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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앤하이드
in 샤롯데씨어터, 2021.11.06 7시
류정한 지킬/하이드, 선민 루시, 민경아 엠마. 류선굥. 류지킬/류하이드 자다섯.
오늘 비로소 이 극을 처음 만났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공연. 이 완전함을 어떻게 글로써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입덕 이후 6년 반 동안 바라고 상상해온 바로 그 류지킬과 류하이드를 보고 왔노라 간증할 수밖에. 새삼스럽지만 이 어마어마한 배우에게 다시 한번 반하고 왔노라 감탄할 수밖에. 벅찬 심장을 부여잡고 살아있음을 명징하게 느끼며 행복을 만끽할 수밖에. 완벽하다 생각했던 컨프롱마저 더 좋아질 수 있음에 경탄하며, <지킬 앤 하이드>라는 극이 곧 류정한임을 온전히 납득했다.
어떤 문장을 적든 이 충만한 기분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겠지만, 늘 그러했듯 그 감정의 편린이라도 붙잡기 위해 기억을 되짚어 기록을 남겨본다. 오늘 류지킬은 미소라는 가면으로 진실과 제 위선을 여러 차례 감췄고,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하이드에게 끝까지 극렬하게 저항했다. 그런 그로부터 탄생한 류하이드는 좀 더 투박하고 위협적인 자세와 동작으로 움직이며, 낮고 묵직한 웃음소리를 수차례 위협적으로 내뱉었다. "승리하겠어 끝내 이겨내.." 라며 앞으로 뻗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강하게 쳐내며 시작한 컨프롱의 쫀쫀하고 팽팽한 긴장감은 도무지 묘사할 길이 없다. 대본 속 지문처럼 꼿꼿이 서서 오른손을 뻗으며 지킬을 연기하고 몸을 확 숙여 왼팔을 웅크리며 하이드를 연기한다, 이런 차원의 연기가 아니다. 선과 악의 분리라는 이상을 좇으며 신의 권능에 도전했던 지킬과 그런 그의 내면에서 분리된 절대악의 하이드가 별개의 자아로써 극명하게 대립하는 이 입체적인 장면은 시청각으로 오롯이 박제되어야 옳다.
"인간이에요, 존. 사.람." 이라 강조하는 첫 대사부터 레전을 직감했다. 아닛투. 꾹꾹 눌러 담는 음색이 황홀하게 아름답다. 1105 공연에선 "그들의 손 잡아줄 수 있다면" 하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내 눈 밝혀주소서" 하며 오른손으로 눈가를 가렸다가 펼쳐내는 손동작 디테일을 사랑한다. "오직 나만이 가야 할 험난한 길"을 손으로 가리키며 곧게 나아가는 걸음이 반듯하지만 외롭다. 파사드. 한 걸음 떨어진 채 모두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류지킬의 얼굴 위로 여러 가지 색의 조명이 스치듯 바뀌는데, 마치 삽시간에 바꿔내는 여러 개의 가면처럼 보였다. "사실 인간들은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이라는 어터슨 파트에서 고개를 살짝 내젓는다. 가면을 쓴 이 세상의 모든 위선자를 날카롭게 응시하는 마무리.
이사회. 말을 시작하기에 앞서 입가에 의례적인 미소를 옅게 걸어낸다. 1105는 아예 거들떠도 안 봤는데, 이날은 호명 후 스트라이더를 똑바로 쳐다보며 비꼰 뒤 바로 고개를 서류철로 내려버렸다. "어두운 면" 하며 왼손을 높이 "밝은 면" 하며 오른손을 낮게 들고, 이어 "선" 하며 오른손을 "악" 하며 왼손을 대칭적으로 들어 올린다. 이 당연한 왼오 구분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와서 좋았다. 날 선 배척에 평소보다 조금 더 절박하게 마음을 돌려보려 안간힘을 쓴다. 그들의 손에 제 운명이 걸려있음에도, "허나!" 라고 강조하며 물러설 수 없음을 고집스레 강조한다. 이사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견을 굽히지 않고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다급함을 한층 부각한다.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제 간청을" 하며 기도하듯 양손을 꼭 모아 쥔다. 지난주까지는 결정을 기다리며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코트 단추를 잠갔는데, 어제오늘은 안 했다. 이사회가 전부 퇴장하자 비틀대며 단상 끝을 살짝 잡는 아득한 얼굴의 류지킬.
