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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

in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2017.09.17 2시 공연

 



 

마이클리 헤드윅, 유리아 이츠학. 마욤드윅, 율츠학. 마율페어 첫공. 이번 시즌 헤드윅 5차.

 

 

※스포있음※

 

 

이날 공연은, 토미ver. 의 Wicked Little Town 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익스퀴짓 이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만큼 농도 짙은 적막과 어둠이 내려 앉은 무대. 철문 너머의 아득하던 빛과 소리가 그 무대를 삼키듯 점차 커진다. 비록 지구 반바퀴 너머에 있겠지만, 그가 들을 수 있도록 잠시만 조용히 해달라는 토미의 말. 은색의 십자가를 이마에 그린 그가 천천히 눈꺼풀을 내리며 시작하는 노래. Forgive me for I did not know. 반짝이듯 쏟아지는 악기의 반주 위에 얹히는, 잔잔하지만 진심이 듬뿍 담긴 '완벽한' 목소리에, 깨달아버렸다. 이날의 토미는 환상이구나. 헤드윅이 그토록 바라며 찾아 헤맸던, 그의 진실한 반쪽. 토미의 외양과 목소리로 실체화 했을 뿐, 결코 토미가 아닌 헤드윅의 이상향. 처음으로 헤드윅의 눈앞에 실재함에도, 붙잡을 수 없는 환상으로 흩어질 운명인 그의 반쪽. 찬란하기에 더욱 애틋하고 가슴 시린 위킫맆의 마지막에서 마토미는, 아니 헤드윅의 반쪽은, 스탠딩 마이크를 살짝 내린 뒤 머나먼 허공 어딘가를 날카롭지만 섬세한 눈빛으로 응시한다. 냉철하지만 위로와 고해가 담긴 눈빛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진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과 어렵게 살짝 끌어올리는 여운 짙은 입꼬리가, 단정하고 깔끔한 작별을 고한다. 또 한 번의 정적 뒤, 문에서 쏟아지는 빛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으며 단단히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헤드윅. 손바닥으로 이마를 쓸어올려 손에 묻어난 은빛 가루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정적. 자기자신마저 찢어 삼킬 듯 휘몰아치던 감정이 고요히 가라앉은 그 묵직한 공기 속에서 가만히 자신의 마이크를 집어든다. 음악을 매개로 공명한 감정. 자신이 처음 쓰고 처음 들려줬던 그 곡으로 전달 받은, 그에게 가장 필요했던 위로. 그 토미가 현실이든 환상이든, 이날의 헤드윅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오롯이 받아들인 그 감정과, 그로 인해 위로 받은 영혼만이 존재하는 공간. 제가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던 권력을 탁, 놓아버리는 순간의 담담하지만 선명한 희열이 이츠학 뿐만이 아니라 자기자신에 대한 속박까지도 끊어내버리는 듯하여 진정한 "자유"로 와닿았다. Lift up your hand! 를 외치는 자신의 목소리에 이츠학의 목소리가 섞여와도 눈을 감고 오롯이 음악에 집중하던 헤드윅은,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그제야 놀람이 흘러넘칠 듯한 눈빛으로 마이크에서 입을 뗀다. 그 놀라움은, 곧 진심 어린 칭찬으로 다듬어진다. "너무 예뻐," 하는 마욤뒥의 입모양이 선연히 눈에 들어왔다. 사블통 자리여서 역시 퇴장장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미련 없이 마이크를 바닥에 내려놓고 걸어나가는 헤드윅의 뒷모습 만큼은 쓸쓸하되 위태하진 않았다.

