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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Musical

팬텀 (2017.02.10 8시)

누비` 2017. 2. 11. 19:38


팬텀

in 블루스퀘어 대극장, 2017.02.10 8시 공연





전동석 팬텀, 김순영 크리스틴, 이희정 카리에르, 정영주 카를로타, 이창희 샹동, 김주원 벨라도바, 윤전일 젊은 카리에르, 이윤우 어린 에릭. 동팬텀/동에릭, 순크리, 희정카리, 영주칼롯, 창희샹동, 주원벨라. 동순영 페어 자첫자막. 팬텀 재연 자넷. 



한 주 내내 컨디션이 엉망진창이었으나, 마티네에 집중되어 있는 동순영 페어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여서 온 힘을 끌어모아 공연장에 앉았다. 원래 오블을 잡았지만, 통신사 50% 할인 끝나기 30분 전에 고속도로 안 중블 자리가 하나 딱 났길래 그 자리로 갔다. 매번 왼블에 앉다가 중블 오른쪽에 앉으니 무대 전체가 들어와서 좋았다. 하지만 역시 6열도 앞열성애자인 내 기준에서는 멀었고, 무엇보다 음향이 왼블 앉았을 때보다 불만족스러웠다. 이건 이날 초반의 음향사고의 이유가 크다. 오버츄어 때 음향 나만 이상했나? 뭔가 눌린 듯, 일부 악기 쪽의 마이크가 제대로 안 켜진 느낌이어서 엄청 답답했고 덕분에 동팬텀 노래까지 뭉개졌다. 개인적으로는 공연을 다시 시작해야 했을 정도라고 생각하는, '음향사고'였다. 2막 시작할 때는 멀쩡했던 것으로 보아 오버츄어 때 뭔가 실수가 있었음이 틀림 없다. 비스트로 초반에 샹동이랑 카리에르 대화하는 장면에서 누군가의 마이크에 옷 찍찍이인가? 암튼 뭐가 붙어서 거슬리는 잡음소리 크게 여러 번 난 것도 있었고, 여러모로 음향이 아쉬웠다. 





※스포있음※



순크리는 역시, 노래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우아한 소프라노의 음성에 마음이 절로 녹아내렸다. 2막 마이트루럽의 따뜻하고 포근한 목소리는 마치 어둠 뿐인 지하에 한 줄로 흐릿하게 새어나오던 작은 빛이 순간 무너지듯 눈부시게 쏟아져내리는 햇살 같아서, 내가 팬텀이었다면 가면에 가져다대는 그 조심스러운 손짓 만으로도 순순히 가면을 벗었을 것이다. 동팬텀이 크리스틴의 손을 차마 내치지 못하는 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아름다운 음악이 찬란한 황금빛으로 어둠으로 잠식되어 있던 그의 몸 주위를 감싸안듯 꽁꽁 묶어버렸기에 옴짝달싹 못하고 붙들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홀린 듯 감화되어 결심을 하고 제 손으로 가면을 벗어버린 동팬텀은, 순크리의 비명에 절규하고 절망한다. 차마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숲의 나무를, 별빛 반짝이는 장막을 부수고 걷어낸다. "다 필요없어!!" 하고 비명처럼 소리지르는 디테일 후 분노를 담아 시작한 비극맆. "눈물이 되어" 부분에서 울먹이듯 노랫말 살짝 먹으면서 망연한 표정으로 걸어나온다. 아름답던 크리스틴을 회상하며 보드랍게 속삭이듯, 꿈꾸듯 황홀하게 노래하는 모습에서 이 배우의 완급조절이 참 풍성해졌음을 느꼈다. 점차 강해지고 짙어지는 목소리, 배신감과 운명에 저주하며 광기어린 목소리를 내다가도 그런 반응을 이해하며 체념한다는 듯 떨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길고 깨끗하게 뽑아내는 "나의-" 끝음과 중간 공백, 마지막 "크리스틴-" 까지. 드라마틱한 전개와 연기에 같이 휩쓸리며 몰입했지만, 그 아픈 감정이 가슴으로 와닿진 않았다. 이 넘버는 초반에 듣는 이의 감정을 확 휘어잡아야 하는데, 연출 상의 동작들이 이 모든 게 기술적인 '연기' 임을 인지하게 만들었다. 



동팬텀 얘기를 더 하고 넘어가자면, 12월에 자둘했을 때 자첫이었던 동지혜 첫공에 비해 엄청 다듬어졌다는 평가를 했었다. 하지만 한 달 반만에 만난 이날 공연에서는, 전반적으로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있어서 에릭이라는 캐릭터에 공감이 되질 않았다. 폐쇄적인 삶 속에서 사회성조차 얻지 못한 캐릭터임을 감안하더라도, 극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일관성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동팬텀의 성격은 너무 들쭉날쭉한다. 어린아이처럼 제 멋대로 행동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감정이 휙휙 변하는 장면들에서 표현하는 변화의 방식이 기교에만 치중되어 있다. 1막에서 크리스틴의 노래를 듣고 황홀해하는 감정에만 크게 공감했고, 나머지 장면들의 감정선은 산발적인 느낌이 강해서 다중인격 같다는 인상마저 들었다. 물론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자 리뷰다. 전동석 배우의 공연을 보면서 늘 그가 지적받던 '연기'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갖지 않았었는데, 이날 관극에서 처음으로 '싸우고' 왔다. 관객으로서 아끼는 배우에게 거는 기대치가 있는데, 그 한계선을 깨주지 못하고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동팬텀 자막 관극이어서 아쉬움이 큰데, 차기작에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해야겠다. 



