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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더리퍼
in 디큐브아트센터, 2016.09.09 8시 공연
류정한 다니엘, 조성윤 앤더슨, 테이 짹, 김예원 글로리아, 정의욱 먼로, 정단영 폴리. 류다니엘, 엉더슨, 테짹, 예원글로리아, 의욱먼로. 류엉테. 류다녤 3차. 근 한 달만의 짹 관극.
와. 간만의 관극이라서 어쩔 수 없이 높아지는 기대감을 애써 진정시키며 착석했는데, 애드립도 넘쳐흐르고 감정선은 그보다도 더 깊고 짙은 정말 좋은 공연이었다. 류배우님 미모도 리즈인데다가, 여러 가지 노선을 시도하며 가장 다양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가감없이 선보이는 캐릭터성의 절정을 찍고 있어서 공연 내내 무척 신기하고 행복했다.
※전부 스포※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글※
문 열고 들어와서 책상까지 걸어가며 숨 넘어갈 듯 헐떡이는 애드립 추가한 엉더슨. 의자에 앉아서 오른쪽 다리 쫙 펴고 앉는 디테일을 자첫 때부터 좋아했는데, 코카인 흡입하고 절정에 달한듯 발 끝을 세우는 연기가 명확하게 들어온다. 다만 의자 높이가 좀 안 맞아서 앉아있는 태가 별로 안 섹시한 건 아쉽다. 코트 오른쪽 어깨를 휙 넘겨버리거나 하면 좀 더 시선 집중되고 좋을 것 같은데. 3열 정가운데 자리인데 생각보다 음량이 작아서 아쉬웠다. 음향이 나쁘진 않은데 미묘하게 안으로 먹어들어가는 느낌이라서 별로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엉더슨 넘버 부를 때 바람소리 너무 많이 들어가서 거슬린다ㅠㅠ 애정배운데 이러지 마요.... 이건 2막 넘버에서 얘기하도록 하고, 의욱먼로 역시 찰지다. 다만 대종먼로보다 객석에 대고 플래쉬 터트리는 빈도가 많아서 고개를 몇 번이나 돌려야 했다. 단영폴리 첫 등장에서 보여주는 날서고 거친 캐릭터는 아무래도 안어울린다. 연기도 힘이 좀 많이 들어가 있어서 대사가 살짝 뜨는 느낌이다. 하지만 '버려진 이 거리에' 넘버 후반은 좋다. 3차 관극인데 매번 똑같은 모습이라서 아쉬운 건 내 욕심인 걸까.
'춤추는 살인마' 잭 역할이 배나라 앙이 맞는 거지? 생각보다 춤 동작이 단조로워서 조금 섭섭했다ㅋㅋ 퇴장할 때 먼로 사진기 앞에서 포즈 취한 뒤에 씩 웃는데 갑자기 이미지가 확 선해져서 귀여웠다. 이날 객석도 많이 찬 데다가 남성 관객이 꽤 많은 편이라서 배우 애드립에 웃음이 많이 터져나왔다. 의욱먼로가 엉더슨의 "여기 앉아도 돼?" 라는 물음에 "마침 자리도 비어있네" 하고 킬킬거리는 애드립 좋았다. '더 끔찍한 사건' 넘버에서 앙들 춤을 드디어 제대로 봤다. 자첫 자둘 때는 중블 왼쪽이라서 벤치에 앉은 앤더슨과 먼로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앙들 군무를 보니까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엠뮤 넘버 특성 때문인지는 아직 가늠이 안되지만, 삼 때도 그랬고 이번 짹도 그렇고 앙들 떼창은 훌륭하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AR 같은 인상이 많이 든다. 하지만 군무는 정말 좋다. 슬슬 등장 타이밍! 오대오 가르마에 단정하게 리본까지 맨 양복을 입고 나타나 모두를 휘어잡는 류다니엘. 유난히 귀엽고 잘생겨서 새삼 심쿵했다.
