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에드거 앨런 포
in 광림bbch홀, 2016.07.10 6시 공연
마이클리 포우, 윤형렬 그리스월드, 정명은 엘마이라, 장은아 버지니아, 최윤정 엘리자베스, 유승엽 레이놀즈, 포우 7차, 마포우 5차, 곰그리 3차. 마곰 페어막이자 마포우 막공.
막공을 챙기는 성격도 아니고, 주말관극 그것도 일요일 밤공은 지양하는 편이지만, 마이클리 포우의 마지막 만큼은 꼭 보고 싶어서 마막공을 관극했다. 정말정말 잘 한 일이었다ㅠㅠ 다른 배우들 모두 혼신을 다해 연기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마이클리 배우 본인이 무척 신이 나 있다는 게 눈에 보여서 공연 내내 가슴이 벅차오르고 행복했다. 소소한 디테일이나 표정을 머릿 속에 꾹꾹 눌러담아 기억하려 노력하면서, 마지막 공연이라는 아쉬움을 애써 달랬다.
※스포있음※
2-3분 늦게 시작된 공연. 오버츄어 끝 막이 올라가고 무릎 꿇고 있는 마포우의 모습. 음산한 분위기와 불길하게 울려퍼지는 까마귀 소리. 짘슈 나병환자 씬이 생각나는 프롤로그. 고통스럽게 이명이 들리는 귀를 틀어막으며 온몸을 둥글게 만다. 그 때 뒤에서 쏟아지는 빛. 엄마. 양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로 한 음 한 음 꾹꾹 눌러담아 부르는 달님의 시간. 오랜만에 보는 곰그리. 이 씬에서 마포우는 그리스월드 대사 중 자기 이름이 불릴 때나 인생 등의 단어에서 귀를 막는 제스쳐를 취하는 디테일을 몇 번 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1막 내내 몸을 확 숙이며 예민한 손동작으로 귀를 막는 디테일을 해줘서 좋았다. 매날. 늘 생각했던 건데 "진짜 천재를 보고 싶어요" 라는 대사에서 늘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를 찍는 어조인 게 아쉬웠다. 매날. 역대 최고라 단언한다. 신이 나서 마음껏 무대를 누비며 반짝이는 눈으로 다양한 동작들을 우아하게 내보이는 모습에 눈이 부셨다. 마지막이라고 양껏 내지르는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선명한 목소리가 온 몸을 울렸다. 하이라이트에서 순간 눈물이 뚝 흘러내렸다. 자신의 세상을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하고 표현하는 얼굴. 귀에 들리는 '천둥의 음성' 또한 그에게는 하나의 영감일 뿐이다. 모르그가. 억양이 늘 아쉬웠지만 표정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넘버. 마포우 때는 경감이 서있지 않았는데 오늘은 병광앙이 서있었고, 오랑우탄 하시는데ㅋㅋㅋ 바나나ㅋㅋㅋㅋ 거의 다 드시다가 마포우의 "쓱쓱싹" 소리에 못 맞추고 그냥 대충 손을 휘저으심ㅋㅋㅋㅋ 신나서 책상 앞에서 글을 쓰던 마포우가 잉크병 떨어뜨리고 잠깐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연기에 몰입했는데, 거기가 딱 앙상블 동선이라 살짝 걱정됐다. 다행히 사고 없이 누군가 주워간 것 같았다. 앙들 퇴장하고 폴짝 뛰어서 바닥으로 내려온 뒤 다시 책상에 앉아 양피지 같은 종이에 글을 막 쓰면서 입모양으로 돈, 어쩌고를 중얼거리는 입모양에 애드립을 양껏 하는구나 싶었다. 능력에 맞는 댓가를 달라는 요구에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편집장의 말을 듣고 인상을 확 구기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편집장이 퇴장하는 뒷모습에 대고 손가락 비비며 돈 달라고 하는 디테일은 매 공연 했던 거고.
