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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오브라만차

in 디큐브아트센터, 2015.10.02 8시 공연





무려 총막 2층 중블 1열 좌석을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공연으로 2015 맨오브라만차를 자막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어마어마하게 훌륭했고 어마어마하게 눈물 흘렸으며 어마어마하게 온 마음을 다해 극의 메시지와 배우의 감정선에 공감했다. 내 자막은 극의 총막공이 아니라, 좋은 자리에서 가장 격렬하게 공감한 공연이어야만 한다는 징크스가 생긴 것 같다. 더 보고 싶은데, 더 보고 싶지 않아........ 



오늘 공연은 류동키/세류반테스, 미도돈자, 호이산초. 



※스포 있음※



오늘 세류반은 정말정말 매력적이었다. 완전 내 취향. 지난 공연들에 비해 조금 젊어진 느낌이었다. 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어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이상을 진심으로 굳게 믿는다. 비아냥거림에는 순간적으로 발끈하며 반박하고, 죄수들을 이끌어 극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애드립이 풍부해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믿는 정의에 희미한 회의감은 있을 지언정 의구심은 찾아 볼 수 없는, 보다 솔직하고 곧은 지식인 세르반테스를 연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종교재판을 받으러 가는 죄수가 "신이여 도우소서!" 라 외치며 걸음을 떼는 모습이 참 모순적이면서도 여러모로 현실적이었다. 용기를 건네고 또 용기를 건네받는 마지막 장면은, 어두운 지하감옥임에도 눈이 부실 정도다.   



류동키는 늘 그렇듯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매번 우는 넘버가 1막의 둘씨네아, 맘브리노의 황금투구, 그리고 임파서블 드림이다. 2막은 침대씬부터 계속 운다. 거울의 기사로 인해 날 것 그대로의 스스로를 마주한 류동키는 오늘 참으로 어린아이 같았다. 흔히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아이가 된다고 하는데, 오늘의 류동키가 그말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거울을 박박 긁으며 울먹이던 돈키호테와 침대 위에서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아가는 알론조 키하나까지, 그의 감정선이 어린아이의 본능을 여실히 따라갔다. 그래서 더 생생했다.



1막 마지막 우물씬. 세류반 목소리의 철야기도는 처음 들어봤다. 그의 목소리가 귀에 닿는데 눈은 이미 눈물로 가득 차올라서 흐릿했다. 펑펑 울고 싶을 정도로 혹은 그냥 자리에서 그저 흐느끼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턱 막혀 오는데, 그걸 다 참아내느라 더 괴로웠다. 위로 받는데, 위로 받는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너무 아픈, 그런 기분. 나 왜 이렇게 아프냐. 돌이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오열하고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고통스러울 일이냐고. 속으로 삼키고 삭히면서도, 그나마 이런 돌파구를 찾아 그 고통이 고름이 되기 전에 어떻게든 짓눌러 터트리고 치워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맨오브라만차를 보며 '꿈'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인생 자체에 대해 위로받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어떻게든 일상을 견뎌내도록 하는 힘을 얻고 있다. 이 극이, 무엇보다 세류반이 전하는 위로가, 내 심장 가장 깊숙한 곳을 뒤흔든다. 그래서 정말 미칠 듯 아픈데, 그 고통의 크기만큼 조금 더 치유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이게 내가 꾸역꾸역 이 고통과 지금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유다. 이 한 문단을 쓰는데, 두루마리 휴지 4분의 1롤을 사용했고 30분의 시간을 소요했다.





극 전반에 대해 말해보라 하면 할 말이 무지 많은데, 이상하게도 리뷰를 쓰려고 들면 그 내용을 적기가 힘들다. 연출이나 음악 같은 극의 요소들을 다루기에는, 바닥 아래 깊숙하게 숨겨두었던 모든 감정을 끄집어내 건드리는 그 감성이 너무도 독하면서 또 매혹적이다. 이 극, 정말이지 명작이자 고전이자 수작이라니까. 



커튼콜 류배우님 표정이 참, 눈부셨다. 잘생기고 멋있고 그런 걸 다 떠나서, 그 눈빛. 그리고 그 표정. 감사하다. 굉장히 많은 덕질을 해봤지만, 무대 위의 누군가를 무대 아래에서 만날 수 있는 생동감 넘치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감사하고 다행이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건 정녕 처음이다. 그냥 무대 위에 존재해주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진정 고맙다. 대체 왜 내가 이런 말까지 하게 만들어요, 정말ㅠㅠ  오늘로 자막하면 내년 1월까지 무려 3개월이나 못 뵙는 건데, 그게 자신이 없다. 류동키나 세류반을 못 만나는 것보다, 그냥 무대 위의 류배우님 못 뵙고 그 목소리 못 듣는다는 게 정말 죽을 것 같이 암담하다. 하아. 죽겠다 진짜. 





아 진짜 오늘 공연에 대해 할 말 많은데, 도저히 더 못 쓰겠다. 일단 잠정적인 자막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끝내고, 차후에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조금 더 얘기를 해봐야겠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우면서도, 이대로 끝내야 후련하겠다는 생각 뿐이다. 류배우님 막공 특유의 큰절과 무대인사는, 정말이지 언젠간 보겠지. 그런 '의미 있는' 공연의 자리에 '함께' 하는 것보다는, 일단 내가 중요해. 내 감정과 내 의미부여와 내 마무리. 그 맥락에서 오늘의 공연은 너무나도 완벽했고 감사했고 눈부셨다. 진심으로 만족한다. 주말 내내 이 공연만 곱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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