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취향존중/Book

2015 독서목록

누비` 2015. 12. 29. 10:14


해가 갈수록 독서량이 줄어들고 있다. 100권, 50권, 올해는 25여 권. 1/2씩 곱하는 등비수열도 아니고. 내년에는 더 다양하게 더 많이 읽자!! 고 매년 하는 다짐을 해본다ㅎㅎ 



1. 반지의 제왕 - J.R.R 톨킨


2년 연속으로 톨킨 경의 가운데 땅 이야기를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다. 물론 이미 일독하긴 했지만, 새삼 글로써 이 세계를 마주하니 가슴이 뛰었다. 탄탄한 세계관을 구축한 톨킨 경의 능력에 대한 첨언은 부질 없는 짓이리라. 이 방대한 내용을 '영화적'으로 자르고 바꾸고, 때론 왜곡시켰다는 평까지 들어가며 재탄생시킨 피터 잭슨 감독의 능력에 응당한 찬사 역시 보낸다. 야금야금 공부하며 준 톨키니스트로서의 면모를 갖춰가야지. 



2. 김수영을 위하여 (2012) - 강신주 (김서연 만듦)


'김수영'을 삶의 지침이자 정신적 지주로 삼고 반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그에게 바치는 헌사. 저자가 이 책을 당당하게 김수영 본인에게 내세울 수 있다고 단언하는 글을 다른 책에서 접한 이후로,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프롤로그 즈음에서 저자는 이 강의를 할 때 무언가 다급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불친절했다고 고백했는데, 정확한 자기성찰이었다. 끊임 없이 '잊지 말자' 라거나 '기억하자' 라는 탄성을 내뱉으며, 그가 혼자 김수영을 마주했을 때 수없이 되뇌었을 자극과 깨달음을 반복한다. 그런 의미에서 꽤나 저자의 자기중심적인, 독자에 대한 배려는 조금 부족한 글이 되었다. 그러나 그 절박하기까지 한 말들이 오히려 생생한 날 것의 매력을 내뿜고 있기도 하다. "공동체 성원들이 스스로 도는 힘을 포기하지 않고, 동시에 자신이 살아가는 스타일을 다른 성원에게 강요하지 않을 때에만 민주주의는 실현된다.(p.208)" 김수영이 '시'를 매개로 하여 꿈꾼 세상은 자유와 독자와 주체로 넘실대는 이상향이다. 그 명확하고 곧은 믿음을 신념으로 삼고 "허용된 자유를 거부하고 온 몸으로 자유를 살아 내야만 한다.(p.280)" 라는 깨달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 시인에게 바치는 책이다.  



3. 탈핵학교 (2014) - 김의중 외 11명


현재 시점에서 '탈핵'만큼 절박하고 다급한 화두가 있을까 싶지만, '핵발전소'만틈 대중이 무감각한 주제가 없다. 이토록 우리 삶에 즉각적이고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 '폭탄'을 왜 모두들 외면하고만 있는 걸까. 후손들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우리 모두가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아니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울' 법한 현실이다. "핵발전소는 안전할 때 멈춰야 합니다. 계속 가동하다가 사고가 난 뒤에 멈추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 지금 안전하니까 연장해서 가동하자는 말은 파국으로 가겠다는 말과 같습니다.(p.161, 최무영)" 지금 당장 우리를 위해 멈춰야 하는데,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관성(윤순진)" 에 의해 유야무야 은폐되어 지속되고 있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곧바로 하지 말아야지, 대안을 찾은 뒤에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p.15, 김정욱)" 그만, 합시다.



4. 알리바바 마윈의 12가지 인생강의 (2013) - 장옌


중국인 경영자에 대한 글을 제대로 접한 건 처음인데, 누가 봐도 중국인 특유의 성정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20대 사회초년생에게 기대하지 않고,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는 세태가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는 점이 새삼 충격적이다. 자신만의 신념을 굳게 지닌 채, 사회의 성원으로서의 사명감을 잃지 않는 것. 목표에 대한 확고한 집중을 통해 미래를 창조해내가는 것. "많은 젊은이가 저녁에 수많은 길을 생각하다가도 아침이 되면 가던 길로 갑니다.(p.41)" 이 한 문장이 유난히 아프게 찔러온다.