"누가 뭐라 한대도 그 어떤 고난이 와도"
한 단 위의 무대 오른편에 비스듬히 서서 의지를 되짚는 이 자세가, 약혼식과 2막 웨이백에서 비슷하게 반복된다. 또한 웨이백 도입에서 거칠게 소매를 걷는 건 사골 직후 처음 약물을 주사하던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동일한 행위이나 전혀 다른 결과를 갈망하는 지킬의 비극적인 운명을 절감케 한다. 리프라이즈로 반복되는 멜로디처럼, 장면을 뛰어넘는 유사한 동선과 동작 또한 극을 관통하는 개연성을 끌어낸다. 1막의 희망에 부풀었던 이미지가 2막에서 처절한 결단을 내리는 순간에 반복됨으로써 극적인 대비가 강조되고 비극미가 극대화된다.
장래 사위가 약혼식에 늦었음에도 성 주드 병원 회의보단 덜 긴장했다는 댄버스의 뼈 있는 말에도, 기회만 있다면 다시 한번 설득을 해보고 싶다고 달려드는 류지킬. 끊임없이 제가 선택한 길은 평범하지 않노라 엠마를 일깨워주다가, 벽에 막혀버린 험난한 길을 의심하고 괴로워하기에 이른다. 불완전함을 믿음으로 감싸안는 이 장면이 지킬의 유약한 면모와 그를 지탱하는 엠마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엠마 곁에서만 진심으로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류지킬.
애기루시는 회색빛 밀랍인형 같다.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전에 지옥에 내던져진, 그래서 제가 누군지 가늠조차 못하고 텅 비어있는 위태로운 인형. 노원 후반부에서 과자루시나 공주루시는 거침없이 옷을 벗어 내팽개치는데, 애기루시는 벗은 겉치마를 그대로 들어 가린 채 맨다리를 먼저 내려다본 다음 마지못해 힘겹게 옷을 툭 떨어뜨린다. 브링온을 시작하며 오른편으로 걸음을 옮기는 순간 비로소 공허함 뿐이던 얼굴에 도도하고 화려한 무희의 가면이 덧입힌다. 제 몸을 더듬는 여앙의 손길을 질색하며 밀어내던 류지킬은 의외의 장소에서 철학적인 화두를 던지는 루시에게 시선을 뺏긴다. 모아쥔 두 손을 허벅지 위에 둔 채 루시를 따라 고개를 빼다가 노래가 끝나자 가장 먼저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친다. 루시의 손이 닿았던 왼쪽 손등을 몰래 만지작대는 류지킬과, 자신을 인격체로써 대우해준 지킬의 명함을 만지작대는 애기루시.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결심을 마친 입매, 반짝이는 두 눈, 일렁이는 표정. 말로는 뭐라 할 수 없는 바로 이 순간. 다섯 번의 관극 중 가장 완벽했던 사골. 막혀있던 길이 뚫리고 비로소 빛을 발견하여 희망을 마주하는 벅찬 전율이 넘실댄다. 기억하고 싶었던 디테일이 있었는데 넘버 자체가 너무 좋아서 도무지 떠오르질 않는다. 사골 끝나고 항상 물을 마셨는데 이날은 물을 마시지 않고 바로 회중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물도 마시고 않고 어떻게 그런 트랜스포메이션을! 그런 어마어마한 얼라이브를! 부르실 수 있는 거지! 시험관 두 개의 투명한 액체를 섞어 만든 붉은 시약을 보던 류지킬이 "내 심장처럼" 하며 왼쪽 손을 가슴에 얹는 건 이날 처음 봤는데, 이후 썸원에서도 루시와 키스한 입술을 만지작대곤 그 왼손을 심장께에 올렸다.
"마약?!" 하고 깔깔대며 두어 번 박수를 치는 지킬의 모습은, 2막에서 어터슨을 비웃으며 박수를 치고 조롱하는 하이드의 행동과 일치한다. 일지 위에 철푸덕 엎어진 채 뚜렷한 행동변화는 없노라 기록하는 류지킬. 얼랍. 목소리가 점차 하이드로 물들어가는 청각적 자극이 어마어마하다. 자정을 알리는 소리에 흠칫한 류하이드는 왼쪽 어깨를 들어 근육을 맞추고 이내 오른쪽 어깨도 비틀어 육체를 본인에게 맞춘다. 꼿꼿하던 지킬과는 전혀 다른 실루엣으로 왼편 거울 앞까지 걸어가 스스로를 응시하다가 왼손을 들어 손가락을 꿈지락거리고 이내 오른손까지 들어 손가락을 움직여본 뒤, 묵직한 저음의 웃음을 껄껄대며 뱉어낸다. 스읍, 숨을 내뱉으며 실험대 쪽으로 간 류하이드가 왼편 철제 선반 기둥을 잡았는데, 2막에서 괴로워하던 류지킬 역시 똑같은 부분을 붙잡는 디테일을 보고 내적 환호를 질렀다.
