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헤드윅

in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2021.09.07 7시

 

 

 

 

조승우 헤드윅, 유리아 이츠학. 조드윅 199번째 공연. 조언니 자첫이자 이번 시즌 자첫. 헤드윅 자21.

 

 

티켓팅에 하도 실패를 해서 마음을 비우고 도전한 날이었는데, 내 손으로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상상치도 못한 자리를 잡아버렸다. 조언니 1열이라니! 심지어 1열 사블통이라니! 이 시국만 아니었더라면 언니와 하이파이브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었을 이 꿀자리를 내 손으로 잡았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서 매일같이 내역서에 문안인사를 드렸다. 헤드헤즈로써 조드윅을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의무감에서 비롯된 관극이었는데, 이 능숙하다 못해 새로운 언니에게 깊숙이 공감하고 온전히 반해버렸다. 한 인물을 이토록 오랫동안 연기하면 이토록 자연스럽게 변주하고 온전하게 동기화될 수 있구나, 라는 찬탄이 끊임없이 거듭해서 터져나왔다.

 

 

조드윅은 덜 신경적이고 더 진중하고 몹시 다정하며 자신의 매력을 확실히 알고 이용할 줄 아는 언니다. 150분 내내 거의 쉼 없이 말을 하는데, 그 모든 단어와 문장이 너무나도 헤드윅 그 자체다. 텍스트를 온전히 내면화했기에 가능한 모든 디테일과 애드립이 단순한 경탄을 넘어 그냥 무대 위 조드윅이 헤드윅 본인이라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찰떡같이 편곡한 넘버가 입에 착착 들어맞고, 온갖 대사와 가사를 마음껏 가지고 논다. 극 중 무대가 "콘서트"임을 놓치지 않아서, 넘버를 시작하기 직전 매번 "다음 곡 들려드릴게요" 라고 소개하고 넘버를 끝낸 다음에는 넘버 제목을 일러주는 게 특히 인상적이었다. 2n번째 만나는 이 극이 이토록 다르게 완벽할 수 있음에 충격과 감동을 받아서, 밤새 여운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

 

 

공연 시작 직전 앵그리인치와 이츠학이 미리 나와서 준비하던 홍아센과 다르게, 충무에서는 다들 안내가 끝난 뒤에 등장한다. 주의 문구가 달린 테이핑도 이번에 처음 봤다. 지난 시즌에서는 이츠학이 바로 헤드윅을 소개했지만, 이번에는 오프닝 넘버가 있다. 마치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크로아티아에서의 그때처럼, 이츠학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The Way We Were 노래로 오프닝을 연다. 노래 중반부 이츠학의 소개와 함께, 헤드윅은 노란 가발에 붉은 반짝이 입술이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오통으로 등장한다.

 

 

