학의 솔로곡은 She Used To Be Mine. 가사 한줄 한줄이 이츠학의 상황과 감정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동드윅의 첫공은 노선을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보다는, 헤드윅으로서의 감정에 보다 충실하게 몰입한 공연이었다. 그래서 극이 익숙치 않은 관객에게는 불친절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회차들이 기대되는 든든한 첫공이어서 즐거웠다. 막공 즈음에 한 번 더 만나보고 싶다. 자리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동드윅이 더욱 신나게 무대 위를 누비기 위해서는 관객의 역할도 중요하다. 대극장에서의 정적인 관극 태도는 잊어버리고, 헤드윅의 공연에 찾아온 호기심 많은 관객이 되어준다면 훨씬 극이 다채로워질 것이다. 자유분방하게 소통하고 많이 웃고 크게 호응하다보면, 동드윅의 공연 또한 한층 생동감을 얻게 될 것이다. 동언니의 앞날이 꽃길이길 빌며.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헤드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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