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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앤하이드

in 샤롯데씨어터, 2021.11.11 7시반

 

 

 

 

류정한 지킬/하이드, 윤공주 루시, 최수진 엠마. 류공숮 페어첫공. 류숮 페어자첫. 류지킬/류하이드 자여섯.

 

 

이 공연 이틀 전에 OST 녹음을 7시간 동안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이날 변주도 꽤 있고 무엇보다 목청이 완전히 트여있다는 느낌을 내내 받았다. 류배우님의 음성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를 오롯이 만끽하면서도, 이렇게까지 짜릿하고 황홀하고 행복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엄청났다. 날카롭고 잘생긴 류지킬의 음색과 묵중하고 울림 가득하며 긁어내는 소리를 더한 위압적인 류하이드의 음색이 오싹한 전율을 여러 차례 선사했다. 극불호인 극이니 아무리 배우님이 오셨다고 해도 많이는 못보겠지, 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는 얼마나 안일했던가. 이날 관극 후 고민하던 표를 두 개나 더 실결하면서, 시즌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에 새삼 안도했다.

 

 

"가야만 해 그 숨겨진 빛을 향해

아무도 가지 않았던

오직 나만이 가야할 험난한 길"

 

 

로인닼 시작 전부터 지킬 아버지 침대 머리맡의 철제 선반이 흔들거려서 약간 불안했는데, 다행히 참사는 없었다. 아닛투 훌륭한 건 이제 말하기도 입 아프지만, 음을 꾹 누르면서 농도 짙게 공중으로 퍼뜨리는 그 음성이 지독히 매력적이다. 파사드에서 한 발 떨어져 모두를 관조하다가 일순 군중 안에 둘러싸였을 때 얼굴께에 양손을 들어올리며 황급히 빠져나오는 걸음이 류지킬의 위선을 인지하게 만든다. 이사회. 이날도 스트라이더를 쳐다보았는데, "사과드리겠습니다" 가 아니라, "사과하겠습니다" 라고 어미를 바꿔버리며 좀 더 오만하게 선을 그었다. "이 두 부분을 완벽히, 완벽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라고 확신에 차 노래를 시작한다. 자신감 넘치게 주장을 설파하지만 각오 이상으로 적대적인 반응에 점차 다급해지고, 결국 쏟아지는 네이에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헛된 희망을 품었는가를 깨닫는다.

 

 

레드랫. 브링온에서 "소름 돋지" 하는 루시 가사에 여앙이 앉아있는 류지킬 앞쪽을 손가락으로 훑는데, 1106 공연에서는 혐오하며 뿌리쳤으나 이날은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서까지 루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넘버가 끝나고 객석보다도 먼저 박수 치며 "브라보!" 를 외친다. 루시의 손이 닿은 제 왼손을 몰래 만지작거리는 게 아니라, 가슴팍까지 들어올리며 생경한 감정을 응시했다. 이후 썸원에서도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혼란스런 표정으로 루시의 입술이 닿은 제 입술을 만지작대다가, 답답해하며 기둥에 등과 머리를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레드랫에서 내민 명함을 루시가 받기 전에 수직으로 탁 세우는 건 이제 공주루시 회차에서만 하는 걸까. 

 

 

회차를 거듭할수록 좋아지는 사골이, 이날 정말 훌륭했다. 이어 Fisrt TransformationAlive1 넘버는, 지금까지 들은 중 가장 완벽했다. 트랜스 직후 뼈를 맞추듯 왼쪽 어깨를 삐걱 들어 올린 뒤 기괴하게 왼손을 꾸물텅거리고, 이어 오른쪽의 지배마저 확인하듯 그 괴이한 근육의 움직임이 오른손까지 퍼져나간다. 거울 앞에서도 다시 한번 왼손부터 오른손까지 제 뜻대로 통제해본 뒤 낮고 묵직하게 웃음을 토해낸다. 실험대 왼쪽 철제 선반까지는 크고 둔탁한 걸음걸이로 걷다가, 실험대 앞에서부터는 허리를 세우고 걸음이 여유로워지더니 드디어 휘파람을 다시 불었다!! 아, 정말이지 딱 이 노선이면 다시 휘파람 불어도 되겠는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그 디테일 돌려주시는 류배우님 덕분에 제가 절대 벗어날 수가 없어요. 여유롭게 걸어가 오른손을 탁 쳐내고 글자를 휘갈기는 하이드의 왼손. 얼랍. 무대 중앙과 살짝 왼편에 서서 고관절 위에 손을 놓고 허리를 돌리는 새로운 디테일에 머리가 혼미해졌다. 주체할 수 없이 살아 숨 쉬는 성적 쾌락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류하이드의 모습에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사로잡혔다. Alive2 또한 당연히 완벽했다.

 

 

 

 

이번 시즌에 새로 참여한 숮엠마를 이날에서야 자첫했는데, 선택한 노선과 그에 맞춰 변경한 어미의 문장들이 이해는 되지만 취향은 아니었다. 선녀엠마나 경아엠마는 자신의 사랑을 올곧게 믿고 그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는 인생을 선택한다. 반면 수진엠마는 엄격한 아버지와 다른, 자신처럼 주류에서 벗어나있는 이를 사랑함으로써 지금과는 다른 삶을 선택한다. 지킬에 대한 사랑의 결이 다르기에 그를 믿고 기다리겠다는 원써폰의 맥락 또한 달라졌다.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이에게마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하고 외로운 절망의 감정이 강했던 류지킬이었지만, 이날 숮엠마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그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고독히 버려진 느낌이었다.