헤드윅과 이츠학이 함께 오프닝 무대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Tear Me Down. "내 살이 잘린 악몽의 수술" 부분을 대사처럼 낮은 톤으로 노래하는 헤드윅은 처음 봤다. 이츠학 뒤에 등지고 서있던 언니가 슬쩍 오블 쪽에 시선을 주더니 가볍게 윙크해줘서 심장이 떨렸다. 마지막 이츠학 부분을 끊지 않고 도리어 응원해주는 언니도 처음이었다. 화려하게 넘버를 끝낸 조드윅이 객석을 보며 많이도 왔다며 난 좀 짓궂은데, 하고 웃었다. 왜 늦냐고 엠디 사느라 늦었냐고 그럼 괜찮다고 관객에게 고나리를 하는 도중에 또 다른 남성 지연 관객이 입장했다. 다시 해야 되잖아, 하며 테얼미 마지막 소절을 불렀는데 끝부분에 드럼이랑 타이밍 안 맞아서 잠시 노려보다가 한 번 더 끝음을 뽑아내며 멋지게 마무리했다. "큰일났네 오늘 공연 길어지겠네 씨바" 하고선, 뉴욕 원나잇 온니 스페셜 한정판 공연을 여러분이 보고 있는 거라며 이어나갔다. 툭 던져줄 테니 잘 듣고 가라며 커버곡 시작. 프랭크 시나트라의 New York, New York 을 번역 버전으로 멋들어지게 부르고서는, "누가 올드하대!!" 하고 발끈하며 Jay-Z의 Empire State of Mind 노래를 부르는데 원어로 부르는 이츠학 멜로디 너머로 한국어 랩을 쏟아냈다. 캡슐커피를 운운하며 열정적으로 랩을 하는 이 힙한 언니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무대 왼편 앞쪽에 비스듬히 "인어공주처럼" 드러누워서 신문 기사 설명으로 넘어갔다. 토미의 공연이 길 건너 타임스퀘어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맵을 띄워서 친절히 설명한 뒤 속죄의 투어를 언급하며 들어보자고 하는데, 공연장의 최대 단점인 외부 소음 운운하며 끊임없이 얘기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토미의 말에 "나예요" "나" 하고 대꾸하다가 마지막엔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나!" 라고 외치는데, 이 디테일을 다음 토미 장면에서도 똑같이 하더라. 조토미 진짜 둔하고 망충한 느낌 낭낭한데, 테얼미 넘버 소개하며 지구를 구하자? 북극곰? 뭐 이런 류의 헛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락이 아니라 힙합 랩을 시전해서 완전 빵터졌다ㅋㅋㅋ 대신 창피해하던 조언니가 이거 받고 싶었냐며 아까 객석에 보여줬던 헤드윅 가발 달린 골든체인 들어 올리더니 너 합격이다 이러면서 던져줌ㅋㅋㅋ 객석을 향해 아시아에서 단체로 투어 온 스페셜한 관객이라며, 자가격리까지 하고 아주 죽으려고! 하고 풋 웃으며 고나리 했다. 토미를 다시 만난 날을 입에 올리며, 몸으로 "창조적인 행위"를 하고 있었노라 표현하는 어휘가 참으로 언니다웠다.

 

 

 

 

이 언니는 여전히 토미를 사랑하고 있다. 저 어린 나이에 저렇게 유명해진 삶이 쉽지 않았을 거라며 그를 두둔하고, 패망한 2집에 대해 징징대는 토미를 꽉 끌어안아준다. 교통사고의 이유가 재회의 기쁨에 핸드잡 블로우잡 해주느라 정신이 팔려서였던 다른 언니들과 다르게, 조언니는 그가 반쪽이라 확신했던 그 순간처럼 그를 으스러질 듯 끌어안아주는데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옛날처럼 서로를 끌어안고 있던 언니가 원한 건 토미의 한 마디뿐이었는데. 빨리 얘기해줘, 라던 푹 잠긴 목소리가 여즉 귓가에 아른거린다. 무대 오른쪽으로 걸어온 언니가 경찰서에서도 그를 안고 있었다고 설명하다가 갑자기 내 오른편 관객분을 빤히 보더니 "내가 앞에 있으니까 좋지?" 라고 묻고선 장난스럽게 "그럼 저쪽으로 가야지~" 하며 아까 그 왼블 앞쪽으로 가버렸다ㅋㅋ 그렇게 몇 문장 이어가다가 풋 웃으며 "미안해~" 라고 이쪽에 사과해줬다. 토미네 매니저 협박하는 솜씨도 아주 멋진데, 온갖 욕을 퍼붓다가 이빨 위아래를 바꿔버린다는 말로 정점을 찍는다. 자신이 론칭한 향수가 Obsession No.6 라고 강조하면서, 밤꽃 향기라고 설명했다ㅋㅋ 무슨 말인지 아냐고 물어본 관객이 안다고 답했는지 "저질" 이라고 귀엽게 타박했다.

 

 

갑자기 무대 중앙에 철푸덕 넘어진 언니가 "왜 넘어졌게?" 하고 묻고선 "시 읊어주려고" 하고 씩 웃는다. 길바닥은 나의 집~ 하고 시를 읊고서는 다들 내가 누구인지 묻는다며 난 그냥 사람이라고 말하던 언니는 "속상해. 날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나한테도 알려줘" 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림일기를 펼쳐보며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조언니의 엄마 또한 사뭇 달랐다. 처음에 그의 엄마는 "너를 위해 아빠를 쫓아냈다"고 말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너 때문에 너 이 새끼 너 때문에 아빠가 나가버려서 내가 외롭잖아 개새끼야" 하고 폭언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친 엄마는 처음이어서 몹시 새로웠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얘기하면서 Heaven on Their Minds 넘버를 영어로 꽤 길게 불러줬다! 허스키하고 섹시한 조유다 목소리에 살짝 치일 뻔. "If you strip away" 까지 부르고 가사를 여기까지 밖에 모른다고 끊었다. 그리고선 예수님 모르냐며 전용 옷? 원피스? 잠옷? 입고 산 올라가서 부르는 노래 모르냐며, 쓰레빠를 뭐라고 하지? 아 Jerusalem sandal~ 하고 겟세마네를 설명했다. 이어 무반주로 "why~ should I die why should I die" 라고 Gethsemane 넘버 한 소절도 불러줌! 예수님이 딱 저렇게 생겼다며 드러머 전일준 슐라트코 가리키더니 "예수님 복 주세요" 하고 두손 모아 기도하는 거 너어무 귀여웠다. 오늘 백신 맞았다는 언니의 TMI에 슐라트코가 소매 걷어서 보여주셔서 박수 받음ㅋㅋ 조언니의 엄마는 "예수님이 멋있다" 는 한셀의 말에 그를 때렸고, 절대 권력은 절대로 망한다며 공산주의를 신봉한다.