5.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2014) - 류동민


'도시학'인 줄 알았는데, 정치학에 가까운 경제학이었다. 다분히 인문학적인 정서로 다가가되 경제학의 시각을 꾸준히 견지한 글이다. 다른 작가의 말, 특히 소설책의 인용이 많다는 점에서 저자의 독서량을 능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몸 담고 살아가는 '서울'이라는 공간은 단 하나의 논리로 구성된 장소가 아니다. 이 책에서는 '자본'의 논리와 힘이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또 미치고 있음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애초에 '돈'의 흐름에 따라 권력 및 여러 부수적인 것들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경제체제를 우리가 선택하여 유지하고 있는 이상, 당연한 귀순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 근간은 '장소'의 의미를 '사람'이 부여한다는 그것. "그렇게 풍경은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발견되는 것이다.(p.105)" 현대사를 접목시켜 도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6. 무라카미 라디오 (2001) - 무라카미 하루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쭉 읽어내릴 수 있는 산문집. "생각건대, 그런 '새삼 절감하는' 하나하나가 우리만의 골격을 형성해 가는 것은 아닐까.(p.41)" 라거나, 경비행기의 엔진이 순간 멈췄던 이야기 "모든 것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조용하며 아득히 멀리 있었다. (...) 세계는 이미 다 풀어져서 지금부터 세계는 나와 무관하게 진행되어 가겠구나 (...) 아주 신기하고 은밀한 느낌이었다.(p.26)" 등이 흥미로웠다.



7. 경영전략 논쟁사 (2013) - 미타니 고지


기업이 취해야 하는 최상의 전략이 무엇인가를 두고 경영학계 안에서 벌어진 논쟁, 그 장대한 역사를 다룬 책이다. 초반에는 술술 읽혔는데 갈수록 지루해졌다. 곁에 두고 참고할 만은 하지만, 심도 있는 지식을 위한 책은 아니다. 너무 방대해서 개념 정리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다. 



8.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2005) - 미치오 슈스케


괜히 읽었다 싶을 정도로 불유쾌함이 끈적하게 남았다. 추리물이라 명명하기에는 위화감이 다소 느껴졌다. 우울이 깔려있는 가운데 유년기의 학대나 기묘한 판타지스러움이 다분히 찝찝하다. "모두 똑같다고요. 저 뿐이 아니에요. 자신이 한 일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은 없어요. 어디에도 없다고요. 실패를 모두 후회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전부 돌이키려 하고,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요. 그래서 모두 이야기를 만드는 거예요.(p.436)" 절규하듯 쏟아내는 후반부의 이 대사가 소설의 주제다. 참으로 열 살 소년답지 않은 이 논리에, 독자인 나는 울어야할 지 비난해야할 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불꽃놀이를 묘사한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이 작은 천둥은 수많은 나뭇가지처럼 그대로 굳어버리고, 그 굳어버린 빛의 가지를 손바닥으로 누르면 분명히 사탕처럼 바삭바삭 부스러질 것이다.(p.302)"  



9. 변경지도 (2014) - 이상엽


'변경'에 머물러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오롯이 마주하는 일. 사진이 지닌 힘으로 무언가를 담아내고자 하는 명확한 의지. "사진은 고통을 드러내는 증거다. 우리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고통받았다는 것을 진술하는 매체다. 그 고통을 목격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각자의 몫이다. (...) 그 전장에서 수없이 스러져간 이들의 묘비명을 기술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p.313)" 사진은 순간을 포착해 정지된 시간 속에 남겨두는 단순한 매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생생하게 살아 흘러넘치는 그 상황의 모든 생동감을 적절히 담아내어 '기록'하고 '알리는' 매체다. 기억을 넘어 또다른 행동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사진이라 믿는다. 내 손에 들린 이 카메라의 뷰파인더에는 진실로 중요한 순간들이 담기고 있는가. 내 사진은 특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10. 보다 (2014) - 김영하


"경험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타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보고 들은 것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p.208-9)" 마지막 작가의 말에 담긴 이 글이, 저자의 3부작 에세이의 의미를 보여준다. 보다 현실적이고 보다 생생하게 대화하듯 이야기를 전해 듣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시대에 이런 작가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의 위안과 조금의 안도가 느껴진다. 



11. 말하다 (2015) - 김영하


강의 위주로 담아낸 산문집.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보다 더욱 공감 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인생선배의 글 같기도 했다. 책 사이사이 나만의 생각을 넣어봐야겠다.



12. 일침 (2012) - 정민


이 저자의 책을 꽤 많이 읽었는데 특유의 구성이나 필체에 대해 새삼 인지하게 됐다. "인생이 푸짐해지고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면 지금보다 쓸데없는 말, 한가로운 일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p.18)"



13. 단순한 열정 (1991) - 아니 에르노


'자전적'인 이야기를 녹여낸 '감정적' 소설이어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공감은 가는데 공감간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해지는 이유는 글이 현실적이고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불륜이라는 컨텐츠의 불편함보다는, 치졸하고 부끄러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감 없이, 그것도 덤덤한 문체로 표현하는 것을 마주해야 하는 거리낌과 부담스러움이 더 컸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p.59)" 글을 쓰는 것이 소명이기에, 그것이 일이고 일상이기에, 딱히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도 써내려간 글. 그 글을 고치고 다시 읽고 또 고치다보니 시간은 흘렀고, 결국 '과거에 사는 것' 마저도 과거가 되었다. "나는 내 온 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p.66)"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지독한 찰나의 열정이 유의미했다. 



