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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in 충무아트홀 대극장, 2015.06.25 8시 공연





지난 2일, 예상치 못하게 겪게된 덕통에 결국 바로 다음날 팬텀의 마지막 티켓팅에 참여해서 자체막공을 잡았다. 하지만 도저히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2층을 예매했다. 나름대로 회전문을 돌고 있는 건데, 관극 일자 간 간격이 20일이 넘어ㅠㅠ 하지만 지크슈까지 회전문 돌기로 했으니 어쩔 수가 없다.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체스에 이어 데스노트까지 취소했다. 싢콘 티켓 일정까지 나온 마당에 이 이상의 지출은 도저히 무리다. 왜 덕질은 끝이 없는데 재정은 벌써 바닥인건가......





6월 25일 팬텀 캐스트보드. 김순영 씨와 김주원 씨는 꼭 보고 싶었기에 일부러 이번 회차를 잡았다. 김순영 씨는 정말 노래의 퀄리티가 압도적이었다. 특히 비스트로는, '월드클래스'의 진면목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다만 2막 끝의 노래들은 감정선 때문인지 고음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아쉬웠다. 그리고 연기는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다. 묘하게 임혜영 씨와 연기목소리가 비슷했다. 노래하는 목소리는 분명 다른데, 톤이 같아서 그런지 신기할 정도로 대사칠 때의 목소리가 똑같았다. 그리고 김주원 씨는 마치 인형처럼 가볍고 사뿐한 몸놀림으로 시선을 강탈했다. 다만 연기의 감정선은 최예원 씨가 더 나은 것 같다. 표정을 자세하게 못 봐서 그런가?



다른 주연배우 중에서 카를로타는 홍륜희 씨였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워낙 신영숙 씨의 평이 좋았기에 걱정이 없지 않았는데, 나름의 캐릭터를 구축해서 멋지게 연기를 소화했다. 다만 음역대를 넘어가는 고음처리가 불안했다. 카를로타의 메인 넘버인 '다 내꺼야'의 절정 파트에서 그런 불안한 가성을 내다니ㅠㅠ 카리에르 역도 이정열 씨가 전반적으로 더 평이 좋았는데, 나는 박철호 씨가 더 좋았다. 자세한 이유는 아래에서 다루겠다.



그리고 앙상블. 지난 자체첫공 (이후 호칭 '0602 공연') 이래 아쉬운 대로 뮤지컬 팬텀의 영어ost를 듣곤 했는데, 가장 취향을 저격한 건 팬텀의 푸가였다. 풍성하게 쌓아올리는 화음과 휘몰아치는 듯한 박자에 웅장함까지 더한, 아주 멋진 앙상블이었는데!!!!! 왜죠... 편곡 자체는, 팬텀도 자주 들락날락거리고(....) 기본적으로 나쁘지 않지만 앙상블이 정말 별로다. 특히 남자 앙상블 화음 하나도 안 어울려. 가사도 안 들린다. "오페라를 망쳐버린 팬텀-" 부분만 명확하게 들린다. 하아, 영어 버젼에 류팬텀 목소리만 넣고 싶다. 아니, 그냥 류팬텀 솔로 넘버들 음원 좀 만들어주면 안 되나요? 이엠케이는 왜때문에 팬텀만 뮤비 안 만들어줘요??ㅠㅠ 설마 한국초연이라서 그런가... 그럼 재연하면 내주는 건가..... 하아... 이제 막공까지 딱 한 달 남았는데. 바라는 게 무리겠지......ㅠ





충무아트홀 대극장 2층 6열 시야. 꽤 멀다. 하지만 무대 전체가 시야에 꽉 차서 극 자체를 관람하기에는 괜찮다. 2층은 3열쯤부터 3층에 천장이 가린다. 보통 이런 경우 음향 퀄리티가 급격하게 저하되기에 극 시작 전에 걱정을 좀 했는데, 오오- 충무아트홀 음향 괜찮더라. 약간 막히는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음질이 깨끗하고 선명했다.