이 장면에서 휘파람을 불지 않는 게 내심 아쉬웠는데, 이날의 하이드는 휘파람을 불면 안 되는 노선이었다. 첫공주의 여유로움이 탑재된 하이드가 아니라, 아직 신체에 적응하지 못해 기괴하게 걸음을 옮기는 하이드였기 때문이다. 느릿하지만 위협적인 걸음으로 일지 앞에 선 류하이드는, 펜을 향하는 오른손을 관객이 채 인지하기도 전에 왼손으로 거칠게 쳐낸다. 주먹으로 꽉 움켜쥔 깃털 펜에 대충 잉크를 묻히고는 글자를 휘갈긴다. 얼랍. 소품 하나 없이 무대를 휘어잡으며 공간을 압도하는 류하이드의 얼랍. 단순히 넘버를 '부른다'는 개념이 아니라, 생동하는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내뿜으며 제 탄생을 선포하고 존재를 각인시키는 행위 예술이다. 긁어내는 목소리로 "에드!워드! 하이드!" 라고 자칭하며 깊은 저음에서 날카로운 고음까지 끌어올리는 짜릿한 마무리.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어터슨의 말에 당황과 경악이 뒤섞인 얼굴로 도망치듯 뒷걸음질 치는 류지킬. 루시의 입에서 하이드의 이름이 나오자 멈칫하며 경계 어린 눈으로 고개를 든다. 대수롭지 않게 보이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걸며 왜 하필 자신을 찾아왔느냐 묻자, 천진하게 당신이 명함을 줬기 때문이라 답하는 루시. 잔인하게 상처를 남긴 그 손으로 치료를 하고 있는 스스로의 위선에 절망하는 기색이 강해서, 루시와의 키스도 욕망에 이끌렸다기보단 죄책감에 휩쓸린 듯했다. 하지만 수직적인 위치에서 시작한 입맞춤이 몸을 낮춘 지킬의 자세로 인해 수평적으로 바뀌면서 삽시간에 달콤한 쾌락의 맛을 비친다. 입술을 매만진 왼손으로 심장 부근을 만진 건, 유혹에 사로잡힌 본능적인 감정을 인지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입술을 매만진 뒤, 1105 공연에서는 손을 내려다봤지만 이날은 고개를 살짝 젓고 바로 퇴장했다.
"난 평온해 좋아 아주 좋다구"
아무리 생각해도 얼랍2는 너무 짧다. 주교만 정성껏 죽이는 건 아쉬우니, 다른 이사회 위선자들의 죽음에도 넘버 하나씩 붙여줬으면 좋겠다. 비열한 세상에 복수심을 가지고 태어나 세상을 유린하는 악인의 악행을 보며 짜릿해하는 나 자신의 위선 정도는 감내할 수 있으니 말이다. 휘몰아치는 넘버의 가사를 귀에 쏙쏙 박아 넣는 류하이드의 딕션에 그저 찬탄만이 터져 나온다. 머더머더. 비셋 약방에서 머리끈을 풀러 하이드가 되는 건 고정인데, 그 상태에서 비셋을 향해 지팡이를 들어 올려 위협하는 디테일은 이번주에 새로 생겼다! 비콘스필드 부인을 죽인 뒤 "또 한 명이 가는 군, 테~디~" 하면서 테디 이름에 멜로디 붙이는 것도 어제오늘 새로 했다. 테디 죽일 때 부는 휘파람 소리는 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원써폰에서 류지킬이 엠마를 향해서 뻗던 손을 거두는 이유가 이전에는 엠마를 이 길로 끌어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날은 그 손이 '왼손'이라는 점에 놀라 황급히 손을 치우는 것처럼 보였다. 하이드의 왼손이 어터슨을 위협하자 기겁하며 오른손으로 끌어내린 류지킬이, 그를 등진 채 허벅지 위에 둔 왼손의 손등 위로 오른쪽 손바닥을 포개며 깍지 끼는 디테일도 이날 처음 봤다. 절박함이 뒤섞인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비트는 류지킬의 초조함을 한층 부각하는 손동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에드워드 하이드가 누구냐는 어터슨의 질문에 동공이 커지며 얼어붙는 표정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시선을 피한 뒤 어색하게 미소를 걸어내며 동료라는 변명으로 어터슨뿐만 아니라 스스로까지 납득시키려 드는 류지킬의 가면.
