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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in 샤롯데씨어터, 2015.06.18 8시 공연





이 리뷰에서는 배우와 연출 등 무대 자체에 집중하려 한다. 고작 하루만에 다시 만나게 된 극. 지극히 주관적이고 아주 확고한 취향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내용은 전부 6/17(수), 6/18(목) 두 공연을 보고 난 뒤 판단한 것이다.


(굳이 안 읽어도 되는 이전 리뷰 링크: http://tinuviel09.tistory.com/272)



※스포일러 있음※



    


더블캐스팅 지저스 두 사람을 모두 만났다. 영광이었다. 마이클리 씨와 박은태 씨 모두 각자의 해석을 근간으로 완벽한 지저스를 선보였다. 마저스는 일단 외양 자체가 지저스 그 자체였다. 살짝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강단있지만 유한 분위기의 카리스마는 저절로 주변인들을 압도했다. 마저스의 첫 넘버가 아주 감격스러웠는데, 내가 바로 지저스이자 너희들의 지도자다, 라는 이미지를 제대로 각인시켰다. 기본적으로는 온화하되 필요한 순간에 단호함을 지녔다. 속으로 찢겨 타들어가는 자신의 괴로움은 최대한 감추고 내보이지 않는다. 마리아의 위로에도 진정으로 위안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말 고독하고 외롭고 위태한 인간이지만, 지도자로서의 긍지를 결코 놓지 않는다. 상상하던 지저스의 이미지를 정확히 짚어내 보여준 마저스. 



은저스는 조금 달랐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이미 눈이 젖어있었고, 군중의 발악 속에서 황망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마저스가 그래도 불쌍한 중생들이라며 안쓰러이 여기는 마음이 더 강하다면, 은저스는 광분에 가까운 그 격동에 휩쓸려 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더 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마리아의 어깨에 무너지듯 고개를 숙일 때 정말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겟세마네(Gethsemane)를 부르는 마저스가 당신의 뜻을 당연히 믿지만 이런 나도 흔들리니 제발 이유를 말해달라며 절규하는 모습은 오히려 절대자에 대한 의심이 싹튼 스스로에 대한 부정의 느낌이 강하다면, 은저스의 절규는 보다 완전한 체념에 가깝다. 이 죽음이 의미가 있냐며 쏟아내는 감정은 응답없는 절대자가 내린 운명을 단단하게 끌어안는 것으로 허공에 흩어진다. 미묘한 감정선의 차이가 뚜렷해서 두 사람의 겟세마네를 번갈아 들을 때마다 휘몰아치는 울림이 다르다.  



굳이 두 지저스 중 취향을 고르라 한다면, 은저스를 택하겠다. 비극미를 지닌 마저스와 비장미를 지닌 은저스를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은저스가 보여주는 지저스가 더욱 인간미가 넘치는 것 같다. 덧붙여 모든 노래를 들을 때 발음을 중요시하는 타입이기에 은저스에게 조금 더 마음이 기운다. 마저스의 딕션도 놀랄 만큼 선명하고 명확해졌지만, 그냥 내 취향이자 굳건한 기준이 발음이라서..ㅠㅠ 뉴욕에서 영어로 노래하는 마이클리를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유다는 최재림 씨만 만나봤다. 강렬하고 힘있는 발성과 목소리가 제대로 취향이다. 이렇게 울림통 큰 뮤지컬식 발성을 굉장히 사랑하기 때문에, 넘버를 듣는 내내 황홀하기까지 했다. 다만 역시 고음을 내지르는 락의 부담이 큰지, 이틀 연속으로 들으니까 두 번째 날의 고음 삐끗거림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괴로운 절규가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와서 유다의 감정은 더욱 선명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17일의 자체첫공에서는 모든 캐스트들이 극 올린 초반이라 다들 컨디션이 짱짱하다는 것이 제대로 느껴졌는데, 18일 공연은 고음들이 살짝 불안정했다. 락뮤라서 그냥 뮤지컬보다는 성대나 혈압(.....)에 더 무리가 갈 것 같다. 몸 조심들 잘 하시길.



빌라도 역시 지현준 씨만 봤는데, 와, 정말 의상부터 제스쳐, 목소리톤과 연기까지 완벽했다. 빌라도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신전의 거대한 기둥들이 내려오는 연출부터, 조명을 활용한 실루엣, 숫자를 세던 목소리까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헤롯 역의 김영주 씨 역시 강렬한 카리스마로 무대부터 관객석까지 모두를 휘어잡았다. 그렇지만 정말 죄송하게도 나는, 숱한 모욕을 견디고 참아내는 지저스의 모습에 집중하느라 단 한 번도 웃을 수가 없었다.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그 괴로움이 마치 내 것인 듯해서. 다른 관객들이 웃을수록 그 비통함이 배가됐다.



마리아는 노코멘트하련다. 개인적으로는 장은아 씨보다 이영미 씨가 좋았다. 



앙상블은 아주 조화로워서 극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었다. 가야바 역의 최병광 씨 저음은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의상들도 극의 배경에 잘 어울려서 만족스러웠고, 무대 전반의 구성 자체도 제대로 취향이었다. 영화 지크슈의 지나치게 현대적인 연출은 신선하고 흥미롭긴 했지만 정말 취향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케. MR을 의심하고 싶을 정도로 완벽한 오케는 배우들과 합을 잘 맞추며 극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이토록 극 자체가 만족스러운 건 헤드윅 이후 처음이라 신기하다. 보통 훌륭한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이 시대에 같이 존재할 수 있어 기쁘고 다행이고 행복하다는 말부터 나온다. 그런데 지크슈는 조금 다르다. 타이밍이 맞아 두눈으로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어 고맙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인간이라는 것 그 자체에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지크슈의 넘버와 감정선이 그만큼 선명하고 고독하며 생명력 넘친다. 살아있다. 그런 기분이 든다. 



고맙게도 이 극을 9월까지 해준다.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또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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