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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in 충무아트홀 대극장, 2016.03.09 8시 공연





박건형 빅터/쟈크, 한지상 앙리/괴물, 서지영 엘렌/에바, 이지수 줄리아/까뜨린느, 문서윤, 주디. 형빅/형쟠, 지앙/지괴. 형한서이. 이성준 음감. 프랑켄슈타인 12차 관극이자, 아마도 재연 자막.



※스포있음※



형빅은 이날, 주변의 비극을 목격하면서 시니컬하고 비틀린 성격으로 자랐지만 그 방어기제가 하나씩 무너지며 결국 저 깊은 심연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한 나약한 인간이었다. 첫 등장부터 여전한 거만함을 유지하더니, 단하미 전에 "지나쳐? 내가?" 라고 가볍게 비아냥대고는 앙리, 앙리, 라고 부르며 어떻게든 지앙을 자신의 연구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려 들었다. 결국 그가 자신에게 넘어오리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제네바로 돌아온 뒤 연구를 함께 하면서도 앙리를 동료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한잔술에서도 자신의 고민에 침잠하며 자괴감 가득한 말들을 쏟아낼 뿐이고, 그저 흥겹게 그 순간만큼은 근심과 고민을 다 잊어버리고 싶다는 듯 리듬에 몸을 맡겼다. 나는 왜. 동생을 책망하는 엘렌의 파트가 지금까지 관극 중 가장 설득력 있었다. 두 여성에 대한 빅터의 감정이 여실히 드러났는데, 엘렌이 자신을 아끼고 걱정함은 잘 알지만 결코 자신을 이해하진 못한다는 한계 또한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항상 그런 식이지!" 라며 순간적으로 욱하면서도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한탄이 깔린다. 자신의 근처를 맴돌며 기다리는 줄리아를, 진심으로 아끼고는 있지만 그래서 더욱 저주 받은 자신의 곁에 둘 수 없다. "지금 내게는 시간이 필요해" 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속삭이듯 "줄리아," 라 작게 속삭였다. 모두가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다 광기 어린 조소를 토해낸다. "나도 모르고 있던 나아아악!!!" 하며 갑자기 무너지듯 무릎을 꿇고 오른손으로 얼굴 가리는 디테일 정말 좋다. 형빅의 강점이 노래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토해내는 저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날 공연의 나는 왜 그리고 후회 에서 정점을 찍었다. 기각이라는 선고에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는 듯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끌려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쏟아냈다. 너꿈. "한 가지만 약속해 어떤 일 있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라는 앙리의 말에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멱살을! 잡는다. 앙리를 호명하는 간수의 말에 철창을 뜯어버리고 싶다는 듯 붙들고 힘을 주며 안돼, 안돼, 라고 울부짖는다. 생창. 바구니에서 꺼낸 앙리의 머리를 소중한 듯 끌어안는다. 기계를 발동시키고 위로 올라온 실험체를 바라보며 "앙리," 라고 중얼거린다. 원음보다 반음 정도 높은 최고음. "일어나리라" 를 부르며 기계를 붙잡기만 하고 양쪽으로 벌리지 않아서 내심 당황했지만, 뒤쪽 실험체는 무사히 부들거리며 전기자극을 받고 있었다. 프롤로그와 살짝 감정선이 달라졌는데, 더욱 애절하게 앙리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목소리였다. 놀라는 엘렌의 모습에 휙 고개를 돌렸다가 두 발로 서 있는 괴물을 발견하고는 놀람, 그리고 뒤따라오는 기쁨으로 눈이 커진다. 바닥에 나뒹구는 괴물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다가가며 앙리, 앙리, 라고 이름을 부른다. 자신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절박할 정도로 다급하고 간절하게 "나야 나, 빅터" 란 말을 반복한다. "앙리가 되살아났어!!" 라며 기뻐하지만, 어김없이 찾아든 비극. 혼란과 절망이 내려앉는다. 안간힘을 다해 목을 조르지만 끝까지 쫓을 정신은 남아있지 않다. 