무대 오른편에 곰그리가 포우 책을 레이놀즈에게 넘기고 성경책을 손에 든다. 원래 이쯤에서 마포우가 책을 펴고 읽고 있어야 하는데 아까 그 종이 낱장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가 "아무도 안보겠지만" 즈음부터 책을 펴고 읽으며 얼굴이 구겨진다. 팡 하며 책 덮는 소리. 이 부분 포우 노래 완전 취향이다. 첫 대면. 여기서 마포우가 악수해주는 그리스월드는 셩그리 밖에 못봤다. 이름을 듣고 책상으로 다가가 책을 던지고는, 원래 책상에 기대 서는데 이날은 의자에 앉더니 양발을 턱 책상 위에 올렸다. 그러다 댓가를 주겠다는 말에 벌떡 일어나 묻는다. "얼마나 줄 건데요?" 주님 앞에 그런 일은 행여나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답변에 암요, 그러시겠죠, 하는 한껏 비아냥 어린 표정을 짓던 마포우가 성호를 긋고 양손을 공손하게 앞으로 내밀며 다시 묻는다. "그래서, 얼마나 주실 건지 여쭸습니다." 지난번 토그리는 제 손으로 포우의 손을 슥 누르며 아래로 내렸는데, 곰그리는 그냥 눈만 똑바로 쳐다보며 대사를 했다. 포우의 맹비난에 하늘을 보며 가슴에서 우러나는 탄식을 뱉은 곰그리. 널심판해. 초반에 목상태가 베스트는 아닌가 싶었지만, 디테일이나 감정선이 늘어서 넘버 자체의 퀄리티는 더 높았다. "깃털 같이 가벼운" 하면서 긴 손가락을 나풀거리고, "독이 된다는 것을" 하면서 손목을 살짝 돌리며 독잔을 쥔 듯한 모션을 취한다. 레이놀즈 이마 때리는 디테일. 대사 참사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 "그 아가씨의 아버지" 라는 대사를 힘주어 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ㅋㅋ
눈이 멀었죠. 들을 수록 좋은 넘버지만, 역시 길다. 그래도 이 날은 모든 넘버가 이대로 끝나지 않기를 빌었기 때문에 집중이 흩어지지 않고 온전히 몰입했다. 마이클리 배우의 목소리는 독특한 힘이 있다. 고음으로 내지르는 락발성에 철성이 섞이며 날카로운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 무척 따뜻하고 홀리하다. 단단하면서도 우아하다. 날카로운 듯하면서 섬세하고 유연하다. 아름답다. 편집장을 찾아간 그리스월드. 언젠가부터 그리스월드가 편집장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몸동작을 하는데 썩 취향은 아니다. 돌출무대로 나온 마포우. 술을 들이키다가 까마귀 울음소리에 움직임을 딱 멈추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처음은 두려움. 순간 스쳐가는 옅은 영감. 완전히 변한 얼굴색, 그리고 눈빛.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가 휘청거리지만 단단하다. 의사앙이랑 대사하는 부분에서 늘 거슬리는 부분이, 마포우가 "잘 안되네요" 하면서 술병 내미는데 "술은 안됩니다" 라며 그 손을 밀어 다시 돌려주는 행동이다. 뎅포는 아예 술병을 내밀지 않던데 차라리 그 편이 더 현실적일듯.
함정과 진자. 이 넘버 박제 좀 해줘요ㅠㅠ 문장으로 잘 표현이 안되는 표정으로 괴로워하고 다급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절규하는, 그 목소리. 엄마, 엄마, 부르다가 날카로운 이명에 몸을 숙이고 괴로워하는 모습. "거칠게 이겨내리라" 하며 양 쪽으로 뻗는 손동작. 원없이 내지르는 비명 같은 마지막 고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안쓰러운 어깨. 계약 종료를 말하는 편집장의 말에 땀을 뚝뚝 흘리며 안된다고 양손을 세차게 흔드는 마포우. 지난번 뎅포는 여전히 취한 채 그 말을 제대로 인지도 못하고 그저 됐다는 듯 한 손을 휘 내저었다. 후임을 구했다는 말에 체념한 듯 손을 내리고 고개를 떨군 마포우는 그 이름에 얼굴을 들어올린다. 그리스월드의 무의미한 말들에 경멸 어린 표정을 감추지 않는 마포우. 스타일러스, 두 번이나 말했지만 차갑게 비웃는 곰그리.