 

 

우연히 머리가 오븐 안에 들어가게 된 한셀에게 엄마는 이제 그게 네 방이라고 말한다. 한셀의 방을 소개하겠다는 조언니의 말과 동시에 러브하우스 bgm이 깔렸다. 구세대적인 거 아는데 그래도 이만한 게 없다며 갑자기 MC톤으로 "한셀의 방을 60초 후에 공개합니다!!" 라고 해서 빵터짐ㅋㅋㅋ 오븐 안에 머리 들이밀고 2층 3층한테 잘 보이지? 하고 생색냈다. 여기였나? 언니가 말할 때마다 박수가 잘 나왔는데, 오늘 말 잘 듣는다고 "옳지, 옳지" 하고 칭찬 받음ㅋㅋ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며 이츠학이 루리드의 Walk On The Wild Side 를 부르기 시작한다. 마이크에 대고 부는 휘파람 소리 좋더라. 멜로디는 절대 따라 부르지 않았다면서도 뚜루뚜루만 반복하니 "시발 지겨워" 라던 조언니는, 엄마가 던지는 토마토를 정말 싫어한다고 언급한다. 생긴 것도 싫고 색깔도 맛도 냄새도 싫다고 말이다. 세상에. 그러다 문득,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엄마가 덜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른다. 데비 분의 You Light Up My Life. 달콤한 율츠학과 조드윅의 듀엣이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을 정성껏 담아낸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두 사람. 엄마가 좋아하는 이 노래를 커튼콜 마무리로 부르다니, 반칙 아니냐구요.

 

 

엄마가 유독 슬프게 울던 그날 밤. "외로워서 그랬겠죠?" 하고 엄마를 이해해주는, 지독히도 다정한 언니. "다 외롭잖아요, 그죠?" 라고 묻는 목소리가 너무 따뜻해서 울컥했다. "그러니 좀 티를 내고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이 어찌나 큰 위로가 되던지. 외로운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그저 존재감 없이 있어줄 수밖에 없어서 속이 상했다는 이 너무나 빨리 철이 들어버린 소년이 몹시도 애틋했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자신을 만져주는 그 손길에, 마주쳐주는 그 눈길에 벅차오른 소년은 속으로 외쳤다. "반가워, 엄마. 고마워. 보고싶었어" 라고. 그 날 엄마가 들려준 신들에 관한, 사랑에 관한, 그 이야기로 만든 노래, The Origin of Love. 엄마가 나중에는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는 다른 언니들과는 다르게, 조언니는 엄마가 "기억 못 하는 척" 했다고 한다. 넘버를 끝내고 이건 자신에게 "종교 그 이상" 이라고, "성경과도 같은 것" 이라고 말하는 조언니의 말에 눈물이 주륵주륵 쏟아졌다. 평생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맨 헤드윅의 정체성을 정확히 관통하는 설명이라니. 멋있지 않냐며, "아직까지도 난 반쪽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거야" 라고 말하는 언니라니. 객석을 가리키면서 혼자 온 사람들 모두 그런 거라고 말해주는 헤드윅이라니. 

