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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앤하이드

in 샤롯데씨어터, 2021.11.19 7시반

 

 

 

 

류정한 지킬/하이드, 선민 루시, 조정은 엠마. 류지킬/류하이드 자여덟. 류선조 페어둘공이자 자둘.

 

 

1117 공연을 너무 좋은 자리에서 보기도 했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으나 류선녀 페어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결국 객석에 앉았다. 피곤한 몸을 끌고 샤롯데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류배우님의 컨프롱 공개였다. 시라노 재연 미니오슷의 감격이 여즉 생생한데, 이번엔 심지어 정식 음원 발매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고음질로 박제된 류배우님의 고급진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같은 시대에 태어나 이 음성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다. 거의 전곡이 박제된 이번 OST를 수령할 날만을 고대하고 있다.

 

 

공개된 컨프롱 음원은 웃음소리나 목소리를 세게 긁는 등의 디테일이 없어 담백하고 순한 맛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이날 컨프롱이 정말 역대급으로 강렬하고 자극적인 매운맛이었다. 음원은 심심한 시식일 뿐이니, 공연장에 와서 이 맛깔나는 정찬을 직접 먹어보라는 유혹 같았다. 여덟 번의 관극 중 가장 어마어마한 컨프롱이어서, 다음날까지도 머릿속에서 복기가 가능할 정도였다. 지킬/하이드를 보려면 확실히 객석 왼편이 더 낫지만, 오른편에 처음 앉으니 새롭게 보이는 표정과 구도가 많은 것도 흥미로웠다. 1111 공연에선 왼블 실1열 통로석에, 1117 공연은 중블 2열 정중앙에, 그리고 1119 공연은 오블 실1열 통로석에 앉으니, 세 관극의 기억을 합쳐서 입체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첫 장면. "인간이에요, 존. 사람." 이라는 대사를 이날만 "인간이에요, 존. 사람이라구요." 라고 풀어 말했다. 로인닼 마지막 "그댈 향한 내 길" 부분의 마지막 음을 1117에서는 짧게 끊어서 아쉬웠는데, 1119에는 다시 길게 음을 늘려줘서 좋았다. 아닛투 후반부 "그 숨겨진 빛을 향해" 에서 "향↗해→" 라고 변주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1117 공연에서는 파사드에서 지킬 본인의 위선적인 면모를 꽤 드러냈는데, 이날은 좀 덜했다. 이사회에서 스트라이더를 호명한 뒤 그를 쳐다보는데, 1117은 기존처럼 "사과드리겠습니다" 라고 했지만 1119는 "사과하겠습니다" 라고 1111처럼 다시 말을 낮췄다.

 

 

약혼식. 막아서는 친구들 너머 엠마를 보려 애쓰는 류지킬. 비콘스필드 부인의 죽은 남편 얘기에 매번 발을 굴렀는데, 이날은 박수를 쳤다. 약혼식의 지킬 엠마 듀엣은 극 중에서 가장 잔잔한 넘버인데, 관극 후에 은근히 귀에 오래 맴돈다. 댄버스 경과 엠마의 듀엣 Letting Go 또한 "그 모든 게 노파심이래도 애빈 / 어쩔 수 없이 또 그렇게 돼" 라는 아버지의 마음과 "홀로 설 그런 때가 된 것을" 이라며 떠나야 하고 또 떠나보내야 하는 딸과 아버지의 심경을 잘 담아낸 가사가 들을 때마다 가슴 한편을 울린다.

 

 

레드랫은 생략하고, 사골. 반짝이는 두 눈과 의지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 "아름답구나 반짝거리며 내 심장처럼 붉기도 하지" 하며 왼손으로 심장께를 만지는 디테일이 1119에 돌아왔다. 나중에 2막 원써폰에서 엠마의 다정하고 절절한 목소리에 괴로워하며 동일하게 왼손을 가슴에 올려놓는 것으로 이어진다. 트랜스. 1117 공연에선 왼손이 공격이라도 하듯 얼굴을 향해 덤벼들었다. 내면의 변화에 어쩔 줄 모르며 괴로워하는 몸짓 연기와 점차 하이드로 물들어가는 목소리 연기는 볼 때마다 압도적이다.

 

 

처음으로 떼는 걸음은 약간 서툴고 보폭이 크다. 갓 태어난 짐승처럼. 거울 속 제 모습을 비춰보다 비로소 묵중한 웃음소리를 토해낸다. 탐색하듯 자세를 살짝 낮춘 걸음걸이는 아직 투박하지만, 실험대 가운데에서 허리를 확 펴고 꼿꼿이 선 채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바뀐다. 거의 유사한 노선이었는데 1117은 휘파람을 불지 않았고, 1119는 허리를 핀 후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그만 고민하기로 했다. 오른손을 팍 내친 왼손이 허벅지 위에 오른손을 올려두고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린다.