사랑스러운 예원글로리아. 이날 공연 통틀어서 넘버 소화가 정말 훌륭했다. 환자를 보고 망설임 없이 칼을 꺼내든 류다니엘이 말한다. "난 의사야, 날 믿어." 그리고 덧붙인다. "생명을 살리려면 희생이 필요해." 라고. 류배우님의 연기를 좋아하는 수많은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작은 제스쳐, 소소한 대사를 통해 극 안에서 점층적으로 쌓아가는 '개연성' 이다. 이건 타고난 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컨텐츠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고민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돋보이는 능력이다. 한 시즌 내에서 여러 가지 노선을 시도하고 보여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긴 하지. 아무튼 이런 내용이 후반부의 대사나 상황에 맞물리며 극 자체의 완성도를 높여줬다. 계속 이야기하기로 하고, 들이대는 마담을 '아가씨' 라고 부르며 손을 가볍게 뿌리치고 '글로리아' 를 찾는 류다니엘. 생각보다 예쁜 예글에게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계단 위로 올라가서 과장스럽게 손키스를 날리고 반응이 좋자 신난 흥을 주체 못하고 다시 한 번 손키스를 던진다. 세 번째 손키스를 던지려다가 문득 제정신을 차리고 구십도로 인사한 뒤 글로리아를 쫓아가며 '런던의 밤' 리프라이즈가 이어진다.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는지 나열하는 글로리아를 보며 입을 꾹 다물고 :( 표정을 짓는 류다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심쿵. 신이 나서 "쉽게 말하자면," 이라고 운을 띄우고 이것저것 읊어대는 모습에 글로리아처럼 엄마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얼굴이 아이 같다며 신기하다는 글로리아의 말에 벼락 맞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꽉 부여잡는 류다니엘. 이 디테일 기억합시다. "날마다 만나겠네요," 잠시 정적. "날마다." 그리고 말한다. "오해하지 마세요. 당신이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ㅎ 거짓말. "글로리아, 그냥 불러 봤어요." 하고는, "글로리아~ 글로리아~" 흥얼거리면서 예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류다니엘.
잭과의 첫 만남. 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부분이 있는데, 류배우님은 유난히 '짹' 이라고 발음 안하시고 '잭' 이라고 선명하게 말한다. 예글이 "짹," 하고 부르는 말을 따라할 때는 똑같이 "짹이요?" 라고 발음하긴 하는데, 그 후에는 "잭을 만났어," 라는 등 된소리를 사용하지 않아서 뭔가 더 묵직하고 좋다. 글로리아의 밀고와 경찰의 배신. 이 부분에서 예글 마이크 한 마디 정도 안나온 것 같던데. 밀고당한 테짹이 글로리아를 찾아온다. 테짹을 밀치고 글로리아를 구한 류다니엘이 몸을 잔뜩 웅크린다. 예글이 고개 들려고 하니까 살짝 머리 누르며 "가만히 있어요," 라고 하는데 거기에 객석이 살짝 터졌다. 다시 얼굴을 들어올리는 예글의 머리를 이번에는 일부러 더 꾸우욱 누르며 "가만히 있어요, 위험해요," 라고 말하고 어설픈 느낌으로 이곳저곳 둘러보고 계단 위로 올라간다. "야 이 나쁜 놈아~ 놀랐잖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류다니엘. 그런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예글. 가슴을 부여잡으며 "아아, 가슴이!!!" 하고 부르짖는 류다니엘의 표정에서 싱글싱글거리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에 진짜 다들 빵 터지더라ㅋㅋㅋㅋㅋ 새로 만드셨다던 로봇연기 애드립, 대성공이시네요ㅋㅋㅋㅋㅋ 그리고 바로 넘버 들어간다. '어쩌면'. 눌러 부르시기보다는 듀엣에 맞춰 불러주셨다. 두근두근한 설렘보다는 상대를 사랑스럽게 보고 있음이 물씬 묻어나는 여유로운 어른남자 이미지라서 3차 심쿵했다. 다니엘보다 내 심장이 먼저 떨어질 것 같은 게 아주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구만. "눈을 감아" 라는 가사가 있는데 예글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기 전 앞을 보고 똑바로 서서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만세-처럼 양팔을 위로 들어올리는 포즈가 마치 이모티콘 같아 사랑스러웠다.