14.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2015) - 황경신


서정적인 글은 감수성을 한껏 끌어올리기에, 때때로 굳이 찾아 읽는다. "강인하다는 것은 가벼울 대로 가벼워져서 투명해지는 것, 중력을 벗어나 날아오르는 것(p.218)" 이라거나 "지속이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변화하는 것 (...) 영원이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초월하고 또 초월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것(p.53)" 등의 문장을 읽으며 인생과 세상을 새삼 곱씹었다.



15.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2010) - 강신주


시인 한 명, 철학자 한 명을 대응시켜 총 21쌍의 이야기를 다른 책이다. 시는 '새로운 언어'이고 철학은 '새로운 사유이자 문법 (혹은 논리)'로서, 일상에서 조금 떨어져 '낯설게' 세상을 바라보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타성에 젖어 익숙함에 물든 채 살아가게 되는 현대인의 삶 속에 시와 철학이, 그리고 인문학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김준태) (...)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순간까지, 광주는 영원히 젊게 살아있는 구조로서, 혹은 트라우마로서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이라는 점을 말입니다.(p.401)"



16. 피아노 치는 여자 (1983) - 엘프리데 옐리네크


철저하게 '여성'의 시각에서, 왜곡된 세계관과 성에 대한 도착증적인 욕망을 덤덤하지만 적나라한 문체로 담아낸 소설이다.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글로 옮겨둔 듯한 전개와, 주인공마저 타자화하며 계속해서 거리감을 강조하는 방식이 가독성을 떨어뜨렸다. 절정과 결말이 지나치게 뒤쪽으로 몰려있어서 중후반 즈음에는 흥미로움보다는 피곤함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지금 그녀에겐 옷의 시체가 하나 더 생겼을 뿐이지만, 시체라도 그녀의 재산이기는 하다.(p.17)"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며 체념만으로 가득한 상황에서 오히려 자기위안의 형식으로 소소하게 억압을 깨보려고 하는 노력들이, 더욱 비참함을 부각시킨다. 페미니즘이 '불편함'을 아프고 노골적으로 짚어내는 인문학인 만큼, 언젠가 다시 한 번 도전해볼 소설이다. 



17. 롤리타 (1955)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하반기 핫한 이슈가 떠오르기 전에 읽었다. 


보통 뭔가에 '미친' 사람을 마주하면, 미쳤다고 욕하면서도 기묘한 동정심을 옅게 깔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의 화자 H.H.험버트에게는 일말의 동정심도 건네지 않겠다. 지독한 자기방어적 변명들과 유려한 묘사 및 설명들로 애써 감추려드는 파렴치하고 역겨운 본성이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계속 신경을 건드렸다. '순결을 지켜주겠다'느니 '그녀는 모른다'느니. 결국 한 인생을 시작부터 망쳐버린 주제에 끊임없이 스스로가 이상한 자임을 인정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으니 짜증이 절로 솟구쳤다. 그 와중에 "나는 롤리타를 영원히 사랑하게 되었음을 알았지만 또한 그녀가 영원히 롤리타로 남아있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p.108)" 라니! 결국 입맛에 맞게 '이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존재하는 순간에만 사랑하겠다는 이기적이고 기만적인 뻔뻔함에 어이가 없다. "그 젊잖고 몽롱한 공간은 범죄의 온상이 아니라 시인의 영토였다.(p.212)" 라는 둥 여성스럽고 섬세한 묘사가 혐오스러운 내용을 더욱 부각시켰다. 고전이라 불릴만한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현입하며 혐오감을 느낀 것이 거의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예술적인 가치' 또한 충분히 가득한 소설이다.



18. 잃어버린 연인들의 초상 (2005) - 엘렌 보나푸 뮈라


"나는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쓰던 수법을 동원했다. (...) 빅토르는 그들 중 그 누구와도 섞이지 않았다. 여전히 그는 온전하게 피와 살을 가진, 단순히 묘사될 수 없는 엄연한 하나의 존재였다.(p.112-3)" 라던 말이 주인공 오르탕스의 성격을 정확히 보여준다. 



19. 포르투갈 (2011) - 시릴 페드로사


유럽만화 특유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마치 일러스트 같은, 묘하게 이질적이면서도 가만히 보고 있자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 '경계인'을 다룬 이야기. 뿌리가 어디인지 정확히 모르면서도 막연히 어린 시절 기억이 남긴 잔재를 아련한 기분으로 마주한다. 



