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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Hedwig

헤드윅 (2017.10.15 2시)

누비` 2017. 10. 16. 23:52

헤드윅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2017.10.15 2시 공연

 


마이클리 헤드윅, 제이민 이츠학. 마욤드윅, 제츠학. 마제 페어. 마언니 7차 관극. 마이클리 배우가 표현하고자 했던, 그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헤드윅' 의 완성형을 확인한 공연이었다. 첫공 무렵의 초반 노선으로 돌아가되, 보다 정밀하고 섬세해진 감정과 비언어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더욱 촘촘해진 마언니 특유의 짜임새 있는 구성이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지난 리뷰에서 공연 내내 완벽하게 숨겨진 배우 본체에 대한 언급을 슬쩍 했는데, 이날 처음으로 '헤드윅' 에 담아낸 배우 본인의 치열한 고민을 확실히 인지하며 관극했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보였다는 말이 아니라, 캐릭터에 '담아낸' 배우를 목격했다는 의미다. 그 동안 매번 다른 지점에서 해석이나 표현방식 등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면, 이날 공연을 통해 비로소 "마이클리의 헤드윅" 을 온전히 마주했다는 기분을 느꼈다. 



※스포있음※


속죄의 투어를 운운하며 자판기 문을 활짝 열어제낀 뒤, 토미의 이어질 말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오른 헤드윅의 표정. 성큼성큼 문 앞으로 걸어가고 문을 붙들자 흘러나오는 익숙한 Tear me down 의 전주. 그 소리에 허리를 숙이고 귀를 틀어막는 모션을 취할 때부터, 이 예민한 언니가 오늘 얼마나 위태로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The Angry Inch 직후 날 것 그대로의 경악과 공포만으로 뒤덮인, 석고상마냥 정지된 그 얼굴을 숨도 못 쉰 채 응시하고 있었다. 순간 마치 누군가가 손을 밀어넣는 듯 왼쪽 팔꿈치와 허리 사이에 살짝 공간이 생기더니 제 팔을 휘감으며 팔짱을 끼는 루터의 존재를 인식한 헤드윅은, 마치 사진처럼 멈춰 있던 절망으로 얼룩진 표정을 무너지듯 풀며 진심으로 기쁨과 행복을 가득 담아 미소를 얹는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 가득 씌워진 그 웃음에, 세상이 내려앉았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는 선언과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떠밀려, 새하얗고 지나치게 밝은 불빛 아래의 섬뜩하고 서늘한 수술대 위에 홀로 내팽개쳐진 그가 얼마나 황망하고 사무치게 외로웠을지 짐작해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한 기분이다. 그렇게 명확한 의지도 없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며 탄생한 '헤드윅 슈미트' 라는 정체성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그는 완전히 망가졌다. '사랑' 이자 '반쪽' 이라 명명하는 누군가를 평생토록 찾아 헤매며 집착하고 매달리는 헤드윅의 비틀린 자기애가 탄생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런 방식 이외에는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몰랐던 그는, 자신을 내던지고 외면하는 자학적인 사랑을 내면화한다. 절망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우느니 웃었다' 던 이 언니는 빈정과 비꼼과 풍자에 능숙하여 신을 향해 들으라는 듯 비아냥거리면서도 Jesus Christ 가 행한 업적은 좋아한다고 말한다. Hedwig's Lament. 쥐어짜듯 온 몸으로 절규하다가 십자가를 그리듯 몸을 갈라버리는 동작을 취하고, 마치 그대로 못 박힌 듯 살짝 고개를 떨구는 익스퀴짓. 신을, 제 운명을 저주하기 전까지 그 '신' 이란 걸 믿어보려 고통스럽게 노력했을 헤드윅이어서, 그 절망의 낙폭이 능히 짐작이 되어서, 숨이 턱턱 막혀왔다. 짙고 아득하며 절망적인 암흑 속에서, 자신이 망가지기 시작한 바로 그 지점을, 그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아파하고 절규하며 산화하는 헤드윅. 암전 속에 잔상처럼 남은 것은 바닥에 쓰러진 그가 허공으로 뻗어내는 손, 마지막 애절한 몸짓 뿐이다. 


텅 비어버린 무대 위 공기를 가르며 시작된 Wicked Little Town. 곡 후반부의 울 듯한 마토미의 얼굴은, 마치 길을 잃은 듯한 망연함으로 넘실거렸다. 그러다 저 너머 무언가를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위태로운 미소를 피어내며 다시 어둠 속에 잠긴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선 채 헤드윅을 바라보고 있는 앵그리인치의 눈빛에서, 갈구하듯 뻗었던 왼손을 그대로 제 이마로 가져가 은색 십자가를 닦아낸 뒤 가만히 내려다보다 가볍게 손가락을 모아 쥐는 헤드윅의 텅빈 얼굴에서, 그 무대는 환상이었음을 읽어냈다. Midnight Radio. 담담한 듯 차분히 시작됐으나, 'love' 라는 가사에 선명하게 울먹거리는 목소리. 이츠학이 서둘러 정리하는 가발만을 빤히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그걸 밀어내듯 거부하는 몸짓을 보며, 그가 마침내 망가진 채 견뎌온 수많은 시간을 마주하고 인정하며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매달리듯 이츠학의 팔을 붙들고 손을 맞잡고 이마를 마주하며 마지막까지 약간의 주저함을 담은 채 손목을 놓아주지만, 그제야 비로소 헤드윅은 오롯이 홀로 자유로워졌다. 여성 록커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스크린에 띄워진 그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자신과 음악이라는 영혼을 공유한 앵밴의 얼굴을 하나하나 마주하면서, 헤드윅은 '음악' 이야말로 자신의 구원이었음을 온전히 인지한다. "Losers" 하는 가사에 가슴을 치듯 하며 제자신을 가리키는 디테일이, 이날의 헤드윅에게는 완벽하게 어울리고 또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다. 화려한 이츠학의 재등장에 놀라긴 했지만 멈추지 않고 노래를 이어나간다. 따뜻한 미소. 제 자신을 놓아주며 동시에 이츠학 또한 자유롭게 풀어준 그는, 단단한 뒷모습을 보인다. 핑크색 마이크 위에 짧지만 짙은 키스를 한 헤드윅은, 휘청거리지만 반듯한 방향으로 걸어나간다. 뒤돌아보는 일 없이. 문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헤드윅은 문 밖으로 걸음을 옮기고선 양 팔을 살짝 벌린 채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그 실루엣 뒤로, 문이 닫힌다. 잔상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고 망설임 없는 꼿꼿한 뒷모습이, 문 밖을 나선 헤드윅이 어떻게 살아갈지 짐작케 했다. 



지난주부터 배우 본체가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극 초반에 목을 쓸 때 조심한다는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그와 별개로 노래는 전부 완벽했다. 게다가 이 극은, 배우의 역량만 받쳐준다면 컨디션 난조가 새로운 노선과 색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일인극이다. 덕분에 깊은 곳에 단단히 묻혀 있던 가장 본질적인 생각과 감정을 끄집어내보인 본연의 '헤드윅' 을 만날 수 있었다고 본다. 위킫 직후까지도 산산히 깨져버릴 것 같던 헤드윅이었지만 믿나 초중반의 감정과 연기를 통해 결말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그 능숙함이야말로 캐릭터에 대한 깊은 고민과 번뇌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아주 잘 알기에, 공연 전체가 더욱 절절하고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날의 헤드윅을 만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다행이고, 고맙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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