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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크리스토
in 충무아트홀 대극장, 2016.12.29 8시 공연
류정한 몬테크리스토/에드몬드 단테스, 조정은 메르세데스, 이상현 몬데고, 조원희 파리아, 임준혁 알버트, 정동효 빌포트, 장대웅 당글라스, 난아 루이자, 최서연 발렌타인. 류몬테, 선녀메르, 상현몬데고. 류선녀 페어막, 류몬테 세미막. 류몬테 자여덟이자 자체막공.
이날 공연은, 실로 완벽했다. 류배우님의 세미막은 곧 레전이라는 말을 여실히 증명했는데, 여기에 선녀메르까지 끼얹었으니 감정선에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한 시즌 안에서도 여러 가지 변주를 통해 다양한 노선을 보여주는 류배우님이 만들어내는 최정점의 무시무시한 '몬테크리스토' 를 만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했다. 동시에 이날 관극 가기 직전 예감했던 결과가 나왔다. 이 공연이 너무나 만족스럽기에 자체자막을 해야겠다는, 미련 없이 이 공연을 마지막의 기억으로 남기더라도 절대 한 점의 후회도 없으리라는 결론이 섰다. 한창 정점을 향해 치닫던 덕심이, 하늘 높은 곳 잔잔한 진공 상태의 공간 어딘가에 고요하게 멈춰버린 듯하다. 진심으로, 휴덕할 수 있을 것 같다. 7월 시라노까지. 관극을 아예 그만두지는 않을 터지만, 지금처럼 가슴 뛰게 사랑하고 집착 수준으로 갈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관극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년 표 몇 장을 정리했다. 매일매일, 아니 매시간마다 확인하던 그 모든 뮤덕질을 조금은 쉬어야겠다. 이 감정을 정의내릴 만한 마땅한 단어가 없어 내내 고민했는데, 일종의 현타라 명명지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허망하고 허탈하여 자괴감을 느끼는 전형적인 현타가 아니라, 충만한 완성형의 잠잠함 그 자체의 현실 회귀를 느꼈다. 덕통도 생전 처음이었는데, 현타마저도 최초로 느껴보는 기분에 휩싸여 맞게 되다니, 정말이지 류배우님 덕분에 참으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
다른 잡다한 이야기보다는, 그저 류배우님의 노선과 몇몇 장면들에 대해서만 짧게 기록용으로 글을 남겨야겠다. 전공도 아니고 업도 아닌데 온 힘을 다해 관극하고 온 마음을 갈아 넣어 매 관극마다 리뷰를 작성하는 이 "취미생활" 마저도 약간의 현타를 맞았기 때문이다. 좀, 지치네. 좋은 말 위주로 글을 쓰는 것도, 설령 긍정적인 생각만 떠오를지라도 그걸 둥글게 예쁘게 아름답게 다듬어 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여러모로 홀로 고되다. 타인의 결과물을 비판하는 일은 알게 모르게 스스로의 자존감을 푹푹 찔러댄다. 늘 갈망하는 '창조' 에 대한 동경 말이다. 뭐, 이 이야기는 리뷰의 주된 내용이 아니니 이만 줄이고.
※스포있음※
류드몽은 무척 어리고 순수했다. 수 차례 메르세데스의 이름을 읊조리며 어떻게든 그에게 다시 돌아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을 지라도, 결코 닿지 않는 그 환상에 결국 무너져내린다. 사랑이 한 순진하고 아름답던 청년을 얼마나 나락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하루하루 죽어가' 넘버에서 명확하게 보여준다. 파리아 신부와의 만남도 잔뜩 겁먹고 움츠리며 바르르 떤다.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배움을 이어가다가, 이 비참한 현실을 사주한 자들을 깨닫는 그 단계부터 분노의 질감이 어마어마하게 강렬했다. 속에서부터 치솟는 울분과 분노를 포효 같은 짙고 무거운 울음 섞인 탄식으로 토해낸다. 마침내 탈출하여 해적들, 특히 '친구'를 운운하는 자코포와 관계를 맺으며 장난스럽게도 웃고 부드럽게도 말하지만, "메르세데스는 결혼했다" 는 말에 에드몬드가 죽어버린다. "혼자 있고 싶다고 했어," 하는 어투가 평소와는 다르게 평범한 어조인 듯하면서도 오히려 냉랭함은 더 담겼다. 지옥송은, 역대 베스트. 이 이상의 지옥송이 가능할까. 복수의 대상으로 삼은 '원수' 네 사람을 마치 인형 다루듯 조종하는 손동작 디테일, 풍성하게 울리는 고압적인 저음, 적절하게 치고 들어가는 날선 분노, "분노한 신의 뜻을" 하면서 하늘에 시선을 두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그대로 형형한 눈빛으로 찌르듯 바라보는 시선. 이 모든 것들이 온 세상을 제 발 아래에 둘 법한 귀족적인 위압감을 극대화했다. 바야흐로 가장 무섭고 강렬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하무덤에서 부르는 아, 여자 넘버에서 메르세데스를 바라보는 류몬테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고 무감하다.. 극렬한 배신감이 오히려 냉랭하게 가라앉은 눈빛이다. 파리의 연회장에서 오만한 표정으로 그 넓은 공간에 존재감을 가득 채우며 등장하는 류몬테. 