평생에 걸쳐 노력해온 야망을 어떤 형태로든 성공했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저주스런 운명에 절망하는 빅터. "운명은 자기가 선택하는 거라구" 라는 말에 그를 꽉 껴안는다. 실종 소식. 여기서 하인 노해영 앙을 향해 뭐하고 있었냐는 듯 질책하는 손가락질과 어서 가지, 하며 이끄는 상류층 다운 디테일 좋았다.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려 발버둥쳤지만, 결국 다시 붙들리고 만다. 불행하고 고독하기만 했던 자신의 피조물의 이야기를 들은 그의 얼굴에 깃든 감정은 허망 그리고 혼돈. "그럼 여기서 끝내!" 죽음으로써 저주에서 자유로워지길 갈망한다. 돌아오는 것은 냉랭하기 그지 없는 비웃음. 엘렌의 죽음 앞에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무너진다. 환상인 듯,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어린 줄리아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뜨며 시선을 떼지 못한다. "너는 이제 혼자란다" 라면서 그 사무치는 외로움에 대해 일견 담담한듯 나열하는 엘렌의 말들. 그 모든 것이 바로 엘렌 본인이 직접 경험한 감정들이라는 점이 새삼 뼈아프게 다가왔다. 누누히 말했듯, 엘렌도 어렸고 외로웠으며 어디다 떼를 쓸 수 없어 그 고통스런 감정을 홀로 삭히고 삼켜내야했다. 마냥 동생을 감싸주기만 하는 것이 아닌, 누나이기 전에 그저 한 나약한 인간. 평소보다 더 절박하게 누나를 붙들려 뛰어들지만, 허공을 향한 손짓일 뿐이다. 가지마. 암전에서 분명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뭔가가 굴러간다. 세 번 봤다. 근데 뭔지 모르겠어. 엘렌 시체 인형은 아닌 것 같은데, 그 타이밍에 무대 앞쪽으로 굴려야 하는 게 대체 뭔지 가늠이 안된다. 다 부서진 생창기계 앞에서 절망하는 빅터. 넋이 나가 자신을 죽이라고 애원하듯 절규하지만,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아직 아냐" 라고만 선고하는 괴물. 괴물을 잡기만 했다면 줄리아와 결혼해서 그에게 기대 나름대로 안정감 있게 살 수 있었을 것 같아 더욱 비극적이다. 총소리에 반쯤 미쳐서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라며 닦달하던 빅터는, 줄리아의 비명에 그의 이름을 부르며 뛰쳐 들어가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차근차근 하나씩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으며 무너져내리는 빅터. 자신의 행동들이 결국 이 파국까지 치닫게 만들었다 후회한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현실. 이미 제정신 따윈 놓아버린 상태로 북극에 도착한다. 곡괭이를 들고 달려들 때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철퍽 엎어진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괴물. 휘청거리며 힘없이 내지르는 무기. 한참의 몸싸움 끝 자신에게 겨눠진 총구가, 무척 반가워보인다. 드디어 이 저주의 마지막이 보인다는 위안. 하지만 총알 대신 방아쇠가 눈 앞으로 다가온다. 이 순간 빅터는 예감했다. 괴물의 의도를, 그의 진정한 복수를. 그 결과를 빤히 알고 있지만, 당길 수밖에 없는 마지막 저주. 쓰러진 괴물과 무너진 빅터. 두 사람의 포즈가 마치 거울로 비춘 두 개의 상(像)처럼, 데칼코마니 그 자체다. 차마 괴물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을 몰아쉰다. 