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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in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2016.03.02 8시 공연





류정한 막심, 신영숙 댄버스, 김보경 이히, 최민철 잭 파벨, 김희원 반호퍼. 류막심, 킴나, 신댄. 류신킴미남희원. 류신킴 페어막이자 신댄 서울 막공. 삼연 레베카 3차이자 자막 관극. 



※스포있음※



원작과 유사한, 클래식한 노선의 류막심. 확실히 레베카를 사랑하지 않은 막심이었다. 가족의 명예를 위해 자신의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맞춰줬지만 결국 폭발해버리고 말았고, 레베카의 죽음이 분명 실수이긴 했지만 그 결과에 후회하지는 않는 듯했다. 고집스럽고 완고하며 오만한 귀족의 얼굴로 맨덜리를 휘어잡고 있었다. 일은 칼 같이 잘하기에 댄버스를 자르지 않았고 본인의 부재에도 집사 및 하인들이 저택을 잘 관리하리라고 믿어주는, 정말 그 시대 귀족다운 막심이었다. 어른남자 향기를 풀풀 풍기는데 어찌나 좋던지. 강인해진 이히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변한 그를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서 인정하는 느낌이었다. 히스테리컬한 성격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세 번의 관극 중 가장 행복하고 무탈하게 끝까지 살 것 같은 막심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레베카가 아주 조금 불쌍해지긴 하네. 자업자득이지만. 



가장 안쓰러웠던 건 레베카4에서의 신댄이었다. 눈물로 푹 젖은 얼굴이 op오블에서도 똑똑히 보일 정도였고, 고통스럽게 내뱉는 말들은 어찌나 애처롭던지. 2차 관극 때 신댄을 열성팬으로 비유했었는데, 이 날은 그 노선에서 조금 더 심화되어 레베카를 사랑하고 숭배하는 감정이 극렬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미묘한 차이라서 글로 잘 설명이 안되는데, 그저 곁에서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만족한다는 감정은 동일하지만 연애감정으로서의 사랑이 이날 공연에 한 스푼 정도 더 첨가됐달까. 그래서 레베카4나 불맨이 더 처절하고 더 감정적으로 다가왔다. 말 나온 김에 불타는 맨덜리. 와. 최고. 평소보다 조금 빨리 치고 들어온 신댄의 비명 같은 고음과 그에 지지 않는 류막심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며 극상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화염보다도 더 강렬한 색채로 맞부딪히는 것이 눈에 아른거릴 정도였다. 실황... 실황이 필요해ㅠㅠ 



킴나는 칼날송 이후 변화된 모습이 걸크러쉬를 느낄 정도로 멋졌다.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 넘버에서 신댄의 기세에 전혀 눌리지 않고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임팩트 있게 소화해줘서 내적 환호를 질렀다. 역시 강단 있는 이히. 줄리앙 대령 허정규 배우는 어쩌다보니 원캐셨는데, 오늘 유난히 멋져서 당황했다. 우아하고 젠틀한 느낌의 미중년이고 목소리까지 좋았다. 희원반호퍼의 아메리칸워먼 역시 짜릿할 정도로 흥겹고 신났다. 





op석 오블 2열... 하아.... 순전히 칼날송 때문에 망설임 없이 잡은 자리이긴 하지만, 여러모로 단점이 너무나 큰 자리였다. 아직도 오른쪽 어깨랑 목이 아플 정도로 관극자세가 비뚤어졌고, 무엇보다 음향이 정말 엉망이었다. 나름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게다가 음향이 너무 커서 밤새 오른쪽 귀가 아팠다. 지금도 살짝 얼얼하다. 시야는 또 얼마나 가리는지. 하루또하루 등 몇몇 장면에서는 좋았는데, 정중앙 쪽에 배우가 서면 앞좌석 관객에게 시야가 가려서 엄청 답답했다. 어느 공연장이든 op 2열, 특히 사블은 결코 가지 않으리라...ㅠ