신작발표회. 조용히 들어와 구석에 자리를 잡지만 자신을 알아보는 목소리에 손을 들어 진정시키려 한다. 그러나 곧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우며 그리스월드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고, 뒤돌아 나오며 그 손을 코트 앞자락에 그대로 스으윽 닦아낸다. 비둘기를 운운하며 명백하게 자신을 비웃는 모욕적인 곰그리를 아주 매섭게 노려보며 자리로 걸어가는 마포우. 갈가마귀. 최고였다. 정석대로, 보다 처절하게. 곡 자체가 지닌 흡입력이 무척 강렬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부르는 배우의 완급조절이 더해져야 곡의 진폭이 커지면서 훨씬 극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곡이기도 하다. 두렵다, 두렵다. 속삭이는 목소리. 뒷배경의 영상이 더해지며 어둡고 고독한 숲 속 어느 작은 집 안에 있는 듯한 상상이 든다. 문 두드리는 소리, 터져나오는 이름. Lenore, Lenore, Nevermore. 저도 모르게 포우를 쳐다보고 있는 곰그리. 그런 그를 정확하게 노려보며 쏟아내는 단어들. 감정들. 정적. 쏟아지는 찬사.
생경한 느낌에 손을 들어 뺨을 만지니 묻어나오는 물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눈물을 닦아낸 곰그리가 절망 그리고 자괴감에 빠져 있는데 들려 오는 찬사. 내 눈 앞의 천재. 앙들을 향해 걸어가고 손을 뻗어 진정시키려 하지만 이미 닿지 않는 자신의 목소리. 이 넘버에서 그리스월드가 이토록 비참해보인 건 처음이었다. 기운 없는 어깨, 경악으로 물든 눈동자, 눈에 띄게 수척해진 얼굴. 반면 앙들에게 둘러싸여 곰그리를 향해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씩 지어보이고는 코트 휘날리며 퇴장하는 마포우. 포우의 시에 대한 충격만 남긴 채 흩어져버리는 사람들. 홀로 남겨진 그리스월드. 함진맆. 이날 그리스월드 넘버 중 이 곡이 제일 좋았다. 감정선이 노래에 맞춰 따라가는 것도 좋았지만, 넘버 중반부에서 바닥의 네모난 조명을 찰나의 순간 쳐다보고는 결심한 듯 그 안으로 들어서며 "신께서 주신 내 사명" 에 따라 포우의 작품을 심판하리라 결심하는 부분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충격적인 작품이 "욕망에 눈뜨게" 하여 유혹당했음을 고백하면서도 그걸 "인정할 수 없다" 고 절규한다. 흔들렸지만, 자신이 평생 믿고 추구해온 사회의 정해진 틀과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으로 되돌아가서 살리라는 상징적인 연출로 느껴졌다.둥글었던 함진의 포우 조명, 네모난 함진맆의 그리스월드 조명. 관극을 거듭할 수록 보이는 게 달라지는 묘미 역시 회전문에 일조하는 요인이다.
