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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in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2016.01.15 8시 공연





두 달 반만의 재회. 놀평 첫 음부터 울 것 같다고? 무대 위에 류막심이 등장한 순간부터 애써 유지하던 무표정이 완벽하게 무너졌다. 어떻게 수습이 안되더라. 정말 이렇게까지 좋을 일이냐고오...ㅠ........





류정한, 차지연, 송상은, 이시후, 한지연, 허정규. 이정화, 정수한, 윤선용, 김순택. 류막심, 차댄, 송나. 류차송.



※스포주의※



원작소설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히(나)는 소설보다 더 당차고 자기주장이 뚜렷했다. 소심하지만 밝고 따뜻한 성격이 사랑스러웠다. 송나의 성량부족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일부 고음이 매우 안타깝긴 했지만 그래도 상상하던 캐릭터에 아주 잘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준 건 만족스러웠다. '행복을 병 속에 담는 법' 넘버가 정말 좋았다. 차댄은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댄버스 부인과 아주 흡사했다. 단순히 사랑이라 명명하기엔 뭔가 부족한, 애정과 집착으로 가득한 모습. 소설에선 맨덜리가 불타는 모습을 거의 묘사하지 않는데, 뮤지컬에서는 꽤나 강렬하고 임팩트있게 표현했다. 댄버스가 불을 지른 이유 역시, 원작소설에서는 막심과 그 모든 것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가장 주가 됐다면, 뮤지컬에서는 레베카에 대한 배신감이 아주 컸다. 자신과 모든 것을 공유하던 그가 가장 중요한 일에 입을 다물어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절규하던 차댄.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레베카 하나만 생각하는 노선의 설득력이 매우 높았다. 이 극에서 시각적인 임팩트가 가장 큰 장면이 레베카의 침실에서 부르는 레베카(긴버젼)인데, 서브 무대장치가 옆으로 사라지며 발코니가 한 바퀴 돌며 관객석을 향하는 순간 짜릿한 서늘함이 온 몸을 감쌌다. 휘몰아치는 음산함. 맨덜리 저택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안개는 과연 레베카 본인일까, 아니면 댄버스가 만들어내고 꿋꿋이 유지시키고 있는 레베카의 망령일까. 이 넘버 직후 매우 오랫동안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나도 전율에 몸을 떨며 손바닥이 한동안 얼얼했을 정도로 박수를 보냈고. 소설 속 댄버스는 이히를 뛰어내리게 만들지 못하고 현실로 확 돌아오는 순간,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분하게 평범한 시간 속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차댄은 이를 살짝 악문 채 이히의 물음에 대답한 뒤 실패에 대한 분노로 난간을 양 손으로 내리쳤다. 보다 인간적이고 생명력 있는 캐릭터여서 더 매력적이었다. 



정화베아트리체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솔로 넘버가 '절망에 지친 몸부림' 이거 맞나? 아무튼 솔로곡도 너무 좋았고, 이히와의 듀엣 넘버 '여자들만의 힘'도 훌륭했다. 순택벤은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노래를 너무 잘했다. 프랭크 윤선용 배우는 묘하게 에녹 배우와 음색이 비슷했다. 지연호퍼는 성량이 짱짱하고 딕션도 괜찮아서 아주 시원시원했다. 개그코드도 잘 살려줘서 즐거웠다. 시후파벨은 찌질미가 매우 돋보이는 짜증나는 캐릭터를 잘 연기해줬다. 깐죽거리는 춤이 인상깊었다ㅋㅋ 앙들도 미리 각오했던 것보다는 뭉개지는 음향에서 잘 살아남았다. 강약조절 같은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로딩이 되겠지...?... 





류막은, 사실 뭘 어떻게 적어야 할 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냥 너무 좋았다... 라고 리뷰 끝내면 안되겠지..ㅋㅋㅋ 정식음원으로 수백번 돌려들었던 노래를 라이브로 듣는 기분이란, 정말이지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하루또하루' 부터 완전히 목이 풀려서 류배우 특유의 장점을 한껏 살려 노래하는데, 가슴이 벅차오르며 너무나도 행복했다. '신이여' 역시 감정부터 노래까지 다 좋았고, '칼날 같은 그 미소' 에서 완벽하게 격침당했다. 원작소설을 읽을 때 당연히 막심을 류배우라고 상상하면서 책장을 넘겼는데, 그 때 상상했던 것보다 더 히스테리컬하고 더 섬세하며 더 많은 상처로 가득한 캐릭터여서 완전히 취향저격이었다. 류배우님이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가 바로 고급스럽게 미친 귀족st 라고 주구장창 들어왔는데, 입덕 반년만에 드디어 제대로 마주보게 됐다. 정말 모든 넘버가 다 너무 좋아서 오히려 말을 못하겠다ㅠㅠ 칼날송에서 보트보관소로 들어가 마주한 레베카를 연기하는 류베카의 표정과 목소리가 생생하다. 보면서 왜 내 눈은, 내 안경은 자동으로 장면을 저장하는 기능이 없는 건지 한탄했다. 팬텀이나 라만차에서는 보지 못했던 미소나 어이없다는 표정, 한껏 광대를 올리며 달달한 애정을 듬뿍 담고 있는 눈빛 등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어서 아주 행복했다. 



