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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in 샤롯데씨어터, 2015.06.17 8시 공연
선택받은 자. 메시아. 구세주. 종교를 지닌 많은 이들에게 '예수'는 만인을 사랑하시어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신 숭고하고 위대한 분이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받겠다며 감내한 고통이라는 건, 범인들로서는 감히 허울뿐인 말일지라도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다. 그래서 예수는 '신격화'된다. 물론 그를 '신' 그 자체라 굳게 믿는 사람도 있지만, 일단 정설처럼 굳어진 '신의 아들'이라는 대전제를 둔다면 그는 분명 '인간'이었으리라.
그렇다. 예수가 인간이었다는 것. 완벽한 신이 아닌, 예수 또한 거대한 운명에 거스를 수 없는 한낱 인간이었을 뿐이라는 것. 불경하고 발칙한 이 생각에서 비롯된 재해석은 'JESUS CHRIST SUPERSTAR' 라는 이름을 달고 장장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거창하게 시작해봤지만, 이 작품을 처음 제대로 마주한 건 불과 일년 전이다. 영화로 제작된 아레나버젼을 보고 내용의 참신함과 매력적인 넘버들, 계단을 활용한 연출 등에 감탄했었다. 하지만 신선한 발상에 무릎을 쳤을 뿐, 그다지 공감하지는 못했다. 언젠간 다시 보겠지, 라는 생각으로 외장하드 뮤지컬 폴더에 고이 모셔둔 이 영화는 점차 뇌리에서 흐려져갔다.
그리고 올해 초,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다시 한국 무대에 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련하게 잊혀져가던 기억을 끄집어내보니 한 번 쯤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터라 즐거운 마음으로 1차 예매에 참가했다. 포기했던 은지킬의 기억과, 아직도 듣고 다니는 '대성당들의 시대'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박은태+최재림 조합을 선택했고 자리를 잡고 결제를 하고 또 두 달 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냥 그 정도의 영향 뿐이었다.
이 날 공연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스포일러 있음※
황량한 땅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불쌍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수년간 노력해왔지만, 결국 '신'의 뜻에 따라 '인간'으로 남기를 포기하고 '신'이 되기로 한 예수. 그 '예수'의 뜻에 따라 '제자'에서 '배신자'로 추락하는 유다. 그 찢겨지는 고뇌와 번민과 고통과 절규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보여준 두 배우, 은저스와 최유다.
눈 먼 대중에 휩쓸리는 지저스의 막막하고 까마득한 감정, 결국 그 선택을 꺾지 못해 지저스를 배신하는 유다의 고통스런 뒷모습, 그 순간 아득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 잘했다 유다, 착하다 유다. 그리고 무너지는 유다.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지저스가 묻는다. 나에게 주신 이 독잔을 부디 거둬가주실 수는 없느냐고. 다가올 죽음이 두렵다고. 내가 죽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당신은 대체 무얼 이루시냐고. 제발 알려달라고. 이 죽음이 헛되지 않단 걸 제발 증명해달라고. 하지만 단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 체념하는 지저스. 뜻대로 하시라고, 끝없는 회의감 속에서 지칠대로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이제 다 놓아버릴테니 뜻하신 바를 따르겠노라고. 의문은 묻어버리고 의심은 지워버린 채, 이 마음 변하기 전 지금 나를 죽게 하시라고.
자신의 배신 때문에 고통 받는 지저스의 모습에 괴로워 몸부림치는 유다. 당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리치는 유다에게 내려오는 밧줄 하나. 당신 때문이라고, 당신이 나를 죽이는 거라고 절규하던 유다가 남기는 마지막 한 마디는 결국, '지저스'. 그 위로 또다시 울려퍼지는 목소리. 잘했다 유다, 불쌍한 유다.
이 고통스러운 감정을 어찌나 '완벽'하게 표현했는지, 이 글을 쓰며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유다의 죽음에 축복이자 위로인 것인마냥 울려퍼지는 성스러운 목소리에, 애써 참아내던 오열 소리가 입 밖으로 쏟아져내릴 뻔했다. 피투성이가 된 지저스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재등장한 새하얀 락스타 복장의 유다가 멋지게 불러제끼는 Superstar를 듣고 있자니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넘치는 감정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세차게 몰아쳐 헛구역질이 나왔다. 십자가에 박힌 지저스가 내뱉은 마지막 말. 다 이루었다. 정말, 다, 쏟아냈다.
이토록 극단적이고 격렬한 감정소모를 배우들이 격일에 한 번, 주말에는 매일 해야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커튼콜 때 환하게 웃으며 손으로 하트를 날리는 은저스를 보면서도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무나도 후련한 가슴에 그제야 깨달았다. 온전히 다 쏟아냈기에, 진심으로 웃을 수 있구나. 온갖 정신적 번뇌와 육체적 고통으로 찢어지는 괴로움을 한계까지 느꼈기에, 마지막 순간 다 이루었노라 말하며 죽을 수 있었구나.
무대 위에서 전달해주는 감정을 오롯이 받아들여 같이 토해내며 후련해질 수 있는 극. 작년 헤드윅이 그랬듯이, 지크슈 역시 모든 걸 분출하며 쏟아내는 나만의 '힐링' 뮤지컬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잠실역을 다시 찾았다. 겨우 하루만에. 몸만 달랑.
(굳이 읽을 필요는 없는 이 다음 리뷰 링크: http://tinuviel09.tistory.com/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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