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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오늘

in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2관, 2023.01.21 2시

 

 

 

 

오의식 남자1, 양경원 남자2.

 

 

초연 당시 실결까지 했었으나 연이 닿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재연이 돌아온 덕에 2023년 첫 관극을 하게 됐다. 50프로 탐셀이기도 해서 창조주를 모시고 갔는데, 양경원 배우의 찰떡같은 연기에 몹시 만족스러워하셨다. 두 배우 모두 다양한 지역의 사투리들을 맛깔나게 소화하면서, 다소 밋밋할 수 있었던 텍스트를 생동감 넘치게 표현했다. 의상과 분장, 어조와 동작만으로 인물이 완연히 달라지는 경험을 95분 내내 가열차게 할 수 있어 즐거웠다.

 

 

 

 

"사투리는 참 음악 같지 않습니까?

가끔 뜻은 몰라도,

한민족 어디서 누가 들어도 다 아는,

음악 같지 않습니까?"

 

 

1920년대 주재소의 학생들, 1940년대 제주 중산간의 필부들, 1980년대 부산 유치창의 베트남 참전 군인과 데모하던 학생, 2020년대 가까운 미래의 최전방 군인들. 각기 다른 시공간을 살아내는 그들이 살아내는 순간들은 그때도 오늘, 현재였다. 한반도의 굵직한 근현대사를 시대상에 녹여내며, 그 현재를 마주해야 했던 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언어를 그려낸다. 충청도, 평양, 경상도, 제주 등 한반도의 여러 지역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연출이 이 극의 가장 큰 특색이다. 우리의 언어를 잃을까 걱정하던 일제강점기를 지나, 자막이 없으면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독특한 제주 방언을 고스란히 재연하고, 나아가 억센 충청도 사투리와 지나치게 단정한 서울말이 뒤섞이는 근시일에 이른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부산의 장면은 아쉬움이 많다. 작가의 의도가 가늠은 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도 공감할 수도 없던 세대 사이의 장벽이 혈연이라는 요인 하나에 녹아내리듯 무너지는 결말 자체가 이야기를 퇴색시켰다고 본다. 죽음을 목도하며 전쟁의 끔찍함을 알고 있는 세대가 그렇게 완고하고 답답하며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점에 대해서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고. 죽은 자를 쫓으면 안 된다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위로가 공허하게만 다가왔다. 그리고 두 번째 장면의 동작 연출도 다소 아쉬웠다. 이미 짐을 다 싣고 고정을 시킨 수레라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끈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행위를 지나치게 여러 번 반복하여 몰입이 떨어졌다. 첫 장면은 생각보다 길어서 힘들었고.

 

 

 

 

"슬프게 그려라. 비극이잖여."

"비극이지. 현실이지."

 

 

앞선 세 장면은 결국 창작진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담은 마지막 장면을 위한 빌드업이다. 내전을 멈춘 드록바의 말 한마디가 지닌 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평화를 추구하자는 스포츠의 정신을 망각한 세태에 대한 탄식이, 지역을 구분 짓고 남북을 갈라놓은 '전쟁 중'인 한반도의 비극이, 마지막 장면에서 깊이감 있게 담긴다. 영화 같은 1차 대전의 크리스마스 정전 실화를 듣고서는 달에서 노래가 들려와 기적처럼 평화가 도래하기를 상상하는 어린 군인들의 목소리가, 진돗개의 발령과 함께 들려오는 총성으로 겁에 질려 덜덜 떨린다. 부모의 갈등이 자식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 비합리적이듯, 과거의 상흔을 직시하여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않은 채 이어지는 남북의 대립은 반드시 매듭 지어져야 한다.

 

 

그때도 오늘이었듯, 이 현재를 그려내는 좋은 극이 많아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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