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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in 대학로 자유극장, 2022.10.20 8시

 

 

 

 

강지혜 샬럿, 김려원 에밀리, 이아진 앤.

 

 

글을 쓰는 여성들은 언제나 옳다. 여성이 감히 글을 쓴다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던 시절에도 여성들은 자신의 생각을, 마음을, 꿈을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갔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의지, "폭풍우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신념. 그 걸음들이 모이고 쌓여 지금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 닿는다. "해뜨기 전 찬란한 새벽"처럼.

 

 

"써 내려가 써 내려가"

 

 

졔샬럿의 확고한 목표는 묵직하고 려밀리의 명료한 신념은 찬란하며 아진앤의 단단한 믿음은 다정하다. 브론테이기에 모두가 글을 사랑했지만, 브론테임에도 모두의 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저마다의 관점으로 탄생한 세계들이 부딪히고 평화는 찢겨진다, 필연적으로. 자유롭게 써내려간 각자의 소설들, 브론테 자매들의 삶은 결국 본인들의 글과 같아진다. 작가의 죽음 뒤에야 마침내 생을 얻고 불멸의 영혼이 된 소설,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천사를 만난 소녀가 무슨 말을 할지 떠오르지 않아 미완으로 남겨둔 소설을 죽음 앞에서야 완성한 앤. 갈망하던 성공을 성취했지만 죽음으로 갈라져버린 자매들에게 목소리가 닿지 않아 절망하는 샬럿. 그러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글로써 연대한 그들은, 마침내 서로를 끌어안고 이해하고 용서한다. 

 

 

 

 

"너는 폭풍이 몰아치는 언덕

비난이 쏟아져도 멈추지 마

오직 너 자신만을 믿어야 해

나의 고독을 완성할 거야

짧은 삶에 패배해버리지 않도록"

 

 

아진앤의 사랑스러움도 졔샬럿의 입체적인 모습도 좋았지만, 려밀리의 모든 것이 유독 마음에 들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새하얀 낯빛의 위태롭게 침잠한 얼굴에 살풋 미소가 어리는 순간, 제 손을 떠난 글 속의 세계는 통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며 작가로서의 신념을 쏟아내는 찰나, 파스스 시들어가면서도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최후까지. 특색 있는 음색이 려밀리 자체를 한층 특별하게 만들었다. 해적 때부터 마음이 가던 배우였는데, 이 공연으로 완전히 애배 목록에 들어왔다.

 

 

"나의 손을 떠난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을 여행할까"

 

 

요크셔의 광야를 방문하는 티켓 구하기가 참 힘들었다. 부디 이 누추한 극장 대신 조금 더 넓고 쾌적하며 단차도 나은 곳에서 재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스토리는 수정이 필요하겠지만 캐슷만큼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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