다시 순크리 얘기로 넘어가면, 이날 내고향을 들으면서 펑펑 울었다. 아버지와 함께 처음 오페라하우스에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 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 표정을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 저 감정 뭔지 아는데. 반짝거리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순크리. "그곳에 가면 그냥 알 거라고," 하고는 "그건 이 곳 / 음악이 있는 곳" 하는데 울컥 하더라. 근래 잊고 있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면 늘 느끼던 벅차오르는 풍만한 감성이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그래, 음악이 이토록 황홀하고 아름다운 예술이었지, 그래서 무대를, 뮤지컬을 그토록 사랑했었지,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온 몸을 휘감았다. "달콤한 바이올린 선율이 온 세상 가득 한 곳 / 음악이 흐르는 이 곳 / 내 고향" 하며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에 지치고 힘든 마음이 녹아내렸다. "거대한 콘트라베이스 / 위대한 소프라노" 를 부르는 순크리의 목소리가 풍성하고 단단해서 속으로 열렬히 찬사를 보냈다. 초연의 '가냘픈 소프라노' 를 이렇게 바꾼 거 정말 마음에 든다. 이 넘버가 이렇게까지 강렬하게 다가온 건 처음이었다. 그런 순크리의 노래를 들으며 "이제야 완벽한 이 곳 / 내 고향" 이라 황홀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동팬텀의 감정선도 너무나 떨리고 애틋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오페라하우스의 무대를 '내 고향' 이라 명명하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의 빛깔이 이 듀엣을 통해 하나로 어우러지며 눈부시게 황홀한 색감의 빛을 만들어냈다. 정말이지 극도로 아름다운 씬이었다.  



2막은 발레씬이 정말 좋았는데, 주원벨라를 재연에서 드디어 만났다. 혜민벨라도 섬세하고 아름답긴 한데, 주원벨라가 지닌 특유의 아우라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처음 카리에르가 손을 뻗었을 때 주저하고 망설이는 연기도 좋았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다가 결국 푹 빠져버린 사랑의 달콤함을 표현해내는 표정과 몸짓이 사랑스러웠다. 전반적으로 오케가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에 타이밍을 좀 못 맞추는 게 거슬렸다. 자첫 이후로 계속 부음감님이셨는데, 여러모로 아쉽다. 창희샹동은 초반에 비해 정말 좋아졌고, 노래도 본인 실력 다 발휘하게 된 것 같은데 크리찾송은 진짜 여전히 계속 별로다. 희정카리는 넌내아들 넘버가 정말 좋은데, 이분 대사톤이 극불호여서 아쉽다. 왜 모든 대사를 그렇게 급하게 쫓기듯 하시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 딕션 뭉개지는 걸 가장 싫어하는 취향을 가진 관객이라서, 이분 만날 때마다 괴롭다. 영주칼롯은 노래가 살짝 아쉽긴 한데, 연기 노선은 꽤 마음에 든다. 노래를 못하지만 무대 한가운데의 디바가 되고 싶어하는 이 캐릭터를 아주 현실감 있게 표현해서, 몇몇 장면에서는 그 비운의 인생에 동정심이 들기까지 했다. 디바를 향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다른 의미로' 노력해서 오페라하우스 극장주의 아내로 당당히 입성하고, 당신의 팬이라는 팬텀의 말에 진심으로 기뻐하기도 한다. "이게 왜 니 오페라하우스야? 니가 돈 냈어?" 하는 대사는 시원하기까지 할 정도다ㅋㅋㅋ 칼롯 아니면 누가 이런 대사를 감히 팬텀에게 할 수 있겠냔 말이다. 이런저런 애드립도 많았고, 숄레와의 케미도 좋았다.





이날 내 고향 넘버를 들으며,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무대 위에 올리는 모든 종류의 극은 '종합 예술' 임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 팬텀 재연은, 아쉬움이 크다. 각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한데 모여 시너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잦은 장면전환과 필요 없는 대사들, 집중력을 깨뜨리는 앙상블의 동선들 같은 것들이 극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산발적인 장면들이 극의 캐릭터가 아니라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와 그 뒤 연출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이 극을 여러 번 봤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결코 아니다. 1n번을 본 다른 극들을 관극할 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극 외적인 요인들이 자꾸 연상된다는 것은, 팬텀이 잘 만들어진 극이 아니라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극을 보면서는 이제 그만 봐야겠다 다짐하면서도, 공연장 문 밖만 나서면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역시 '오페라극장 지하에 사는 유령' 이라는 소재가 너무나도 취향이기 때문이겠지. 인터 때 이를 갈면서 아무리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해도 재연은 이 공연으로 자체자막 하리라 결심했으면서도, 집에 오면서 은팬텀은 그래도 한 번 더 보고 자막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던 나 자신이 참 싫다ㅋ 단호하게 이날이 자막이었노라 말하고 싶지만, 은팬텀과 신칼롯, 한 번은 더 만나고 떠나보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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