자, 이제 전반적인 스토리 흐름대로 리뷰를 적어볼까. 류팬텀 위주다. ※스포주의※



익숙해진 Overture가 흐르고 극이 시작된다. 류팬텀 첫 등장, 역시 멋지다. 전반적으로 0602 공연보다 목소리가 더 굵은 느낌이었는데 확실하진 않다. 왼편 2층 무대로 등장한 팬텀이 아주 잘 보였다. 노래 끝나면서 지휘하듯 주먹 쥐며 말아올리는 제스쳐 너무 좋아ㅠㅠ 노래 끝날 때마다 취하는 이 동작에 역시 격침ㅠb 그리고 덕통당한 바로 그 씬, 카리에르가 지하로 내려오고 류팬텀이 내가 살인을 했어!!! 하며 부들거린다. 여기 의상이 제일 좋다. 망토 안감이 붉은 톤이라 정말 완벽한 '팬텀'이다. 망토 펄럭거리며 걸어다니는데 취향 저격. 너무 멋지잖아요..! 아 맞다, 류배우님 사고(ㅠㅠ)나기 전에는 극 중간중간 가면을 바꿔썼다던데, 내가 본 공연들에서는 안 그래줘서 너무 좋다. 고전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새하얀 가면이 제대로 취향을 저격한다. 눈물가면이 존잘이었다지만, 그냥 하얀 가면이 최고야!! ((개취)) 아무튼 들려오는 카를로타의 괴성에 류팬텀은 경악을 감추지 않으며 말한다. 오.마이.갓. 신경질적으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온몸으로 짜증을 표출하는 류팬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조건반사적으로 피어오르는 미소ㅠㅠ 끼야앙아아기악-하며 같이 비명지르는 이 남자가 왜이렇게 사랑스럽죠?? 으앙 류배우님ㅠㅠ 자신에게 아름다움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지 않냐며 나도 데리고 떠나달라는데 단호박 먹고 거절하는 카리에르. 그 말에 멈칫하다 툭 하고 포기하면서 그래, 난 이런 곳이 어울려, 하는 팬텀의 자조가 아직 그렇게까지 바닥을 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지하'라는 비빌 언덕이 있다는 느낌. 물론 바로 이어지는 그 어디에(Where In The World) 넘버는 자신을 구원해줄 목소리를 찾는 절절함이 가득했다. 와, 덕통 당한 장면을 다시 보는 기분이 아주 묘했다. 이 블로그에 리뷰 같지도 않은 리뷰를 쓰고 나서 류팬텀의 후기란 후기는 다 찾아봤는데, 0602 공연이 정말 좋았다는 류배우님 팬 한 분의 말을 듣고 솔직히 조금 걱정이 됐다. 레전드인 자첫공연으로 시작해서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 것은 아닐까, 하면서. 하지만 2차에서 실망한다? 그딴 거 없다ㅋ 덕통 당한 그 장면은 여전히 덕통을 유발했다ㅠㅠ 아, 류배우님 너무 좋아......♡



카를로타 솔로 지나고 의상 담당이 된 크리스틴의 Home이 시작됐다. 팬텀과 같이 부르는 후반부에서, 류팬텀이 목소리 억누르지 않고 크고 웅장하게 듀엣해서 정말 좋았다. 실력 출중한 상대랑 함께 부르니까 지나친 배려를 하지 않아도 되서 좋았달까. 임크리 디스 아니에요;ㅅ; 순크리가 좀 너무 잘하시는 거. 조심스럽게 크리스틴에게 다가가는 류팬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크리스틴에게 제발제발제발, 하며 거리를 두는 목소리에 절절함이 조금 덜해서 아쉬웠다. 1막에서는 내가 0602 공연에서 푹 빠진 유약하고 여린 성격이 크게 강조되지 않아서 슬펐다. 크리스틴을 대하는 태도도 '연애감정'보다는 '팬심'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류팬텀의 레슨이 시작되고 비강 애드립이 작렬했다. 우와, 이게 말로만 듣던 히야히야ㅋㅋㅋㅋㅋ 근데 순크리 지나치게 잘하시잖아요ㅋㅋㅋㅋ 류배우님 거기서 현실감탄하시면 안됩니다ㅋㅋ 이들이 성악을 부르고 있다는 느낌이 확 느껴지는 히야히야였다. 순크리는 '팬텀의 레슨으로' 노래를 잘 부르게 됐다기보단, 그냥 원래 잘 부르던 크리스틴이었다. 그래서 팬텀의 사랑이라기보다는 그냥 순크리의 노래 자체에 감탄하는 예술덕후라는 느낌이 강했다. 허허. 



