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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덴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2023.01.23 7시

 

 

 

 

정선아 엘리자베스, 에녹 루카스, 조형균 조쉬, 최현선 케이트, 임별 스티븐, 김찬종 데이빗, 이하 원캐.

 

 

살면서 "만약" 이라는 가정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갈림길 앞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여 걷다가 문득 "그때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으리라. 이 극은 그 상상을 무대 위에 구현한다. 두 친구 중 누구를 따라갈 것이냐는 작은 선택 하나로 인해, 리즈와 베스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마치 평행우주처럼. 리즈와 베스의 삶이 다르기에 주변 인물들의 삶 역시 서로 다르다. 리즈와 베스의 인생이 점점 달라져 어긋날 때, 문득 뒤돌아 과거를 돌이켜보는 그의 고민과 후회와 갈등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단 한 번의 선택. 그때 만약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서있을까.

 

 

 

 

"내 모든 순간은 이 순간에

일분일초 모두 이곳에

지금의 날 만든 선택들

다가올 사건과 사고들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어"

 

 

 

그 찰나에 어떠한 선택을 했든, 그건 내가 스스로 택한 길이라는 것을 이 극은 강조한다. 수많은 선택들이 모이고 쌓인 것이 바로 지금의 내가 끌어안고 있는 삶이라고. 만약, 이라는 가정이 때때로 마음을 점령할지라도,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 위에 있노라고. 지금 이 모든 순간들이 나 자신이라고. 가보지 못한 길에 미련을 가질 필요도, 후회를 남길 이유도 없노라고.

 

 

 

 

정선아 배우의 발랄한 사랑스러움과 성숙한 깊이감이 더없이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돌아온 뉴욕에서 고민하는 모습, 실패의 기억으로 망설이고 흔들리는 모습, 내어준 마음을 상실하고 고통스럽게 절망하는 모습, 사무치는 외로움에 쓸쓸해하는 모습, 그럼에도 사랑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모습까지. 완벽한 감정선으로 완벽하게 연기하고 노래하는 그 얼굴과 목소리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두 갈래의 인생을 그와 함께 오롯이 살아낸 기분이 들었어.

 

 

쌀조쉬 대사톤과 목소리가 너무 잘생겨서 새삼스레 설렜다. 썸머리즈를 향한 눈빛과 말투와 몸짓이 어찌나 다정하고 달달하던지. 에녹 배우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연기가 더 매끄럽고 맛깔나졌더라. 뉴욕 한가운데에서 "달팽이도 집이 있는데 사람의 아들딸들은 머리 쉴 곳조차 없는가!" 하고 외치는 활동가 녹카스의 외침이 서울 시민의 마음에 사무치게 와닿았다.

 

 

"가보지 못한 길에 미련 없어"

 

 

말 나온 김에, 이 극이 더욱 특별하고 유의미한 이유는 "다양성"에 있다. 흔치 않은 여주원탑극의 대극장 뮤지컬이며, 그 주인공은 30대 후반의 이혼한 여성이다. 경력 단절의 현실 앞에서 치열하게 온몸을 내던지며 제 자리를 만들어가는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 그 안의 벅찬 기쁨과 숨 막히는 고난 또한 숨김없이 드러낸다. 임신을 대하는 가치관과 추구하는 커리어를 위해 노력하는 가쁜 일상이 무대 위에 담긴다. 내 몸이니 내 선택이라고 선을 긋는 담담한 목소리가, 행복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무너져 내리며 휩싸이는 온갖 감정이, 오롯이 이해된다.

 

 

다양한 성정체성 역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랑의 형태로 등장한다. 바이인 루카스는 여자와 키스하기도 하고 남자와 연애를 하기도 한다. 그들의 존재는 별도로 호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게 일상에 녹아있다. 극 중에서 표현되는 직업 역시 다채롭다.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다양한 직업을 넘나 든다. 도시 계획자, 시간 강사, 군의관, 유치원 선생님, 소아과 의사, 작가, 나아가 주거권을 부르짖는 시민운동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간 군상들이 존재한다. 천편일륜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몰입은 깊어지고 흥미는 더해진다. 현시대의 무대예술이 어떠한 이야기를 담아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멋진 작품이다.

 

 

 

 

"니 눈앞에 나타난 삶에

망설이지 마 뛰어들어

그래 기회는 한 번뿐야

너의 선택 하나뿐야"

 

 

이 멋진 극의 주연 배우 세 명을 다 만나보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그러니 빠른 시일 내에 재연으로 돌아와주세요. 가능하면 홍아센이 아닌 대극장으로 부탁 드려요. 반짝이는 뉴욕의 불빛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인생이리라. 그 길은 베스로 이어질 수도, 리즈로 진행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뿐인 선택인 것을. 주어진 이 삶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만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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