 

 

율츠학 자첫이어서 이 언니 얘기도 해야겠다. 율츠학은 헤드윅의 폭언과 괴롭힘에 감정이 닳고 닳아 지쳐버린, 짙은 무기력함이 체화된 언니였다. 그의 유일한 위로이자 돌파구는 음악, 이었고 그래서 절규 같은 솔로곡이 고슴도치의 가시 같은 자기방어기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The Long Grift.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듯, Look what you've done, 하며 시작하고는 점차 폭발하듯 이어나간다. 백업코러스를 넣는 헤드윅의 목소리에도 오롯이 자신의 노래에 몰입하여 감정을 분출하고선, 몰아치는 헤드윅의 못된 언어에 경악하듯 얼어붙는다. 그러나 이 언니도 참 모질지 못해서, 침을 뱉는 행위로 표상되는 극도의 경멸과 혐오를 내보이지도, 아예 무대 밖으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구석에서 애꿎은 자판기만 쾅쾅 내리치고 걷어차며 꾸역꾸역 감정을 속으로 집어삼킨다. 자신을 놓아주겠다는 헤드윅의 손짓에, 금빛 가발을 꼭 쥔 채 허공을 헤매는 손에서 망연함이 뚝뚝 묻어나온다. 그러나 들어올린 헤드윅의 왼손을 천천히 맞잡음으로써 비로소 그간의 고통에서 점차적으로 풀려나는 율츠학 주변의 아우라가, 눈부셨다.

 



 

초반부터 해오던 애드립을 기반으로 계속 소소한 추가가 있다. 10일 공연부터 시작한 게, 앵인 시초 격인 한국인 여자들이 한국어 알려줬다면서 '언니' 랑 '진짜' 랑 '미친년' 각각 한 단어 씩 말하고는 이어서 "언니 진짜 미친년" 하는 애드립ㅋㅋㅋㅋㅋ 뒷면에 빨간색 페인트 묻은 모피코트 입고 자길 막아선 사람 에피소드 풀어내는 것도 10일부터 했다. 섹드립에 중블 뒤쪽인가 남자관객이 계속 터지니까 중간에 윙크도 해줬고ㅋㅋ 그럼에도 KANT 드립은 잠잠해서, 언니가 아무도 내 농담 이해 못해도 괜찮다고 시무룩하는 모습에 오히려 터졌다ㅋㅋㅋㅋ 한 번은 "Anyone?" 하면서 호응을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전주에 누군가가 객석에서 "I Got it!" 이라는 콜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ㅋㅋㅋㅋ 콜백에 엄청 기뻐하던 언니를 위해 한 번 해보고 싶긴 하지만, 그 말장난이 확 와닿는다거나 웃기지 않아서ㅠㅠㅋㅋㅋㅋㅋ 관극 할수록 영어 단어를 사용한 말장난이 귀에 팍팍 꽂혀서 새로이 터지는 부분이 생긴다. Tear me down 끝나고 Warm hand, 운운하는 게 섹드립인 걸 인지했는데 이날 마욤뒥이 손으로 자기 엉덩이 부분을 끌어올리는(...) 듯한 제스쳐를 해서 새삼 터졌고, 매니저 부르면서 마이클, 마이클 헌트! my cunt!! 하고 점진적으로 말 줄이는 것도 섹드립 티를 팍팍 내서 더 재미있었다. Apparently NOT, 하며 시무룩하고선 천연덕스럽게 넘어가는 게 이 언니가 하는 섹드립의 매력이고ㅋㅋㅋㅋ 프로포즈 받을 때 무릎 꿇고 하는 동작은 첫공 수준 이상의 수위가 안나와서 좀 섭섭하다(?? ㅋㅋㅋㅋㅋ 락앤롤 제스쳐나 펑크락 제스쳐는 첫공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했다. 특히 지난주부터 펑크락 제스쳐는 스프링쿨러처럼 뿜뿜뿜뿜 해서 넘 웃기다ㅋㅋㅋㅋㅋ 이거 기대한 거 아니냐며 관객이랑 밀당하는 것도 좋고ㅋㅋㅋ 예전엔 더럽다는 둥 disgusting 하다는 둥 불평했었는데 요샌 재미 붙이신듯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여전히 카워시는 어색, 뻣뻣한데, 지금껏 보아온 배우 본체의 춤솜씨를 고려했을 땐 의도적인 건가 싶을 정도다ㅋㅋ 지난주랑 이날 공연은 카워시를 여자관객에게 한 것 같은데 확실친 않다. 

