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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in 엘지아트센터, 2017.07.08 7시 공연
류정한 시라노, 최현주 록산, 임병근 크리스티앙, 이창용 드기슈, 홍우진 르브레. 류라노, 블리록산, 빙크리스티앙, 용기슈, 홍브레. 류블리빙. 류라노 첫공.
일단, 이 말부터 하고 시작하자. 드디어!!!!!! 류배우님이!!!!!! 무대에 계신다!!!!!!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7월을 마침내 맞이하며, 근 네 달만에 무대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류배우님을 마주했다. 긴 기다림만큼 값지고 황홀한 재회였다. '거대하고 못생긴 코'에도 불구하고 찰랑거리는 머릿결과 잘생긴 외모가 가려지지 않았고, 무척이나 그립던 목소리와 노래가 귀를 즐겁게 했다. 커튼콜에서 다같이 노래할 때 울컥하고 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두어 마디를 못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그 어깨에 실린 수많은 감정들을 실감했다. 극이 올라오기까지 치열하게 고민했을 '류로듀서'로서의 시간과, 앞으로 세 달 동안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표현해낼 '류라노'로서의 시작점이 맞물리는 지점을 목격한 기분이다.
이제 극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텍스트가 상당히 많다. 유머러스한 풍자나 비유, 운율 등이 넘쳐 흐른다 싶을 정도로 시라노의 입술에서 쏟아져나온다. 다시 강조하지만 '시라노의 입' 이다. 이 뮤지컬은 완벽하게 시라노의, 시라노의 의한, 시라노를 위한 극이다. 모든 캐릭터가 시라노의 이야기만 하며, 시라노에 의해 모든 장면이 진행되며, 시라노만이 이 극의 온전한 주인공이다. 시라노 역의 배우들을 사랑하는 입장에선 시라노 원탑극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지만, 다른 캐릭터를 완벽하게 무시하지는 않겠다는 의도가 없지 않아서 약간의 산만함이 있었다. 음악은 프랭크 와일드혼의 노래임에도 변희석 음악감독님의 성향이 담뿍 녹아있어서 편안하고 아름다웠다. 와일드혼의 전작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msg 가득한 요소들이 매끄럽고 우아하게 다듬어져 마치 대사처럼 극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배우들이 넘버를 부를 때 강약을 조절하며 극을 더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강한 킬링 넘버가 없으니 지루하다는 평도 있는 모양이다. 최근 읽고 있는 책에서 뮤지컬 쇼보트의 작곡가 제롬 컨의 말을 접했다. "난 그저 뮤지컬에 알맞은 옷을 입히는 사람이다. 대본에 의해 주어진 상황에 맞게, 배역의 성격에 맞게 음악을 만든다."(「올어바웃뮤지컬」,장두이,신수정, p.93) 즉, 뮤지컬에서 '음악'이 가장 임팩트 있고 비중이 큰 요소이지만, 극은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시라노의 음악은 극에 잘 맞아떨어졌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다만 음향은, 아직 별로였다. 대사가 워낙 많기는 했지만, 칼딕션을 자랑하는 류배우님의 대사 중에서 정확하게 캐치하지 못한 단어가 서너 개 있다는 점이 엄청 충격적이다. 사블이어서 그런지 음량도 불만족스러웠다. 엘아센은 과학이라는데,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지만 아직도 크게 동의할 수 없다. 뭐, 이번에 회전 돌다보면 공감할 수 있으려나.
첫 리뷰이니 계속 스포 없이 가야겠다. 1막 90분 2막 60분인데, 1막은 정말 흥미진진하게 몰입했는데, 2막은 연출 및 구성이 첫 넘버부터 너무 취향이 아니었다. 일부러 원작을 아직까지 안 읽었는데, 2막의 전개가 원작의 문제인지 아니면 뮤지컬이라는 장르 안에서 늘 취해오던 스탠스를 벗어나지 못한 극적 연출의 한계인 건지 잘 모르겠다. 캐릭터들도 '입체적'이진 않다. 록산 캐릭터 진짜 별로였다. 최현주 배우의 복귀작이자 이 배우를 처음 만난 무대였는데, 배우 본인의 매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사랑스러움이 넘쳐 흘렀으나 감정적 공감은 전혀 되질 않았다. 특히 결말에서 기함했다. 허허. 이건 다음주 뎅라노로 2차 관극하고 나서 쓰겠다. 크리스티앙도 너무 여지가 없이 단편적이고 한정된 인물이었다. 그냥 딱, 텍스트 그대로 밖에 표현해낼 수 없는 캐릭터였고, 어쩐지 마타하리의 아르망이 떠올랐다. 마타 초연 기준이다. 재연은 안 볼 거니까. 드기슈는 악역이지만 매력있었다. 나머지는 워낙 분량이 없어서. 앙상블 뽑을 때 '노래'를 엄청 봤다는 게 떼창 들을 때마다 느껴져서 좋았다! 드기슈 부하 발베르 역의 이용진 배우 목소리와 성량 좋더라. 중대장 카르봉의 임재현 배우 연기도 좋았고. 2막 가을의 나날들 넘버 처음 도입 부르는 배우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목소리 엄청 예뻤다. 많은 배우들이 화음을 넣고 공간을 가득 차게 불러주는 노래를 들은 게 무척 오랜만인 기분이라서 행복했다. 이래서 대극장을 사랑하지, 내가.