나야, 라는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다. 툭 떨군 괴물의 턱을 붙잡는다. "깨어나 제발!!" 아마 이날의 형빅은 북극을 헤매며 운명을, 스스로를 향해 후회하고 절망하며 저주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지앙은 평소보다 더 불쌍하고 외로워보였다. 단하미에서 꽤 강하게 자기의견을 피력하면서 형빅에게 대들길래 과연 어떻게 설득당하려나 했는데, 확 꺾이기보단 부드럽게 눌리며 흐름에 몸을 맡기는 인상이었다. '신'을 깊게 믿으면서도 과학자로서의 열망과 도전의식이 존재했다. 종전선언에 빅터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자신들의 연구와 이후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표정이다. 빅터의 "질문입니까 명령입니까" 에 뚜렷한 미소를 짓는 건 처음이었다. 누군가의 애정을, 신뢰를 갈구한다. 한잔술. 0304 동한 때는 옆쪽에 미끄러지더니, 이 날은 앙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질 못해서 조금 헤맸다ㅋㅋ 자신만만한 얼굴로 모두의 기분을 풀어주겠다 말한다. 김선 앙의 박수에 깜짝 놀란 가슴을 앉아서까지 쓸어내리는 디텔도 양일 다 했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형빅의 말에 "살인?" 하고 꽤나 큰 소리로 되묻고, 위로하듯 얹고 있던 손을 꽉 붙들고 술집을 나가려 한다. 그 손을 뿌리치고 테이블 위에 올라 깽판을 치는 빅터. 그를 자리에 앉히고 술병을 집어 든다. "한 잔 하겠나?" 지난 공연들처럼 하이텐션이라기보단, 빅터를 위로하고 현실을 잠시나마 잊어보려는 모습이었다. 물론 춤추기 시작하니 금세 흥겨웠지만. 0304 동한 공연에서의 동빅도 그렇고 이날 형빅도 그렇고 원 안무보다 힘을 좀 빼고 추더라. 그래서인지 동빅은 평소보다는 조금 괜찮...아 보였고, 형빅은 쭉쭉 뻗는 다리를 못봐서 조금 아쉬웠다. 룽게의 등장에 빅터는 술잔을 내팽개치고 뛰어내려가지만, 앙리는 만취하여 살짝 느릿하게 상황파악을 하고 테이블에서 내려온다. 장의사라는 아이디어에 기뻐하는 형빅을 눈을 껌뻑이며 바라보다가 얼굴에 미소가 쓰윽 퍼지는데, 그 소소한 디테일이 참 좋았다. 암전. 살인자. 목소리는 결연한 척 하지만 잔뜩 겁먹은 눈. 살인자맆. 휘몰아치듯 내려진 선고가 바로 와닿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혼란과 두려움. 순간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 빅터에게 건네고 있지만,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뱉어내는 말들. 유난히도 애처롭고 안쓰럽다. "그냥, 웃자" 부분에서 살짝 급하게 들어온 형빅의 대사가 맞물리니까 잠시 텀을 두고 다시 대사를 친다. 친구야. 눌러담듯 내뱉는 문장들. "태양처럼" 을 꾸욱 누르면서 강조한다. 앙리에게 빅터는 친구 그 이상이었다. 마치 저 하늘 위의 신과 같은, 별 볼 일 없다 생각했던 인생을 다시 한 번 생기넘치게 살아보도록 만들어준 존재. 자신을 향해 계속 뻗고 있던 앙리의 손을 미처 잡아주지 못한 빅터. 이제는 그가 손을 뻗어보지만, 엇갈려버린 순간. 너무 늦어버린 깨달음. 계단을 올라가며 주저 앉는 지앙. "너의 꿈에 살고 싶어!!" 쏟아내는 마지막 문장.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얼굴에 애써 커다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선택한 이 길이, 옳다고 다짐하듯. 