뒤에서 뛰쳐나오면서 "어뜩해, 나 뽀뽀했어!!" 라고 말하는 류다녤 애드립 때문에 제대로 터졌다. '이봐, 친구들아' 넘버 너무 사랑스럽다. 거만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며 "아뇨, 쪽지를 남겼어요" 라고 말하더니 황송할 정도로 풍성하고 울림있는 저음으로 노래를 이어갔다. 친구앙 중 한 명 붙들고 춤추면서 중앙으로 움직이는 것도 좋고, 의자에 올라서면서 맞은편에 선 앙상블 어깨 꽉 붙들고 자세 취하는 것도 귀엽다. 아, 어쩌면 넘버 마지막 부분 쯤에 가로등 꼭 붙들고 올라서더니 글로리아 백허그 하기 전 바닥 힐끔 보고 위치 확인하시는 것도 귀여우셨다. 고소공포증 그거 무섭죠ㅠ 퇴장하면서였나? 앙상블 손짓에 심장 부여잡는 디테일 또 해주시고, 친구들에게 깊게 손키스 한 번 날리고 거기 반응해주니까 다시 손키스 날리려다가 황장호 앙이 "그만 하고 가라, 늦겠다" 라고 센스 있게 고나리를 하니까 시무룩한 채 손 내리시는 거 진짜 너무 귀여웠다. 그만 좀 귀여워주세요. 1막 내내 광대가 내려가질 않네요. 예글 솔로 '바람과 함께'. 이 넘버에도 참 대놓고 복선이 깔려있다. "지나친 희망은 절망을 불러온다지만," 하면서 "아닐거야" 라고 말하는데 누가봐도 불행한 미래가 예견된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기에 다가올 절망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다. 실없이 이름을 불러대며 붙였던 멜로디, 바로 그 멜로디를 부르짖으며 불타는 건물을 향해 절규하는 류다니엘. 비극적인 이야기.
자켓만 벗고 취조실 의자에 앉아있는 류다니엘. 표정이 되게 묘했다. 웃는 듯, 우는 듯. 엉더슨의 짜증과 폭력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금단증상을 보이는 엉더슨의 모습에 담담한 척 증상들을 읊어대면서 비아냥과 한심함을 얼굴에서 숨기지 않는다. 류다니엘의 뒤통수 머리카락을 붙들고 확 당기는 엉더슨의 행동은 위화감도 없고 잘 어울린다. 어른이랑 애가 대화하는 느낌이긴 했다, 이 날 류다녤 노선이. "그 쪽의 권위자신가?" 라는 물음에 노래가 아니라 대사로 "적어도 지금은." 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데 또 심쿵. 7년 만에 돌아온 런던에서 다시 만난 글로리아. 마지막에 "당신이 준 헛된 희망 때문에" 더 절망에 빠졌다고 하는데, 그거 말고는 다니엘이 그렇게 잘못한 건 없지 않나...? 잭을 배신한 것도 결국 글로리아의 자유의지였고, 테짹은 그저 거기에 대한 복수를 했을 뿐인데. 하지만 겉보기에도 엉망이 된 모습의 글로리아를 마주한 다니엘은 온갖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얼굴로 무릎을 털썩 꿇는다. "모두 나 때문에," 라고 울면서 노래한다. 2막에서도 그렇고 류다니엘이 무릎 꿇는 장면이 엄청 많다는 걸 이날 관극하면서 새삼 느꼈다. 무릎보호대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매번 꼭 하시길 바라요. 자꾸 무릎 꿇으셔서 눈높이 맞는 건 무척 행복했는데, 그거랑 별개로 걱정은 되니까요. 사람을 죽였냐는 물음에 정색하며 내치듯 말하는 류다니엘. "무슨 소리야, 나는 의사야!" 이어지는 추궁에 "포기를, 했었어" 라고 짓씹듯 내뱉으면서 절망하는 표정을 짓는다. 히스테리컬한 표정으로 한쪽 머리에 손을 짚는 디테일 너무 좋다. "그런데 그가 나타났어!" 하고 무릎을 꿇는데, 위치가 너무 오른쪽이었다. 테짹 등장하는 틈 바로 앞이 아니라 객석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치우쳤다. 테짹의 웃음소리에 류다니엘의 웃음소리가 점차 겹친다.