 

 

토미 목소리 짜증난다고 또라이 같다고 화낸 조드윅은 돌출무대 쪽으로 와서 텀블러의 물을 마셨다. 내가 핑크를 쓰니까 분홍색만 품절이라고 해서 새로 샀다며 실버와 블루 텀블러를 들어 올려 버젓이 보여주는 애드립 귀여웠다. 대학 얘기로 넘어가서, "Kant인가 Can't인가 Cunt인가" 라고 섹드립 언어유희 하는 언니가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헨젤과 그레텔의 헨젤과 한셀 스펠링 같다고도 언급했다. 나도 친구 있었다고, 음악이라는 친구가 있었다며 "블루스" 라는 친구가 왔다고 소개했는데, 악기 소리를 마치 "블루스"의 대답처럼 목소리 바꿔내는 디테일 귀여웠다. 맥도날드가 동독에 생겼다면 광고송도 만들어 줄 수 있었을 거라며, 멋들어진 블루스 멜로디에 "패티 한 장도 아니고 두 장" 어쩌고 하며 노래하다가 마지막에 "함께 즐겨요 피자헛" 으로 끝나서 깔깔 대며 웃었다. "피자헛이었구나 시발 어쩐지 잘 지어지더라" 라고 투덜댔다.

 

 

선탠을 무대 우측 자동차 본넷 위가 아니라 무대 중앙에서 하던 조한셀이 루터 목소리에 뒤로 돌아서는데, 평소엔 잘 일어나지도 않았던 거기가 반가워서 벌떡 일어났다면서 계속 마이크를 세웠다 반대쪽 손으로 내렸다 다시 벌떡 세웠다를 반복했다ㅋㅋㅋ 젤리 건네는데 계속 발딱 일어났다 눌렀다 하는 그 마이크에 손 닿으니까 율루터가 제 옷에 손을 스윽 닦기까지 했다ㅋㅋ 온몸의 구멍을 다 연 소리라고 목소리를 묘사한 조언니는 율루터에게 턴도 시키고 다리도 찢게 만들고 콧구멍에 손가락도 집어넣게 만들었다. 구미베어 봉지를 위로 던졌다고 하는 조드윅의 톤이 갑자기 구수해지더니 "곰 나려온다~~" 하면서 범 내려온다 노래 나와서 뒤집어짐ㅋㅋㅋㅋ 아니 저기요 실화냐고요ㅋㅋㅋㅋ 편곡도, 개사도, 판소리 같은 창도, 팔을 번갈아 들어 올리는 조언니의 셔플 안무도 다 돌아버리게 힙했다ㅋㅋㅋㅋㅋㅋㅋ

 

 

카워시 없는 Sugar Daddy 라니! "여왕벌을 위한 열정적 몸부림" 소절 직후에 카워시 대신 무대 위에서 위윌락유 박수 두 번 반복했다. "검게 우뚝 솟은" 부분이었나, 스탠딩 마이크 거치대 들고 쭌감 다리 사이에 집어넣음ㅋㅋㅋㅋㅋ "여자 옷이라고는 엄마 속옷 말고는 입어본 적이 없어요" 부분을 조드윅은 "엄마 양말"이라고 하더라. "없어요" 고음 안 나와서 목소리 가다듬고 율츠학이 뒤에서 꼬집어주며 무사히 불렀다ㅋㅋ 넘버 끝나고 "루터랑 나는~" 하고 똑같이 반복하면서 빨대로 쪽쪽 물을 마시던 조언니가 "죽을 것 같아서 그래" 하고 말하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루터랑 평범하게 연애했다는 얘기는 이날 처음 들었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앞으로도 하고 뒤로도 하고 옆으로도 하고 거꾸로도 했다고 가볍게 말했다. 노래로 프로포즈 한 루터도 처음 봤다. "You are so beautiful~" 하며 감미롭게 노래하는 율루터를 보던 조드윅도 노래로 답하겠다며 부드럽게 부르다가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라고 갑분 휘성 노래를 굵은 목소리로 부름ㅋㅋㅋ 다 불러놓고 쪽팔린다고 못하겠다고 찡얼대는 것도 귀여웠다.

 

 

쭌감에게 쪼르르 가서 엄마!를 불러대는 조드윅. 자유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라면서 다른 언니들은 한 부분을 "남기고" 가라고 했다고 말하는데, 조언니는 "엄마에게 주고" 가라고 하더라. 떠나라고, 가서 행복하라고 말해주는 것도 처음 봤다. "No~~" 라는 절규로 시작되는 Angry Inch. 날카롭고 날 것의 느낌보다는, 정돈된 멸균실의 묵직한 절망. 성전환 수술을 설명하는 중간 서술 부분에서, 돌출 무대에 엎드려서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고 번뜩거리며 노래한다. 이제 인생의 2막이라며 이츠학에게 무대를 넘기는 헤드윅. 그의 커버곡은 Adele의 When We Were Young.

