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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살다
in 대학로 TOM 2관, 2023.02.15 8시
박란주 실비아, 이지숙 빅토리아, 문지수 테드, 김수정 루이스 보셔 외, 이민규 알바레즈 외, 고쥬니 그리고.
초연 때부터 궁금했던 작품이어서 냉큼 재연 프리뷰를 보고 왔다. 자첫 전에 시놉시스를 열심히 읽는 편이 아니라서, 글을 쓰는 여성 실비아에 대한 작품이라는 정도만 알고 객석에 앉았다. 그런데 제 자리가 이벵석이라니요! 들어오기 전에 캐슷보드 봤냐며 "누구 나오는지 알죠?" 하는 멀티 역의 김수정 배우님 질문에 머리가 하얘졌다. 어버버 거리고 있다가, 빅토리아 이름 꼭 기억하라며 배우님이 건네주는 빅토리아 생수병을 받아 들었다. 극 시작 전의 이벤트였기에 조금쯤 더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의 시작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몸을 내던져 세상을 바꿔가는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극을 반드시 만나보길 바란다. 유쾌하고 발랄한 여성들의 우정이, 뻔하고 답답해서 복장이 터지는 현실의 막막함이, 그럼에도 정체성을 포기할 수 없기에 아득바득 제 길을 만들어가는 처절하고 아름다운 의지가 작품 안에 잘 담겨있다. 하나의 인생을 담아낸 120분 동안, 웃고 화내고 절망하고 슬퍼하고 벅차오르는 온갖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실비아와 함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 여행을 떠나봐요.
수많은 여성들의 경험을 보고 듣고 읽은 관객이기에, 극 중후반까지는 다소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클라이막스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으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불행하고 힘겨운 상황을 이겨내는 개개인의 극복도 눈부시지만, 다 던져버릴 각오를 할 만큼 고통스러움에도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하여 다시 한번 이를 악무는 여성들의 연대가 지독히 숭고하고 아름답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삶 역시 눈물과 피와 절망으로 얼룩진 채 조금씩 길을 닦아낸 앞선 여성들의 삶 덕분임을 알기에, 한없이 감사하고 또 사랑스럽다.
"우리 모두 술 탄 물을 마신 거야
술 마시면 술 취하지 어쩌겠어
술 마시면 진상 부려 당연한걸"
우리는 잘못이 없다. 잘못은 작은 유리종 벨자에 여성들을 가둬버린 이 세상에 있다. 빤히 밖이 내다보이는 벨자 안에서, 그 투명한 장벽을 깨기 위해 여성들은 피를 쏟았고 또 쏟아내고 있다. 벨자를 깨뜨리고 나온 여성들은, 살아갈 것이다. 스스로를 위하여, 앞선 이들을 추모하면서, 뒤에 올 이들을 고대하면서. 이 세상의 수많은 실비아들은 그렇게, "살다"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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