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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과학적 진리가 승리하는 것은, 그 반대자들을 설득해서 확신을 갖게 하고 그들에게 빛을 보여 줌으로써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반대자들이 결국 죽고 새로운 진리에 친숙한 세대가 자라남으로써 이루어진다. - 플랑크 (Max K. Planck, 1858~1947, 양자역학의 창시자)
읽자마자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우선 현재 정치 상황. 그들의 정치 신념은 너무 확고해서 누군가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년인가 트위터리안 한 명이 부모님을 설득시켜 진보 정당의 후보를 찍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차라리 부모님들이 투표장에 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트윗을 올렸던 것이 기억난다. 소위 말하는 '꼰대(좋아하지 않는 단어이지만 이보다 더 적절하게 이 특정계층?집단?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다)' 역시 누군가에 설득 당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 생각은 수십년 간 견고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그냥, 자신의 생각이 옳은 거다. 어떤 증거가 나오든. 누가 뭐래든.
사실 이런 모습은 정치 뿐만이 아니라 전문 분야에서 많이 드러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학계. 고대사를 다루는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 교수님께서 새로이 발견하고 주장하는 바가 있다. 듣기에 매우 논리적이고 증거도 들어 맞아서 분명 정설이 될 만 한데도, 기존의 정설을 미는 수많은 기존 교수들이 들은 척도 하지 않아 아직도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본인들이 평생을 주장해왔던 것이 단 한 번의 인정으로 순식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란다. 그 마음을 모른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다른 이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아주 잘 안다. 그것이 더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더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더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자신들 역시 기존의 관점이나 고정관념 등에 반발하며 보다 진보하는 지식과 정보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었나? 그 때 느꼈던 답답한 감정들을 불과 수십년 만에 새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정치로 비유하자면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새누리 당에 가는 '변절' 혹은 '전향'이 이 믿을 수 없는 망각에 속하겠다.
기성세대의 그러한 모습을 보다 보면, 나 역시 그렇게 될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두려울 정도다. 아니, 실은 벌써부터 '꼰대'의 기질이 슬슬 보이고 있는 것 같아 창피하고 부끄럽다. 그래서 가끔은 돌아보게 된다. 내가 내 생각만을 고집하며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있는 건 아닌가. '관용'이 정말 중요한 가치라고 그렇게 외치면서, 사실 나 역시 관용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남의 의견을, 제대로 귀 기울여 듣고 있는가.
다시 정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우리 세대가 30대, 40대에 접어들고 사회의 중심축이 되는 시기가 오면,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분들은 거의 계시지 않을 것이다. 식민 시대를 겪고, 전쟁을 절절하게 경험했던 세대가 사라지고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세대가 주류가 될 것이다. 그러한 변화가 감히 '진보'라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 경제발전의 주체를 혼동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오류에서는 분명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중시하는 가치들을 더 강조하며 보다 평등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인권'을 우선하게 되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 인용한 명언에 가슴 깊이 공감한다. 과학이든 지식이든 삶이든, 인간 사회에서 변화는 저렇게 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