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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in 엘지아트센터, 2017.09.22 8시 공연





류정한 시라노, 최현주 록산, 임병근 크리스티앙, 주종혁 드기슈, 김대종 르브레. 이하 원캐. 류라노, 블리록산, 빙티앙, 주기슈, 대종르브레. 류블리빙. 류라노 7차 및 시라노 9차 관극. 



※스포있음※



1막에서는 유난히 기분이 좋아보이는 류라노의 노래와 표정을 마음껏 즐기다가, 2막 순앤가스콘부터 격침 당했다. 큰 코라는 컴플렉스나 그로 인해 성취하지 못한 '사랑' 이라는 감정보다, 인간 시라노 개인의 '삶' 에 대해 더 비중을 둔 이날 노선이 완벽히 취향이었다. 



크리스티앙의 죽음에 무너져내릴 듯한, 길 잃은 아이 같은 헤매는 표정으로 이젠 말할 수 없다며 "절대," 하고 울음과 절망 가득한 목소리르 꾹꾹 눌러 부르던 류라노. 마치 1막 얼론에서 "아프고, 아프고," 하며 가슴을 쥐어짜는 고통스런 상실감이 적나라하게 담기던 그 절망과 유사하여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직전의 하루또하루나 그녀는 당신을 사랑해 넘버에서는 흔들리는 마음을 절제하고 숨기는, 우아한 귀족적인 이미지가 평소보다 강해서 크리스티앙의 죽음 이후 무너져 내리는 감정의 낙폭이 어마어마했다.





두렵고 혼란스러운 떨리는 목소리로 "아듀!" 라 인사하고, 마지막 감정을 실어 떠나보내는 강조를 담아 부르짖듯 "록산!" 이라 부른다. 오롯이 시라노 자신의 감정만 오롯이 담겼던 순앤가스콘. 두려움, 막막함, 상실, 망연함, 먹먹함. "서늘하게" 하며 오한을 느낀다는 듯 팔을 감싸 오른손으로 왼팔을 쓰다듬고, 뭔가를 떨쳐내겠다는 듯 조급한 손짓으로 칼을 빼어든다. "저 달빛이 사실 조금 두려운가" 하는 눈빛에 스치는 공포. "내 운명아 말해다오" 까지 이어지던 그 감정이, "어리석고 초라한 절망 따윈" 하며 일순 변하는 눈빛과 주변 공기로 깨진다. "사치라고" 하며 제 의지로 공포와 두려움의 감정을 몰아내버리는 시라노. 가장 두렵기에 스스로 제 입에 올리는, "나, 시라노의 죽음을!!!" 이라는 외침. 주변에 대한 독려이자, 자기 자신에게 전하는 의지. 잔재하는 옅은 두려움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형형하기까지 한 마지막 의지. 순앤가스콘의 그 감정이 어찌나 강렬하고 짙고 무거운지, 이어지는 가을의 나날들이나 최고의 남자에서도 눈물이 계속 주륵주륵 쏟아졌다. 



엔딩. 유난히 비틀거리는 류라노의 모습에서 돈키호테가, 아니 돈키호테를 꿈꾸며 이상을 추구하려 하지만 현실은 발이 땅에 묶여 겁먹고 망설이던 세르반테스가 겹쳐 보였다.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도피하는 지식인이라는 인상에 안녕 그대는 오히려 덤덤하게 들었는데, 그 이후가 무척 아프고 슬펐다. 록산의 입맞춤에 드디어 제 입술로 결실을 얻어냈음에 대한 감격의 탄성을 내뱉지만, 그는 '엉망진창인 자신의 죽음' 을 두려워하고 또 고통스러워 한다. "비겁하게 숨어있으면 안 되지, 절대 안 돼" 하면서 지팡이를 들고 비틀대며 죄악을 하나씩 읊지만, 평소보다 약하고 흔들리는 목소리. "내 코가 보이는가!!!" 역시 절규에 가까운 발악. 록산과의 마지막 키스는, 드디에 바라 마지 않았던 것을 제 손에 쥐었음에도 이 찰나가 마지막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욱 절망스럽고 아득한 울음으로 이어졌다. 얼론맆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여리고 파들거리는 목소리로 부르다 마지막까지 처절하고 인간다운 끝을 보여주며 쓰러졌다. 삶에 미련이 있고 죽음이 두려운, 이 이상 비참하고 안쓰러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다분히 인간적이고 고통스러운 마지막. 그 헛헛한 여운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앉은 C열 중블이었는데, 커튼콜에서 인사하는 류배우님과 눈이 딱 마주쳐서 더욱 먹먹했다. 덕질을 2년 넘게 하다보니 앞자리에 앉더라도 배우랑 아이컨택 하는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게 됐는데, 커튼콜 인사에서 시선이 맞는 건 또 기묘한 기분이었다. 공연을 마친 뒤의 그 눈빛과 정확히 마주한 경험은, 곱씹을수록 울렁이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거기에 브링미자이언트까지 함께 부르다보니 더욱 먹먹한 감정이 차올라서, 눈물을 애써 삼키며 힘겹게 귀가해야만 했다. 이제 2주 밖에 남지 않은 이 공연이, 갈수록 애틋해지고 있어서 큰일이다. 잘 보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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