2막. 류다니엘의 연구소. 질질 시체를 끌고 와 실험대 위에 올려놓고 새하얀 가운으로 갈아입는다. 역시 새하얀 장갑을 양 손에 끼고 신경질적으로 시체를 파헤친다.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된 것처럼!!" 라며 폭발하듯 말하고 "운명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라고 울먹이듯 맺는 대사.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네. 아니 근데 내가 류빅을 못보긴 했지만, 진짜 딱 그 때 그 미모이신 거 같던데...? 왜 혼자 예뻐지고 젊어지시고 다 하시는 건가요ㅠㅠ 아무튼 벼락 쾅 내리치고 먼로랑 앤더슨 퇴장한 뒤 입구로 등장하는 테짹. '오랜만이야' 이 넘버에서 마치 짹이 욕망이자 유혹인 양 떨쳐내려고 하는데, 지난 공연에서는 두려움이 크게 보였다면 이날 공연에서는 죄다 알면서도 그저 외면하고 거부하려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가 "희생" 이라는 테짹의 단어에 류다니엘이 오른쪽 위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크게 뜨고 혹한 표정으로 천진하게 따라한다. "희생," 이라고. 마치 깨달았다는 듯,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라는 듯한 얼굴이다. 걸려들었다는 듯 씩 웃으며 테짹이 다시 반복하자 이번에는 왼쪽 아래로 고개를 돌리며 깊은 저음으로 눈을 번뜩이며 무겁게 읊조린다. "희생-" 이라고. 와, 컨프롱인 줄 알았다. 그 짧은 순간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내보이는 상반된 모습을 보는 순간 발 끝까지 전율이 일었다. 내가 뭘 본 거지, 싶더라. 극 자체의 대사와 가사에 반복을 통한 복선이 깔려 있긴 하지만, 그걸 이토록 세련되고 임팩트 있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했다. 객석에서 등을 돌린 채 서있는 하얀 가운의 뒷모습에서 고민이 보였다. '계약' 을 맺는 악수의 의미를 알고 있다. 넘버 후반부에서 번뜩거리는 눈빛으로 이미 동조를 충분히 내보였지만 마지막 순간 그 무게를 느끼고 잠시 정지 상태에 있다가 결심을 다잡은 듯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이고 손을 맞잡는다. "우리, 계약한 거야!" 라는 목소리가 정확하게 맞물린다. '사냥을 떠나자'. 자신이 죽여줄테니 고르기만 하라며 다니엘에게 선택을 종용하는 테짹. 본공첫공이었던 자첫 때는 여자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아무나 휙 가리켰다면, 자둘 그리고 이날 공연은 여자들을 쓰윽 훑어본 뒤 주체적으로 '선택' 한다.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입꼬리에 단호함과 신경질적인 고집스러움이 맺힌다. 벽에 손을 짚은 채 테짹의 살인을 똑똑히 목도한다. 이제 니 차례라며 손짓하는 테짹을 향해 그래 그래야지, 라는 듯 고개까지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여자의 시체 앞으로 걸어간 뒤 그 앞에 주저 앉아 칼을 치켜 올린다. 하지만 순간의 멈칫거림. 치켜 올린 오른팔이 부들부들 떨리며 칼을 툭 떨어뜨린다. 이 부분에서 다니엘이 망설이는 순간의 전후로 테짹 목소리의 색감에 차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음이라서 목소리 변화 등이 어려운 건 알지만 너무 똑같이 넘버를 소화하니까 대사 전달이나 테짹 감정이 정확하게 와닿지가 않아서 아쉽다. 장기를 꺼내고 서로 마주보며 광기 어린 웃음을 하이톤으로 내뱉는 두 사람.
'회색도시'. 엠뮤 노래는 매력적이긴 한데 확실히 내 취향에 부합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좀 들쭉날쭉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반주 자체는 안정감 있게 이어지는데 노래 멜로디가 귀에 잘 익지 않아서 흐릿한 인상으로 남는다. 싸비 부분에서 앙들 떼창이 섞여 탄탄하게 받쳐 주면 풍성해져서 좋았다. 가방을 들고 돌아온 류다니엘과 예글의 대화. 서로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그 팽팽한 긴장감이 날카롭다. 예글이 나간 뒤 "다니엘, 너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라는 자책조의 눈물 섞인 축축한 목소리. 솔로곡, '멈출 수 없어'. 묵직하고 울림통 큰 저음을 눌러담는 노래를 들으며 어쩜 저런 목소리를 지녔을까 감탄하다가, 객석을 등지고 실험대에 걸터 앉아 이어부르는 노래에 담긴 감정선에 완전히 푹 빠져들었다. 글로리아 때문에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건지, 아니면 글로리아의 핑계를 대며 본인의 내면을 쫓아 여기까지 온 건지, 명확하지 않다. 이날은 후자에 가까운 다니엘이긴 했지만 이 모든 일의 구심점은 결국 글로리아다. 노선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 잠시만 눈 감으면 돼" 라는 가사가 어쩌면 넘버에서 글로리아에게 했던 가사와 아주 비슷해서 심장이 덜컹했다. 비참한 현실에서 눈을 감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라고 했던 그가, 양심과 신념에서 눈을 감고 오직 한 사람 글로리아 만을 위해 뭐든 하겠다고 말한다. 설령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일지라도, 그 '무엇이든' 말이다.
