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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2017.10.28 2시 공연
마이클리 헤드윅, 유리아 이츠학. 마욤드윅, 율츠학. 마율 페어 세미막. 이번 시즌 8차 관극. 처음이자 마지막 오피석.. 확실히 오피에 앉으니 무대와 교류하는 느낌이 강해서 백암시절의 헤드윅을 새삼 그리워하게 됐다ㅠㅠ 오븐용 차량 있는 상수 쪽에 덕지덕지 포스터 붙어 있는 무대 디테일이라던가, 모든 장면에서 깨알같이 연기하는 앵밴이라거나. 한 번 대극장으로 옮겨왔으니 다시 소극장으로 돌아갈 일은 요원하리라 생각되어 섭섭하다. 매번 사블에 앉다가 오피에 앉으니 너무 만족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더라. 동일한 가격임에도 좌석들 간의 이 커다란 괴리를 관객으로서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이날 마언니는 좀 더 스스로를 내려놓고 내면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평소보다 많이 꺼내어 풀어놓았는데, 덕분에 캐릭터의 색깔이 더욱 선명해진 느낌이었다. 토일 공연 커튼콜에서 "너무 어렵진 않았어요?" 라고 배우 본체가 물었는데, 역시 내한공연이라는 컨셉과 언어의 장벽에 대해 약간의 부담을 내내 지니고 있었구나 싶었다. 병행하던 나폴레옹 공연이 끝나면서 보다 편안하게 헤드윅에 분하며 영어나 한국어라는 언어의 제한에서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칭찬이든 욕이든 제 생각을 거리낌없이 나불대며 혼내기도 하고 예뻐하기도 하는 것이 헤드윅의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헤드헤즈이기에, 마언니의 이런 모습이 반가웠고 또 고마웠다.
※스포있음※
오랜만에 올진럽 초반을 들으며 울었다. 지금껏 만나본 헤드윅 중 가장 철학적인 면모가 강한 마언니이기에, 사랑의 기원을 서술하듯 풀어내는 넘버 the origin of love 가 강렬하지만 담백하고 건조하다. 그럼에도 이날 헤드윅의 눈빛은 그가 평생을 고민하고 갈구한 감정이 뜨겁게 넘실거리고 있어서 그 일렁이는 마음이 강하게 전달됐다. 조명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언니의 얼굴을 냉랭하게 혹은 무심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찰나에도 박제된 사진 같은 느낌이 아니라 마구 치솟던 회오리가 시간과 고민의 풍파에 깎이고 고요해진 잔재 같은 이미지를 남겼다. 클라이막스인 "looking through one eye-" 하는 부분도 일욜공에서 좀 더 날카롭긴 했지만, 토일 양일 모두 헤드윅 공연 극초반의 날 것 그대로의 인상을 재현해서 정말 좋았다. 토욜은 올진럽 앞쪽인 이 부분까지가 엄청 좋았고, 일욜은 초반은 무난하다가 "when the storm~" 하는 부분부터 세게 치고 들어왔다. 아무래도 분리된 반쪽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절망감의 색감이 달랐기 때문인 듯하다. 토욜의 마언니가 시니컬하지만 여전히 일말의 기대를 놓지 못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욜의 마언니는 치이고 닳아버려 시니컬함을 넘어서는 무력함을 기저에 깔고 있었는데, 이 차이가 극 전반의 비슷한 디테일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철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토미의 말에 짓고 있는 표정이라던지, 자신의 앵그리인치를 만진 토미의 오른손 디테일과 그에 대한 반응이라던지 하는 디테일들 말이다. 토미 오른손 디테일은 지난 관극 리뷰에서 쓴 이후로 못 보다가, 이번 토일 공연에서는 다 했다. 특히 토욜에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를 왼손으로 옮기면서까지 분명하게 해줬다. "Then Love All of ME" 라고 하는 대사를 양일 모두 지난 공연들에 비해 차분하게 했는데, 일욜은 이미 속으로는 다 체념하여 오히려 겉으로는 담담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이어서 더 아팠다. 익스퀴짓 때 토일 모두 손으로 으깬 토마토로 온 몸을 짓누르듯 퍽퍽 치다가 마지막에 자기 머리까지 내리치는 모션을 추가했는데, 덕분에 절망과 절규가 훨씬 강렬하게 인지됐다. 이전 공연에서는 즙을 문대는 느낌이었다면, 토일은 꽉 쥐어짜는 토마토 자체로 스스로를 내리치는 느낌이어서 토마토 일부가 몸에 남아 있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후자가 훨씬 취향이어서, 이전에는 압도감에 숨이 멎는 기분이었지만 주말 양일 공연을 보면서는 숨이 턱 막히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렇게 헤드윅의 감정선이 강렬하니까 상대적으로 토미ver.의 wicked little town 이 약하게 느껴졌는데, 이 부분은 일욜 공연의 서사를 통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었다. 그건 다음 리뷰에서. 이어지는 Midnight Radio. 토일 모두 믿나의 감정선이 완벽하게 자유롭다거나 후련하지 않아서, 오히려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개연성과 설득력이 강조됐다. 특히 토요일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공간을 압도하며 노래하다가 아름다운 율츠학의 등장에 약하지만 선명한 질투와 선망의 빛이 스치는 검은 눈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 찰나의 감정은 금세 사라지고 온전한 애정이 넘실거리는 눈으로 율츠학을 바라보고 껴안고 다독여준 뒤 미련 없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걸어나간다. 오피석임에도 또 마지막 뒷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삶을 꿋꿋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냈을 헤드윅이었다.