 

 

이날 눈에 들어온 한 장면만 더 얘기하고 마무리 해야겠다. What is THAT? 하며 뿌리치듯 손을 빼버린 토미의 물음에 흘러넘치던 감정이 심연까지 가라앉는 듯한 표정으로 what I have to work with, 이라고 답하는 헤드윅. 다시 토미의 입장이 되어, 엄마가 날 찾고 있을 거야, 하는 한심한 소리를 해대는 마토미가 왼손을, 헤드윅의 앵그리인치가 닿았던 그 손을 옷에 쓰으윽 닦아내더라. 순간 속에서 험한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지만, 토미의 그 작은 손동작마저 기억하고 있는 헤드윅을 향한 안쓰러움이 더 커서 가슴이 콱 막혀왔다. 뭐가 무섭냐는 헤드윅의 말에 I love you, 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떨리는 손 끝은 방황하듯 다리춤에 머물며 여즉 생생하게 남아있는 듯한 생경한 찰나의 느낌을 지워내고 싶어하는 토미의 그 손이, 너무 미웠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며, 그 이외의 것은 배제하고 혐오한 토미의 존재가, 온몸으로 사랑하며 제 모든 걸 내보이려 했던 헤드윅의 상처를 더 깊게 상처내는 기억의 순간을 목격한 느낌이었다. 토미가 참 미운데도, 결국 그를 투과하여 딛고 일어나는 헤드윅의 모습을 보며 참으로 복합스런 기분이 든다.

 



 

130분 정도의 관극 내내 많은 감정이 휘몰아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데, 막상 공연장을 나서면 단편적인 것들만 기억 나서 속상하다. Midnight Radio 에서 "And all the strange Rock and rollers," 하며 객석을 쓱 훑어보고 "you know you're doing alright" 라고 해주는 마욤뒥의 따뜻하고 풍성한 목소리를 사랑한다. 이날은 이 부분을 부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뒤쪽 "All the misfits and the losers" 의 루져 부분에서 매번 자기자신을 가리켰는데 이날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믿나는 모두와 공명하며 스스로의 영혼을 승화시키는 피날레이기 때문에, 자학에 가까운 루저라는 '자칭'이 공감보다는 연민을 더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마욤뒥의 노선이 한 달 전 첫공 때와는 분명 달라졌고, 기존의 그 바스러질 듯한 헤드윅에게는 그러한 몸짓이 어울리는 면이 있었다. 보다 단단해진 헤드윅은, 그 디테일을 생략하며 다른 지점에 방점을 두었다고 본다. 전부 내 나름의 해석일 뿐이고, 배우가 어떤 생각과 고민으로 연기하고 노선을 짜는지는 확언할 수 없다. 다만 이 극이 헤드윅이기에, 내 해석이 틀릴 수도, 다를 수도 있지만 용감하게 기록을 남기고 있다.

 

 

컷콜 Tear me down 에서 "You wanna tear me down? Try again next week!" 라던 센스만점 헤드뒥! 전관욕심이 있긴 한데, 현실적으로 열두회차 전부 가긴 힘들 것 같아서 슬프다. 개인적으로 주말, 그것도 일요일 낮공은 너무 힘들다ㅠ 주중에 멘탈 탈탈 털리고 기어간 공연장에서 만나야 헤드윅을 더 헤드윅 답게 즐길 수 있는 헤드헤즈라서 죄송해요 엉엉ㅠㅠ 그리고 쭌감님도 보고 싶어ㅠㅠㅠㅠㅠ 그래도 마언니 사랑해요♡ 덕분에 맘껏 헤드윅을 즐기고 있어요! 그러니, 쇼놋이여, 오슷 좀 주세요!!! 언니 별 오슷 내놔, 오슷!!!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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