 

 

 

 

단발 가발에 선글라스를 끼고 다시 등장한 조언니는 트레일러에 기대서서 이츠학의 무대를 가만히 지켜본다. 선글라스라니. 아프고 외로운 헤드윅의 감정을 숨기는 화려한 눈화장마저 부족하다는 듯, 새카만 선글라스로 눈을 가려버린 헤드윅이라니. 루터에게 고마웠다고, 반가웠다고, 잘가라고 인사하는 헤드윅이라니. 따뜻한 유고슬라비아로 간 엄마에게서 엽서를 받지 못한 이 헤드윅은, 그 좁은 침대에 홀로 누워있을지 모르는 엄마를 걱정한다. 가장 무서운 순간 TV를 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겠다면서 TV를 켠다.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더 무서운 장면.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 가발을 향해 "너희들은, 아니 너희들만큼은" 내 옆에 있어달라고 독백한다. Wig In A Box. 머리 위에 얹히는 가발이 하나뿐이었는데, 동그란 똥머리를 얹고 목소리에 힘을 주며 "민델의 여왕님"이라 노래하는 조드윅. 망할 시국 때문에 싱얼롱 대신 건강박수. 앵인 끝내고 들어가기 전에 데오드란트 뿌리고 오겠다던 언니는 트레일러 들어가서 더 예뻐질 준비를 하면서도 관객에게 겨드랑이 주의를 주는 걸 잊지 않았다. 트레일러 열릴 때 가리지 않냐고 오극싸에 눈짓하는 율츠학이 따뜻했다. 그 짧은 옷으로 멋지게 윈드밀을 선보이는 조드윅의 열정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넘버 다 끝나고 옷과 가발을 정리해주는 율츠학에게 "왜?" 하면서 어리광 부리는 조드윅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맥주 뭐 먹을까~ 하고 멜로디 붙이던 조드윅이 코로나 맥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가 무섭다면서 구석에서 양봉 모자 주워왔다ㅋㅋㅋ 와중에 bgm 전원일기ㅋㅋㅋ 꿍시렁대면서 조심스럽게 병을 집어 든 할매 조드윅에게, 역시 허리를 90도로 구부린 채 다가온 할배 율츠학이 "내가 먹고 뒤지게" 하고 꿍얼대서 빵 터졌다ㅋㅋㅋㅋ 쭌감에게 가서 코로나 걸리면 안된다고 양봉 모자 씌워줄 때까지 가성 내던 조드윅이 돌변하며 "목소리 왜 이래 씨발" 해서 또 키득거렸다. 국내산 맥주 맛없다며 이츠학에게 가서 수입 맥주 사오라고 카스!!를 부르짖는데, "시원한 보리의 맛"이었나 암튼 무슨 광고 카피처럼 외친 것도 웃겼다ㅋㅋㅋ 사블 관객한테 목 안 아프냐며 집에 갈 때 목 돌아가 있다고, 오블이랑 왼블이랑 서로 목 돌아간 채로 인사한다고, 2층은 목 푹 꺾은 자세 된다고 온몸으로 설명하는 게 얼마나 재밌던지ㅋㅋㅋ 스트레칭 하자면서 갑자기 국민체조 노래 나오고 조교 말투로 하나 둘 셋 구령 붙이는 조드윅ㅋㅋㅋㅋㅋㅋㅋ 벨칸토 발성이라고 파바로티?가 찾아왔었다고ㅋㅋㅋㅋ 

 

 

카스 사오라고 할 때 이츠학이 자판기 문으로 잠깐 퇴장했는데, 비어있는 이츠학 자리에 앉은 조드윅이 나이 드니까 근육만 많아진다고 투덜댔다. 그대로 이츠학과의 첫 만남 이야기를 풀어낸다. 다른 헤드윅들은 이츠학이 가발 쓰는 걸 발견하고 버럭 화내다가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그와 앵인의 여권을 가지고 협박하는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조드윅 공연에서는 이 부분이 아예 없다. 조드윅이 이츠학에게 가발, 화장, 성 정체성까지 다 포기하게 한 건, 자유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그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네가 힘들면 얼마나 힘들다고, 라는 자학에 가깝다. 비록 반쪽은 아닐지라도 부부니까 함께 해야 한다는, 빌어먹게 잔인한 다정함 때문이다. 그 말을 뒤에서 듣고 있는 이츠학 너머로 토미의 오만한 거짓말이 쏟아진다. 노시스라는 이름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하는 토미의 말에 "버튼이 눌려버린" 조언니는, 어차피 여기 다 토미 얘기 들으러 온 거니까 다 말해주겠노라 말한다.