이어지는 팬텀의 푸가. 무대 왼편 카를로타 분장실의 액자 너머로 팬텀의 손이 가발에 벌레를 뿌리고 있더라ㅋ 물론 팬텀 본인인지는 모르겠지만. 팬텀의 푸가에서 팬텀 대역이 적어도 두 명이다. 0602 공연 볼 때는 류팬텀이 참 빨리도 움직인다고 감탄했었는데 내가 바보였어...ㅠ... 크리스틴에게 레슨하는 류팬텀을 보느라 오른쪽에서 벌어지는 무대는 보질 못하겠다. 이 레슨에서도 순크리 노래 너무 잘하심(....) 류팬텀도 브라바-브라바-하는데 진심이 백프로 들어가있다. 개인적으로 팬텀과 크리의 관계성은 임크리가 더 좋다. 임크리는 류팬텀을 스승처럼 존경한다는 게 강하게 느껴졌고, 류팬텀도 그에 맞춰 임크리를 가르치고 마음을 열고 스멀스멀 호감을 느껴간다. 반면 순크리에게 느끼는 감정의 개연성은 좀 부족하다. You Are Music 의 듀엣은 물론 아름답고 반짝였지만, 두 사람의 얼굴 간격도 아주아주 가까웠지만, 뭔가 서로에게 운명처럼 느껴지는 격동의 감정은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샹동과 크리스틴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다 쏟아내는 넘버 이렇게 그대 그의 품에(What Will I Do) 에 담긴 애달프고 강렬한 팬텀의 사랑에 살짝 위화감이 느껴졌다. 물론 울었지만. 이런 노래가 류배우님 목소리에 지나치게 잘 어울려서 심장이 터질 것 같다ㅠㅠ 내가 목소리 덕후만 아니었어도....!!!!!........는 무슨ㅋ 어떻게든 류배우님 연기력에 마음이 녹아내렸겠지만, 정말 류배우님 목소리가 어쩜 이렇게 좋은지ㅠㅠ 



잠깐 빠뜨리고 넘어간 비스트로로 다시 돌아가자. 일명 '3층 관크남'이라 불리는 류팬텀의 등장에 나의 시선은 또다시 고정되어 버렸고, 결국 비스트로 메인무대는 쳐다도 못 봤다ㅠ 엉망인 카를로타에게 쏟아지는 입에 발린 찬사에 '브라바?!?!?'하고 어이 없다는 제스쳐를 취하는 류팬텀. 그리고 순크리의 노래에 맞춰 지휘하는 류팬텀. 다 때려치우고 난간에 기대며 앞으로 몸을 푹 숙인 채 크리스틴의 노래를 듣는 류팬텀. 그 모습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면서, 크리스틴만을 바라보는 류팬텀만을 바라보는 나. 표정이 제대로 안 보여서 그런가, 이때까지만 해도 류팬텀은 그냥 디바에게 푹 빠진 '팬'이라고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찬사를 받는 크리스틴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퇴장하는 류팬텀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아프다. 외로워보인다.



샹동이 크리스틴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그런 그들의 옆쪽으로 서서히 등장하는 류팬텀. 부들거리면서 연기하는 류배우님의 팬텀은 심금을 울린다. 여기부터는 제대로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이다. 사랑을 갈구하고 그 사랑에 돌아오는 감정이 없음을 아는 그 절규가 너무 괴로워보인다. 넘버 끝내준다. 음원 내놔라. 



카를로타의 음모로 데뷔무대를 망쳐버린 크리스틴. 1막 마지막 곡, 그 어디에 Reprise. 샹들리에를 떨어뜨린 류팬텀이 줄을 타고 내려오는데, 정석 그 자체의 자세가 씹덕미 넘친다ㅠ 발끝 교차시킨 거 귀여워.. 크리스틴의 손을 붙잡고 지하로 내려가는 류팬텀. 화려하고 웅장하고 극적으로 마무리 짓는 1막. 쏟아지는 박수. 인터미션.





2막 시작하기 전에, 연출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우중충한 스토리 특성 상 어쩔 수 없겠지만, 무대가 전반적으로 너무 어둡다. 대극장 공연인데, 조명 연출이 마음에 안 든다. 예를 들면 What I Will Do 에서 샹동과 크리스틴을 아주 밝게 강조하고 팬텀은 상대적으로 음침하고 어두운 조명으로 비춰줬다면 더 극명하게 팬텀의 운명이 비교가 됐을텐데. 2막의 발레 부분에서 젊은 카리에르와 현재 카리에르의 조명 색이 차이가 나서 좋았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는 느낌을 강조했다. 그리고 무대 자체가 화려함을 강조하는 연출에 비해 비좁다. 무대의 폭이 너무 좁아서, 마치 영화처럼 순식간에 바뀌는 세트와 장면들이 산만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가로등. 이거 많이들 지적하던데, 조금만 쳐도 너무 많이 흔들려서 불안불안하다.



