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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in 엘지아트센터, 2017.09.30 7시 공연
류정한 시라노, 최현주 록산, 임병근 크리스티앙, 주종혁 드기슈, 홍우진 르브레. 류라노, 블리록산, 빙티앙, 주기슈, 홍브레. 류블리빙 페어막. 류블리 세미막. 시라노 10차, 류라노 8차 관극.
※스포있음※
지난 관극 때보다 치기와 고집이 강한 시라노였다. 거인을 데려와 넘버 직전에 "찌그러져 산다" 던가 "찬양시를 쓰라" 는 말에 진심으로 분노했고, "하하하" 하면서 웃는 것 또한 평소보다 덜 과장스러워서 오히려 냉정하고 단호하게 느껴졌다. 초반 가성이 단단하고 담백하여 넘버 가사 하나하나가 텍스트 그대로 전달되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느낌이 극 전반에 걸쳐 이어졌는데, 1막 피날레 얼론에서도 절망 끝에 짓씹듯 각오를 재차 다진다거나, "콧대를 높이 치켜들고" 죽음과 똑바로 마주하는 모습이 아주 정석적이었다. 2막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보다는 웃으며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라노의 모습은 순앤가스콘에서 이미 죽음을 각오하였기에 가능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으로 뛰어들었음에도, 불운하게 살아돌아온 시라노는 록산이 있었기 때문에 15년이라는 세월을 그저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살아낸 것 같았다. 그래서 이날의 죽음은 허망하다기보다는 시원해보였다. 줄곧 각오해왔으나 15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맞이한 죽음. 비록 그 방식과 형태는 제가 추구하고 열망해온 바와 달랐을 지언정, 록산의 품에서 마지막을 맞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후회 없는 죽음. 마침내 맞이한 삶의 종결에 살짝 미소까지 띄운 채 죽은 류라노의 표정이, 오히려 잔잔하고 깔끔한 여운을 남겼다. 커튼콜 때까지도 눈물이 나긴 했으나, 처음으로 배우들에게 환호를 보낼 수 있었다. 평소에는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먹먹함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날은 나도 웃으며 보내줄 수 있었다.
나중에 극을 되새기려면 잔상처럼 남아있는 디테일들을 자세히 적어둬야 함을 알지만, 막공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자니 섭섭함과 아쉬움에 쉽게 글이 나오지 않는다. 이날 '가을의 나날들' 넘버를 들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는데, 벨쥐락의 '여름'으로 시작하여 '가을'의 나날들에 작별을 고하는 이 극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게 유난히도 섭섭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주먹을 불끈 쥔 채 끝내는 류라노의 마지막 실루엣을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막공주가 되니 새삼 심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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