탄생 직후의 지괴는 백지상태임에도 강한 본능이 존재한다. 처음 몸을 움직이고 쓰러지듯 빅터에게 안기기까지 가장 자연스럽게 기괴한 동작들을 구현한 건 0304 공연이었다. 이날 공연도 좋긴 했는데 워낙 형빅이 들이대듯 기뻐해서 그 동작들을 보여주는 텀이 짧았다. 자신을 향한 공격에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지괴. 피투성이의 얼굴로 입 안의 무언가를 질겅거리고 있음에도, 눈이 슬퍼보였다. 목을 조르는 빅터, 벗어나려는 지괴. 강한 몸싸움으로 쇠사슬이 지괴 마이크에 걸려 살짝 휘청거리며 발이 꼬였지만 금세 수습하고 빠르게 도망친다. 이 부분과 2막의 절망 에서 계단 위 조명에 얼굴을 비추는 지괴의 디테일을 사랑하는데, 이 날 두 장면에서 아주 정확하게 조명에 몸을 맞춰 얼굴의 음영을 만들어내서 오싹할 정도로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듯한 이미지를 남겼다. 게다가 여러 장면에서 갑자기 훅 냉소를 입가에 띄워서 인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노선을 유지했다. 총을 쏘는 빅터를 똑바로 노려보다 마지막 포효를 내뱉고 사라진다. 2막 도망자. 한지상배우의 '괴물' 창법이 지독히도 완벽하게 취향이다. 묵직하고 서늘하게, 정확한 딕션으로, 감정을 오롯이 담아 토해내듯 몸 밖으로 쏟아내는 노래. 이 날의 공연에서 지괴가 미묘하게 반박자 내외로 느리게 들어간 마디가 서너 개 있었는데, 그마저도 목소리와 완벽히 어우러지며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격투장. 서엘렌 매력넘친다. 전반적으로 앙상블에게도 시선을 많이 주며 관극했는데, 남세는 정말 모두를 혹사시키는 잔혹한 넘버다. 넌 괴물. 반항이 가득한데도 애처로워 보이고, 강해 보이는데도 너무나 안쓰럽다. 2막 내내 많이도 울었는데, 수많은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지독하게 고독해보이는 괴물의 표정이 아프게 가슴을 짓눌렀다. 비웃으며 읽어내리는 실험일지의 내용을 이해하는 듯, 괴물의 조소 어린 얼굴에 슬픔이 스치듯 떠오른다. 그곳에는. 지수까뜨를 이어서 노래하는 지괴의 가사가 유난히 아프게 들려온다. '자유'를 원하는 까뜨린느. 반면 욕심이 없는, 아무도 상처 주지 않는, '평화'가 있는 그곳을 동경하는 괴물. 행복한 꿈 속에 잠겨있는 순간을 만끽하지만, 차디찬 파도처럼 덮쳐오는 현실. 산다는 건. 약을 탈 때, "죽으면 땅에 묻혀 / 썩을텐데" 부분이었나, 잠깐 텀을 주면서 조소 어린 표정으로 뒤쪽 가사를 짓씹듯 불러줘서 신선했다. 바닥에 쓰러진 괴물이 자신을 향해 독한 말을 쏟아내는 까뜨린느를 향해 고개까지 살짝 움직여 정확하게 눈을 맞춘 건 이번 관극이 처음이었다. 


난 괴물. 청아한 미성으로 시작하는 도입부. "너희완 달라 / 인간이 아냐" 하며 객석을 둘러보고, 원망하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의 신이여 / 말해보소서" 라 묻는다. "단지 취미로 / 호기심에 날 만들었나" 라는 부분은 비웃듯이 미간을 좁히며 의심어린 눈초리를 짓고, "여기 / 울고있나요 / 여기 / 버려진채로" 라는 말에 한숨을 한가득 실어 쏟아낸다. 몸을 웅크리고 엎드린 채 손만 뻗어 좌우로 세차게 흔든다. 간절하게, 절박하게. "내게도 심장 뛰는데!" 가슴을 퍽퍽 내리친다. 횃불을 빼앗는다. "나의 창조주시여!" 강하게, 고통스럽게 토해내는 원망 짙은 고함. 고음 샤우팅하면서 뒤로 젖히던 몸 그대로 무너진다. 그와 동시에 손을 흔든다. 아..ㄴ..녕, 안...녕, 이를 악문 채 잇새로 신음처럼 뱉어내는 음절. 으으으, 차마 잇지 못하는 말들이 턱 목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객석의 눈들을 마주한다.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그 눈빛. 하늘을 올려다보는 표정에 원망이 비친다. 앉아있던 좌석의 한두칸 좌측 관객을 똑바로 바라보며 오른손을 미친듯이 흔든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왼쪽 얼굴이 또렷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무치는 외로움이 넘실대다 결국 흘러넘치는 맑고 커다란 눈망울이 생생하게 보인다. 고개를 툭 떨구지만 계속해서 손을 흔든다. 애타는 손짓. 이 극을 보면서 배우를 끌어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몇 차례 해보긴 했지만, 진심으로 무대 위에 뛰쳐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애써 깍지 낀 양손에 힘을 더 강하게 주며 눈물만 주룩주룩 쏟아냈다. "웃었네" 하며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듯이 슬픈 미소를 짓는다. "나 그 꿈 속에 살 수 없었나" 길게 길게 뽑아내는 고음. 선명한 잔상으로 짙게 남겨진 감정.