테짹 솔로, '이 밤이 난 좋아'. 늑대 울음 소리. 새하얀 옷을 입은 여앙들의 몸 한구석에서 새빨갛고 긴 천을 끌어낸다. 자극적이고 인상 깊은 연출. 다니엘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실려나가는 예글. 그가 찾던 다니엘은 시체 옆에서 정신을 놓은 채 앉아 있다. '기도'. 글로리아의 노래를 들으며 역시 알고 있었구나,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류다니엘. "차라리 날 죽여달라" 는 예글의 말에 놀라 뛰어올라가려 하지만 애써 진정하고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다. 웃게 해주고 싶었는데 울리고 말았다며 울먹이는 류다니엘. 이 넘버 제대로 저음으로 눌러 불러줘서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심쿵하며 눈물도 뚝뚝 떨어지더라. 액자식 구성. 자백 같은 고발을 결심하고 진행한다. 이어지는 엉더슨 솔로, '이 도시가 싫어'. 엉더슨 노래할 때 바람소리가 너무 많이 섞인다. 이날 유난히 심하기도 했는데, 'ㅅ'이랑 'ㅊ'은 정말 빠뜨리지 않고 죄다 바람소리가 들어가더라. 그냥 강하게 다 발음을 해버리니까 오히려 가사 자체가 거슬리는 느낌이었다. 덤덤하고 담백하게 부르는 넘버들에서는 무척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msg를 팍팍 섞어야하는 대극장 넘버에서는 딱 쥐약인 버릇이 있어서 아쉽다. 대극장에서 계속 보고 싶은데 좀 어떻게 고칠 생각은 없으신건가...ㅠㅠ... 그래도 그 발음이 없는 부분 노래는 또 취저라 결국 피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연기적인 측면에서 단영폴리에게 느낀 아쉬움이 엉더슨에게도 존재한다. 어쩌다보니 이번 시즌은 끝까지 엉단영 페어만 보게 될 것 같은데, 절절하고 아름답고 안타까운 감정선이 가슴을 울리기는 하지만 매번 너어무 똑같다. 회전문러가 욕심을 부리는 거라고 비판받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 3달 동안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가 변화 혹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비판받을 일이 아닐까 싶다. 매번 노선이 같으니 할 말도 없고 그냥 무던하게 바라보게 된다. 캐릭터를 고민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아서 아쉽다. 단영폴리의 '아주 오래 전 얘기' 넘버는 참 좋다. 앤더슨이 자리를 뜨고 류다니엘이 폴리를 데리러오기까지 오케가 깔리는데, 여기서 음이 이상한 게 두어번 있었다. 넘버 리프라이즈 겹치면서 이어질 때 오케 소리가 너무 산만한데 편곡 자체를 일부러 그렇게 한 건가? 폴리의 시체를 끌어안고 절규하는 앤더슨 옆에서 기사 건수 나왔다는 듯 비식 웃음을 흘리며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는 의욱먼로는 역시 기레기의 끝을 보여줬다.
클라이막스. 스포송. '내가 바로 잭'. 혼란에 빠진 얼굴이지만 광기 깃든 미소를 입가에 띄운 류다니엘이 연구소로 돌아온다. 목 끝까지 채웠던 셔츠의 단추는 서너개가 풀려있고, 머리는 온통 젖어있다.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잘 안 보였지만, 젖은 앞머리 사이로 번뜩이는 안광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현실을 부인하며 그럴 리 없다는 듯, "살인을 했어야지!" 하고 추궁하지만 테짹은 냉정하다. 드디어 진실을 마주하고 제 입으로 자기방어기제를 낱낱이 해체시켜버리는 류다니엘. 류테 노래 합도 그렇지만, 동작 합도 거의 완벽해졌다. 지팡이에서 칼을 꺼내고 목에 겨누고 다시 원위치시킨 지팡이를 주고 받는 동선이 유려하고, 상대의 표정과 움직임에 따른 반응이 아주 자연스럽다. 엉더슨의 절규와 분노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비웃으며 "덤벼~" 라고 말하며 비꼬는 류다니엘. 우아하게 손짓하며 연구실로 들어오는 먼로를 가리키고, 그의 손에 나뒹구는 시체를 보며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 바닥에 드러누워 다리까지 굴러대며 깔깔거린다. 엉더슨 뒤쪽으로 테짹과 눈빛을 주고 받고 건들거리는 자세로 상반신을 일으켜 세운 뒤 무릎 위에 팔을 걸친다. 끙차, 하고 몸을 일으켜세우고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올백으로 이마를 내보인다. 슬슬 머리 정리가 필요할 것 같은 길이다. 