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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랑루즈
in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2022.12.16 7시반
홍광호 크리스티안, 김지우 사틴, 이정열 지들러, 이창용 몬로스 공작, 최호중 로트렉, 심건우 산티아고. 유승엽 베이비돌, 배수정 아라비아, 김주영 라쇼콜라, 이하 원캐. 전성혜 니니. 물랑루즈 아시아 총첫!
궁금했던 작품이지만 가격 패기를 보고 놀라서 티켓팅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헤미안석이라며 op석과 중블 1열을 따로 오픈한다길래 눌러나 보자 하고 예매처에 들어갔다. 역시나 눈밭이라 빠른 포기를 하고 바로 총첫공 예대를 이곳저곳에 4개 걸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중 3개가 터졌다!!! 세상에!!!! 덕분에 총첫공을 무려 오피 1열 중앙 부근에서 볼 수 있었다. 관극 가기 전부터 느낀 강한 운명의 예감은 로비의 포토존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고 이것저것 구경을 하며 점차 뚜렷해졌고, 이는 더없이 만족스럽고 행복한 관극으로 이어졌다. 이렇게까지 즐거우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는데 말이다.
이날 처음으로 주크박스 뮤지컬이 왜 흥행하는지를 이해했다. 매시업 뮤지컬답게 여러 팝송들이 매끄럽게 뒤섞이며 쏟아지는 순간,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고 나 개인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명곡들의 첫 음이 나오는 순간 심장이 절로 벅차올랐다. 케이티 페리의 Firework, 브리트니의 Toxic, 레이디 가가의 Bad Romance, 아델의 Rolling In The Deep, 비욘세의 Single Ladies, 펀의 We Are Young... 이 노래들을 듣고 즐기던 장소와 시간과 국가와 계절감이 영혼을 채우며 십여 년 전 그 시절의 감수성을 일깨웠다. 역시 음악이란, 영혼에 새겨지는 나이테와 다름없어.
보헤미안석 1열 21번 시야는 이렇습니다! 카메라에 담기질 않아요! 완전 턱샷이지만, 무대가 높아서 목이 좀 아프고 어깨에 담이 올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무대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4D 좌석입니다!! 무대 위쪽에서 쏟아지는 꽃가루를 맞고 배우들의 춤 동작으로 쿵쿵거리는 바닥의 진동을 고스란히 느끼는 바로 이 공간이 파리의 물랑루즈 클럽 그 자체 아닌가요! 자첫자막이든 뭐든, 있으면 갑시다 오피 1열. 가끔 배우들 의상 때문에 눈 둘 곳이 없을 때도 있지만, 갑자기 눈 앞에서 크리스티안이 코트를 걷고 엉덩이를 내보기도 하지만,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연기에 완전히 잠기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행복한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자리! 1열 23번이 정중앙인 듯 싶은데, 이 음감석 시야 자리에 사틴이자 크리스티안의 시점까지 간접 경험할 수 있을 듯!
로비도 잘 꾸며뒀지만, 객석에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새빨간 공간 속 무대를 가득 채운 하트 모양 구조물이 시선을 사로잡고, 1층 객석 오른편의 코끼리와 왼편의 풍차가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정신 없이 인증샷을 찍다가 문득 위를 올려다보면,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반짝이는 샹들리에들. 바깥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휘황찬란하게 화려한 꿈 같은 공간. 허영과 자본을 논하며 거리를 두기에는, 정말이지 지나치게 매력적인 세상.
"Freedom! Beauty! Truth! Love!"
무대도 동화처럼 예쁘다. 특히 코끼리 안쪽에 위치한 사틴의 방과 그 방의 창문 너머 커다란 달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달달한 눈빛으로 사틴을 바라보는 홍티안의 머리 뒤편에 그 보름달이 가득 들어차는 그 찰나 시라노 생각이 어찌나 나던지. 1막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 구조물이 돌아가며 사틴의 발코니가 등장하는 것도 멋지고, 일순 배경이 까맣게 물들며 쏟아질 듯한 별빛 조명이 반짝이는 것도 아름답다.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극 답게 에펠탑이 등장하는 것도 사랑스럽다. 사틴의 첫 등장씬 그네와 백스테이지의 여러 소품들, 압생트 장면의 초록색 병과 잔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저곳에서 대극장의 힘이, 섬세한 손길이, 자본의 맛이 느껴져서 행복했다.
첫공, 그것도 초연 첫공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무대 위 배우들은 성공적인 첫 공연을 위하여 모든 걸 불사르며 온 마음으로 임하고, 무대 아래 객석의 관객들은 그 열정을 응원하며 장면마다 아낌 없이 박수와 환호를 쏟아낸다. 이 시간, 이 공간에 존재하는 이들이 한마음으로 공유하고 창조해내는 특별한 순간. 경험해본 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짜릿한 카타르시스. 그렇기에 공연은, 찰나의 예술은 계속된다.
원작을 보지 않았기에 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매순간 재미있게 관극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자첫자막의 꿈은 첫 장면을 보자마자 저멀리 날아갔음을 고해하며! 멋진 첫공연을 보여주신 모든 배우와 오케스트라와 연출과 관계자에게 감사를 보낸다. 폐장 전 반드시 다시 방문할게요, 물랑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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