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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앤하이드
in 샤롯데씨어터, 2021.12.04 2시
류정한 지킬/하이드, 아이비 루시, 최수진 엠마. 류지킬/류하이드 자열. 류과숮 페어 자첫.
자체적인 인터미션을 보내고 2주 만에 샤롯데를 다시 찾았는데, 류지킬 노선이 확 달라져 있어서 흥미진진했다. 비슷한 듯 달라진 디테일도 많았는데, 내일도 관극 예정이므로 자잘한 것들은 다음 후기에 남길 예정이다. 오늘 류지킬은 아주 냉철하고 냉랭하며 철저한 과학자였다. 파사드 시작할 때 여앙이 넘어지는 걸 보고 짧게 한숨을 내뱉는 건 처음 봤다. 잠시 머뭇대는 사이 귀족들이 그를 세게 내치며 지나가자 그제야 버럭 화를 내더라. 사람들을 관찰하는 표정도 이전에는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리는 등의 감정 표현이 없지 않았는데, 이날은 정적인 얼굴로 내내 날카롭게 응시하기만 했다.
그래서 이사회도 훨씬 담담하면서 날이 서있었다. "정신 나갔네 뱅뱅 돌았어" 라는 프룹스의 비이성적인 비난에 저게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실험용 쥐처럼 바늘로 찌르고 실험하겠다구요?" 라는 비콘스필드의 말에 냉큼 "네!" 라며 이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투로 답했다. "그 내면 속의 사악함!!!" 을 긁어내는 목소리로 외치듯 부르며 간접적으로 이사회를 맹렬하게 비꼰 것도 이번에 처음 들었다. 이제 결정을 하자며 스트라이더가 "그에게 찬성은 아이" 라고 말하자, 입모양으로 "하느님 제발," 이라고 중얼거리는 디테일도 처음이었다! 이 시점에 신을 찾으며 기도한다구요? 하이드가 후에 비아냥거리는 그 겸손한 말을요? 웨딩에서 처절하게 부르짖을 그 기도를, 여기서요?
"난 중심을 잡고 살아왔고, 우리 모두가 그렇죠"
트랜스폼 직후 일기장으로 다가간 류하이드는 오른쪽 손목을 왼손으로 턱 잡은 뒤 묵직하게 힘을 주며 오른쪽 허벅지로 옮긴 다음 얌전히 굴라는 듯 두어 번 토닥였다. 오른손을 퍽 쳐냈던 2주 전과는 사뭇 다르게, 하이드가 지킬을 온전히 압도하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2막 나니까 넘버 시작 직전의 독백에서도 울먹임이 싹 빠졌다. 중심을 잡고 살아왔노라는 류지킬의 말은 마치 자기변명 같은 설득 조였고, "그 괴물도 그래요" 라며 하이드라는 존재에 대한 설명 또한 지금껏 관찰해온 대상을 정의하는 듯한 서술 조였다. "늘 그토록 없애고 싶어 했던 또 다른 나의 내면"으로부터 야기된 하이드를 객관적으로 탐구하고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킬이었다.
하지만 끝내 우위를 휘어잡을 수 없음에 결국 류지킬은 마지막 선택을 결심하고 웨이백을 선언한다. 루시데쓰 직후 머리를 휙 넘기며 돌아온 지킬은 생경한 방과 눈앞의 인영을 발견하고 "루시?" 하며 바로 상황을 눈치 챈다. "아니야!" 라는 외침에는 루시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보다 하이드를 끝내 통제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이끈 자신의 실패에 대한 부인이 앞선 것처럼 느껴졌다. 이어지는 컨프롱에서도 하이드가 근래 들어 가장 약했다. 오른손의 지배권을 가감 없이 내보이며 서슬 퍼런 위압감을 보여주던 류하이드는 없었다. 제 가슴을 팍 치는 것도 왼손으로 한 번 밖에 하지 않았고, 오른손도 클라이막스 즈음에 두 번 정도만 사용했다. 단단하고 날카로우며 이성적인 지킬과 묵직하고 서늘하며 본능적인 하이드가 비등하게 대립하는 컨프롱이었다.
컨프롱에서 지킬을 완전히 이길 수 없었던 하이드는 숨을 죽인다.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틈을 노려 빠져나온 하이드가 육체를 점령하고 미쳐 날뛰자 지킬은 끝내 죽음으로써 자유로워지기를 택한다. 자신과, 모두의 평안을 위해. 로인닼맆에서 "세상 그 무엇도 날 막을 수 없어" 라고 말하던 류지킬은 온갖 의무와 책임에 짓눌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편히 쉬어요" 라는 엠마의 말에 진심으로 환하게 웃더라. 죽음을 통해 비로소 짐을 내려놓고 구원받는 류지킬.
슬슬 다양한 노선과 변주를 보여주실 듯하여 기대가 크다. 이 힘겨운 시국의 연말이 류배우님 덕분에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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