 

 

헤드윅의 말에 이츠학의 욕이 섞여 드는 것도 다르다. 다른 언니들 공연에서는 "저는," 이라는 헤드윅을 향해 이츠학이 욕하고, 빡친 헤드윅이 달려들려고 할 때 문을 열어 토미의 목소리를 듣게 한다. 하지만 조드윅의 경우엔 토미의 말을 먼저 듣고, 헤드윅이 "토미는.." 이라고 말할 때 토미를 향한 이츠학의 욕이 섞여 든다. "씨빡새끼" 라는 이츠학의 욕설에 그게 대체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욕이냐며 5초 간 같이 욕하자며 "씨빡새끼!!" 라고 부르짖었다.

 

 

토미와의 첫 만남을 얘기하면서, 지연한 남성 관객을 콕 집어 샤워하면서 뭐하냐고 그거 하지 않냐고 "고개 끄덕여!!!" 라고 외쳤다. 이츠학이 재등장한 후 내내 파란색 카스 캔을 손에 들고 있던 조드윅은, "곡선 알지?" 하면서 평생 모르면 안 된다고 관객에게 당부까지 해줬다. 여기서 토미랑 대화하는 헤드윅도 처음이었다! 부드럽게 하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며 온갖 방향으로 부드럽고 격렬하게 맥주캔을 흔들더니 이제 표현해보라고 캔을 따자 사방으로 분출되는 맥주, 그리고 함께 깔리는 홀리한 반주ㅋㅋㅋㅋㅋ 이게 사람 몸에서 나올 수 있는 양이냐고 함ㅋㅋㅋ 다 묻었다고 하면서 맛있게 손가락 쪽 빨고, 머리카락에 묻었다면서 또 쪽 빠는 조언니ㅋㅋㅋㅋ 이웃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외치니까 스탭 일고 여덟 명 나와서 걸레질 박박 하는데 현란한 조명에 edm 반주 깔림ㅋㅋㅋㅋㅋ 다들 퇴장하는데 언니가 스탭 한 명 붙잡고 말 시키니까, 토미처럼 "주여!!!!! 할렐루야!!!!!!!!!!" 라고 외치고 도망쳐버렸다.

 

 

닥터 에스프레소바. 암전과 간판과 미러볼과 웅성대는 사람들 소음 사운드와 매달린 조명까지 순서대로 펼쳐 보인다. 조명 예쁘다고 자랑하면서 앞에 공영주차장에서 자동차 눈알 하나씩 뽑아왔다고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매니저 잡혀갔다고ㅋㅋㅋ 한쪽 눈으로도 갈 수 있지 않냐며 차들이 윙크하고 있다고 함ㅋㅋㅋㅋㅋㅋ Boney M의 Sunny 를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이제 소화시키자며 펑키하고 발랄한 편곡으로 이어진다. 바로 퇴장 음악을 까는 키보드 미르코가 앨비스 프레슬리 팬이라며 구레나룻 바닥까지 기를 거라고 했다. 에쏘바 주인이기도 한 그가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준비했다고 나가면서 받아가라고 하는데, 아쿠아 기능 없는 데일밴드 두 개라고ㅋㅋ Wicked Little Town. 넘버 초중반에 조언니가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데, "따라와 나의 속삭임" 하며 오른손을 들어 제스처를 취해줬다. 얼굴 그려진 손수건 보여주며 나가면서 사라고, 데일밴드도 잊지 말라고 말한다.

