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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크

in 유니플렉스 2관, 2017.04.06 8시공연



김재범 초, 정원영 해, 김여진 홍. 범초, 햇해, 여진홍. 범햇여진.


자첫 관극은 으레 그러했듯, 사전정보를 굳이 찾아보지 않고 객석에 앉았다. 시인 이상을 다룬 창작뮤지컬 정도로만 알고 갔는데, 윤달쏘나 영웅 등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여타 다수의 극들과는 사뭇 다른 맥락으로 전개되어 흡입력이 있었다. 회색톤의 우중충한 분위기가 '연기' 라는 극 이름의 뜻과 잘 맞물리며 객석의 몰입을 높였다.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극 안에 반영하는 대사 혹은 단어들이 산만하고 일관성이 없었다. 첫 장면 첫 넘버에서 "루저" 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무채색이지만 매력적이던 극의 이미지가 와장창 무너져내렸다. 이야기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시대상에 대해 의문은, 곧 극을 납득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설정을 구축해서 상상하고 짐작하고 판단하여 이해하게 했다. 잘 만든 극이라기보다는, 짙고 축축한 '연기'가 온 마음을 스멀스멀 감싸며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지구가 내 무게에 바스라진다"



※스포있음※


하지만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죽고 싶어, 죽고 싶어," 고통스럽게 중얼거리는 범초와 온 얼굴에 눈물범벅인 채 웃듯이 우는 햇해가 각자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있는 장면. 여진홍의 절규. "너도 살고 싶잖아, 우리 한 번만 더 해보자, 작은 돌멩이라도 던지면 살아 있었다는 흔적이라도 남지 않겠니," 바들거리던 손이 떨리고, 햇해가 말한다. "미안하다, 초야." 고개를 떨구는 범초. 허공으로 울리는 총성. 다음 장면에서 취조 당하는 햇해의 대응, 자신의 글을 스스로의 입으로 낱낱이 파헤쳐 일일이 설명을 덧붙여야만 하는 그 답답하고 아득하며 자존심 상하는 작가의 고통이 여실히 표현되어 아팠다. 그렇기에 그 고통을 전부 감내하여 다시 현실로 돌아와 또 글을 쓰는 그가, 그 절박함이, 절절하게 와닿지 않았다. 연출 문제이기도 하고, 범초가 절망과 허망의 깊이를 너무나 잘 표현해준 덕분이기도 하고, 비명처럼 살아야 한다고 위로와 동정만을 반복하는 여진홍의 대사들이 불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이 가까이에 여럿 있고, 나조차도 가까운 과거에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류의 말들이 나락까지 무너져 마지막 선택만을 갈구하는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안다. 물론 이 극을 만든 이들이 전하고 싶었던 주제가 무엇인지 이해는 한다. 하지만 절망의 끝자락에 마지막으로 피어오르는 희망을 이야기하기엔, 그이의 인생과 마지막, 그 시대의 아픔이 너무 빤하게 익숙하다. 이런 주제의식을 말하기 위해 굳이 시인 이상을 다뤄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넘버가 취향이어서 한 번 더 보고 싶긴 한데,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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