기나긴 인터미션 후, 노를 저으며 등장하는 류팬텀의 넘버, 그대의 음악이 없다면(Without Your Music). 저 밖은 지옥이라며, 감히 당신을 이용하는 저 무리에게서 당신을 구해내겠다며 맹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말로 크리스틴을 향해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그의 노랫소리. 하아. 그대의 목소리가 들리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네요. 따라내려온 카리에르가 팬텀을 설득하려하지만, 이 오페라하우스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되려 협박하는 류팬텀. 화를 내며 그를 쫓아낸 류팬텀은 어머니의 초상화 앞에 무릎 꿇고 성호를 긋는다. 복수를 위해 사라지는 류팬텀, 그리고 깨어난 크리스틴에게 도망을 종용하는 카리에르. 여기서 카리에르 역의 두 배우에 대한 취향이 갈렸다. 정열카리에르는 가면 아래의 그 끔찍한 얼굴을 말한다. 당신은, 우리는, 결단코 그를 이해할 수 없다며 도망치라 말한다. 다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0602 공연에서 철호카리에르는 그 끔찍한 외양 때문에 팬텀의 성격이 극단으로 치달았으며 그는 완전히 미친자라고 단언한다. 그는 미쳤어요!!!! 일반인은 도저히 이해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하는 그저 미쳐버린 '괴물' 일 뿐이라고 팬텀을 묘사해버린다. 그런 그가 고해성사한다. 자신이 바로 그의 아버지라고.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인생을 지켜본 자라고. 와. 끔찍할 정도로 잔혹하고 냉정한 평가지만, 그 냉정함으로 인해 오롯이 혼자로 살아온 팬텀의 인생과 본질적 고독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 숙명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다. 광기와 천재성이 공존하는 팬텀을 정확히 짚어줬달까.



The Ballet. 0602 공연에서 윤전일 씨가 젊은 카리에르 역이었는데, 당시 댄싱9이 거의 끝물이었나 아무튼 아직 진행 중이었기에 그랬는지, 실력의 부족이 아니라 두 사람 간 합을 맞춰보는 연습의 부족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반면 오늘은 두 배우의 합 자체가 괜찮아서 보기 편했다. 카리에르의 이야기를 들은 순크리는 도망을 거부한다. 그의 어머니가 그의 얼굴을 아름답다 생각했다면, 그게 사랑이라면 나도 할 수 있어요! 이러는데 환장...... 정말 그냥 모성애잖아. 이게 뭐야ㅠ 극 처음부터 끝까지 순크리에게서는 연인으로서의 애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절절하게 사랑을 말하는 류팬텀이 더 불쌍했다는 게 함정. 



돌아온 류팬텀이 '우리..... 뭐 할까요?'를 시전했고 두 사람은 류팬텀의 '왕국', 숲으로 향한다. 이미 덕후이기에 객관성을 잃었다 지적받을 수 있겠지만, 정말이지 2막의 류팬텀, 아니 류에릭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ㅠㅠㅠㅠ 피크닉 때 웃음도 엄청 나오고, 크은'새'하는데 관객 다 빵 터짐. 순크리의 휘파람에 작게 브라바-라던 류에릭의 목소리가, 혹여 이 행복이 깨질까 두려워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태도를 명징하게 보여줘서 마음이 아팠다. 순크리에게 혹시 시 좋아해요? 라고 묻는 류에릭의 사랑스러움이란! 노래 불러드릴테니 소원 하나 들어주세요, 하는 순크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돼요.' 철벽치는 류에릭ㅋㅋㅋ 소원은 그냥 들어드릴게요, 라며 부드럽게 말하는 류에릭에게 들려오는 잔인한 부탁. 가면을 벗어주세요. 표정이 안 보이는데도 온몸으로 표현되는 감정. 돌아가야겠어요, 비가 올 것 같아- 라는 대사는 애써 당황과 당혹을 감추며 가까스로 끄집어내듯 속삭여서 더욱 괴로웠다. 순크리는 노래를 시작하고, 거의 바닥을 기듯 무릎 꿇고 부탁하고 애원하며 제발 소원을 거두어달라, 정말 안된다, 표현하는 류에릭. 가슴 찢어질 것 같아. 0602 공연 때는 크리 노래 끝나고 류에릭이 알겠어요, 라며 대사를 했던 것 같은데, 이 날은 손짓으로만 표현했다. 가면을 벗는다. 짧은 정적. 그리고 비명. 도망치는 크리의 비명을 덮어버리는 절규. 내 비극적인 이야기 Reprise. 쏟아져나오는 절망. 분명 충분히 만족한다 말했는데 더 큰 행복도 있다며 설득해놓고는 바닥 끝까지 끌어내린 그의 사랑, 크리스틴. 그를 원망하고 싶지만 스스로를 사랑해본 적 없는 에릭이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자신을 저주하는 것 뿐. 너를 사랑해, 아니 날 저주해. 아아아악.