 

 

헤드윅의 리허설부터 훔쳐봤다고 하는 토미도 처음이었다. 연주하고 노래하는 쭌감 토미ㅋㅋ 어설프고 둔탁하고 커다랗게 찬송가를 불러대는 토미를 보며 질색팔색 하던 조드윅이 결국 마이크를 꺼버렸는데, 토미가 계속 다시 켜니까 아예 마이크 선을 뽑아버렸다ㅋㅋ 너무 성스러워서 방언 터질 것 같다며 잘했다고 토닥인 조드윅은 그에게 제 삶의 아주 일부를 얘기해줬다. 레드 재플린의 재킷의 비행선이 3초 만에 터져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며 쭌감에게 표정연기를 시키는데, 맘에 안 들어서 거의 예닐곱 번을 다시 시켰다ㅋㅋㅋㅋ 재밌는 얘기 해주겠다면서 "창세기에요," 하니까 힉 소리를 내며 싫어하던 조언니는 그가 이어가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여전히 토미를 사랑스러워하는 헤드윅.

 

 

울고 있는 토미를 "뼈가 으스러질 듯" 안아준 조드윅은 펑펑 울어버리라고 다독이고선 제 기타를 건넨다. 믹 재거 얘기를 하며 키득이는데 옆 트레일러 노래가 끼어들자 빡친 조드윅이 "HEY~~ What's your name??" 하고 묻더니 "FUCK YOU TONY!!" 라고 외침ㅋㅋㅋㅋ 같이 빡친 율츠학이 what's ur name! 하니까 쭈굴거리면서 "안알랴줌" 이라고 답했는데, 율츠학이 또 그걸 받아서 "FUCK YOU 안..알랴줌!" 하고 외쳐서 빵 터졌다ㅋㅋㅋㅋㅋ 서로 욕하다가 율츠학이 고래고래 다시 노래를 부르니까 조드윅이 911 전화해서 살려달라고 함ㅋㅋㅋㅋㅋ 자꾸 개 짖는 소리 난다면서 "야 이 개새끼야 개 짖는 소리 좀 안나게 하라!!!" 라고 외치니까 율츠학이 왈왈거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율츠학 앞에 가서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빈 조언니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 멀쩡한 얼굴로 다시 무대 중앙에 오더니 객석을 향해 쟤가 무릎 꿇었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헤드윅이 그려준 이마의 실버크로스를 보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며 기뻐하던 토미가 노래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조드윅은 "나를 믿고, 네 이마의 그리스도를 믿고, B플랫을 잡아봐" 라고 말한다. 이때 허공 기타를 든 조토미의 왼손이 플랫을 잡듯 약간 내려가는 걸 보고 그 섬세한 디테일에 또다시 감탄했다. "대단한 너~ 날 만든 너~" 하며 헤드윅을 끌어안고 부르는 토미의 노래도 처음 들었다. 제 반쪽을 드디어 만났노라 확신하며 조드윅이 인사한다. "반가워, 토미" 라고. 한때 반쪽이라 생각했던 엄마에게 그랬듯, 루터에게 그랬듯. 조드윅은 강렬한 희열에 사로잡힌 채 주체하지 못하고 토미의 손을 제 다리 사이로 집어넣는 다른 헤드윅과 전혀 다르다. 그는 용기를 내야 할 때라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노라고 말한다. 조드윅은 영원한 숙제를 명확히 인지한 채 고해라도 하듯 토미의 "때 묻지 않은 손"을 제 다리 사이로 가져간다. 그게 뭐냐는 토미의 물음에 조드윅은 사과부터 한다. 미안하다고. 이건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겁에 질린 토미는 뒷문으로 도망가버리고 침잠한 목소리의 헤드윅은 늪에 가라앉듯 깊이깊이 가라앉는다. 언제나 그랬듯, 또다시, 홀로.

 

 

"자 여러분. 이제 노래할까요," 라고 입을 뗐지만, 노래할 수는 없다. 이츠학에게 시선을 던져 무대를 넘긴 조드윅은 무대 뒤로 퇴장해버린다. The Long Grift. 넘버 도입의 "대단한 너 / 날 버린 너" 라는 가사를 "대단한 너 / 날 만든 너" 라고 바꿔 부른다. 행복했던 그 한때를 추모하듯. 재등장한 헤드윅은 마지막 두 소절을 듀엣처럼 함께 부른다. 이미 이츠학이 제 반쪽이 아님을 알고 있는 조드윅이기에, 손을 내밀며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권력을 상상해보라는 장면도 없다. 당연히 이츠학이 헤드윅에게 침을 뱉는 부분도 없다. 조드윅은 그저 담담히 객석을 향해 말한다. 이제 마지막 곡이라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Hedwig's Lament. "한 조각은 엄마에게 / 한 조각은 애인에게 / 나머지 한 조각마저 날 버린 락스타에게" 건넨 조각난 살이지만, 조드윅은 나머지 한 조각마저 "사랑하는 락스타에게" 건넸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그 사랑.

