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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Musical

팬텀 (2017.01.18 8시)

누비` 2017. 1. 19. 23:45


팬텀

in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2017.01.18 8시 공연





박은태 팬텀(에릭), 김소현 크리스틴, 박철호 카리에르, 정영주 카를로타, 이창희 샹동, 황혜민 벨라도바, 엄재용 젊은 카리에르, 이윤우 어린 에릭. 은팬텀/은에릭, 소현크리, 철호카리, 영주칼롯. 재연 팬텀 자셋이자 은팬텀 자첫. 은소현 페어. 일명 뮤비 페어랄까. 재연 개막 전 공개한 이 뮤비가 류령으로 남은 초연 팬텀을 떠오르게 해서, 고맙다기 보다는 속이 쓰렸다. 그나마의 초연 하이라이트 영상은 대체 왜 중간에 지워버린 걸까. 은소현 페어의 '내 고향' 넘버는 본공연에서도 좋았다. 두 배우의 음색 합이 잘 맞아서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아름답게 공간을 채우는 듯했다. 성악 발성이 주가 되어야 하는 극이기에 은팬텀 캐슷발표를 듣고 내심 걱정을 했었는데, 이 뮤비를 보고 오히려 기대치가 올랐다. 깨끗한 미성으로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노래가 팬텀의 다른 넘버들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게다가 박은태 배우는 성실하고 치열하게 분석하여 캐릭터의 설득력을 높이는 감정과 디테일에 가장 큰 강점이 있기에, 상당히 만족스러운 취향의 '에릭'을 만날 수 있었다. 동일한 캐릭터를 다르게 표현해내는 배우들 덕에, 뮤덕은 오늘도 회전문을 돕니다^_ㅠ





하지만 역시, 전반적으로 아쉬운 점이 너무나도 많다. 이 극은 볼거리, 들을거리, 즐길거리가 차고 흘러 넘치는 화려한 종합세트 같은 공연인데, 장면마다의 퀄리티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데다가 연출이나 반주 등의 요소들이 지루함을 느낄 만큼 늘어진다. 이것저것 다 때려넣어 보여주면 관객들이 좋아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욕심을 과하게 부렸다. 초연의 좁고 답답하던 충무 무대가 아니라 탁 트였지만 멀고도 깊은 블퀘 무대를 '올려다보고' 있자니, 조잡한 난삽함이 보다 세련된 번잡함으로 바뀐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 파리의 오페라하우스라면, 좀 더 고풍스럽고 우아하지만 그 시대만이 지닐 수 있는 섬세하고 풍성한 아름다움을 고민해서 보여줘야 했다고 믿는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무대 장치의 안전문제는 여전히 손에 땀을 쥐게 했고, 일부 의상들과 소품들이 무척 아쉬웠다. 이날은 커튼 무늬가 그려진 무대 막이 유난히 눈에 밟혔는데, 빨간 조명을 비춰서 무대 커튼 답게 보이기는 하지만 어지간하면 두텁고 고급스러운 커튼 하나 달지, 싶더라. 비용이나 관리 문제를 능히 짐작할 수 있지만, 티켓 가격 할인도 없으면서 그 정도 투자도 안하나 싶고. 먼지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막이 필요한 장면에서 무대 위에 서있는 배우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고. 아쉬워.



재연을 세 번째로 관극하고 있지만 여전히 편곡이 마음에 안 드는 걸 보면, 편곡에 대한 불호가 초연에 대한 그리움 혹은 익숙함 때문은 결코 아닌가보다. 초연 때는 배우와 맞추질 못하는 오케 박자가 매우 불만족스러웠는데, 그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음악 자체의 쫀쫀함을 포기한 듯하다. 잔잔하면서도 때때로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반주 자체의 강약조절이 부각되지 않는다. 다양한 악기의 음색이 들리지만 리듬이 단조롭고 반복적이라서, 배우가 만들어내는 완급만이 남는다. 그래도 익숙해져서 재연 자첫 관극의 충격은 옅어졌지만, 나이브하다는 느낌은 여전하다. 음향은 블퀘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퀄리티여서 감사할 뿐이다. 다만 폭죽 터지는 소리와 쏟아지는 불꽃들이 계속 지나치다. 