휘몰아치는 넘버 뒤 평온한 등장. 이 부분 대사 완급조절이 무척 자연스러워졌는데 막공이라니ㅠ 이모앙의 "뭐래" 는 역시 빵터졌고, "'버지니아'는 행복하지 않을거예요" 라고 정확히 발음해줬다. 장버지니아에게 다가와서 이리와, 가자, 하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결혼식. 경초앙의 요염한 포즈에 질색하는 마포우 표정 늘 귀엽고, 반지앙 배에 매번 어퍼컷을 날려줬는데 이날 똑같이 되돌려받았다ㅋㅋ 매번 날아갈듯한 발걸음으로 추는 결혼식춤. 뒤에서 포우와 버지니아의 춤을 따라 추는 주례와 이모님ㅋㅋ 갈가마귀에서도 포우가 슬쩍 어깨에 손을 올리니까 '어머머머' 하는 표정으로 좋아하시던 장서현배우님과 그 옆에서 손을 내젓던 최병광배우님의 애드립이 귀여웠다. 어느 순간부터 레이놀즈 얼굴만 보고 바로 그리스월드의 사람임을 알아차리는 마포우. 지난 마토로 페어막 때처럼 이날도 술병을 받아들고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친구들이 모이며 자연스럽게 손에서 유혹을 떨쳐냈다. 여기서 남앙들이 마포우를 둘러싸고 꼭 안아주는데 어찌나 울컥하던지. 주례를 서준 병광앙도 꽉 껴안고, 이모앙도 꽉 껴안아주고. 흑흑. 막공이 이렇게 슬픈 거였구나. 버지니아에게도 계속 고마워, 라고 말하던 마포우. 쓰러지는 신부, 전환되는 분위기. 종. 조여오는 공포, 위압감. 흩날리는 깃털.
2막도 살짝 지연시작. 한결 멀끔한 얼굴의 곰그리. 가증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 무척 얄미웠다. 신작발표회에서의 그 비참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단 한 사람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려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어리고 잔인한 '인간'이었다. 버지니아 솔로. 뒤에 명은엘마이라도 그렇고, 배우들의 감정이 격해지며 폭발하듯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격양된 감정으로 인해 노래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아쉬움도 있었다. 외롭고 쓸쓸한 얼굴로 무대 가운데에 서있는 포우를 향해 손을 내밀지만, 눈을 마주치다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에 무너져내리는 버지니아. 온전히 글에 몰입한 마포우. 이모의 비난에도 되려 목소리를 높이며 글을 쓰고 싶다고 외친다. 해맑기까지 한 표정으로 자신의 신간이 나올 것이라 자랑스레 말하는 표정. "그럼 버지니아는?" 이라는 말에 자신의 메모들을 가리키며 버지니아, 라고 읊조리듯 말하다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라는 말에 불현듯 떠오른 영감을 중얼거린다. 뎅포도 해주는, 공연 중반부터 확인한 디테일.
버지니아의 말에 그래그래, 하면서 성의 없이 대꾸하며 침대 발치에 앉아 글에 몰두하는 마포우. 그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채 닿지 않는 장버지니아의 손끝이 애달프다. 달님맆. 사실 여기서 이 리프라이즈가 나오는 게 좀 의아하다. 버지니아에게 엄마를 투영하고 있는 포우가 그에게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자장가를 불러준다는 해석도 이상할 건 없지만, 재회 후 엘마이라가 읊는 시에 나오는 "애너벨리" 라는 여인의 모델이 버지니아라는 게 정설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 장면에서는 애너벨리 시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 시가 얼마나 많은 순간순간을 날 살게 했는 줄 알아요?" 라던 엘마이라의 대사를 생각해보면 그냥 이 극의 연출에선 애너벨리가 엘마이라라고 가정하고 진행한 것 같기도 하고. 음. 그러네. 마포우 노선에서도 연애감정으로 '가장 사랑한 여인' 이 엘마이라였으니까, 이제 좀 이해가 된다. 한국인에게 '에드거 앨런 포' 라는 작가는 무척 생경한 사람이고,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애너벨리' 라는 이름을 중요하게 다뤘다면 포우 주변의 여성들에 대한 설명 역시 보다 유려하게 진행할 수 있었을 것 같아서 아쉽다. 그 이름에 흠칫 떨며 정신을 차리는 마포우 디테일 아니었으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을 부분이라서 더 안타깝다. "애너벨 리" 라는 이름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듯 부르던 마포우의 구슬 같은 발음을 다시 듣지 못하다니ㅠㅠ....
