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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in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2025.07.06 7시

 

 

정택운 휴이, 정선아 펠리샤, 최정원 글래디스, 최민철 델레이, 박광선 바비, 이하 원캐. 이종문 시몬스, 조성린 게이터. 택썸머.

 

초연을 못 챙겨서 아쉬웠는데 생각보다 재연이 빨리 와서 고마웠다. 노할인 17만원이라는 진입장벽이 드높았으나, 한 번은 봐야지 싶어서 객석에 앉았다. 준탈덕을 했어도 대극장이 선사하는 짜릿함은 때때로 그립고 간절하다. 가격이 이렇게 높아지기 전에 양껏 덕질했음이 참으로 다행이야. 이미 여러 차례 만끽해 본 희열은 참아낼 수 있달까. 물론 아는 맛이어서 더 갈망할 때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고향 같은 충무아트센터 객석에 앉았다. 리모델링했다는데 음향 말고는 크게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했다. 중블 오통 부근에 앉았는데, 클라이막스 고음마다 오른쪽 귀가 너무 아팠음. 그래도 시야는 가깝고 좋았다. 

 

택휴이와 썸머펠리샤, 정원글래디스 이렇게 세 사람을 맞춰 간 건데, 앙상블 배우들이 너무 잘해서 시선을 계속 빼앗겼다. 초연 때 상 받은 이유가 있었구만. 여앙 한 분은 오른쪽 무릎에 붕대를 감고 있던데, 다들 다치기 않길. 그 와중에 의상에 맞게 붕대 위에 천을 입혀놨더라. 같은 제작사 작품인 데다가 시대가 비슷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자주 생각났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다양한 출신지의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있는 나라, 살아남기 위해 똘똘 뭉치고 다름을 배척하는 격변의 도시들, 그럼에도 기회의 땅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맞게 드높은 성공과 찰나의 도태가 공존하는 시대. 웨사도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뉴욕이었지만, 이 극의 배경은 인종적 차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미국 남부, 멤피스다. 

 

관극 전날에 영화 <그린북>을 보고 가서 그런지 이야기에 확실히 몰입이 됐다. 분리 정책으로 같은 식당도, 식수대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다른 인종끼리 사귀는 것조차 불법인, 야만의 시대. 완전히 다른 썸머펠리샤와 택휴이의 외모 그림체가 은근히 몰입을 도왔다. 실력에 대한 자신감과 당당함이 있는 썸머펠리샤임에도, 흑인이기에 지닐 수밖에 없는 뿌리 깊은 공포에 휘둘린다. 평생을 살아온 터전을 떠나고 싶어 하는 애증이 명확하다. "내가 더 빌 스트리트 사람 같네" 라는 휴이의 비아냥에도, 도리어 그의 당사자성 부재를 짚어내는 대사들이 인상적이다. 다르기에 열광하지만 다르기에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극에 잘 담겨있다. 

 

다만 그런 그를 설득하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 놓아주기로 결심한 택휴이의 변화에 대한 개연성은 조금 아쉬웠다. 멤피스를 사랑하기에 이곳에서 반드시 최고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은 휴이의 단순하고 명확한 목표는, 펠리샤를 위한 것이기 전에 그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찰나에 대한 표현이 확 와닿지 않았다. 연출 문제인지 배우 노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오히려 모두가 떠나고 남은 휴이의 뒷모습이 더 쓸쓸하고 참담해 보이긴 했다. 이 넘버가 마지막이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했는데, 마지막 콘서트 장면을 보고 결말을 납득했다. 특히 대극장에서 보기 힘든 결말이라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 혹은 누군가들이 다 죽는 새드앤딩이 아니면 주인공들의 사랑이 이뤄지는 해피엔딩뿐인 작품들 사이에서, 이 찬란하고 현실적인 결말은 확실히 인상적이다. 

 

 

"인생은 삽질하다가 새 길 파는 거야"

 

정원글래디스 너무 잘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미남도 특유의 쪼가 반가웠고. 썸머야 뭐, 말할 필요가 있나. 목소리 하나로 극장 전체를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찰떡 같이 살리는 웃음포인트의 사랑스러움이 완벽 그 자체다. 초연에 참여하지 않았던 유일한 주연 배우인 택휴이도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고 맛깔나게 캐릭터를 잘 살려서 만족스러웠다. 1막 보면서 휴이와 펠리샤 전캐를 찍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차올랐지만, 2막을 보면서 애써 짓눌렀다. 다른 배우들은 상상으로 끝내보자... 목과 몸을 갈아내는 극이던데, 전 배우 모두 부상 없이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대 위의 세상은, 늘 눈부셔서 반갑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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