※스포있음※



은팬텀은, 우아하고 단호하며 '어른스러웠다'. 적어도 초반에는 말이다. 조셉 부케와 마주한 뒤 순간적으로 칼을 반 쯤 뽑았다가 주저하며 아니야, 대화로 해결해야지, 하는 느낌으로 칼을 집어넣으며 그로서는 최대한 호의적으로 휙 돌았는데 그 동작조차도 위압적이었다. 자신을 향해 "괴물이야!", "다들 여기 좀 와서 도와주세요!" 하는 식의 말을 쏟아내는 그를 보고는, 다시 관객석 쪽으로 뒤돌아서 결심한 듯 마음을 다잡고 칼을 뽑으며 망설임 없이 내리긋는다. '밤을 위한 준비(Dressing for the Night)' 마지막 부분에서 노래한 뒤 '내가 사람을 죽였어!!' 하는 듯 양 손을 앞으로 뻗어 부들거리는 손 디테일이 너무 좋았다. 역시 이런 류의 무대 특유 디테일들을 잘 살리는 배우다. 아, 자둘 때도 동팬텀이 이 장면에서 빨간 조명을 받는 옆쪽 부조를 보며 뭔가 연기 디테일 했었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안난다ㅠ 오버츄어도 그렇고 이 왼쪽 무대 위에 선 팬텀들은 '자신의 세계'에 뚜렷이 존재하는 느낌이라서 무척 취향이다. 지하로 내려온 카리에르에게 하는 언사는 정중하면서도 고압적이다. 카를로타의 발성연습 소리에 "부끄러워" 하는 등의 애드립을 하고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추함에 절망하여 "난 아름다움이 필요해" 하고는 카리에르를 따라가겠다 '부탁' 한다. 하지만 즉시 돌아오는 거절에 자조하며 부르는 웨인월. 묘하게 애새끼미(...)가 넘치며 고통을 날 것으로 뿜어내던 강렬한 동릭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잔잔한 표면 아래 무서울 정도로 끓어오르고 있는 분노가 소용돌이치며 표면 위쪽까지 선명한 파문을 자아낸다. 홈은 위에서 이미 좋다고 말하긴 했는데, 어른스럽던 은팬텀이 떨리는 감정으로 크리스틴의 목소리에 빠져들며 은에릭으로 녹아내리는 듯했다.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소현크리 동작이랑 똑같이 맞춰서 왼팔 들으며 미소 짓고 오른팔 들으며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는 그 행복함이 절절히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기쁨 가득한 표정으로 계단을 뛰어내려와 푸른 빛 맴도는 강렬한 조명을 뒤로 맞으며 얼굴을 숨긴 뒤 조심스럽게 운을 띄우는데, 대사 사이에 텀을 알맞게 넣으며 듣는 이를 몰입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엄청났다. 짘슈나 프랑켄에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연륜'이 훅 치고 들어오는 기분이어서 내심 혀를 내둘렀다.