겉으로는 웃어주며 적절하게 치고 빠지는 타이밍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귀족이다. 하지만 메르세데스와 재회한 순간, 흔들린다. 파르르 떨리는 옆얼굴을 처음 제대로 봤는데, 실시간으로 농밀해지는 그 감정선의 빛깔에 잠식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흔들리는 감정 때문에 "착각은 마, 정신차려" 하는 말이 메르세데스가 아니라 몬테크리스토 본인에게 다짐하듯 말하는 것으로 들렸다. 특히 두 번째 반복에서는, 분명히 본인의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었다. 흔들리지 않겠다고, 인생을 지탱하는 복수라는 유일의 목표를 결코 놓아버리지 않겠다고. 메르세데스의 반지를 발견한 뒤 그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라니.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모든 이들에게 배신 당했다 생각하고 세상에 홀로 버려졌다 믿게 되어 스스로 죽어버린 남자가, 그 순간 몬테크리스토의 눈빛 속에서 잠시 살아났다. 하지만 이미 몬테크리스토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정의만을 부르짖는 완벽한 심판자이다. 복수송은 한 치의 망설임이나 도망침은 결코 허용치 않으며 빈틈 없는 위압감을 선사했다. 너무 차가워서 오히려 뜨겁게 느껴지는, 지나치게 새카매서 오히려 번뜩이는 푸른빛이 감도는, 그저 꼼짝 못한 채 몰입할 수 밖에 없는 극강의 분노를 내뿜었다. 하지만 류몬테는, 메르세데스에게 만큼은 그 강렬한 저주를 내뿜지 못한다. "사랑은... 에드몬드, 사랑은 주는 자의 것이잖아요," 하는 메르세데스의 고통스런 말에, 정확히 마음을 까발려진 듯 머뭇대더니 고개를 애써 저으며 느릿하고 미련넘치는 걸음으로 발코니를 떠난다. 발렌타인의 말에 내면의 무언가를 끌어올려 벅차오르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게 생생하게 보였고, 그래서 과거의 내 모습 넘버가 눈부셨다. 죽었던 에드몬드가 살아났다기 보다는, 몬테크리스토가 에드몬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그 기억을 제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느낌이었다. 정석이 아닌 노선의 여지가 거의 없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류몬테가 표현해내는 감정선 덕분에 자꾸 다양한 해석을 덧입히게 된다.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시는 배우인만큼, 내 마음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련다.
선녀메르도 한 달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아졌더라. 특히 1막 '온 세상 내 것이었을 때' 넘버의 감정선은, 정말 최고였다. 차오르는 그의 감정에 눈물이 저절로 차올라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과거를 떠올리며 반짝거리면서도 짙은 회한과 현실의 고통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짙은 농도의 감정이라니. 마지막 조명이 너무 빨리 꺼져서 아쉬웠을 따름이다. 하루하루 죽어가에서 몬데고의 손에 들린 편지를 보고 비명을 내지르며 그걸 빼앗으려 드는 모습도 무서울 정도로 절박하고 강렬했다. 파티장의 그 목소리는, 아무리 냉혈한이라도 동요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애달프고 아름답고 눈부시며 아팠다.
역시 커튼콜에서 허리 숙여 인사한 자세로 한참 동안 환호소리를 마음에 담아내던 류배우님. 한동안 무대 위에서 그 모습을 뵙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암담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낌 없이 애정하고 마음껏 찬양하며 내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열성적이었기에 아쉬움은 없다. 이 공백의 시간은 또다른 전환점이 되어 새로운 감정, 놀라운 열정, 빛나는 찰나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리라 믿는다. 마치 나의 2015년과 2016년이 그 어떤 때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채워졌던 것처럼 말이다. 배우님, 막공 마무리 잘 하시고, 새로운 도전에 마음껏 열정을 투자하시어 행복한 모습으로 재회할 수 있길 바랍니다. 덕분에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믿기 힘들 정도로 눈부시게 행복했습니다. 모든 마음을 담아, 감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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