20. 프랑켄슈타인 (1818) - 메리 셸리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는 게 너무도 안타깝고 아쉬웠다. '신'처럼 생명을 창조해낸 '인간'. 그 창조주를 저주하고 원망하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괴물'. '만들어놓고 내친' 빅토르의 행동은 무책임했고, 외양에 끔찍함을 느껴 도망칠 정도로 어리석었고, 회피하려고만 하며 비겁했다. 똑똑하고 이성적인 면과 감성적인 면을 모두 갖춘 괴물이었기에 비극이 더욱 절망적이었다.



21. 돈키호테1 (1605)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어려운 소설은 아닌데, 원작의 돈키호테가 상당히 짜증나서 완독하는데 오래 걸렸다. 적어도 민폐는 끼치지 마!! 라고 소리지르며 결투라도 신청하고픈 기분이었다. 정말 정의롭지 못한 것에 싸움을 걸고, 우스꽝스럽고 고단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승리는 있었다- 라는 식의 정석적 풍자소설이었다면 속이라도 시원했을텐데. 돈키호테는 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괜히 시비를 걸어 상해를 입히고 자기 자신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되돌려받기만 하니 답답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냥 밉지만은 않아. 확고한 자기만의 논리로 모든 걸 재해석하고, 주변의 비웃음과 괴롭힘에도 의연하게 제 갈 길을 가는 그의 모습이 기묘하고 놀랍고 신기하고 호기심이 든다. 매 번 챕터 한두장을 읽고 책을 덮고, 잠시 후에 다시 마음을 다잡아 책을 펼친 뒤 또 두어 챕터 읽고 덮는 행동을 반복했다.



22. 돈키호테2 (1615)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어째 1권과 2권의 문체가 묘하게 달랐다. 2권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내용들이라서 오히려 신선했다. 책 속의 세상에서도 소설 돈키호테 1권이 출간되었다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전제로 하고 있어 흥미를 끌어올렸다. 그런데 대중이 참 무서운 건, 미친 기사라는 이유 하나로 마음껏 장난을 치고 괴롭히면서 그걸 즐거워하더라. 게다가 산초를 때리게 만드는 공작부부의 행태가 매우 불쾌했다. "그저 편력 기사도가 길에서 행해지던 그 행복했던 시대를 부활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수를 세상이 깨닫도록 애쓰고 있을 뿐(p.69)" 이라는 말이 그 광기의 근간을 보여준다. 책 구석구석 작가 세르반테스의 가치관이 오롯이 녹아있다. 여러 시도가 돋보이는, 근대 소설의 효시.



23. 레베카 (1938) - 대프니 듀 모리에


초반 맨덜리 저택에 대한 묘사가 너무 길어서 지루했는데, 본문은 너무나도 흥미진진했다. 책 제목이 '레베카'임에도 단 한 번도 그가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파격과, 마치 내 뒤에도 레베카의 그림자가 따라다니고 있는 듯한 끈적한 공기의 생생한 묘사까지. 살인자이지만 막심이 전혀 비난의 대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했다는 비평이 책 뒤에 실려있었지만, 글쎄, 도덕관념 따위도 비웃어버리는 행동이 과연 '자유분방함'이나 '당당함'이라는 가치로 온전히 변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당시 남자들이 아주 자유롭게 다른 여자들과 놀아나는 사회 분위기였음을 감안해보면, 정당한 미러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레베카보다는 화자인 '나'의 변화가 더욱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비록 그 변화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자 '속세에 적응하고 순수함을 잃어가는 단계'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마무리는 조금 아쉬웠다.



24.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014) - 채사장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파트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가볍고 핵심적인 주제를 무한한 반복을 통해 주입 수준으로 다룬다. 가볍고 지루했다... 



25. 티핑포인트 (2000) - 말콤 글래드웰


신입생 때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이제서야 일독했다. 오래되기도 했고, 미국 위주의 사례들이라서 큰 공감은 가지 않았지만, 개념의 신선함은 여전히 강렬하다.



26. 사진의 극과 극 (2010) - 최현주


사진은 현실적이고 직관적인 듯하나, 그럼에도 쉽지만은 않다. 이 책은 '예술'의 장르로서의 사진을 다룬다. 그래픽과 포토샵, CG 등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현대미술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개인적으로 현대미술 쪽은 난해하고 해석이 자의적인 경우가 많아서 별로 재미가 없다. 



'취향존중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 독서목록  (0) 2017.12.31
2016 독서목록  (2) 2016.12.26
2014 독서목록  (0) 2014.12.29
냉정과 열정 사이 (1999)  (0) 2014.10.29
2013 독서목록 2탄  (0) 2013.12.30
공지사항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