아무튼 2막은 정말 취향이 아니라서 너무 혼란스러운데, 일단 한 번 더 보고 나서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에 구구절절하게 적어봐야겠다. 무대는 구조물이 거의 다 고정되어 있어 심플한데, 뒤쪽 배경에 변화를 주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달, 이 시각적인 임팩트가 엄청 큰데 중블에서 봐야 실루엣이 확연히 들어올 듯 싶다. 의상도 예쁘다. 록산 두 번째 하얀 드레스 의상 너무 예뻐서 블리록산한테 살짝 치일 뻔했는데, 대사 두어번 씹어서 아쉬웠다. 시라노 의상도 부츠에 자켓에, 좋아하는 요소가 다 들어가 있는, 배우 몸에 딱 떨어져서 깔끔하고 예뻤다. 모자 디자인도 이쁘고! 근데 크리스티앙 의상 색깔은 혼자 튀는 느낌이라서 별로였다. 빙티앙 조끼 조금 길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거 같은데. 안무도 괜찮았고..... 시라노 춤 많이 춰서 행복했다^^ㅎㅎㅎㅎㅎ 삐리빠라뽕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넘버는 직접 봐야 된다ㅋㅋㅋㅋㅋㅋ 진짜ㅋㅋㅋㅋ 초랑켄 안봤는데 여러 장면에서 류빅의 한잔술이 자동으로 연상되어 너무 좋았다ㅋㅋㅋㅋㅋㅋㅋ
다른 극 이야기 나온 김에, 이 극에 지뢰가 되게 많다. 본인 입으로 '돈키호테'를 말하는 장면과 라틴풍의 도입부가 있는 넘버에서 라만차가 자동으로 연상된다. 애초에 시라노라는 캐릭터 자체가 현실 속으로 섞여 들어온 돈키호테의 현신 같아서 그 입에서 나오는 많은 말들이 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2막 '가을의 나날들' 넘버 연출은 레미제라블 'empty chair' 와 몬테크리스토의 '언제나 그대 곁에' 같은 넘버들과 유사한 느낌이 났다. 이 외에도 위에서 언급했던 마타하리의 분위기가 전쟁씬에서 많이 풍겼다. 후자의 연출적 요소들은 거진 2막에서 느낀 거라서, 2막이 왜 취향이 아니었는가에 대한 이유들 중 하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나 1막은, 기존에 이 장르에서 만나지 못했던 고유한 시도라는 인상이 강했다. 대사가 많은 연극적인 뮤지컬, 이라고 단순히 정의내리기 보다는, '희곡'을 막 무대 위에 올린 '극'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묘한 차이가 있는데 글로 표현하기가 까다롭네.
1막 '그의 입술에 닿는 나의 이야기' 넘버를 부르기 전, 시라노가 "잔인한 영광" 이라는 말을 한다. 능력 있고, 자존심 강하고, 중의적인 의미로 '콧대가 높으며', 확신과 고집이 뚜렷한 이 사람은, '영광'을 쟁취해내는 능력에도 불그하고 그 결과물 만큼은 제 손 안에 붙들지 못하는 운명에 '잔인함'을 느끼며 절망한다. 끝없는 자기혐오 속 단 하나의 빛에 구원받는 팬텀의 에릭보다 더 무겁고 회복하기 힘든 아득한 절망이다. 본래 똑똑하고 현명하며 자존심이 높은 자일수록, 겉으로 태연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홀로 썩어들어가는 법이다. 그래서 1막 피날레이자 2막 피날레인 Alone 넘버가 폭발적으로 극 전체를 휘어잡으며 마무리 짓는다. 류에릭의 비극맆이 말을 잇지도, 숨을 차마 내뱉지도 못할 만큼 심장을 도려내는 날카로운 아픔이었다면, 류라노의 alone은 음 하나하나가 가슴을 후벼파는데도 그 넘실거리는 고통을 겉으로 표현해낼 수 없는 아득하고 절절한 아픔이었다. 류에릭과는 동정을 통한 아픔의 공유였다면, 류라노와는 깊은 내면 속 고독을 공감하는 절망의 교감이었다. 시라노는 방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넘쳐흐르는 캐릭터여서, 공연을 거듭할수록 류라노가 표현하는 시라노가 얼마나 넓고 깊고 풍성해질지 몹시 기대가 된다.
마지막 한 문단 쓰는데 한 시간 걸렸다. 저렇게 적어놓고 보니, 완전 망했네 나. 2막 취향이고 뭐고, 류라노 때문에 열심히 회전 돌겠네. 시라노 등장하는 장면 보자마자, 오빠얌에게 찰떡 같이 맞을 캐릭터라는 게 빤히 보여서 뎅라노도 많이 보게 될 것 같아서 더 망했네. 시라노 카테고리 새로 파야 하나. 할인 좀 후하게 풀어주세요, 류로듀서님...... 제발..... 배우님 표정 때문에 앞자리 아니면 아예 안 볼 거라서 더 큰일이란 말입니다ㅠㅠ 다음 관극이 무척 기대되고 엄청 걱정된다아ㅠㅠ 아무튼 돌아오셔서 무척 반갑습니다, 류배우님. 극 올리기까지 제작자로서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 세 달 동안 본업인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 고생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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