이제 애드립이랄까, 소소한 디테일을 기억나는 대로 풀어보자. 물론 류막심 위주다. 첫 등장할 때 오른편에서 관객석을 향해 씩 웃는데 심장 멎을 뻔했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좋은지. 신문 들고 등장했는데 아주 정확하게 앞사람에게 가려서 너무 괴로웠다. 왼쪽으로 퇴장할 때 올화이트 정장을 너무 급하게 입어서 불편한 건지 어깨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놀평 시작하기 전에 킴나에게 "거기 앉으면 되요" 하는 입모양이 정확하게 보여서 괜히 좋았다. 놀평은 3번의 관극 중 가장 반짝거리고 예뻤다. 킴나 엄청 예뻐하더라. 청혼할 때 망설이거나 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 지금 청혼하는 거잖아" 라고 해서 막심 이미지가 확 잡혔고, 각 잡고 무릎 꿇고 청혼하는데 왜 내 가슴이 두근거리는지ㅎㅎ 작별키스 하러 왔냐며 들이대는 희원반호퍼를 목숨 걸고 밀어내던 류막심이 갑자기 희원반호퍼의 머리(!!!!)를 잡고 밀어내서 배우님도 빵 터지고 관객석도 빵 터졌다. 아무리 싫으셔도 그렇지 그렇게 밀어내면 어떡해요ㅋㅋㅋㅋㅋ 결국 굿바이키스는 무산되고 맨덜리로 돌아가는 막심과 이히. "새 안주인, 미세스 드 윈터입니다" 하고 소개해줬는데 하인들이 미동도 안하니까, 살짝 노여움이 깔린 목소리로 "인사들 하세요" 라며 위압감 넘치는 분위기를 풍겼다. 류배우님 저음, 많이 사랑합니다..ㅠㅠb 체스씬 이후 행복하니, 에서도 절제된 귀족미를 풀풀 풍기며 "행복, 내겐 너무 낯선 말" 이라 짓씹듯 내뱉었다. 하루또하루 최고. 찬양일색의 글이라서 설득력이 부족하겠지만, 하루또하루는 정말이지 완벽했다. 이 노래가 끝나지 않길, 부디 이 순간이 조금만 더 이어지길, 애타는 마음으로 그 짧은 시간에 오롯이 빠져들었다. 훗날 악마가 튀어나와도 좋으니, 행복을, 순간을, 병 속에 담아 간직하고 싶다. 찰나의 예술을 사랑하는 일은 너무도 고통스럽고 행복하다. 



정화베아트리체가 이히와 통화하며 혼잣말하듯, 옛날부터 그앤 가끔 그랬지, 하는 말도 류막심의 노선을 한결 공고히 해줬다. 신댄 정말 짱짱하니 모든 레베카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줘서 감사했다. 어쩜 그렇게 탄탄하고 안정감있게 고음을 계속 뽑아낼 수 있는 건지 경탄스럽기만 하다. 순택벤, 늘 그랬듯 좋았고. 신이여. 감정선이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 파도 같았다. 다 뛰어넘고 2막. 레베카3은 진리입니다. 사랑입니다. 공연 중엔 거의 박수를 치지 않는 편이지만, 이 넘버만큼은 매번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킴나의 오만가지 감정이 담긴 표정도 공포스런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스산한 무대를 삼켜버릴 정도로 뜨거운 환호에도 흔들림 없는 두 배우가 놀랍다. 대망의 칼날송. 간드러지는 류베카의 목소리를 꽤 오래 지속했다. 걸레석은 op1열이었는데 바로 뒷좌석에서 희번떡한 류막심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정말 대단하단 말밖에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더라. 멍청한 아빨 연기해줘-까지 전부 류베카 목소리였는데, 마지막음은 거의 소프라노 급으로 고음을 찍어서 내심 놀랐다. 보트보관소 문 밀었는데 제대로 안 닫히고 다시 열리니까 반사적으로 다시 확 밀어 닫아버리는 류막심. 그년 죽었어- 하고 으흐흑하는 울음소리를 섞는 걸 정말정말 좋아하는데 초연 오슷에는 없는 디테일이라서 너무 슬프다. 왜 신고하지 않았어요? 사고였잖아요! 라는 이히의 말에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라고 하는 류막심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모르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귀족이잖아요, 막심.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살해한 원작과 같은 길로 가야하기 때문에 넣은 대사겠지만, 오늘 류막심 노선에서는 그저 자기위안이자 포장으로 보였다. 그런 대사 하나도 노선에 맞게 잘 살려내는 배우라서 제가 덕질을 하고 있나 봅니다...  



