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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앤하이드
in 샤롯데씨어터, 2021.11.21 2시
류정한 지킬/하이드, 윤공주 루시, 조정은 엠마. 류지킬/류하이드 자아홉. 류공조 페어 둘공/자둘.
시국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토요일 공연이 취소되었으나, 다행히 확진자가 더 나오지 않아서 일요일 공연은 재개되었다. 선녀엠마 고정으로 세 명의 루시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주간이기에 욕심을 내어 주 3회 류지킬 전관을 했는데, 역시나 쉽지 않았다. 각각의 공연은 무척 좋았으나, 자주 본 만큼 극의 한계가 더 적나라하게 눈에 띄어서 불호를 외면하기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컨디션도 썩 좋지 않아서, 약간의 텀을 두었다가 자열 관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류지킬 고정 9개의 페어를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확신의 최애 페어는 바로 류공조다. 세 배우 모두 이 극을 오래 해왔을 뿐만 아니라 배우들끼리의 합 또한 워낙 좋은 터라, 같은 극 같은 텍스트인데도 질감이 완전히 달라진다. 차분하고 침착하지만 원써폰에서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선녀엠마가 지킬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고, 순박하고 단순하지만 썸원에서 깨닫게 된 온갖 감정이 두 눈 가득 일렁이는 공주루시가 지킬의 욕망에서 비롯된 하이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그려낸다. 결혼식에서 목이 졸려 숨이 막히는 목소리로 헨리를 부르는 선녀엠마와, 댄져에서 원하지 않은 쾌락으로 공포에 질린 숨소리와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공주루시 모두, 지킬이 야기한 비극의 피해자다.
류지킬/류하이드 디테일을 안 남기면 아쉬우니 달라진 것만 간략하게 기록용으로 남긴다. 이날은 "인간이에요, 존. 사람." 이라고 다시 원래 대사로 돌아왔다. 아닛투 변주는 없었고, 이사회에서 스트라이더를 보며 "사과하겠습니다" 라고 1119 공연처럼 낮춰 말했다. "이 두 부분을 완벽히, 완벽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라고 강조하는 건 오랜만에 했다. 이사회는 늘 좋지만 이날 유난히 목소리가 좋아서 마음이 설렜다. 약혼식은 발 구르는 걸로 돌아왔고, 레드랫 가는 길에 어깨에 두른 망토가 살짝 펄럭인 덕에 양 엄지와 검지로 붙잡고 있는 류지킬 손가락을 처음 봐서 귀여웠다.
공주루시는 새로운 얼굴인 류지킬을 발견하고는 마치 팬서비스를 하듯 브링온 중간중간 일부러 그에게 지긋이 시선을 준다. 그런 시선을 불편해하며 고개를 돌리면서도, 류지킬은 막상 루시가 시선을 거두면 바로 그를 향해 눈을 고정한다. 얼굴이 얼마나 남았냐는 루시의 질문에 턱에 손가락을 괴지 않고 얼굴만 갸웃하며 쳐다봤다. 1117 1119 공연에서 "정말 멋진 공연이었어요" 라는 대사를 살짝 씹었는데, 이날은 단어를 끊어 말했다. 루시가 만진 왼손을 가슴께까지 들어 올린 다음, 온기가 남은 손등이 아니라 왼손 자체를 바라봤다.
"결과만 생각하다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존" 하면서 어터슨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들이밀며 미소를 지었다. 사골 마지막에 "간절한 기도" 하며 한 손을 들고 "절실한 기도" 하며 다른 손을 들어 올려 양팔을 넓게 벌리는 자세를 몹시 사랑한다. "신이여 허락하소서" 하며 양손을 아래로 내렸다가 마지막 음을 길게 늘이며 위로 올린 뒤 마지막으로 오른손 주먹을 쥔 채 불끈 들어 올리는 피날레 자세 또한 사랑한다. "내 심장처럼 붉기도 하지" 하며 왼손을 가슴에 올리는 디테일 유지되어 좋았다. 트랜스. 자정 종소리에 움찔했다가 거울로 다가가는 와중에 팔 위쪽부터 등근육까지 꿈틀대며 움직이는 몸 연기에 새삼 감탄했다. 낮게 웃고 큰 보폭으로 움직이고선 실험대 왼쪽에서 허리를 세우고 휘파람 불며 일지를 향해 걸어갔다. 오른손을 팍 내치고 허벅지에 올렸지만 토닥거리진 않았다.
