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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달을 쏘다.
in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2017.03.21 8시공연
캐슷보드 사진은 생략한다. 박영수 윤동주, 송문선 이선화, 김도빈 송몽규, 조풍래 강처중, 김용한 정병욱. 슈동주.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윤달쏘 4연 첫공이자 자첫.
"시를 쓴다 / 삶이 쓰다 / 달을 쏘다"
윤동주 시인을 모르는 한국인이 있을까. 학창시절에 누구나 그의 시 한 소절 쯤은 잔잔하게, 때로는 열렬하게 읊조린 적이 있으리라. 근래 다양한 장르에서 다뤄지는 인물이기도 한데, 위태롭고 절박한 '청춘' 이었다는 점이 훌륭한 작품소재가 되고 있는 듯하다. 막상 청춘이라 불리우는 시절을 살고 있는 본인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언어와 연출이기에 씁쓸함이 더 크지만 말이다. 그 안에서 스스로 내뿜어져 나오는 청춘의 고통이라기 보다는 먼 훗날 아득한 과거를 돌이키며 찬란하고 눈부시게 포장한 아름다운 청춘의 이미지가 강하다. 비단 이 극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이 그러하기에, 정작 청춘들은 아프게 애틋하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세상이 우리에게 건넨 거친 농담을 어떻게든 웃어넘기려 했던 젊은 날 누가 기억할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극이 별로였는가, 묻는다면 결코 아니라 답하겠다.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고, 울음소리를 삼켰고, 관극 후의 여운도 길다. 윤동주 시인의 아름다운 시가 슈동주의 낭랑한 목소리로, 강렬한 감정으로 농도 짙게 가슴을 쳤다. 그 절망스런 시절을 살아내야 했던 청년이 지녔을 고민과 고뇌와 부끄러움과 반성과 고통을, 지나치게 무겁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았다. 화려하고 발랄한 밝음, 그 이면의 두터운 어둠을 대비하여 보여주는 방식이 촌스럽지 않았다. 넘실대는 격변의 시절 속 감정들이 무대를 한층 생동감 넘치게 만든다. 적절한 순간의 무대 전환과 조명 연출, 단정한 영상과 맞물려 다양한 장소를 표현해내는 무대 연출 등이 극의 조화를 이끌었다. 음과 감정선을 잔잔하게 쌓아올린, 편안하지만 인상적인 넘버들 또한 무척 취향이었다. 여러 번 반복 되는 가사 속에 실리는 감정들이 차곡차곡 중첩된다. 하나의 목소리가 두 사람, 세 사람,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풍성하게 울림을 남긴다. 시가, 언어가,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타국의 시간 타인의 시선 속에 내가 잊었던 것들"
얼마 전에 본 서예단 작품, 잃어버린 얼굴과 조금은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관극이었다. 넘버는 윤달쏘 쪽이 더 취향이었으나, 안무는 잃얼이 훨씬 풍성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의상부터 앙상블의 동작들까지, 한국적인 美가 잃얼에 더 잘 녹아내렸다. 두 작품이 각자의 매력을 가진 좋은 극이어서, 앞으로도 올라올 때마다 매번 챙겨볼 것 같다. 서예단의 다음 작품인 신과 함께 역시 무척 기대 중이다.
서예단 작품은 중앙이 정말 좋은 것 같다. 시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11열임에도 cj토월극장이 작은 편이어서 자세한 표정은 힘들어도 배우들의 눈코입 식별은 다 됐다. 음향도 음량이 조금 작은 것 빼고는 앞자리보다 차라리 뒤가 나았다. 잃얼 때 합창 가사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날 관극에서는 놓치는 가사 없이 전부 다 잘 듣고 왔다. 뒷자리가 예당 극장 특유의 쿰쿰한 냄새도 좀 덜 난다. 아, 영상 키고 끌 때 좌석 바로 위에서 영상기기 소리가 달칵거리는 건 있었다. 1층 10열 즈음부터 2층 뚜껑이 덮이더라고.
"한 줄 시로 담고자 했던 나의 꿈이 부끄러운 고백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선화라는 가상인물의 활용이 진부했고, 2막 후반부 몇몇 장면들의 연출이 다소 자극적이었던 점은 아쉽다. 시체를 쌓아올리는 듯한 장면, 피폐해진 윤동주 뒤쪽으로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잔인하고 지독한 말을 내뱉는 장면, 정신대를 연상시키는 끔찍한 장면 등이 너무 폭력적으로 다가와서 순간순간 몰입이 깨졌다. 연출의도가 머리로는 완벽하게 이해가 되건만, 감정적으로는 유달리 끔찍하게 다가와서 스스로도 조금 의아했다. 억압, 폭력, 고통 등에 대해 더 민감하게 포착하고 반응할 수밖에 없는 최근 사회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수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역사의 아린 부분이, 늘 새로이 아프고 힘겹다. 이 예민함과 날 선 고통이, 다시금 과거를 인지하고 현실을 마주하며 미래로 나아가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불편하기보다 다행스럽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떤 지점에서 불편하며 어떻게 시정하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의견제시를 정확하게 못할 때는 자괴감이 든다.
"우리가 가야할 길 비록 어두워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서럽도록 시린 길을 먼저 가야만 하네"
이 극을 비롯하여, 영웅이나 곤투모로우 등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속에 '일본'의 제국주의 입장을 드러내는 넘버와 장면이 삽입되는 것도 불편하다. 굳이 그렇게 길게, 화려하게, 웅장하게, 전범기를 흔들며 제국신민의 이야기를 보여주어야만 하는 걸까. 왜, 굳이?
"통쾌하다 부서지는 저 달빛이 / 우습구나 쪼개지는 저 그림자"
윤달쏘 오슷이 필요하다ㅠㅠ 계속 유투브의 뮤비 및 프레스콜을 '듣고' 있는데, 정식 ost가 나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서예단 작품 중에서 오슷이 나온 게 있었던가. 절대 놓치고 싶지 않기에 첫공으로 잽싸게 보고 온 보람이 있다. 이제 다른 리뷰들 읽어보며 찬찬히 되새김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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