돌아온 현재. 아무도 믿지 않고 인간을 부정하며 자신을 만들기만 하고 책임지지 않은 '창조주' 를 향한 복수만을 원하는 괴물. "난 불행하기에 악하다 / 악하기에 복수를 원해" 모든 감정이 사라지기라도 한 듯, 무감각한 목소리. 절망. 투명할 정도의 미성으로 시작하는 잔인한 말들.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기계장치를 양 옆으로 벌리며 조소를 토한다. 재연 프랑켄에서 단 하나의 장면만 박제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망설임 없이 '절망' 을 택하리라. 사다리에 오르기 전 양 팔을 벌리고 고개를 숙이는 지괴. 꾹꾹 눌러담으며 쏟아내는 목소리. 매 공연 다른 색으로 완벽하다. 서늘한 목소리로 무너진 빅터에게 쐐기를 박고 떠난다. 상처. "나도 길을... 잃었는데" 자조어린 쓴웃음. '친구' 라고 명명했지만, 평소보다 거리감이 느껴진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상처 가득한 목소리에 눈물을 섞어 노래한다. 근래 지괴의 노선에서 지크슈 지뢰를 밟고 있다.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에게 상처 받고 인간을 증오하지만 결국 인간의 유약함을 동정하고 체념하여, 마침내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한다. 그렇게 인간 이상의 무언가로 남는다. 숨을 쉬며 살아있는 내내 불행했지만, 단정하게 스스로의 의지로 끝을 맺는다. 그럼에도 성스럽기보다는, 지독히도 인간적이다.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너무도 모순적인 존재. "한 괴물이 있었네 / 그저 상처 속에 살던" 라면서 노래하는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지만, 외로움이 뚝뚝 묻어나지만, 그로써 상처 많은 존재는 완벽하게 허공으로 흩어진다. 어둑해지는 무대에서 흐르는 전환음악. 어느 순간부터 지괴가 이 부분에서 몸을 아래로 살짝 뒹굴고 나서 천천히 일어나는데, 너무 좋다. 게다가 이 날은 기어 오르듯, 힘겹게 움직이는 모션이 많았다. 코트를 일부러 휘날리는 것도 좋고. 가만히 서서 다가오는 빅터를 바라본다. 몸싸움. 빅터의 다리에 천천히 꽂아넣는 칼날에서 떼지 않는 시선. 총을 쥔 손을 부들거리면서 토하는 신음소리에는 창조주를 죽이지 못한다는 분노보다는, 마침내 눈 앞으로 다가온 끝을 향한 마지막 절규가 담긴다. 빅터, 빅터. 고개를 떨군 채 눈을 마주치지 않는 빅터에게 애타게 다가가며 작은 소리로 말한다. 나야... 빅....터... 잇새로 새어나오는 소리. 손을 뻗어 빅터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고개를 든 빅터와의 마지막 시선 교환. 정적. 흐릿하지만 잔인한, 아주 냉혹하지는 않지만 선명한 괴물의 목소리. 복수야..





자막, 을 결정한 이유는 일단 자리 때문이다. 예대가 터지는 등의 기적으로 나쁘지 않은 자리를 잡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만큼 기대는 버렸다. 여기에 다른 극이 선사한(!!) 현타가 몰아쳤고, 드디어 매몰되어 있던 감정에서 살짝 발을 빼며 마음을 가라앉히게 됐다. 자세한 이야기는 곧 포스팅할 생각이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로 마음 아프지 않은 걸 보면, 이쯤에서 자막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음. 재연으로 꽤나 짭짤하게 수익을 올린 모양이니 적어도 내후년에는 삼연으로 돌아오리라는 믿음도 있고. 13차를 찍지 않는다고 해도 정산글을 따로 올릴 예정이니 그 때 못다한 말들을 다 해볼까 한다. 일단은 이대로 섭섭한 듯 무던하게, 툭 미련을 놓아야겠다. 이렇게 써놓고 다음주엔 울면서 동뉴나 형한 막공을 구하러 다니는 건 아니겠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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