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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오브라만차

in 디큐브아트센터, 2015.08.01 3시 공연





10주년 공연인데 자첫. 입덕 이후 라만차가 류배우님의 차기작임을 알았기에 최대한 스포를 피하려 노력했고, 조심하느니 아예 류배우님 첫공을 다녀오자 해서 2층이지만 빠르게 다녀왔다. 운좋게 올레 할인 뜬 날 누구보다 빠른 실행력으로 40%할인을 받고 결제를 완료했는데, 바로 다음날 올레할인이 신기루인양 사라져서 당황했다. 1차 때 예매한 좋은 자리를 눈물을 삼키며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액땜을 여기서 한 건가 싶기도 하고. 극 뚜껑 열어보기 전임에도 2차 오픈까지 참여해 관극을 3개나 예매해두는 강수를 두었는데, 역시 생각했던대로 '호'에 가까운 극이어서 다행이다. 뮤지컬보다는 연극에 가까운, 극 속에 극이 들어있는 공연.  





자첫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곱씹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 일단 첫 리뷰는 스포일러 없이 짧은 단상만 남겨야겠다. 일단 디큐브 2층이 시야도 음향도 정말 좋았는데, 무대와의 거리감이 꽤 있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무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배우들의 동선이나 조명을 쉽게 따라갈 수 있어서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인터미션. 어디선가 제작자가 인터미션 없이 가고 싶어했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것도 같은데, 2막 시작부분을 보고 그 말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20분이라는 긴 인터미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해서, 흐름 끊지 않고 끝까지 이어가는 편이 훨씬 몰입도 있고 좋았을 것 같다. 돈키호테 원작소설 자체도 호흡 끊김 없이 쭈욱 이어지는 분위기였다고 기억하고 있고. 물론 현실적으로 인터미션의 필요성은 잘 알긴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ㅠ 여기에 무대가 많이 어두워서 눈이 아팠다. 극의 분위기 상 어쩔 수 없다는 것 또한 알지만, 다른 극 볼 때와 비교해서 유난히 피곤해진다. 생각해보면 팬텀도 무대가 전반적으로 어둡긴 했더랬지.   





1막은 세 번이나 눈물을 흘렸는데, 2막은 오히려 안 울었다. 아니, 못 울었다. 배우들 감정선이나 연기는 2막이 정말 좋았는데, 옆자리 핸드폰 관크가....... 1막 때 참다가 2막 중간에 못 참고 양해를 구했는데 그 와중에 바로 죄송하다고 해서 미묘하게 더 짜증이 났다. 죄송한 거 알면 하질 마세요. 극에서 아주 잠시 빠져나온 것뿐인데, 그 이후부터는 온전한 몰입이 되지 않았다. 덕질을 하면 할수록 앞자리 덕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관크를 최대한 피하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일단 남은 두 자리는 다 1층 2열이니까 괜찮겠지ㅠ 





류배우님의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는, 정말 신기하고 경탄스러웠다. 세르반테스는 잘생기고 우아한 목소리로 내 귀를 사로잡았고, 돈키호테는 몸짓 하나하나에 극적이고 과장스러운 연기를 담아 상상 그 이상의 캐릭터로 내 시선을 빼앗았다. 하나의 무대에서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와 연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놀랍기만 했다. 게다가 차이가 나는 경계선을 명확히 그어서, 세르반테스가 존재하는 극과 그가 만들어낸 돈키호테가 존재하는 극 속의 극을 뚜렷하게 분리해냈다. 배우의 역량 덕분에 극 자체가 분명하고 친절해졌다. 그나저나 2막에서 류배우님이 대사 두 번 씹으셨다. 무난히 넘기긴 했지만 보는 나까지 동공지진. 그 이외에는 역시 딕션이 훌륭했다. 노래는 엄청 짱짱하시고. 라만차 노래 음역대도 바리톤인 류배우님 음정에 딱 맞는 것 같더라. 노래보다 대사가 많아서, 류배우님 노래를 많이 못 듣는 걸 슬퍼해야 할지 류배우님 목소리를 많이 듣는 걸 기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ㅎ



전미도 배우는 첫곡이 좀 불안했는데, 뒤로 갈수록 연기도 노래도 훌륭했다. 다만 성대 엄청 긁으시는 것 같은데 막 내릴 때까지 잘 유지하실 수 있을지 걱정된다. 산초 역의 정성훈 배우는 백치미가 넘치는 캐릭터를 맛깔나게 살려서 관객들의 웃음을 계속 유도했다. 앙상블도 모두들 훌륭했지만, 독창을 하는 조연분들 중 몇몇의 노래가 잘 안들려서 아쉬웠다. 조금만 더 임팩트있게 불러주세여ㅠㅠ



무대가 풍성하진 않지만 안정감있고 아늑한 분위기다. 중간중간 여러 소품과 배경을 통해 장면 전환에 강조점을 두는 것마저 '소설' 같은 느낌을 가득 풍겼다. 거기다가 노래 가사들은 어찌나 '시' 같던지. 극 속에서 시인이자 극작가이자 배우이자 세무소직원(!)인 세르반테스가 쓴 글 다웠다. 깊은 울림이 있는, 아름다운 문장 하나하나가 심금을 울렸다. 여러모로 다분히 연극적이고 문학적인 극이었다, 맨오브라만차는. 





그나저나 다음 관극은 8월 말이다ㅠ 중간에 하루 또 예매해서 보러 갈까 걱정이긴 한데, 디큐브가 너무 멀어서 지친다. 이번주에 관극을 너무 많이 해서 피로가 누적된 탓도 있고 날씨가 무지하게 더운 탓도 분명 있겠지만, 지금까지 갔던 공연장 중 가장 멀리 있는 곳이라서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지쳤다. 서울 사는 주제에 너무 배부른 투정이겠지만, 각자의 사정이란 게 분명 있으니 유하게 넘어가 주세요....ㅠ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굳건하게 정의와 진실과 꿈을 이야기하는 뮤지컬. 현실을 마주하라는 요구에 단호하게 "현실은 진실의 적이야" 라고 말하는 뮤지컬. 이 미친 세상 속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더 미친 짓이라 외치는 뮤지컬. 비록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누구나 그 뜻에는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리라 믿는다. 막막한 세상을 살아가며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면 생각날 듯한 극인데, 무대 올라왔을 때 몰아서 여러 번 봐야 아쉬움이 남지 않으리라는 잔혹한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가능한 한 자주 보러갈 수밖에. 곧 다시 봅시다, 돈키호테. 꿈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양반.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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