"막을 수 없는 이 넘치는 힘
알 수 없어 살아있다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다
나는 과연 무엇인가"
얼랍1 도입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다" 하면서 중심부에 양손 올린 채 허리를 살짝 튕기고선 그대로 그 손을 위쪽으로 움직여 가슴팍을 만지다가 조끼를 팍 뜯었다. 볼 때마다 오싹오싹한 최애 넘버 중 하나다. 기도하네 당연히 좋았고, 루시에게서 하이드라는 이름을 듣자 매서운 눈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애써 그 감정을 감추기 위해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며 왜 자신을 찾아온 거냐 묻는다. 수직의 자세로 루시와 키스를 시작하지만 류지킬이 자세를 뒤로 빼면서 수평에 가까운 위치로 입술을 떼는 구도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날 딱 그 느낌이라서 행복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루시의 이름을 부르고 "잘가요" 라고 인사하며 선을 그은 뒤 목례를 하고 도망치듯 떠난다. 이날도 둘 다 왼손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얼랍2를 위해 견뎌내야만 하는 긴 고통과 인내의 시간. "정말 잘 어울리는 어색함인데요" 라고 바꾼 류하이드의 대사를 듣고 객석에서 가끔 웃음이 나오는 거 좋더라. "답답한 창살은! 뜯어버려!" 하는 날카롭고 명징한 발음과 먹잇감의 숨통을 조이는 듯 강세를 바꾸는 목소리톤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오른쪽 품에서 꺼내든 술병을 흔들어대는 디테일은 늘 얘기하지만 늘 사랑하구요. 1119 참사 때문인지 객석에 등을 돌린 채 왼쪽 품에서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이날 자리도 중앙이어서 얼랍2 피날레가 명확하게 시야에 가득 담겨서 행복했다.
원써폰 전에 엠마에게 "누가 들여보냈지" 라고 물었었는데, 이날은 "누가 허락했지" 라고 말했다. 일기장을 쾅 닫고선 엠마가 떨어뜨린 펜을 주워서 다시 올려놓는 류지킬의 야무짐에 살짝 웃을 뻔했다. 왜냐하면 이따가 일지를 써야 하니까. "뿌리칠! 재간이 없다!" 하면서 버럭 화를 내는데, 이날 펜촉에 일지가 백퍼센트 찢어진 느낌이 들었다. 피해 갈 수 없는 어터슨의 질문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애써 미소를 걸어내며 "동료예요. 실험을 함께 하는. 내가 완성하지 못하면, 그 친구가 이어서 보충할 겁니다." 라고 해명한다.
Streak of Madness 넘버의 가사들이 유난히 귀에 들어왔는데, "미워하긴 힘들죠 나니까 / 나의 또 다른 나니까" 라며 하이드를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였기에 지킬이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는 생각을 했다. 분리된 욕망이 자아를 지닌 채 통제되지 않고 날뛰기 시작한 그 시점에 상황을 깨달았어야 하는데, 그 너머에 진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으며 하이드와의 공생을 지속한 것이 끝내 더 처참한 비극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 장면을 연기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그걸 너무 잘해버리는 류지킬 덕분에 자꾸만 지킬의 입장에 서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된다. 인히쟈 넘버 초반 무대 정중앙의 류지킬은 꿈틀대는 제 왼손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잡아 누른다.
"세상이 내게 던진 숙제를
이 목숨 끊어질 그날까지"
배우가 연기를 잘할수록 더욱 고통스러운 댄져. 누군가 도와달라는 듯 오른손을 쭉 뻗는 공주루시와 그런 그를 비웃듯 반대쪽 손목을 잡아채는 류하이드가 몸과 음성으로 거칠게 부딪힌다. 류하이드의 마지막 손길을 거부하는 공주루시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어터슨이 가져온 약으로 되돌아온 지킬. 머리를 묶을 때 오른쪽 옆머리가 흘러나왔다. "부탁이 하나 더 있어요" 라고 대사 원래대로 돌아옴. 이날 웨이백이 최고로 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목소리 연기 동작 표정 모든 것이 완벽했다. "세상이 내게 던진 숙제를" 이라는 가사를 몹시 좋아하는데, 여기서 양팔을 크게 벌리며 그 거대한 고민과 숙제를 끌어안는 듯한 표정이 마음을 벅차게 한다.
공주루시 뉴랖 정말정말정말 좋았다. 루시데쓰. 이날은 오랜만에 "작별인사도 없이 '여길' 떠나려고" 라고 했다. 루시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조롱하듯 루시가 지킬을 보며 불렀던 그 넘버를 부르는 하이드. "어울려~" 하며 루시의 목을 긋고선 하하하 웃은 뒤 칼을 객석을 향해 정확히 가리키고선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며 오른쪽으로 치켜든다. 되돌아온 지킬이 황급히 코트를 벗다가 칼을 떨어뜨려 그것까지 주워 침대에 놓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뒤로 휙 돌아 퇴장할 때 기둥에 거의 부딪힐 뻔해서 깜짝 놀랐다. 안 그래도 이 동선 너무 좁아서 매번 조마조마했는데, 수정 못하나.
컨프롱. 개인적으로는 1119 컨프롱이 조금 더 좋긴 했지만, 이날 컨프롱도 당연히 짜릿했다. 역시 하이드가 몹시 강해서 날카롭게 저항하는 지킬을 강력하게 찍어 누르는 느낌이었다. 가까스로 하이드를 통제했다고 믿은 지킬이었지만,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하이드는 "하필 지금 하필 이때" 돌아오고야 만다. 왼손이 거의 통제불능 상태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지킬을 압도했고, 거세게 휘둘리던 지킬은 하이드에게 잠식당하고 만다. 어터슨에게 제발 자신을 풀어달라고 애원할 때조차 왼손이 극렬하게 저항하여 오른손으로 간신히 억눌렀다.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하이드로부터 자유로워진 지킬.
분명히 짧게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적다 보면 결국 극 전체를 복기하게 되어 이것저것 기록으로 남기게 된다. 이렇게 후기를 썼음에도 다음 관극 때 비로소 생각나는 세세한 부분들이 있겠지. 류배우님 일하셔서 정말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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