쇠파이프를 건네주는 테짹에게 윙크를 날리고는 무기를 쓰윽 훑어본 뒤 양팔을 위로 올려 스트레칭까지 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다가 엉더슨을 향해 기습적으로 크게 휘두른다. 특종과 돈에 눈이 멀어 미쳐 있는 먼로가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자신의 행동에 움찔대는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놀려대며 칼을 건네 받는다. 테짹의 넘버를 휘파람으로 짧게 부르고는 장난치듯 먼로를 향해 휘잉, 하고 휘두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푹.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들려오는 비명 같은 예글의 목소리. 지난 관극 때는 다 너를 위해서라는 듯 엄하게 "글로리아!"라고 이악물고 불렀다면, 이 날 공연에서는 막 즐거움의 절정으로 치닫는데 방해받아서 짜증과 신경질이 섞인 어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여기서 대체 어떻게 결말로 이어가실지 순간 걱정을 딱 하는데, 글로리아의 어쩌면맆이 시작되는 순간 류다니엘이 칼을 들지 않은 손으로 가슴을 붙들더라. 세상에. 마치 처음 만난 그 때처럼.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 왼손을 살짝 들어올리면서 무서운 걸 봤다는 듯 새삼 흠칫 놀라며 칼을 내던지고는 길 잃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머리를 짚는다. 칼 떨어지는 소리에 객석을 등지고 실험대에 기대 앉아있던 테짹이 슬쩍 고개를 돌려 칼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외면한다. 머리를 엉망으로 헝크러뜨린 류다니엘은 아,아, 하고 말을 잇지 못한다. 다가오려는 그에게 총을 재차 겨누며 울먹이는 예글. 턱 아래에서 당긴 방아쇠. 그 쪽을 바라보지 않고 천장으로 시선을 두던 류다니엘은 질끈 눈을 감았지만, 짐작했던 결말을, 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을 천천히 마주한다. 비틀거리며 다가가 엎어지듯 주저 앉아 글로리아를 껴안는다.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사람이.. 다쳤어요...." 이 디테일은 텍스트로 들었을 때 별로 와닿지 않았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극적이고 아프더라. 두 번이나 저 대사를 반복하면서 가슴에 들끓는 감정을 제대로 토해내지 못하는 모습이 어찌나 고통스럽게 다가오던지. 절규하며 마지막 노래를 하는 류다니엘을 향해 망설임없이 총을 쏘고 나뒹구는 엉더슨. 예글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 천천히 곡선을 그리며 쓰러지는 류다니엘. "동정하지 마!!!!!" 라고 폭발하듯 토해내는 엉더슨의 울부짖음이 무척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절절한 이야기였다. 겨우 3차 관극이긴 하지만, 로맨스라 명명하기엔 거부감이 들었던 다니엘의 사랑에 동요하며 같이 아파한 건 처음이었다. 너무 고통스럽고 애처로운, 그러나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본인만을 위한 감정. 공감할 수 없지만 고스란히 전달 받을 수 있는 아픔.
콘텐츠를 아주 꽉꽉 눌러서 채워주신 덕분에 2시간반이 대체 어떻게 지나갔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왜 극이 갈수록 짧아지는 거죠. 왜 막공이 다가오는 거죠. 왜 서울막공 표가 손에 없는 거죠. 흐으. 커튼콜 때 한참의 정적 동안 아낌 없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내내 행복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다음주에는 드디어 창희짹을 본다. 이날이랑 거의 똑같은 자리라서 신난다. 역시 류배우님은 무대 위에 서계신 것만으로도 내 심장을 뛰게 하고, 목소리만으로 영혼을 울려주신다. 박제해서 매일매일 듣고 싶다아.... 덕간적으로 류다니엘 박제 좀 해주세요......
그나저나 간만에 밤샜다...... 너무 좋아서 리뷰를 꼭 써야겠다는 일념 하에 맥주 한 캔 붙들고 꾸역꾸역 썼다. 공연시간의 배를 들여야 포스팅 하나를 뱉어낼 수 있다니 너무나 비효율적이야ㅠㅠ 그래도 간만에 디테일 읊는 리뷰를 무사히 끝내서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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