완벽한 은신처를 찾았죠, 바로 나. 오른편 거울 앞에서 제 얼굴을 바라보며 독백하다 양손바닥을 거울에 올리는 류지킬. "강물처럼 흐르고" 하며 왼손을 부드럽게 뻗어내고 "파도처럼 할퀴어" 하며 오른손을 강하게 젓는다. "독사처럼 꼬시고" 하며 양손을 아래로 모아 고통스럽게 바라보고 "끝내 날" 하며 그대로 손을 위로 들어 올린 다음 "태워" 하며 양팔을 크게 벌린다. 괴로워하며 가운 앞섬을 꼭 부여잡은 채 뒷걸음질 치며 퇴장하는 류지킬. 그의 눈에서 각기 다른 것을 보고 있는 엠마와 루시. 엠마는 함께 그려나갈 미래를, 루시는 건네받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응시한다. 더없이 생동감 넘치던 루시의 얼굴은 하이드를 마주하자마자 다시 회색빛으로 침잠한다. 댄져. 넘버 중간중간 섞어내는 웃음소리, "너를 막지못해에에에" 하고 외치는 변주, "나-조차" 하는 고음 부분에서 긁어내는 목소리.
코트를 뒤집어쓴 채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류하이드. 1105 1106 공연 모두, 지킬은 어디 있냐고 묻는 어터슨과 실험대를 사이에 두고 대치할 때 그를 위협하듯 놀래키는 대신 얼굴 가득 조롱을 담아 비웃었다. 처절하고 절박하지만 그렇기에 숭고한 류지킬의 웨이백. 한 소절 한 소절에 풍성한 결의를 담아 꾹꾹 눌러내다가도 날카롭게 절규하듯 섞어내는 고음이 다채로운 감정의 진폭을 선사한다. 변주를 일일이 적어내는 건 의미 없는, 류지킬의 갈망 그 자체인 넘버다.
"넌 아무 데도 못 가"
뉴랖 그리고 루시데스. 이날 류하이드는 왼손을 들어 올려 지킬의 편지를 구기는 과정을 전부 객석에 보여줬는데, 침대에 올라가기 전 구긴 종이를 베개 아래에 슬쩍 집어넣더라. 넌 아무 데도 갈 수 없노라 이를 악문 듯 으르렁대는 음성이 마치 짐승의 하울링 같았다. 1105 공연에서는 침대에서 떨어진 뒤 손에 쥔 칼을 바라보다 서서히 지킬로 돌아와 퍼뜩 놀라며 칼을 침대 위로 내던졌는데, 이날은 루시의 목을 긋고 양팔을 벌린 채 희열을 만끽하며 오른손에 쥔 칼을 쳐다보다가 툭 떨군 뒤 지킬로 돌아왔다. 제 왼쪽 팔 윗부분과 왼쪽 옆구리의 상처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문득 실험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나뒹굴듯 아래로 떨어진다. 오 세상에, 하며 루시의 죽음을 마주하고 울먹이며 뛰쳐나가는 류지킬.
컨프롱. 하, 컨프롱. 오른손을 강하게 내치며 등장한 하이드와 그런 그에게 맞서는 지킬. 변화하는 순간 그르렁대며 일그러지는 표정은 정말이지 언어로 형용할 수가 없다. "이건 꿈이 아니야!" 하며 왼손뿐만이 아니라 오른손의 통제권까지도 가져가기 시작하는 하이드. "그 어떤 이유라도 공존은 불가능해" 하고 비명처럼 음을 쏟아내며 양손을 얼굴 앞에 올린다. 가쁘게 내뱉는 날숨 끝, 떠나자는 지킬의 선언. 마지막 절규. 정말이지 이 넘버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객석에서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온 몸으로 느껴봐야만 한다. 글이나 그림이나 음원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현장감이 어마어마하게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어터슨의 칼에 스스로를 내던진 류지킬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걸며 왼손으로 그의 뺨을 만진다. 그리고 휘청대며 무대 오른편으로 올 때 분명하게 "아버지, 아버지" 하고 탄식한다. 하이드로 변한 자신에게 위협을 당했으면서도 온전히 이해하고 포용해주는 엠마의 품에 안긴 류지킬은, 덜덜 떨리는 입술 끝에 미소를 걸어보려 노력한다. 가쁜 숨을 쉬는 그를 애틋하게 끌어안으며 이젠 편히 쉬라고 말해주는 엠마. 그 말에 비로소 떨림이 잦아들고 얼굴에 미소가 잔잔히 번진다. 힘겹게 들어 올리는 지킬의 왼손을 붙잡고 제 뺨으로 가져간 경아엠마가 그 손바닥에 깊이 키스한다. 마치 약혼식에서 그가 제 손등에 깊이 키스해줬던 것처럼.
벅차오르는 마음에 밤을 새우며 후기를 쓰는 것이 대체 얼마만인가. 레전공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글이지만, 언젠간 이 문장들을 통해 지금을 추억하며 웃고 울게 되겠지. 지금 이 순간, 이 놀라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음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하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이토록 짜릿한 경험을 거듭해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행복을 더 양껏 누릴 수 있게 만든다.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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