 

 

최수진 배우의 이전 필모를 여럿 봐왔고, 그가 표현하는 주체적인 인물을 많이 아끼고 응원했던지라 이 불호가 안타깝다. 노선 자체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여성 캐릭터에게 지나치게 한정된 공간만을 허락한 극의 낡음이 그 노선을 튕겨내는 느낌이다. 19세기 말 유럽 배경의 이 이야기에 수진엠마가 잘 녹아들기 위해서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이해가 쉽도록 문어체의 대사를 구어체로 풀어서 말하는 어미들이, 다른 작품은 몰라도 이 딱딱하고 고지식한 극과는 어우러지지 않았다는 점도 굳이 기록으로 남긴다. 2막 피날레에서 지킬을 끌어안은 채 형형한 눈으로 하늘을 노려보는 그 얼굴만큼은 너무나 좋았던 걸 돌이켜보면, 분명 어딘가에 타협점이 있으리라 믿는다.

 

 

 

 

엠마가 떠난 뒤 괴로워하며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울컥 오열을 토해내던 류지킬이었는데, 이날은 얼굴을 가릴 새도 없이 비명처럼 정제되지 않은 울음을 쏟아냈다. "날 좀 내버려둬요 제발" 하며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는 류지킬과 "자넨 이미 멀리 떠났고 확실히 아파!" 하면서 단호하게 걱정하는 윤어터슨의 팽팽하고 명징한 대치가 매번 짜릿하다. 하이드가 대체 누구냐는 질문에 멈칫하다 변해가는 류지킬의 표정 연기와 어터슨이 떠난 뒤의 독백이 그의 번민과 고통을 여실히 드러낸다.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하이드를 애써 통제하려 드는 류지킬의 번민이 번뜩인다.

 

 

It's A Dangerous Game. 하이드가 강제로 이끌어내는 쾌락을 두려워하는 과자루시는 온몸으로 저항하며 전투를 치른다. 여느 남자와 다를 바 없지만 가장 잔혹한 하이드의 폭력성을 혐오하는 애기루시는 처절하게 휘둘리며 벗어나려 애쓴다. 도망칠 수 없는 유혹에 공포를 느끼는 공주루시는 가사 하나하나를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내며 감정 그 자체를 뿌리치고 싶어 한다. 류하이드가 잔혹하고 압도적일수록, 루시 각각의 노선이 한층 적나라하고 잔인하게 표현된다.

 

 

"내가 모든 걸 보여준다고 도망가지나 말게"

 

 

입술로 푸우우우, 소리를 내며 의자에 몸을 구겨 넣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류하이드. 바닥을 뒹굴며 괴로워하다가 왼손을 허공으로 높이 뻗으며 돌아온 류지킬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어디 있어요, 존" 하면서 어터슨부터 찾는다. 하이드였을 때조차 경고하지 않았느냐며 애써 몸을 추스른다. The Way Back. 슬슬 변주까지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류지킬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넘버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A New Life. 넘버 마지막 즈음 "폭풍은 지나갔어" 소절에서 목소리를 긁어내는 게 연출 디렉션이라던데, 약간 올드해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루시마다 톤이 달라서 더 좋다. Lucy's Death. 지킬의 편지를 읽고 "인사도 없이 날 떠나려고?" 라고 묻던 류하이드는, 이날 "여길 떠나려고?" 라며 냉랭하게 비웃었다. 루시의 목을 그으며 "그녀는 어울려" 하고 하하하, 웃는 웃음소리도 이날 돌아왔다. 마지막 소절을 부르면서 안광을 번뜩이며 오른손에 쥔 칼날을 스으윽 응시한다.

 

 

Confrontation. 로인닼맆에서 컨프롱으로 넘어갈 때, 트랜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몸 안쪽에서부터 튀어나오는 하이드를 기괴하게 표현하는 류지킬을 너무나 사랑한다. 왼손부터 왼쪽 어깨까지 꿈틀거리면서 육체의 지배력을 확인하고 "가소로워 승릴한다고" 하며 하하하, 웃는 류하이드. 지킬을 밀어낼수록 더 강력해지는 하이드가 몸 오른쪽까지 통제하기 시작하지만, 물러날 곳이 없는 지킬은 처절하게 그에 맞선다. 서슬 퍼렇게 대립하다가 일순 똑바로 선 채 정면을 응시하며 거세게 숨을 몰아쉬는 찰나의 그 서늘한 위압감. 류지킬/류하이드 컨프롱 음원 언제 주실 거예요.  

 

 

 

 

친구를 세 명이나 데리고 간 날이었는데, 다들 본공과는 전혀 다른 커튼콜의 류배우님이 너무 귀여우시다고 입을 모았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뿌듯해하는 류지킬의 컷콜 또한 박제가 시급한데, 커튼콜데이 같은 거 없나요. 지금 노할인 15만원 티켓을 몇 개째 결제하고 있는지 셀 수가 없는데, 연말 기념 선물 좀 주세요. 모든 장면이 마약과도 같아서 그저 행복하게 즐기기만 하고 있는 이 관극들을 더 생생하게 추억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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