관객석 그 어딘가. 원망하듯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모습에 마저스 지뢰. 얼마 전부터 관 위에 올려두기 시작한 흰 국화 몇 송이. 관에 손을 뻗다가 차마 만지지 못하고 거두는 마포우의 모습이 직전 씬의 버지니아와 맞물린다. 조심스럽게, 양손 끝을 관 모서리에 얹어놓듯 가져다대고 오열하는 어깨. 기도하듯, 참회하듯, 뭔가를 중얼거렸던 것 같다. 마지막 음이 끝나고 암전이 내린 뒤 퇴장하는 흐릿한 실루엣이 훌쩍거리는 울음이 이날도 들렸다. 이 장면에서 무대가 너무 어두워서 배우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배우 움직일 때 포인트조명 좀 제대로 따라갔으면 좋겠다. 날믿어 부르기 직전 대사 주고받는 부분에서 그리스월드는 제대로 조명 받는데, 포우는 조명이 따라가질 않던데. "이제 포우와의 긴 싸움을 끝내야할 때가 왔습니다." 하는 그리스월드의 대사가 페어마다 느낌이 다른데, 이날 마곰은 꽤 그럴싸했다. 보통 그리스월드가 괴롭히면 포우는 먹금하며 극혐할 뿐인 데다가, 2막 초반부는 그리스월드가 해설가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뜬금없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물 벌컥벌컥 들이키다가 "거짓말!!!!!!" 이라고 절규하는 목소리가 어쩜 그렇게 깔끔하지? 한 방에 퍽 하고 소파로 마포우를 밀치고는 등을 돌린 채 비져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는 곰그리. 그 뒤에서 절망하고 체념한 채 "대체 내가 왜 이러시는 겁니까?" 라고 묻는다. "당신이, 에드거 앨런 포우가!!!! 천재이기 때문이죠." 라는 곰그리의 입에 발린 말에 마포우가 고개를 두번 끄덕여서 순간 무대로 뛰어올라갈 뻔했다. 날믿어에서 소소한 동작 디테일이 풍부해진 곰그리. "낡은 이 집은" 하며 소파 위를 쓱 훑더니 먼지가 묻은 듯 후- 하고 짜증스럽게 불어버린다. 정신 없는 표정으로 홀린 듯 곰그리의 말에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역시 "당신 작품들 내가 관리하면 어떻소" 라는 말에 무슨 미친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다가 휘청인다. 하지만 이미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을 만큼 정신을 놓아버린 마포우는 바들거리는 손으로 곰그리의 손을 마주잡는다. 그 순간 울려퍼지는 종소리. 한 쪽 귀를 막으며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리는 마포우. 벗어날 수 없는 마수. 끝없는 추락. 돌출에 나온 곰그리가 "소리 낮춰" 라고 노래하는 동안 마포우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뒤를 돌아 하늘을 향해 애타게 손을 뻗다 속절없이 나뒹군다. 2막 오프닝과 여기 종맆 마지막, 매날맆에서 공격당하고 쓰러지는 순간. 세 부분에서 쾅 하고 내리치는 오케의 진동이 너무나도 짜릿하다.
엘마이라와의 재회. 제 몸 하나 주체하지 못하고 휘청대는 걸음이 안쓰럽다. 이 넘버에서 거의 안울었는데, 이날은 다시 일어서는 마포우가 유난히 눈부셨다. 보는 관객도 장면 장면이 지나가는 게 아쉬웠지만, 배우 역시도 마지막이라서 더욱 혼신을 다한다는 게 오롯이 느껴졌다. 날믿어맆.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표정의 곰그리. 의자 위에 올라서서 지휘하는 모습과 그 뒤로 앙들의 그림자가 길고 기괴하게 비추는 연출이 마음에 든다. "나만 알고 있을 테니까" 하고 '쉿' 하며 윙크하는 곰그리 디텔 좋고, 토그리가 둠칫두둠칫 하는 부분에서 곰그리도 목운동(....) 비슷한 안무를 하더라.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디테일들을 통해 왜곡과 날조가 난무하는 곡의 분위기가 한층 생명력을 얻는다. 글을 돌려받으러 온 마포우. 분노에 차 퇴장하는 곰그리. 덜덜 떨려오는 손, 동시에 밝아지는 얼굴.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하는 매날맆. 곧 스러지리란 결말을 알기에 더욱 안타깝고 가슴 아픈 넘버. 노래가 뚝 끊기며 억, 하는 비명이 너무 아프다. 엄마. 추워, 너무 추워. 새파란 조명 속 떨리는 포우의 몸. 뒤로 비쳐오는 환한 빛. 투욱 옆으로 쓰러지는 얼굴. 다가온 엄마의 무릎을 베고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뒤를 가리키는 윤정엘리자베스의 손짓에 한 번 몸을 돌려 객석을 쳐다보고는 몇 걸음 걸어가다가 다시 한 번 몸을 돌린다. 그 표정. 얼굴 가득 환한 미소. 안녕, 이 고통스러운 세상아. 잘 있거라.