 

 

자정. 모든 게 정상. 1117, 1119 공연 모두 "모~든 게" 부분에 멜로디를 붙였다. 얼랍1. 첫 소절을 부르며 제 중심부에 양손을 가져다 대고 허리를 튕기는 1111 공연 디테일이 이날 돌아왔다! 복식호흡할 때 배꼽을 중심에 두고 양손을 펼쳐서 배에 올려놓듯, 그 손동작을 조금 더 밑으로 내리고 생동하는 생명력을 예찬이라도 하듯 만끽하는 자세라서 류하이드와 몹시 잘 어울린다. 계속해주셨으면 하지만, 배우님의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히즈웍에서 처음으로 엠마와 댄버스 경에 집중했더니 넘버가 또 새로웠다. 루시의 입에서 하이드라는 이름이 나오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정처 없이 흔들리는 눈빛 연기가, 이 극의 장르가 스릴러임을 재차 일깨웠다. 썸원에서 루시와 키스한 제 입술을 매번 왼손으로 만졌는데, 1117 공연에서만 처음엔 오른손으로 두 번째는 왼손으로 입술을 만지작대다가 손을 탁 내치고 퇴장했다. 긴 고통의 기다림에 비해 너무 짧은 얼랍2. "이빨로 목덜밀 물어" 하면서 발로 주교의 목을 짓누르면서 몸을 숙이고 있는 자세 너무 좋다. 이제 스스럼없이 중심부에 가져다 대는 술병 디테일은 매번 사랑하구요. 이날 품 속에서 지팡이 꺼내는데 불꽃이 먼저 터져서 깜짝 놀랐다. 다치지 않으셨어야 하는데. 참사가 크게 티 나지 않아서, 주교가 자연 발화하는 것으로 무사히 마무리됐다.

 

 

머더머더. 테디를 죽일 때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그대의 노력을' 인정 못하시겠답니다" 라고 하는 건 고정인가보다! 엠마 뒤에서 허리를 숙인 채 걸어 나와서 엠마 어깨에 왼손을 올린 채 오른손의 칼을 높이 들어 올리는 류하이드의 마지막 장면이 잘 보여서 재미있었다. 선녀엠마와 함께일 때 유난히 애틋한 히즈웍의 닿을 수 없는 손끝. 그리고 애기루시와 함께일 때 너무나도 괴로운 댄져. 3번의 관극 모두 힘들었지만, 이날의 댄져는 잔인하고 끔찍하고 역겨워서 정말 고통스러웠다. "워어 워어 워어" 하는 류하이드 목소리도 1117 공연보다 더 짐승처럼 욕망만을 탐하듯 발음을 뭉개버려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얼랍1에서처럼 중심부 옆에 왼손을 놓는 디테일은 봤는데, 이외에는 뇌 속에서 장면을 자체 삭제해버림.

 

 

지킬을 찾아온 어터슨에게 류하이드가 "겁쟁이!" 라고 비웃는 건 언젠가부터 없어졌다. 그리고 돌아온 류지킬이 존에게 "부탁이 하나 더 있어요" 라고 했었는데, 1117과 1119 모두 "부탁이 더 있어요" 라고 바꿨다. 공연 초반에는 류하이드가 "워!" 하고 실험대 너머에서 어터슨을 놀래키기도 했었는데, 이건 공연 2-3주차에 없어졌고. 전체적으로 이 장면이 깔끔해지고 있는 게 마음에 든다. 웨이백. 루씨데스. 그리고 컨프롱.

 

 

이날 컨프롱 정말 뭐였을까. 류하이드가 제 지배력을 강조하듯 양손으로 가슴팍을 퍽퍽 치는 디테일은 매번 있었지만, 이날은 그 세기와 빈도가 차원이 달랐다. 꼿꼿이 서서 지킬을 연기하다가 일순간에 몸을 반대편으로 확 구부리며 하이드로 급변하는 동작 또한 어찌나 극적이던지. 1117 공연은 모든 걸 불사르는 지킬의 컨프롱이었다면, 이날은 육체를 차지하기 위해 흉흉한 기세로 끝까지 발악하는 하이드의 컨프롱이었다. 마지막까지 정신을 놓지 않는 지킬과 강력하게 존재감을 주장하는 하이드의 대립이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격정적이었다. 류하이드는 절대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결혼식까지 숨죽인 채 벼르고 있다가 일부러 "하필 그때"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얼마나 하이드가 대단했던지, 커튼콜의 마지막 인사마저 류배우님 본체가 아니라 류하이드였다. 

 

 

 

 

너무 많이 보나,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이런 자극을 외면할 수 있겠냐며 휘몰아치는 류지킬/류하이드의 공연에 허리가 휜다. 짜릿한데 불편하고 행복한데 찜찜하며 그럼에도 자꾸만 맛볼 수밖에 없는 이것이 바로, 마약이다 마약. 시국 때문에 불안한만큼, 볼 수 있을 때 최대한 자주 많이 봐 두는 수밖에. 다시 지킬이자 하이드로 돌아와 주신 류배우님께 재차 감사와 사랑을 보내게 되는 관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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