 

 

이토록 정적이고 직선적이고 차갑게 식은 Exquisite Corpse 라니. 이런 익스퀴짓은 듣도 보도 못했다. 아니 언니가 미소를 걸어낸다고요. 날카로운 금속제의 반주와는 너무나도 다른 정직하고 무겁고 공허한 보컬이, 생경하고 공포스러우며 아득한 절망을 전한다. 무대 중앙에서 무릎 꿇은 조드윅은 그대로 원피스 왼쪽의 지퍼를 내려 옷을 벗는다. 브라 앞쪽 버클을 풀고 토마토를 꺼내 바라본다. 미소를 건다. 지독히도 싫어했지만 엄마를 연상시키는 토마토를 보며, 미소를, 건다. 소중하게 양손에 꼭 쥐고 키스하듯 입가에 가져다 댄 토마토를,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는다. 토마토를 짓이기지 않는 헤드윅이라니. 붉게 터트리는 과육과 한 박자 늦게 풍기는 짙은 냄새가 없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런히 놓인 그 토마토 두 개에서 흘러내리는 지독하고 처절한 절망이라니.

 

 

뒤돌아서 몇 걸음 걷던 조드윅은 가발을 벗어 바닥에 내팽개치고선 비틀대다 쓰러진다. 암전. 그리고 열리는 문. 멀리서 들려오는 토미의 목소리. Wicked Little Town Reprise. "신비한 신의 창조물" 하며 하늘을 가리키고, "따라와 나의 속삭임" 하며 헤드윅이 그랬던 것처럼 오른손으로 가볍게 손짓한다. 넘버 마지막 부분에서 손을 든 채 "Goodbye" 라고 여러 번 읊조린다. 마치 헤드윅이 그러했듯 작별을 고하며. 마지막 음이 사그라드는 순간, 그가 롱그맆 첫 소절을 부른다. "대단한 너 / 날 만든 너" 라고.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는 그 이름, "헤드윅."

 

 

침묵이 내려앉은 무대. 빛이 쏟아지는 문을 향해 선 조드윅은 가만히 손을 들어 올린다. 토미가 그러했듯 그 역시 작별을 고한다. 반쪽이라 믿었던, 하지만 끝내 반쪽이 아니었던 토미를 향해. Midnight Radio. 가발을 가만히 끌어안고 시작하는 마지막 넘버. 백금발의 가발을 쓰고 돌아온 율츠학과 손을 맞대는 조드윅. 고개를 살짝 떨군 채 한 걸음 씩 퇴장하는 헤드윅의 뒷모습을 향해, 이츠학과 관객들이 손을 들어 올린다. 헤드윅이 그러했듯, 작별을 고하는 락앤롤러들의 인사.

 

 

@shownote

 

 

커튼콜까지 완벽했다. 시국 때문에 싱얼롱으로 뛰어노는 대신, 이번 연출은 극을 담백하게 마무리한다. 위킫맆으로 시작하여 본공처럼 "대단한 너 / 날 만든 너" 하고 롱그맆 첫 소절로 마무리한다. 이어 올진럽 뒷부분을 부르는데 마지막 소절을 "the origin of" 까지만 부르고, 엄마가 좋아했다는 그 노래, "You light up my life" 를 한 소절 부른 뒤에 다시 올진럽으로 돌아가 "love" 라고 마무리했다. 와 진짜 미친 거 아닌가. 사랑의 기원, 그 근간의 엄마를 향한 마음으로 맺음이라니.

 

 

조언니 다음 시즌 다다음 시즌 계속 와주셔야 하고요, 다음 티켓팅 반드시 성공해서 자둘하러 갈게요. 언니 사랑해요!!

 

'공연예술 > Hedwig'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드윅 (2019.10.26 1시)  (2) 2019.10.28
헤드윅 (2019.10.20 2시)  (2) 2019.10.21
헤드윅 (2019.09.27 8시)  (1) 2019.09.28
헤드윅 (2019.08.18 2시)  (8) 2019.08.20
워너원의 헤드윅 표절  (6) 2018.10.31
공지사항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