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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in 충무아트홀 대극장, 2015.07.19 6시반 공연





세 번째 관람이자, 자체막공. 눈물을 너무 쏟아서 머리가 살짝 띵한데, 두서없는 글이라도 지금 당장 써내려야 할 기분이라서 포스팅을 간략하게 남겨야겠다. 하아. 그런데 어떻게 시작한담.





※스포일러 있음※



앞쪽 좌석에 앉았으면서 다른 배우들에게 참으로 무례한 짓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내 시선은 모든 장면들마다 류팬텀이 등장할 곳만 정확히 주시하고 있었다.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순간들마저 안타까워 미칠 것만 같았다. 눈물을 참느라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어서 눈물이 차오르면 그냥 흐르게 내버려 두었다. 그래서 이미 1막의 유아뮤직부터 펑펑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크리스틴을, 그의 목소리를 자신의 구원이라 믿는 류에릭의 성스럽기까지 한 감정이 너무 아름답고 지독하게 아팠다. 그리고 조심스레 다가가 부르는 이그그품. 비스트로 끝장면부터 '자신이 가질 수 없는' 한계를 절절히 느끼고 있었기에, 잠시나마 구원을 얻었다는 기적을 잃는 감정선이 절박하고 고통스럽게 뿜어져나왔다. 단순한 연애감정이 아니었다. 크리스틴이라는 존재 자체가, 비참하기만 하던 류에릭의 인생을 유의미하게 긍정해주는 단 하나의 빛이었다. 그래서 차마 그를 잡지 못하고 뒤에 홀로 남겨져 무너지는 류에릭의 절망스러운 절규가 숨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2막. 피크닉.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땐, 그땐 그만 할게요" 라는 크리스틴의 잔혹한 말에, 입술은 떼도 차마 목소리를 내뱉을 수 없어 하던 괴로운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았다. 어쩐지 오늘의 류에릭은 얼굴을 보여주고 그에게 이해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미세하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듯도 했다. 그래서 도망가고 싶어하고 따뜻한 손에서 벗어나려는 제스쳐를 취해도 그 근간에는 자신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크리스틴 역시 자신을 보듬고 이해해주리라는 '기적'을 아주 조금이나마 기대하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래서 내 비극적인 이야기 reprise 가 지독하고 끔찍했다. 절박하게 붙들고 있던 유일한 희망이 잔인하게 그를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더 내려갈 곳은 없으리라 자조하며 머무르던 지하무덤보다도 더 깊은 심연으로.



절정은 넌내아들. 생각보다 여린 목소리로 "그래도 태어나서 좋았어요"라고 말하기에, 카리에르를 용서한 건가 싶었는데...... 카리에르가 넌 내 아들이라며 노래하는데 옆에서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엉엉 울고 있었다. 듀엣을 시작하면서도, '당신을 닮아가고 있었다' 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무한 표정으로 그와 시선을 맞추지 않다가 '당신이 말해줄 그날' 이라면서 잠깐 눈을 마주하는데 이제와서 무슨 소용인가, 라는 기분이 전해져왔다. 절절한 카리에르의 고해성사가 단 한 문장도 그의 귀에 닿지 않았다. 가사는 고맙다고 하는데, 그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의자에 앉아 '아빠'라고 두 번 말하는데, '훌륭한 가수가 됐을거야' 라는 말 하나가 듣고 싶어서, 하지만 막상 그 말을 들으니 확 감정이 끌어올라 뱉어내듯 던진 단어 같았다. 마지막에 '넌 내 아들' 이라는 말에 '알고 있었어요', '느꼈죠 그 눈빛' 이라는 가사에 분노와 원망을 잘근잘근 씹어 토해내는 목소리가 잔인하기만 했던 그의 인생을 지나칠 정도로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마지막 순간 자신의 맨얼굴을 보며 노래 부르고 '사랑해요..' 속삭이던 크리스틴만을 두 눈에 담았을 류에릭은, "고마워요. 당신이 나의 구원이 됐어...." 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진정으로 구원받은 것 같지 않아서, 그 장면을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는 나는 죽을 것만 같았다. 찬란하게 쏟아지던 단 한줄기의 빛이었고 기적을 기대하게 해주었던 유일한 희망이었기에, 절망스런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구원 비스무리한 선의를 소중하게 받은 듯했다. 남은 자가 더욱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엔딩. 감정이 추스러지가 않아서 커튼콜에 뜨겁게 박수를 치면서도 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아뮤직 한소절을 부르는 류팬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자체막공이니 1분1초가 아깝게만 느껴지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공연보다 깊숙히 몰입했고, 감정에 지독하게 휘둘렸으며, 같이 미쳐버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공연이었다. 그래서 지금 너무나도 아프지만, 진심으로 고맙고 귀하고 감사하다. 이 감정이 단어로는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아 속상하다ㅠㅠ



아, 죽을 것 같다.......... 샹동 노래 중에 '당신을 만나기 전 내 인생이 기억 안나' 라는 내용의 가사가 있었는데, 오글거리지만 진심으로 저 말을 류배우님께 전하고 싶다. 정말 지난 6월2일 처음으로 류에릭, 류팬텀, 류배우를 만나기 전의 내 모습이 까마득하기만 한 과거인 것 같다. 지금을 견딜 수 있도록, 숨을 쉴 수 있도록, 꿋꿋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작년에는 헤드윅이 있었기 때문에 버텨낼 수 있었던 것처럼, 올해는 류배우님이, 뮤지컬이, 단단하게 기댈 곳이 되어주고 있다. 지금 이곳에 살아있어서, 참 다행이고 참 행운이다.





뮤비도 음원도 프레스콜도...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그를 만났고, 나름의 '구원'을 경험했다. 류배우님은 라만차에서 다시 뵙기로 하고, 초연 팬텀에게는 이제 작별을 고한다. 총막에서만큼은 진정한 구원을 얻길 바라며...... 안녕, 에릭. 안녕, 팬텀. 고마웠어요, 류팬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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