여자들만의 힘, 미세스 드 윈터는 나야, 전부 좋았다. 킴나 컨디션이 짱짱해서 그런지 넘버들이 새삼 빛을 발했다. 공판. 각도 때문에 류막심 얼굴의 조명이 거슬려서 슬펐다. 그래도 오만하고 당당한 자세로 앉아 우아하게 질문을 받아치는 류막심의 목소리 만큼은 환상적이었다. 나 찬양 그만하고 싶다...ㅋㅋ 런던의 이히로부터 전화를 받은 류막심의 표정이 분노로 넘실거리면서도 쓸쓸해보였다. 지난 관극 때는 이 장면에서 울던데, 이날은 건조함 그 자체였다. 끝까지 거짓으로 일관한 레베카에게 속아넘어가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짙은 패배감이 어린 얼굴로 프랭크의 손을 치우고 들어가버린다. 밤의 저편. 이제 다 끝났고, 새로운 미래가 자신에게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에 행복해보이는 류막심. 하지만 맨덜리는 활활 타버리고, 그 화염 속에서 과거와 함께 다 타버리라 절규한다. 에필로그. 



평소처럼 오케를 향해 열띤 박수를 보내는 류배우님을 보며 한껏 광대를 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대고 쉿, 하는 제스쳐를 취하셔서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목소리. 입덕 9개월만에 처음으로 들어보는 배우님의 육성. 완벽하게 현실감이 없어지며 표정관리가 안되더라. 마치 덕통당했던 바로 그 날처럼. '영숙 씨'라고 몇 번을 불러가며 울먹이는 신댄을 무대 앞으로 모시던 류배우님. 힘들어서 울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울 시간에 연습이나 하자! 라고 마음을 다잡았다는 신댄의 막공인사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정말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무대인사 덕분에 귀가하는 길 내내 미소가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신댄의 어마어마한 레베카맆 커튼콜에 박수를 치며 브라보, 브라보, 라며 찬사를 보내던 류막심이, 정작 본인 커튼콜에서 살짝 쓰릴해서 민망해 하셨지만 그 모습까지 레어템이라서 너무 행복했다...ㅠㅠ 덕질은 이 맛으로 하는 거죠..ㅠㅠ 





<레베카>는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다듬어진 극이다. 게다가 로맨스와 서사가 주가 되는 스릴러물이라서, 덧붙일 말 또한 많지 않다. 돌아와주신 류막심 덕분에 극을 한결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제 4월이나 되어야 류라두로 만나뵐 수 있다는 게 그저 아쉽다... 차차기작은 소식 없는 걸 보니 일단 마음을 비우고 있다. 배우님도 쉬시긴 하셔야지... 응,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ㅋㅋ 아, 나흘이나 쉰다길래 올 것 같았는데 정말 전동석배우가 관극하러 왔다고 해서 신기했다. 물론 직접 보진 못했지만 말이다. 동한 보러가야 하는데 왜 나에겐 표가 없는 것인가..ㅠㅠ 체스씬 때 소파에 몸을 파묻는 류배우님 모습에 류빅 지뢰를 밟았는데, 정말 다 필요없으니 프랑켄 삼연에 돌아와주셨으면 좋겠다아.... 크흡. 말이 옆으로 샜지만, 완벽한 레베카 삼연 자막공연이었다. 남은 서울 공연 2개와 지방공연도 무사히, 멋지게 만들어주시길. 저는 마타하리만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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