애드립도 조금만 남겨보자. Tear me down 에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몸짓 디테일 좋아한다. 침 뱉는 건 초반에만 하고 쭉 안하는 듯. 뒤로 돌아 허리를 숙인 채 마이크를 다리 사이로 가져다대는 부분에서, 이날 그 마이크를 앞뒤로 움직이며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망측한데 좋았다ㅋㅋ 프로포즈 받는 장면에서 일욜 공연 때 뒤에 I do I do 를 마이크 위쪽 입술로 머금으며 뭉개지는 발음으로 말해서 넘나 야하고 역시 좋았다ㅋㅋㅋ 여기 첫공 이후로 얌전하게 했었는데 세미막 때 이렇게 야한 버젼으로 돌아와주시다니, 정말 제 취향이네요^^ 이러고 나서 오피석에 "내가 지금 뭐하는 건지 아니?" 하고 묘한 표정으로 묻는데, 토욜에는 관객이 못 알아들었다고 했고 일욜에는 즉답을 했는지 "너 진짜 완전 알아들었구나, (고개 끄덕끄덕하며) I do, I do!" 이랬다며 언니가 빵 터졌다. 자고로 헤드윅은 야한 섹드립이 난무해야지, 암! 그러나 카워시는 여전히 얌전, 공손했다. 아무래도 객석 팔걸이가 미끄러워서 조심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일욜공에서 올라가다가 휘청하며 뒤로 떨어져서 정말 깜짝 놀랐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바로 균형 잡고선 그 옆에 가서 뭔가 도닥거려준 것 같았다. 팔걸이가 아니라 의자 위 허벅지 옆에 올라서는 게 카워시도 그렇고 더..... 흠흠 그만해야겠다ㅋㅋㅋㅋㅋ 밴드 소개할 때 앵밴 조삼희 기타리스트에게 '잭블랙' 이라고 칭했는데, 별로 마음에 안들어하니까, 당황해서 스키니한 잭블랙이라며 롹앤롤 알지 않냐고 막 위로를 했다ㅋㅋㅋㅋㅋ 원래 다른 배우 하려고 했는데 다 모른다며 툴툴거리더니 이름 대면서 아냐고 물어보는데 객석 조용하니까 거보라며 역시 다들 모른다고 궁시렁궁시렁댔다ㅋㅋㅋㅋ 아 너무 좋아ㅋㅋㅋ 호감 소개할 때 슈ㅋ슈ㅍ 이런 식으로 발음하는데, 김민기 드럼이 악기로 그거랑 비슷한 소리를 내니까 한 번 더 해보라고 저게 얘 이름이라고 좋아하던 마언니ㅋㅋ 일욜에도 소심하게 했는데 마언니가 그냥 지나갔다. 율츠학과 마언니 합도 좋았는데, 슈가대디 대사 부분에서 극렬하고 과장스러운 루터의 목소리에 마언니도 현웃에 어이없음에 당황함에 웃김이 다 섞인 웃음을 뱉으며 이어나가는 것과 후반부에 신나게 터지는 노래까지 정말 좋았다. 이번 시즌 슈가대디 편곡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이날 슈가대디는 정말 최고였다.
율츠학 커버곡 Who you are 의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이 이츠학의 이야기와 맞물리며 강렬한 감정을 전달했는데, The long grift 직후 "Who are you?" 라고 묻는 헤드윅 대사와 겹치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트we터에서 본 내용인데, 이 장면에서 "지금까지 우린 같은 언어로 말해왔지만 단 한 번도 네 말을 이해한 적이 없구나" 라고 이츠학에게 건네는 대사가 원 대본에는 없는 라인이라고 한다. '언어' 에 대한 이 헤드윅의 고민이 온전히 녹아든 부분이기에, 꽤 오랫동안 그 의미와 여운을 느꼈다. 그리고 일욜공연에서는 그 뒤에 "하필이면 여기 in Korea" 이렇게 덧붙이는 바람에 더욱 울컥했고. 내가 본 마언니의 모든 공연을 통틀어 바로 저 애드립을 덧붙인 순간이야말로 배우 본인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지점이었고, 그래서 이 헤드윅의 존재의의가 온 마음으로 와닿았다. 정말 이 배우가 헤드윅을 해줘서, 바로 이 시대에 이 나라에서 이 캐릭터로 분해줘서, 너무너무 행복하다. 하아. 못다한 말은 이어질 일욜 세미막이자 자막 리뷰에서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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