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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
in 홍익대아트센터, 2017.09.10 2시 공연
마이클리 헤드윅, 제이민 이츠학. 마욤드윅, 제츠학. 마제페어 및 헤드윅 4차.
※스포있음※
계속 회전 돌고 있으니 최대한 간략하게. 이날은 Midnight Radio 가 정말 좋았다. 지난 공연들에서는 토마토씬으로 완전히 불타버려 재만 남은 헤드윅이 지치고 아픈 뒷모습으로 이츠학과 앵인 밴드를 찬찬히 둘러보며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고선 본인은 마치 이걸로 다 되었다는 듯 산화해버리는 이미지가 강했다. 아주 개인적으로는, 이츠학의 무대를 뒤로 한 채 문을 나서는 헤드윅이 이곳저곳 금이 간 얇은 유리처럼 곧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져버릴 듯한 마지막 여운을 남기는 엔딩이 완벽한 취향이다. 그래서 깨지는 게 아니라 바스라질 것 같은 마욤드윅의 믿나가, 아름답지만 감정적인 공명을 절절하게 하지 못해서 세 번의 관극 내내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이날은, 토미의 wicked little town 을 듣고 가만히 서있던 헤드윅이 이전 공연들에 비해 보다 단단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사위의 정적 속에서 천천히 마이크를 집어들고 가발을 들어올려 바라보는 헤드윅의 가슴 속에, 평생에 걸쳐 고민해온 정체성과 삶에 대한 고찰이 휘몰아치는 느낌이었다. 마치 폭풍의 눈 속에 있는 듯한, 지나치게 강렬하고 시끄러워서 오히려 고요하게 침잠하는 정적. 제츠학에게 가발의 건넬 때의 그 눈, 예전에는 그저 따뜻하고 애틋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시선이었다면, 이날은 훨씬 차분하고 단호한 결심의 눈빛이었다. 내 해석이지만, 마치 권력을 쥐고 강압적으로 붙잡고 있던 이츠학을 제 손으로 풀어주는 것이 헤드윅 자신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듯, 다정하지만 확고한 손길로 가발을 돌려주려는 그를 막는다. 그래서, 믿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돌아오는 이츠학을 발견한 헤드윅이 느끼는 충격의 감정 또한 기존과 색감이 조금 달랐다. 놀라움, 이면의 아주 옅은 질투, 그리곤 허탈감과 수용, 인정이 복합적으로 섞인 실소어린 미소. 그래, 이러한 '인간적인' 모먼트가 존재해야 온전한 헤드윅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나는. 이날도 헤드윅의 마지막 퇴장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미련 없이 마이크를 바닥에 내려놓고 살짝 휘청거리면서도 올곧게 걸어나가는 뒷모습에서 이날의 언니는 문을 나선 뒤에도 자기답게 온 몸을 세상에 부딛히며 살아갈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헤드윅, 답게.
헤드윅이라는 캐릭터는 연기하는 배우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도 매번 다르게 바라보고 이해하여 해석할 수밖에 없는 언니다. 마욤드윅 회전을 돌며 매번 강렬하게 아픈 장면은, Wig In A Box 를 시작하기 전 컨테이너 박스 안에 홀로 버려진 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티비로 바라보고 있는 언니의 독백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헤드윅을 연기하는 마이클리 배우 본인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험했을,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서의 고민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분이기 때문에, 배우가 뿜어내는 헤드윅으로서의 감정선이 생생하게 온 몸을 사로잡는다. 지금까지는 윅인어박스가 슬픔을 승화시키는 말랑하고 따뜻한 넘버라고 인식해왔다. 그러나 이건 저미는 듯한 고통과 고독을 짓씹다가, 그걸 생경함이 아닌 익숙한 인생으로 인지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맑게 웃어보이는 햇살 같은 노래라고, 이 언니를 보며 느꼈다. 여러 번 말했듯, "I cried because I will laugh if I don't," 하는 대사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헤드윅이다.
한국어 버젼도 슬슬 보고 싶은데, 어떤 언니로 볼지 고민 중이다. 작년 자뮤페 때 만났던 문드윅이나, 명성이 워낙 자자한 오드윅 중에 한 명으로 볼 것 같은데.... 일단 다음 관극은 마율 페어첫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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