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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

in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2025.04.16 7시반

 

 

강필석 존 프락터, 권해성 토마스 푸트넘, 이하 원캐. 박은석 사무엘 패리스 신부, 박정복 존 헤일 신부, 남명렬 댄포스 부지사, 류인아 애비게일 윌리엄즈, 진지희 메어리 워렌, 여승희 엘리자베스 프락터, 주호성 자일즈 코리, 김곽경희 레베카 너스, 김도희 앤 푸트넘, 하준호 이지키얼 치버, 신혜옥 티투바, 오종훈 하쏘온, 우범진 헤릭, 김예지 베티 패리스, 박인선 머시 루이스, 송민 수잔나 월컷, 박세동 홉킨스, 맹시현 소녀, 류한나 소녀.

 

내용도 제대로 모른 채, 이 캐스팅에 거의 다 원캐라는 이유 하나로 예매했다. 미국 메사추세츠 세일럼 마을에서 자행된 마녀사냥은 실화라고. 알 수 없는 진실에 혼란이 더해지는 도입, 비밀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긴장이 고조되는 전개, 걷잡을 수 없는 광기로 치닫는 절정과 저마다의 선택을 하는 결말까지. 곱씹어볼 여지가 많은, 불편하고 답답하고 분노가 치미는 연극이다. 

 

 

"복수가 세일럼을 지배하고 있어!"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집단적 광기는 난폭하게 개인을 찍어 누른다. 몸과 마음을 치밀하게 옥죄어오는 서슬 퍼런 탄압은 친절함과 다정함, 신뢰와 이해를 박탈한다. 신념은 힘없이 꺾여 나뒹굴고 두려움과 불신이 휩쓸고 간 폐허만이 남는다. 거짓을 고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지닌 종교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거짓을 고해야만 하는 아이러니에 숨이 턱턱 막힌다. 불합리한 요구 앞에서 오직 두 가지의 선택지만 주어진다면, 과연 꿋꿋하게 지조 있는 죽음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고통스런 심정을 관극 내내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난 당신을 심판할 수 없어요."

 

극 중에서 "심판"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반복된다.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긴 존 프락터는 부인 엘리자베스에게 계속해서 변명을 거듭한다. 자신을 심판하지 말라고, 대체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냐고. 엘리자베스는 이 적반하장에 침착하고 현명하게 대응한다. 당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건 당신 스스로라고. 인간이 다른 인간을 심판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그나저나 17개월 동안 주일 예배를 26번 빠진 것이 어마어마한 죄악인가요. 긴장된 상황에서 십계명 하나를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거나 성경에 기재된 마녀를 믿지 않는다는 개인의 생각이 정녕 신 그 자체를 향한 모독인가요. 물론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떠올리지 못한 건 프락터의 알량한 양심이 자초한 자업자득이지만. 아무튼 그 종교에 대한 편견이 깊어지고 깊어져서 아득해진다.

 

덧. 존은 반말하고 엘리자베스는 존댓말 하는 연출 넘 별로. 요새는 이런 거 공평하게 하는 추세던데. 반대로 외국인 노동자인 티투바 어조를 우스꽝스럽게 하지 않은 연출은 좋았다. 플마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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