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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주절/Deeply

대학 영강수업

누비` 2013. 4. 2. 20:32


수능이 끝나자마자 구석에 넣어두었을 교복을 꺼내 입고 온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의 모습에 수 년 전의 내 모습을 오버랩시키며 만우절을 지냈다. 참 변하지 않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부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진심으로 1학년 2학기 쯤이 좋겠어. 그 때 더 미친 듯이 놀았어야 했는데..ㅋㅋㅋ


한 달 정도 지내보니, 이제야 학교에 조금 적응이 된 것 같다. 잊혀졌던 전공 지식에 대한 '감'이 슬슬 돌아오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없어도 너무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부족한 나의 지식ㅠㅠㅠ 그나저나 2교시 수업을 듣는데 갑자기 짜증이 확 나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그 내용에 대해 좀 적어보려고 한다. 


요즈음은 글로벌 시대다 뭐다 해서 대학들이 영어를 굉장히 강조하고 (물론 그 기저에는 영어를 중시하는 기업들의 요구가 깔려있지만) 심지어 전공 수업들도 일정 숫자 이상을 영어로 듣게 한다. 역사, 그것도 한국사 전공 수업을 영어로 요구해서 학생들은 물론 교수까지도 난항을 겪고 있다는 얘기는 아주 잘 알려져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영강을 도입할 학과를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기준'에 맞추어 정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영강을 가르치려는 교수 역시 해외에서 학위를 받았다거나 해외에서 영어로 수업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학생들에게 제대로 지식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점에서 경영이라는 내 전공에서 영강이 이렇게나 많고 또 그만큼 졸업요건으로 요구한다는 점에 큰 불만을 갖지 않았다. 대부분 해외에서 학위를 받고 심지어 그 학교에서 몇 년 강의를 하다가 오신 분들이 굉장히 많으셨기 때문에,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허덕이는 것은 있었지만 적어도 교수님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거나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영어로 설명하는 데 곤란함을 느낀다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문제의식은 오늘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서 수업을 듣고 있는 중간에 퍼뜩 떠올랐다. 교수님이 부족하신 건 결코 아니다. 이쪽 분야에서 유명하신 분이고, 영어를 유창하게 원어민처럼 하셔서 오히려 따라가기 벅찬, 정말 좋은 수업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도 매우 특이한)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자주 나오는데도 그걸 영어로 하려니 답답하고 거슬린다. 물론 영어로 하는 게 도움은 될 수 있지만, (내가 영어가 많이 부족한 탓인지는 몰라도) 현재 뉴스에서 다루고 있는 경제 정책이 바로 이 법문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린다. 바로 바로 와닿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어떤 공약으로 당선되었고 그게 과연 지켜질까 하는 내용들 역시 교수님이 짚어주시기는 하지만, 그 지적은 해당 법률에 대한 설명을 쭉 다 하신 다음에야 마지막으로 추가해주시는 형편이라 늘 끝에서야 그 말이 그 말이었구나를 깨닫는다.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한국의 상법을 '영어로 번역' 해 놓은 슬라이드에 가서는 헛웃음이 나왔다. 영강이니만큼 외국인 교환학생들도 많이 듣는 수업이라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었지만, 교수님도 슬핏 웃으시며 포탈에 검색하면 상법이 나오니까 한국 학생들은 그걸 읽어보라고 권해 주셨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영강으로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배우는 것은 여러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등 외국의 사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고, 더 다양한 사례를 다룰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업지배구조를 다루는 수업이 이 수업 딱 하나라는 점이 굉장히 가슴 아프다. 현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수업임에도, 국강을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는 전혀 충족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여기부터는 영강에 대한 문제의식을 넘어 수강신청으로 넘어갈 차례이니 딱 여기까지만 하겠다.


이 생각을 하느라 강의에 제대로 집중을 못했다는 게 크나큰 함정이다. 예전에 영강으로 들었던 수업을 이번 학기에 국강으로 재수강하는 중인데, 배움의 깊이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물론 거의 3년 전에 들었던 수업이니만큼 그 시간 동안 얻은 지식으로 같은 내용을 더 빨리 이해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강의가 그 내용을 배우는 수업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 기분이 들 정도다. 


영강이 영어에 큰 도움을 주는가에 대해서는 확언하기가 어렵다. 별로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있고, 영강을 듣기 전과 듣고 난 후를 비교할 만한 기준이 되는 영어 시험을 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생 달고 다닐 대학 학부 시절의 전공을 영어로 들어야만 하는 부담감은 분명 존재했다. 아니, 여전히 존재한다. 워낙 영강이 많은 만큼 졸업요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는 부담감은 있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영강을 선택할 때의 부담감이 크다. 결국 이대로 바뀌는 것 없이 졸업하겠지만, 그래도 새삼스레 깨닫게 된 인식에 조금 불편해졌다. 아마 죽을 때까지 언어, 특히 영어에 대한 적개심과 불편함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어 만세! 한 번 외치고 글을 끝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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