널심판해맆. 감히 그 앞에서 포우라는 이름조차 꺼내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 이 넘버랑 영원이랑 어떻게 개연성 좀 만들어와....... 곰그리 노선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방향으로 마지막을 연기해도 좋을 것 같은데, 이 넘버 자체가 너무 강해서 그러면 노래의 통일성이 떨어질 것 같고. 아 모르겠다. 재연에선 고쳐 오겠지. 제발. 관객석맆, 그리고, 영원. 마지막 이모탈. 지금껏 들었던 모든 영원 중에서 가장 좋았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들려주는 듯한, 포우로서 부르고 있음에도 '마이클리의 포우' 가 부르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 마지막다운, 피날레다운, 그런 장면이었다. 안녕, 마포우. 잘가요.
영원의 마지막 음이 끝나고 한참 쏟아지던 환호와 박수. 커튼콜을 위해 조명이 꺼지고 암전이 내려앉았음에도 한참을 가만히 기다려주신 김성수 음감님. 짘슈 때 그랬다던 것처럼, 그렇게 어둠 속에서 끊이지 않는 박수와 환호가 한참 계속됐다. 오케 소리와 함께 불이 켜지자 씩 웃으며 인사 한 번 더 하고 뒤로 퇴장하던 마포우. 앙상블, 배우들, 그리고 다시 마이클리 배우. "나는 영원해~" 하고 목이 빨개질 정도로 최선을 다해 노래해준 마포우. 일렬로 섰지만 손을 잡지 않는 모습에 설마? 했고, 곰그리가 한 발 앞으로 나와서 환호했다. 무인이라니ㅠㅠㅠ
센스 넘치는 곰그리의 소개. '포 애호가들' 이라는 사랑스러운 호칭이라니, 무척 고마웠다. 이어지는 마포우의 소감. 감사하다는 말을 서툰 한국어로 해주는 그 목소리에 진심이 꽉꽉 흘러넘치도록 담겨 있어서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고맙고 행복했다. 아직 포우는 끝나지 않았다며, "lovely brothers 최재림, 김동완을 많이 support 해달라" 는 말이 무척 따뜻하더라. 영원 넘버부터 막공무인까지의 그 분위기.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래서 다들 막공을 가고, 막공소감을 들으려고 하는 구나. 존중 받는 느낌. 이 극을 함께 만들어갔다는 위안. 여러모로 가슴이 참 벅차올랐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 배우님. 작년 짘슈 때도 그랬지만 올해 역시, 배우님의 목소리에 많이도 위로 받고 또 많이도 채워 나갔습니다.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 덕분에 무척 행복했어요.
그럼 이제,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뵙시다. 이번 주말에 만나요, 마그랭♡ㅎㅎ
'공연예술 > Music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트르담 드 파리 (2016.07.17 3시) (0) | 2016.07.17 |
---|---|
스위니토드 (2016.07.12 8시) (0) | 2016.07.13 |
에드거 앨런 포 (2016.07.06 8시) (0) | 2016.07.07 |
에드거 앨런 포 (2016.06.28 8시) (0) | 2016.06.29 |
에드거 앨런 포 (2016.06.24 8시) (1) | 2016.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