크리스틴을 쫓아 올라온 팬텀은 처음으로 세상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 돌아오는 건 비명, 그리고 총성. 그나저나 이날 배우분들 뭐 공연 끝나고 일 있으셨어요? 왜이렇게 다들 급해..... 흩어져! 핏자국을 따라가! 0602 공연 때는 이 대사 완전 정확하고 단호하게 쳐서 마음에 들었는데 엄청 급하게 말하시고, 카를로타 이름도 잘못 부르시고ㅋ 총 맞은 류에릭은 카리에르에게 사과한다. 나름 괜찮았어요, 태어난 거 말이에요, 하는 류에릭의 목소리가 정말 세상 다 산 느낌이라 너무 안타까웠다. 나름 괜찮았어요, 그 순간만큼은, 하는 대사는 그래도 그 순간 하나만으로 인생의 가치가 있었다는 뜻이 가득해서, 속상하고 미안하고 아프고 그랬다ㅠㅠ 그런 그에게 카리에르는 드디어 자신이 아버지임을 고백한다. 알고있었다 말하는 류에릭. 넌 내 아들(You Are My Own). 그나마의 부성애가 있는 정열카리에르는 부자 간의 관계성이 조금 더 강하게 드러났다. 철호카리에르는 무책임하고 뻔뻔하고, 결국 끝까지 에릭을 제대로 마주해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후자가 더 취향이다. 에릭 미안.  



급박한 전개. 싸움 끝에 난간에 매달린 샹동을 결국 구하는 류팬텀. 줄 타는 모습이 참으로 아슬아슬하다. 오른쪽 왼쪽 그 어느 곳도 잡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불안한 상황 속에 처한 팬텀을 극명하게 묘사해주는 연출이라는 것은 이해하는데, 부실해보여서 관객이 불안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건 좀 위험한 게 아닐까. 제발 날 쏴!!!!!! 절규하는 류에릭에게 박히는 총알. 손을 떨구는 카리에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무너지는 크리스틴. 머리를 관객쪽으로 두는 이유가 마지막으로 노래하는 크리스틴이 류팬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머리 뒤로 젖혀진 가면으로 표현하는 연출이었음을 이번에야 깨달았다. 당신은 나의 빛이야............. 마지막 말을 남기는 류팬텀. 그리고 다시 씌워지는 하얀 가면. 암전.      





커튼콜. 주변이 일어나든 말든 2층에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2층이라서 그런지 대부분 일반 관객이었는데 극찬과 환호가 가득해서 내가 다 뿌듯했다. 극이 재미있다는 평도 간간히 들려와서, 역시 오페라의 유령보다는 팬텀이 한국인의 정서에 더 맞는 건가 싶었다. 적절한 신파와 적절한 막장(....)이랄까. 넘버도 나름대로 괜찮다고 본다. 그냥 오슷만 내주세요, 제발. 이 얘기 몇 번째 쓰고 있는 거니, 나? 하아. 보고 들은지 겨우 하루 밖에 안지났는데 벌써 류배우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벌써 류배우님의 연기가 보고 싶다ㅠㅠ



0602 공연의 리뷰는 그냥 류배우님 덕통 얘기만 잔뜩 했기에, 이번 리뷰에서는 스토리와 캐릭터에 치중해봤다. 유약하고 섬세하고 소심하고 약간의 쭈굴미가 조화를 이루는 류팬텀에 덕통당했고, 0625 공연에서도 이 성격이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불쌍하고 안타까운, 노래도 목소리도 훌륭하지만 어둠 속에서 혼자 고독하게 갇혀살아야 하는 괴로운 존재. 류팬텀 덕통사고를 운운할 때 '류'보다 '팬텀'에 더 방점이 찍혀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류'가 연기하는 '팬텀'> 자체에 사랑에 빠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냥 앞으로 류배우님 덕질 열심히 하면 될 듯. 하하하. 올해 유난히 열일하시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잔고가 바닥일지라도ㅠ





사진 출처, EMK 공식홈페이지. 공개된 팬텀 사진 중에서 가장 실물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모습이라 첨부해본다. 고전미와 세련됨이 가득한 저 자태를 가까이서 얼른 다시 보고 싶다ㅠㅠ 이제 자체막공은 또 한참 남았는데..... 류배우님 덕분에 엄청 행복하지만, 동시에 배우 덕질이 힘들다는 걸 뼈아프게 느끼고 있는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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