1막 초반에는 소설이 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뒤로 갈수록 원작을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수성에 맞게 아주 유려하게 변형시키고 만들어냈다는 감탄이 나왔다. 막심과 이히의 관계가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어 이게 괜찮을까 싶었고, 맨덜리의 안주인이 된 이히가 막심이 레베카를 너무나도 사랑했으며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레베카에 대한 열등감이 '가장 아름다운 여자' 등의 넘버들 가사와 후반부의 대사들로 표현이 되긴 하지만, 설명이 친절하진 않았다. 이런 류의 개연성 부족은 모든 대극장 극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는 단점이자 한계임을 잘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하고 관극하게 된다.





자리가 너무 좋았다. 예당 오페라하우스 극장 자체는 아주 별로였지만 말이다. 세상에 op랑 1열의 높이가 똑같은 공연장은 처음 봤다. 생각보다 공연장이 아늑한? 조금 폭이 좁다는 느낌이었고, 박스석이 신기했으며, 2,3,4층이 모두 동일하게 아주 멀리 위치하고 있는 것에 치가 떨렸다. 약간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나서 답답했고, 서늘했다. 의자 배치가 지그재그가 아니라서 시방이 심각한 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저자리는 좋았다ㅠㅠ 처음 등장할 때부터 쓱 앞좌석을 바라보는 막심과 눈이 잠시 마주쳐서 내적 탄성을 내뱉었고, 기대보다 더 많은 씬에서 시선이 맞았다. 예를 들면 칼날송 도입에서 무릎 꿇은 채 노래하는 장면이나, 재판 씬에서 다리꼬고 앉아 있는 장면 등등에서 눈높이가 정확하게 맞아서 너무 좋았다...ㅠ....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객관성을 완벽하게 상실해버린다는 뜻이죠... 모든 기준이 그 사람 하나만으로 정해진다는 건, 아주 행복하지만 묘하게 속상하기도 하다. 전체적인 그림에서 놓치는 것도 있고, 다른 배우들에게 소홀해지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살짝 현타가 온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하겠어....ㅠㅠ.. 이렇게 좋을 때 많이 많이 애정과 사랑을 보내며 행복을 만끽해야지. 



아, 자리 얘기 하고 있었지. 자첫도 하기 전에 마지막 티켓팅까지 다 해버려야 했던 망할 스케쥴 때문에 보지도 않은 극의 표를 네 개나 잡아놓았다. 근데 이 자리가 제일 좋아... 다른 건 다 op 2열이다...힝... 중블통이랑 왼블, 오블이 하나씩 있는데, 일단 오블 공연은 류신막이기도 하고 걸레석(...)이기도 해서 반드시 기필코 갈 예정이다. 다른 두 좌석도 일단 가긴 할 건데 한번쯤 중블 븹 앉아보고 싶다. 앞쪽은 목이 너무 아파.... 무대 위쪽에 장면에 맞게 R의 색깔이 변하고 조명으로 강조하는 양각 무늬가 달라지는데 그런 디테일한 연출을 잡아내기가 어렵다. 무대장치와 소품 등을 여러 장면에서 재활용하는 것은 그래도 많이 캐치했고, 맆이나 변주 역시 익숙한 넘버가 몇 있어서 힘들이지 않고 떠올릴 수 있었다.      





커튼콜에서 오케반주가 끝날 기미가 없으니까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며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짓던 류막심 표정이 너무 좋았다. 좋았던 걸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 목소리도 정말 우아하고 고급지고 매력적이다. 류팬텀이나 세류반 때와는 다른, 뭔가 류배우님 본인의 목소리가 담뿍 묻어나서 상당히 신선하고 또 감격적이었다. 좋아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참 많은 걸 새로이 얻고 있는 덕질이자 팬질이다. 돈도 많이 많이 들고 말이다...ㅎ



아주아주 만족스러운, 최고의 생일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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