푸가는 별로였다. 레슨씬도 그냥 쏘쏘. 비강 쓰는 법 알려주는 은팬텀 애드립에서 류팬텀 지뢰를 좀 밟긴 했다ㅠㅠ 크리스틴에게 엄청 후하고 온화한 스승이자 마에스트로여서 저절로 엄마미소가 지어졌다. 유아뮤직. 두 사람의 감정선이 엄청 반짝거렸다. 정말 둘이 좋아 죽는구나 싶었는데, 마지막에 제 손 위에 올린 크리스틴의 손을 보다가 암전 직전 고개를 꺾으며 키스를 암시하는 포즈를 취해서 깜짝 놀랐다. 은팬텀-소현크리 모두 넘나 어른들이어서 섬세하면서도 성숙한 매력이 흘러넘쳤다. 비스트로는 졤크리 만큼의 드라마틱함은 없었지만, 연륜 있는 소현크리의 솔로가 안정적이었다. 은팬텀은 영주칼롯의 노래에 아예 등지고 서서 귀를 막고 있었고, 모자 벗는 것도 잊은 채 열심히 크리스틴의 노래에 맞춰 손으로 지휘를 했다. 여전히 흔들리는 삼층 무대구조물 때문인지 노래 끝나고는 난간에 팔을 꽉 기대고 앉아있었다. 이그그품을 부르는 은팬텀을 보며 '뮤지컬 배우'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취향은 성악 발성을 베이스로 하는 풍성한 저음이지만, 뮤지컬만이 지니는 매력을 극대화하는 은팬텀의 노래에 새삼 뮤덕의 정체성을 인지했다. 소현크리는 좋은 집에서 귀하게 자란 외동딸 이미지가 강해서 '촌동네에서 올라온 순수한 소녀' 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향해 무릎을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하는 행동이 기본적으로 탑재된 아가씨였다. 크리스틴 전문 배우 답게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특히 카를로타의 추궁에 엄청 망설이다가 "가면을 썼어요," 하는 대사톤이 무척 '크리스틴' 다웠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2막 뱃노래. 운전하는 게 유난히 눈에 들어오더라. 넘버 끝내면서 침대 베일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가볍게 키스하는 손 끝이 바들거리는 디테일 좋았다. 카리에르를 향해 "이 레버 하나만 내리면 이 오페라하우스는 끝이야!" 하는 말은 완전히 블러핑, 허세였다.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뉘앙스랄까. 그럼 크리스틴도 죽을 거라는 카리에르의 말에 제 협박이 통하지 않았다는 듯 레버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크리스틴을 바라본다. 사람은 다양한 목적으로 태어난다면서 제 얼굴과 운명을 저주하며 신을 원망하여 하늘을 향해 삿대질한다. 전직 지저스의 기억이 설핏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난 크리스틴을 만나기 위해 태어난 거야" 하면서 침대 머리맡에 무릎 꿇고 앉아 흐느끼는 듯 웃는 듯한 소리를 내는 은팬텀. 벨라도라의 초상화 앞에서 부르는 웨인월 맆. 마지막 부분에서 분노하며 노래가 아니라 대사처럼 확 쏟아내는 노여움이 강렬했고, 배를 타고 퇴장하면서 부르는 마지막 음이 길고 안정감 있어서 행복했다. 칼롯을 죽이고 지하로 다시 내려온 은팬텀이 몸과 손을 덜덜 떨다가, 너무도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크리스틴을 마주하는 순간 가만히 잠잠해지는 감정선의 표현이 아주 유려했다. 피크닉. 순수한 만큼 더 아프게 다가오는 장면. "저 사람들은 누군가요?" 하는 크리스틴의 질문에 못들은 척 뒤돌아 서있는 에릭의 행동이 '마술의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유 때문임을 이날 깨달았다. "친구들이죠," 하고 빈말로 대답한 다음에 "진짜 친구들을 소개할게요," 하면서 동물들을 소개한다. 아침을 알리는 노란 부리의 새, 라거나 부엉부엉부엉이, 너구리, 등을 말하다가 위쪽 새를 가리키며 "저건... 나를 지켜주는 큰, 엄마 독수리에요" 하고 말하는 은릭 때문에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완전 무방비 상태였는데, 이러깁니까ㅠㅠ.... 소현크리의 표정 역시 그 대사에 동요한 얼굴이어서 감정이 크게 다가왔다. 내 사랑을 부르는 크리스틴의 목소리에 홀린 듯 제 얼굴을 가린 가면 위로 손을 올리는 은팬텀. 솔로 넘버 끝날 즈음에 또 손을 가져다 대고. 그 갈등의 감정이 여실히 드러나서 좋았다. 너무나 놀란 크리스틴의 얼굴에 오히려 신음 한 점 흘리지 못하고 애타게 바라만 보는 은릭이 만들어내는 정적이 엄청 아팠다. 비극맆의 절망. 알고 있는 결말임에도 너무나 비통하고 고통스럽다. 



총에 맞고 고통스러워 하는 은릭 연기가 일품이었다. 프랑켄에서 은괴는 묘하게 '생각하고 분석해서 연기하는' 느낌이 강한 몸동작 때문에 몰입이 살짝 떨어졌었는데, 은릭은 정말이지 총상 당한 사람 그 자체여서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과하지 않고 딱 적절한 느낌. 의중을 떠보려고 던지는 제 질문에 자꾸 핵심을 피하며 빙빙 돌아가는 카리에르의 답변에 냉랭한 비웃음을 입가에 띄우는 은릭. 하지만 파밍아웃을 듣고 나서는 마음이 확 풀려버리는 여리고 어린 아이일 뿐이다. 파밍 끝나고 카리에르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는 흐어엉, 흐어어, 엉엉엉, 울어버리는 은릭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데려다준다는 말에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은에릭. 개취지만, 피날레에서 카리에르의 손에 총을 맞고 떨어질 때 슬로우모션 걸린 것처럼 천천히 양팔 휘젓는 건 안했으면 좋겠다. 과해. 마지막 장면의 덜덜 떨리는 손까지, 디테일이 참 좋았다. 





전반적으로 극이 붕 뜬 느낌이어서 아쉬운 편이었지만, 은팬텀의 감정선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서 관극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나머지 두 사람의 크리스틴과 만들어내는 케미도 궁금하다. 류팬텀이나 동팬텀과는 전혀 다른 질감의 캐릭터여서 완전히 다른 극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은릭 만큼은 거의 흠잡을 곳이 없는, 아주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다른 페어로 또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관극을 했는데, 막상 공연장을 나오니 이 감정의 여운을 조금 더 오래 지속하고 싶다는 욕심도 든다. 이 극은 참 취향인데 여러 번 관극하기가 힘겹다. 감정적으로 참 쉽지 않은 극이다. 다음 4차 관극은 또 언제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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