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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in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2023.11.01 2시반

 

 

 

 

류정한 막심, 웬디 이히, 리사 댄버스, 김지선 반 호퍼, 홍기주 베아트리체, 윤석원 잭 파벨, 고철순 프랭크, 제병진 가일스, 최명경 줄리앙, 이종원 벤. 이번 시즌 자첫. 레베카 자11. 류막심 자10. 류웬리 페어막.

 

 

개인 사정으로 이번 7연 레베카 자첫이 조금 늦었다. 제작사는 거창하게 10주년을 내세우며 변화를 예고했으나, 이전 시즌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진 부분은 찾지 못했다. 일부 영상과 마지막 불맨의 무너지는 R 정도? 가사가 미묘하게 바뀐 것 같긴 한데, 이 극을 의외로 많이 보지 않아서 확언하기가 어렵다. '완벽을 넘어선 최고의 뮤지컬'이란 수식어에 이견이 없는 극이므로, 손을 많이 댔으면 오히려 번잡해졌으리라. 너무 완벽하기에 자주 관극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작품이니 말이다.

 

 

다만, 10년 동안 7시즌이나 올라온 이 극의 큰 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명확하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었다. 바로 배우. 류막심과 일부 앙상블 배우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새로워진 배우들의 목소리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귀에 익은 목소리들이 무대 위 배우들의 목소리 너머로 겹쳐 들리는 환청을 경험했다. 이름이 있는 역할에 개인 넘버가 최소 하나씩은 부여되는 극이라서, 배우진의 교체가 아주 극명하게 체감됐다. 7년 전에 이 극을 보았던 관객은 여전히 객석에 앉아있는데, 극을 그려내던 배우들은 이 무대를 떠나버렸구나. 연뮤 덕질 9년 차에 레베카를 보면서 이런 헛헛함을 느낄 줄은 미처 몰랐다.

 

 

 

 

류막심은 명불허전이어서 쓸 말이 없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여러 디테일들이 남아있어서 반가웠고, 새로 생긴 디테일은 신선했다. "쌓여 있던 담배꽁초"라는 가사에서 착안하여, 막심에게 결정타를 날리기 직전 맛있게 담배를 한 모금 피는 류베카라니! 이래서 제가 류배우님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아낍니다. 커튼콜에서 오케를 향해 직접 환호를 보내고, 장난스러운 얼굴로 객석의 환호를 유도하는 류막심을 보며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웬이히는 캐슷 공개 순간부터 궁금했는데, 노래도 연기도 기대 이상이었다. 소심하고 세상 물정 모르던 어린 청년의 철없음과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맨덜리 안주인의 성숙함이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 행복병 넘버와 공판 후 서재 장면에서의 표정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웬이히의 연기 덕분에 놀평을 부르는 몬테 카를로의 류막심을 향한 감상이 이전과 조금 달라졌다. 막심, 어린애 데리고 뭐 하는 거야!!! 이히, 세월을 통해 축적된 연륜이 나이 많은 남자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건 잘 알지만 거기에 홀라당 넘어가면 안 돼!! 

 

 

리댄은 자신만의 세계에 흠뻑 빠져든 오타쿠 노선이었다. 쥐면 깨질 듯 만지면 바스러질 듯 귀하게 레베카를 숭배하는 리댄은, 그를 사랑하고 덕질하는데 몰입하여 그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더라. 레베카를 향한 찬사 역시 남에게 들려주려는 영업하는 덕후가 아니었다. 제 마음에만 완전히 몰입하여 사랑을 늘어놓기 급급한 솔플러 덕후였다. 차분한 저음이 이 노선에 더 힘을 실어주었다. 배우마다 각기 다른 노선의 대니를 보여주니, 뉴댄버스라면 언제나 궁금할 수밖에!

 

 

레베카3의 위압감은 언제나 엄청나지만, 이 넘버 직후의 리댄 표정 연기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이히에게 달콤한 척 속삭이는 악마 같은 유혹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표정이 휙휙 바뀌었다. 마치 레베카의 영혼에 사로잡히기라도 한 듯, 크고 선연한 악의가 리댄의 얼굴 가득 넘실댔다. 알람 소리에 정신을 차린 이히가 도망가버린 뒤의 디테일도 좋았다. 아깝다는 듯 난간을 내리치는 댄버스들을 많이 봐서 그 표정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리댄은 휘청하더니 왼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정신을 차리더라. 내면에 깊게 침잠해 있던 본성에 사로잡혀 순간 미쳤을 뿐이었다는 것처럼.

 

 

 

 

이전에 앙상블로 자주 만났던 고철순 배우의 프랭크가 은근히 매력적이었다. 류막심과의 관계가 정말 친구 같은 프랭크는 지금껏 거의 없었는데, 가장무도회나 서재 장면에서 둘의 관계가 잘 보여서 무척 좋았다. 별빛송 부르는 목소리도 좋았고. 어떻게 봐도 양아치 그 자체인 석원파벨이나 유쾌하게 극을 환기시키는 지선호퍼도 깔끔하게 잘 어울렸다. 앙상블 배우들 중에서 로버트 역 최훈호 배우님 톤 정리 좀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신문 보고 화내는 장면 볼 때 귀청 떨어지는 줄.. 

 

 

1열이라서 그런지 혹은 시즌 후반부라 그런지, 음향이 깔끔한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메리칸 우먼 넘버 가사 제대로 다 들린 거 처음이야. 5연과 다르게 오케 박자도 배우들과 잘 맞아서 흡족했다. 다음 주에 캐슷 바꿔서 한 번 더 볼 예정인데, 똑같은 극이 또 어떻게 다른 색감으로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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